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159
159화. 난제(難題)는 혼자 오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아주귈, 그 아이를 선자께서 거두셨다지요.”
“예, 아이가 아주 영특하더군요.”
“그렇지 않아도, 화염산에 청하면 어떨까 하였는데. 이렇듯 인연이 맺어지니. 참 다행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이쿠, 누구의 말씀이라고 소홀하겠습니까. 공의 말씀이 있으니 더욱 공을 들여야겠습니다.”
홍화선자는 하하 웃었다. 둘이 주고받는 말에 위지백은 어째 소외된 듯하여서 얼굴만 이리저리 찌푸렸다. 나서서 아주귈을 거둔 것은 자신이건만.
‘쳇, 쳇.’
그런데 소명이 웃음을 거두고 짤막하게 한숨을 흘렸다. 그는 곧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그 녀석이 산을 나섰다지요.”
“예, 소명 공. 산주께서 폐관을 마쳐 대공(大功)을 이루신바, 노신(老臣)들로서는 미처 만류할 수가 없었습니다.”
홍화선자는 한층 어두운 낯으로 말했다. 그러고는 하얀 눈초리로 위지백을 쏘아보는데, 눈빛에는 살의마저 담겨 있었다. 느닷없는 도끼눈에 위지백은 흠칫 어깨를 들썩였다. 선자의 눈빛이 마치 전부 네 탓이라, 하는 듯했다.
소명도 곱지 않은 눈길을 주기는 마찬가지였다. 위지백은 그 눈길에 그만 인상을 쓰며 홱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래, 아주 나만 죽일 놈이지.’
위지백은 내심 툴툴거렸다. 단단히 토라진 모양새였지만, 두 사람 모두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산주의 행방이니. 소명이 사뭇 진지한 모습으로 물었다.
“그럼 그 녀석은 지금 어디에?”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급히 모든 길목에 이목을 깔아 두었습니다만 워낙에 서두르기도 하였고.”
홍화산주는 끝에 긴 숨을 흘렸다. 시름이 짙었고, 안색이 한층 어둡게 가라앉았다. 화염산이라고 어디 손을 쓰지 않았을까. 산주가 뛰쳐나가기 무섭게, 손이 닿는 모든 곳에 연통을 넣었지만, 어디에서도 화염산주의 그림자조차 찾지 못하였으니. 산주의 행보를 생각하면 너무 늦은 대응이었다. 그리고 소명이 혀를 차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그 녀석은 길눈이 아주 어둡지요.”
홍화선자의 어깨가 작게 흔들렸다. 그녀는 물론, 심통 난 꼴로 있던 위지백도 그만 신음을 흘렸다. 그야말로 제일 큰 문제였다. 당대의 화염산주는 길눈이 어두워도 너무 어두웠다. 화염산에서 한 발자국만 나서도, 오른쪽과 왼쪽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 헤매면 헤매는 대로 난리가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지난 일을 거론해 무엇하겠습니까.”
소명은 자책하는 홍화선자를 급히 달래었다. 그의 말마따나 지금 후회할 때가 아니었다. 그 역시 막막하여서 한숨이 올라오는 처지였다. 화염산주라니, 하늘 아래에 두려울 것이 없는 소명이었지만, 그 이름만큼은 적잖이 부담스럽다. 맹목적인 애정이 힘겨운 탓이다.
홍화선자는 언뜻 고개를 들어 소명의 어두운 낯을 바라보았다.
“소명 공,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산주께서 그토록 애틋하온데.”
“그런 말씀 마시구려. 그 녀석이 콧물을 흘릴 때부터 보아온 처지입니다.”
소명은 당장 질색하여서 손을 내저었다. 몇 번이고 거듭한 말을 이제 와 다시 꺼낼 것 없다. 홍화선자는 이내 시무룩하여서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이토록 약한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멀찍이 앉은 위지백은 마냥 기가 찼다. 사람을 그리 호되게 다루고선 여기서 무슨 내숭이란 말인가.
“소명 공.”
“그만 하세요.”
소명은 말을 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뒷짐을 진 채, 캄캄한 창가 앞으로 가 섰다. 더는 말하지 않겠다는 뜻이 분명했다. 홍화선자는 푹 고개를 숙였다. 몇 차례이고 거듭된 일이었다. 그러나 매양 그렇듯이, 소명은 이번에도 홍화선자의 뜻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소명이 보기에 산주는 아직도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았다.
“많이 크셨습니다. 이제 산주도 옛적의 어린아이가 아니에요. 우리네 사람들에게 스물이든, 서른이든 큰 흠이 아닐진대. 권야 대공께서는 아직도 산주를 아이로만 보시는군요.”
“선자, 더 말할 것 없소. 급한 것은 그 녀석이 다른 사고를 치기 전에 종적을 찾는 것이 더 중할 것이오.”
“예, 예, 그렇지요.”
홍화선자는 면목이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소명의 말마따나, 화염산주의 진면목을 모르는 중원 땅이다. 자칫 크나큰 사달이 일어날지도 몰랐다.
