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황가위난(皇家危難)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이제는 노년에 접어든 두 사람은 칠황자를 마냥 다독였다. 나이 지긋한 두 사람의 노력 덕분인지, 칠황자는 오래지 않아서 딸꾹질과 함께 울음을 간신히 그쳤다. 그는 잔뜩 부어오른 눈을 한 채, 두 사람에게 물었다.
“참말이지? 참으로 끝난 일이 분명하겠지? 그냥 소식이 늦는 것뿐이란 말이지?”
“아무렴요. 이제 거슬릴 것 없습니다. 저하.”
“그래, 그래야지. 아무렴 그래야 하고말고.”
칠황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바로 차분해져서, 울고불고하며 난리 치던 광증이 바로 사그라졌다. 이럴 때에는 또 천하에 없을 기재의 모습이다. 봉 공공은 다행이라 여기는 지, 허허 웃었다. 그러나 맹 천호는 저것이야말로 제대로 미쳤다는 것이라, 더욱 질린 얼굴로 칠황자와 봉 공공을 번갈아 보았다.
“크흠, 공공. 소장은 나가서 기별이 왔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리하시게, 맹 천호.”
봉 공공은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맹 천호는 숨을 가다듬는 칠황자에게 예를 취하고는 조심스럽게 방을 나섰다. 문을 열기가 무섭게 밤바람이 불어왔다. 그는 답답한 속내를 달래고자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후우.”
채 몇 걸음을 내딛다가, 도망하다시피 나선 방문을 돌아보았다. 욕지거리가 턱 아래까지 치솟았지만, 어디나 듣는 귀가 있고, 보는 눈이 있는 것이 황실이다. 무심결에 뱉은 한 마디에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곳이니. 맹 천호는 욕지거리 대신 앓는 소리를 흘렸다.
‘어쩌다가 칠황자 같은 광인과 얽혀서는.’
그러나 한탄하기에 때는 늦었고, 칠황자를 애지중지하는 봉 공공의 그늘이 너무도 짙었다. 아무리 어림친위군이라 하나, 봉 공공의 손짓 하나면 목이 달아나는 미천한 직위에 지나지 않다.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성큼 걸음을 옮겼다. 입에서 짜증 실린 고성이 터졌다.
“아무도 없느냐?”
그런데 당장 돌아와야 할 어떤 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맹 천호는 와락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니, 이것들이 또.”
경계를 소홀히 하고, 다른 딴 짓하는 모양이라. 맹 천호는 노한 기색을 그대로 드러냈다. 보나 마나 몇은 어디 구석에 숨어 노름판이나 벌이고 있을 것이고, 또 몇은 주색잡기에 빠져서, 가까이의 시비나 희롱하고 있을 터였다. 그렇지 않아도 불편한 속내에 아주 불을 활활 지피는 셈이었다.
맹 천호는 칠황자의 아래에는 모두 반편이뿐이고, 광인뿐이라, 한탄하며 걸음을 옮겼다. 오늘에는 봉 공공에게 싫은 소리를 듣더라도 아랫놈들을 호되게 다그칠 참이었다. 눈엣가시와 같은 장 천호가 없는 마당이라,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을 모양이다. 그런데 채 너덧 걸음 만에 우뚝 멈춰 섰다. 맹 천호는 퍼뜩 고개를 치켜들었다. 사방이 한없이 고요하다.
그는 새삼 깨달았다. 그저 밤이 깊어 조용한 것이 아니었다.
주변을 살피자, 곳곳에 밝힌 세찬 불길이 바람에 흔들리며 일렁거렸다. 다른 인기척이 조금도 없었다. 아무리 딴짓을 한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고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맹 천호는 가슴 한 곳이 괜스레 서늘했다. 그는 다급하게 전각을 돌았다. 그러자 앞마당에 불 밝힌 자리가 무수했고, 구석에는 모여 있는 금군의 모습이 있었다. 무장은 벽에 세워놓고 저들끼리 모여 앉은 모양새가 딱 노름판이었다.
맹 천호는 뿌득 이를 악물었다. 그들은 맹 천호가 나타났음에도 고개 돌리기는커녕 저들 하는 것만 빤히 보고 있었다. 그야말로 폭발할 지경이었다.
“이놈들!”
맹 천호는 허리춤의 패도를 움켜쥐고는 버럭 노성을 터뜨렸다. 즉결로 목을 베어도 아무 말도 못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맹 천호는 바로 칼을 뽑지 못했다. 주저앉은 금군들이 알아서 픽픽 쓰러졌다.
“아, 아니?”