“사람 찾는 일에는 이곳의 흑선당이 제법 수완이 있다고 하더군요. 어차피 이런저런 신세를 진 김에 한 번 더 신세 진다고 책잡힐 일은 없겠지요.”
소명은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루도 제대로 쉴 틈이 없는 셈이었다. 그러자 부랴부랴 위지백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냐?”
“나도 가게.”
“네가 왜?”
“네놈 올 때까지 마냥 처박혀 있었단 말이다. 나도 숨 좀 쉬자.”
“아니, 나쁠 건 없지만. 괜찮겠냐? 꽤 번잡할 텐데?”
“흠, 겸사겸사 정리도 하지 뭐.”
위지백은 히죽 웃으며 퍼뜩 손을 뻗었다. 애도 무광도가 그의 손에서 가볍게 몸을 떨었다. 지이잉, 지이잉 하는 소리가 또렷했다. 그것은 이제껏 조용하였던 서장제일도가 다시금 투지(鬪志)를 품었다는 것이니. 아니나 다를까, 잠시 뒤 하동대하 아래에서 느닷없이 곡소리가 터졌다.
며칠이고 두문불출, 칩거하고 있던 서장제일도가 대뜸 뛰쳐나왔다. 그는 좌우에 내건 문구를 영 못마땅한 눈으로 노려보더니, 이내 쩌렁쩌렁 큰 소리로 외쳤다.
“뒤질 놈은 오른쪽, 팔다리 아작 날 놈은 왼쪽! 이 몸께서는 바쁘시니, 알아서들 덤벼!”
이에 반응하는 이는 없었다. 그들은 지금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고민했다. 제대로 들은 것인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이곳은 산서, 하동 땅이었다. 하동인치고 호걸 아닌 자가 없다고도 하는데. 비록 서장제일도라고 하나, 외지인이 하동의 무부들 앞에서 저런 소리를 지껄인 것이다.
광오? 오만? 아니, 그네들에게는 미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침묵 끝에 서서히 뜨거운 살기가 맹렬히 치솟았다.
“오냐! 잘난 칼 좀 받아보자!”
“어디 누가 뒤지나 보자!”
욕설과 함께 다섯의 칼잡이가 당장 달려들었다. 마적 사적단의 다섯 두목이다. 달리 흉한오적(兇漢五賊)라 불리는 그들을 시작으로 좌, 우 할 것 없이 칼날을 꼬나 쥔 도객들이 비로소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흉한오적이 대뜸 위지백 앞으로 몸을 날렸다. 분기탱천하여 달려들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생각 없이 나선 것은 아니었다. 형태도, 길도 다 다른 다섯 자루 칼날이 일시에 번뜩이는 순간, 어디에도 피할 곳이 없다. 익숙하기 짝이 없는 합격이다. 그러나 새파란 광채가 횡으로 가로지르고 사그라지자, 다섯 두목은 위지백을 지나쳐서 그대로 널브러졌다. 후드득 떨어진 목은 뒤로 날아가고, 칼날은 동강 난 채 떨어졌다.
발도와 동시에 다섯의 목과 다섯의 칼날을 베어 버리고서, 위지백은 걸음을 시작했다. 흉한오적의 무참한 꼴에 잠시 주춤했지만, 하동의 무부가 순순히 흩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으, 으아악!”
처음만 못해도, 쥐어짠 괴성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달려드는데, 저도 모르게 슬금슬금 왼쪽으로 몰려갔다. 다행이라 할지 몰라도, 위지백은 그들 앞에서 자신의 말을 단단히 지켰다. 흉한오적을 제외하고 죽어나간 자는 없었다.
위지백은 대로 끝에 닿아서 도를 거두었다. 무광도가 도갑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이내 그가 도갑을 한쪽 어깨에 턱하니 올리고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이봐, 이봐. 몸 풀 거리도 안 된다니까.”
그는 쯧쯧,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갈 길을 가버렸다. 위지백이 가로지른 대로에는 달려든 모든 무부가 바닥을 구르며 길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하나같이 팔다리 중 어디 한 곳을 움켜쥐고 있었다. 엉망으로 당했을지라도 체면이 있어, 차마 비명은 터뜨리지 못하고 끙끙거리며 앓는 소리만 흘렀다.
진성의 한복판이 칼부림으로 들썩거리는 동안, 외곽에 자리 잡은 주색가는 그저 소란했다. 햇빛이 뉘엿 저물었다지만, 이곳에서는 이제부터가 진짜 하루가 시작되는 셈이었다. 곳곳에 사람이 왁자지껄했다.
한쪽에서는 무리지어 술잔을 연이어 높이 치켜들었고, 다른 쪽에서 취한 무리가 저들끼리 뒤엉켜서 기괴한 춤사위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비좁은 골목이 온통 술판이나 다름없었다. 노소가 따로 없고, 남녀가 또한 따로 없었다. 웃음 파는 여인네들이 자리마다 앉아서, 되먹지 못한 탄금 연주라도 흥을 돋우고 있었다. 소명과 위지백은 그 한복판을 성큼성큼 걸었다. 어지러워도 뻔히 길을 알았다.