맹 천호는 허겁지겁 달려가 그들의 상태를 살폈다. 하나같이 눈을 뒤집고 정신을 놓고 있었다. 누구에게 어찌 당한 것인지, 맹 천호로서는 가늠할 수도 없었다. 그저 분명한 것은 당했다는 것이다. 맹 천호는 번쩍 고개를 들고, 다른 수하들 모습을 찾았다. 넓은 마당 여기저기에 다른 금군의 꼴도 다를 바가 없었다.
“화, 황자 전하!”
칠황자가 위험하다. 맹 천호는 부랴부랴 자리로 돌아가고자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불현듯 섬뜩한 느낌이 허리춤을 파고들었다. 맹 천호는 달려 나가려는 모습 그대로 뻣뻣하게 굳어서, 서서히 앞으로 고꾸라졌다. 주변의 소리가 멀어지고, 어두운 흙바닥이 눈앞으로 달려들었다. 쿵, 둔중한 소리가 울렸지만, 다른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옆으로 낯선 발걸음이 차분하게 지나갔다.
‘누구?’
맹 천호는 하다못해 고개라도 들고자 했지만,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발소리가 차츰차츰 멀어지고, 맹 천호의 의식도 따라서 멀어졌다.
소명은 가볍게 옷을 툭툭 털었다. 서두른다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먼지투성이였다. 마주하는 바람결에 옷이 다 해어질 지경이었다.
“쯧.”
그는 내심 혀를 한번 차고는 사방이 고요한 전각을 두리번거렸다. 가까이 있는 모든 인원을 잠재웠고, 이제 남은 것은 전각 안에 있는 두 사람뿐이었다. 병사고, 고용인이고 할 것 없이 모두 제압했으니. 오늘 밤은 참으로 조용할 터였다. 소명은 불 밝힌 방문으로 다가갔다. 맹 천호가 걸어 나온 방이었다. 방 주변뿐만이 아니라, 전각의 안과 밖으로 경계는 제법 삼엄했지만, 지금은 무인지경이나 다름없었다. 소명은 달리 눈치 볼 것도 없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 순간, 붉은 손바닥이 대뜸 면전으로 들이닥쳤다.
소명은 딱히 놀라는 기색 없이, 붉은 손바닥에 마주 손을 내밀었다. 일체의 외력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손과 손을 마주한 상황에 놓였다.
“흐읍!”
붉은 손의 주인, 봉 공공은 대번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붙인 수염의 한쪽이 툭 떨어지는 통에 우스꽝스러운 꼴이었지만, 돌볼 겨를은 추호도 없었다. 전력을 다한 일장이 아무런 위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그저 허공을 쳐낸 것인 양 일장의 공력이 허망하게 흩어졌다. 아울러 내민 손은 흡사 철벽을 맞대고 있는 듯했다. 공공은 이가 바스러질 것처럼 악물고 더욱 힘을 썼다. 그러나 상대가 태연히 걷는 걸음에 주춤하더니 곧 속절없이 뒷걸음질 쳤다.
“이, 이런!”
놀란 소리가 터졌다. 분명 모든 공력을 다하고 있건만, 밀려나는 뒷걸음을 어떻게 멈출 수가 없었다. 괴인은 봉 공공을 간단히 밀쳐내고 방 한복판에 섰다. 봉 공공은 맥없이 나동그라졌다.
‘허윽! 이런 추태가!’
신음을 꿀꺽 삼키고 벌떡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괴인은 봉 공공에게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대충 두리번거리더니, 곧 한쪽을 향해 눈길을 주었다. 칠황자가 있는 곳이었다. 봉 공공은 다급하게 외쳤다.
“에, 에이익! 멈춰라! 이놈, 멈추지 못할까!”
노구를 마구 흔들어대면서 일어나고자 했지만, 손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가떨어진 모습 그대로 처박혀 있을 뿐이었다. 그 사이, 괴인은 느긋하게 안으로 향했다. 봉 공공의 얼굴이 삽시간에 흙빛으로 물들었다.
“아, 안 돼!”
칠황자는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작은 향로 하나를 부여잡은 채, 솟아오르는 하얀 연기를 거듭 들이켜기만 했다. 그러다가 문이 쿵 열리는 소리에 몽롱한 눈을 돌렸다.
“맹 천호인가? 그래 어떻게 된 일이지? 반편이 놈은 죽은 건가?”
“음, 죽었지. 아주 확실하게 죽여 놓았어.”
“뭐, 뭣?”
칠황자는 뜻밖에 들려온 낯선 목소리에 몽롱한 눈을 끔뻑거렸다. 다시 보니, 활짝 열어놓은 문 앞에 낯선 사내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네놈은 누구냐?”
“소명이라고 하는 필부이지.”
소명은 제 이름을 편히 밝혔다. 거리낌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태도였다. 황자이든, 황족이든 알 바가 아니었다. 그는 곧 방 안에 가득한 몽연을 둘러보고는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단순한 향이 아니었다. 그는 혀를 차고는, 곧 손을 빠르게 내저었다. 장삼의 소매가 크게 펄럭이자 높은 곳까지 묵직하게 고인 향연이 일시에 흩어졌다. 칠황자는 그 광경을 멍청하게 바라보았다.
“어, 어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전혀 깨닫지 못한 얼굴이었다. 소명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고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와 아직 남은 향로를 걷어찼다. 퍽 소리와 함께 황금으로 만든 향로가 엎어졌다. 그리고 소명은 남은 향과 재를 거칠게 밟아서 꺼뜨렸다. 칠황자는 당장 낯빛이 하얗게 질리더니 악을 쓰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무슨 짓이냐!”
그러나 소명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는 행여 불씨라도 남을까 신중하게 밟았다. 그리고 바닥에 엎드려 떼쓰는 아이처럼 아등바등하는 칠황자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귀한 향을 엎지르고, 연기가 다했다는 것이 그의 신경증을 다시 도지게 하였다. 남은 향이라도 맡겠다고, 잿더미에 코를 박는 모습이 처절할 정도였다. 그러나 소명은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그는 대뜸 손을 뻗어 칠황자의 목덜미를 붙잡아 의자에 억지로 앉혔다. 칠황자는 향 가루와 잿가루로 시커먼 얼굴이 되어서는 멍청하게 눈을 끔뻑거렸다. 소명은 그런 칠황자의 얼굴을 호되게 때렸다. 짝! 소리가 크게 울리고, 고개가 홱 돌아갔다. 가볍게 때린 따귀였지만, 칠황자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고통이라는 것을 아예 몰랐으니. 칠황자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맞은 뺨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 겨우 소명의 담담한 눈을 바라보는데, 이제야 두려운 빛이 어렸다.
“뭐, 뭐야?”
“이제 좀 정신이 드시오?”
“으, 응.”
칠황자는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놈은 누구냐?”
“말했다시피, 범부 소명이라는 자요.”
“그런데 왜?”
“왜기는 당신을 죽이러 왔지.”
“나, 날 왜?”
너무 담담한 어조로 말하여서, 둔한 칠황자는 바로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는 혀가 굳어서 떠듬거리다가,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소명을 다시 보는데, 그의 모습은 한없이 고요하여서 칠황자의 둔한 눈초리로는 소명의 속내를 헤아릴 수 없었다.
“내 친구가 당신 때문에 큰 화를 당할 뻔했소.”
“내가 뭘 어찌하였다고.”
“그야, 황위에 오르고자 내 친구를 죽이려 하지 않았소.”
“친구가 누군데.”
“이청, 주이청.”
소명은 싱긋 웃었다. 칠황자는 퍼뜩 야윈 눈을 한껏 끔뻑거렸다. 전혀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는 곧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게 누구냐? 누구라고 이 몸을 핍박하느냐?”
“이름 석 자를 모른다면, 달리 말하여서 십삼황자라고 하더군.”
“십삼! 그, 그 천한 것이!”
칠황자는 그제야 알아먹고는 빽 새된 소리를 내질렀다가, 퍼뜩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정신이 나갔다고 하지만, 죽을 위험 앞에서 되는 대로 떠들어 댈 수는 없었다. 소명은 허겁지겁 입가를 틀어쥐는 칠황자의 모습에 싱긋 웃었다. 그는 바들바들 떨면서 야윈 눈으로 소명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소명은 바로 손을 쓰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엎어진 금동향로 아래에 주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묵직하니, 아직 향 가루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는 입매를 비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으, 으으으!”
칠황자는 소명이 향 주머니를 집어 들기가 무섭게 번쩍 고개를 치켜들었다. 쥐어짜는 듯한 기이한 울음이 절로 새었다. 십삼황자의 친구라는 말에 두려우면서도, 향을 뺏기기라도 할까 안절부절못했다. 야윈 손발이 벌벌 떨리고, 벌어진 입에서 침이 질질 흘렀다. 흐릿한 눈동자가 번들거리며 주머니만 뚫어질 듯 바라보고 있었다. 어김없는 중독자의 꼴이다.
주머니에는 약간의 향 가루와 아편이 뒤섞여 있었다. 보통의 아편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정제한 아편이었다. 손가락 사이로 하얀 가루가 흩어졌다. 이만한 물건을 만드는 곳이 하늘 아래에 그리 흔하지 않았다.
“하여튼 안 끼는 데가 없구나. 안 끼는 데가 없어.”
소명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그는 향로를 다시 세우고, 안에 든 가루를 모두 들이부었다. 그러자 죽어가던 불길이 새삼 타오르며 뭉클한 연기가 왈칵 치솟았다. 칠황자는 그 모습에 앓는 소리를 터뜨리며 사지를 바르르 떨었다. 아까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소명은 굵은 연기가 솟구치는 향로를 칠황자의 앞에 놓아두고, 그대로 방을 나섰다. 문을 닫기가 무섭게 칠황자는 향로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급하게 연기를 들이마시며 기괴한 웃음을 터뜨렸다.
“으히히히!”
소명은 흘깃 뒤를 돌아보았다. 광기 어린 웃음이 지쳐 스러지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날이 서서히 밝아오고, 맹 천호는 느릿느릿 눈을 끔벅거렸다. 그는 문득 입가에 침이 흥건한 것을 깨닫고 훔쳐내며 졸린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응? 아니, 내가 왜 여기에?”
그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번듯한 처소를 놔두고, 어찌 흙바닥에 널브러져 있단 말인가. 그는 엉거주춤하게 몸을 일으켰다. 한데서 밤을 지새운 탓인지, 머리가 묵직하고, 사지가 욱신거렸다. 그는 헛기침을 흘리며 뻣뻣한 목덜미를 대충 주물럭거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아이구, 젠장.”
맹 천호는 통증에 우선 오만상을 썼다. 이게 무슨 소란인지 모르겠다. 두리번거리는데, 밤새 타오르던 불길은 새벽이슬에 젖어서 검은 연기가 얇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인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목덜미를 붙잡은 손이 딱 굳어버렸다. 정신을 잃기 전 일이 번뜩 떠오른 까닭이었다.
“이런, 젠장! 황자 전하! 전하!”
맹 천호는 삐거덕거리는 몸을 가눌 겨를 없이 방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쿵쾅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닫힌 문을 벌컥 열어젖히는데, 안쪽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심지어 봉 공공의 모습도 없었다. 그는 가슴이 마구 요동쳤다. 불길함이 그의 복장을 마구 헤집어놓았다.
“서, 설마, 설마.”
그는 내실의 넓은 마루를 가로질러, 안쪽으로 뛰어들어 갔다. 칠황자를 위해서 한껏 꾸며놓은 온갖 화려한 가구들을 지나서, 닫힌 문을 왈칵 열어젖히는데, 맹 천호는 바로 들어설 수가 없었다. 그는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에 코를 먼저 막았다. 방 안은 한 치 앞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연기에 가득 차 있었다.
맹 천호는 그만 사색이 되었다. 칠황자가 태우는 기이한 향이 어떤 것인지 대충은 알고 있었다. 봉 공공이 당부하기로, 잘못 맡으면 폐인이 될 수도 있다는 무서운 물건이었다. 맹 천호는 우선 옷가지를 찢어 코와 입을 가리고 방으로 들어섰다.
문이며, 창이며 닥치는 대로 열어젖혔다. 그리고 아직도 연기를 뿜어내는 향로를 걷어차서 꺼뜨렸다. 그는 마구 손을 휘둘러서 연기를 몰아냈다. 그리고 드디어 방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맹 천호의 급한 손짓이 우뚝 멈춰버리고 말았다. 바닥에 칠황자가 웃는 얼굴로 쓰러져 있었다. 비쩍 야윈 얼굴에 두려운 기색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기괴한 웃음으로 뒤틀린 얼굴이었다. 생기는 없었다. 맹 천호는 독기 어린 연기에 신경 쓸 것 없이, 맥이 탁 풀려서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허, 허허허.”
마른 입술을 비집고서 힘없는 웃음이 불쑥 흘렀다.
칠황자가 죽었다. 그것은 곧 맹 천호의 목숨도 그만 끝장이라는 뜻이었다. 그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일을 감당해야 할 봉 공공은 어디에도 없었고, 칠황자는 향을 과하게 쓴 탓으로 숨이 끊겼다.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었고, 그가 감당할 수도 없었다. 맹 천호는 향냄새가 지독한 방 안에 주저앉아서, 힘없는 웃음만 흘렸다. 높은 직위나, 부귀영화 따위가 이제 무슨 걱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