과연, 뒤엉킨 취객의 사이를 간단히 지나쳐서, 노점 사이의 비좁은 문가로 들어섰다. 코딱지만 한 조그만 술자리에 험상궂은 사내들이 얼큰하게 취한 얼굴을 들었다.
걸쭉한 욕설이라도 쏟아낼 것처럼 험악한 기세를 드러내다가, 퍼뜩 눈을 치떴다. 술기운에 몽롱한 눈동자에 힘이 들어가며 바로 긴장하여서는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소명과 위지백을 알아본 까닭이었다.
두 사람은 주변의 숙연한 모습에 흘깃 눈길을 주고는 바로 안쪽으로 향했다. 지나온 길처럼 비좁은 술자리가 몇이고 나오더니, 끝에 소란한 자리가 나타났다. 그러나 바깥의 소란과는 전혀 달랐다. 웅성거리며 시끄럽기는 매한가지였지만, 술에 취하고, 밤에 취한 것이 아니었다. 이곳은 과중한 업무에 크게 시달리고 있었다.
“태원부에서 소식은!”
“북평에서 왔습니다.”
“일급요원을 급파 요청한답니다!”
앞뒤가 없는 말을 사방에서 고래고래 외쳐대는데, 하나같이 절박한 얼굴이었다. 소명과 위지백은 그들을 방해할 생각은 없어서, 문간에 조용히 서 있었다. 이 자리에서는 바깥의 소음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헛, 소명 공! 위지 대협!”
이때에, 두 사람의 모습을 먼저 확인한 종칠이 후다닥 달려왔다. 그는 이제 놀라지도 않았다. 다만 의아해할 뿐이었다.
“오늘 진성에 도착하셨음은 알았지만, 이렇게 직접 찾아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말씀만 전하셨으면, 제가 찾아뵈었을 것을요.”
“아니, 어디 그렇게까지 신세 질 수야 있나. 그러나저러나,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이구려?”
“헤헤, 예. 소당주, 아니지. 당주께서 중원의 정보 취합에 특히 신경을 쓰라 하시는 통에, 졸지에 한가한 진성이 이렇게 소란해지고 말았습니다요.”
“좋아 보입니다.”
“그, 그렇습니까?”
종칠은 멋쩍게 웃었다. 진성의 흑선당 지점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종칠의 외양이 멀끔하여서,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산발한 머리는 기름을 발라 단정하게 넘겼고, 건을 바르게 둘렀다. 무엇보다 신색이 훤하여서 전혀 딴사람처럼 보였다.
종칠은 바로 웃는 낯빛을 다잡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어, 두 분께서는 어찌 이곳을?”
“사람 찾을 일이 있어서 그러우. 듣자니 뭐 찾는 것 하나는 기가 막힐 정도라면서.”
옆에서 위지백은 툭 던지듯이 말했다. 불과 조금 전에 한바탕 칼부림 한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태연한 모습이었다. 이미 소식을 접한 터라, 종칠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저도 모르게 위지백의 어깨 위에 올린 무광도에 슬쩍 눈이 갔다. 위지백은 종칠의 눈치를 읽었음에도 모르는 척,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흑선당 지점을 신기한 눈으로 둘러보았다. 바깥에는 전혀 보이지 않으면서 위아래로 드높은 공간을 형성하고 있으니. 제법 공을 들인 장소였다.
소명은 위지백이 아직 속이 다 풀리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는 피식 헛웃음을 삼키고는, 눈치 보는 종칠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친구 말대로, 사람을 찾고자 하오.”
“사람이란 말씀이지요. 그럼요, 그럼요.”
종칠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소명과 위지백, 두 사람이 있어 산서 무림이 크게 들썩인 판국이었다. 어찌 그의 뜻을 거스를 텐가. 아니, 꼭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종칠에게 소명은 주인을 구명한 은인 중의 은인이었다. 그는 소명이 찾는 사람의 인상착의를 귀담아들었다. 그런데 들을수록 표정이 영 어려워졌다.
환하게 밝힌 유등의 불빛이 높은 천장에서 실내를 밝히고 있었다. 종칠은 한 손에 모필을, 다른 손에는 책자를 들고는 멍한 눈으로 흔들거리는 유등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가 일렁였다. 그는 퍼뜩 숨을 삼키더니, 다시 책자를 살폈다. 소명과 위지백이 이제껏 설명한 인상착의를 정리하여서는 확인하고자 물었다.
“그러니까, 두 분께서 찾으시는 분이. 어떻게 보면 스물대여섯인데, 또 달리 보면 열 서넛처럼 보이고. 절세가인임이 분명하나, 얼굴은 잘 드러내지 않고, 얼굴은 하얀데, 입술은 붉은, 그런 여인을 찾는다는 말씀입니까.”
“오, 깔끔하게도 정리하는데?”
마냥 딴청이던 위지백이 종칠의 확인을 듣고는 새삼 놀란 눈으로 돌아보았다. 언뜻 들으면 빈정거리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었지만, 종칠은 위지백이 진정으로 신기해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만치 소명과 위지백의 설명이 워낙에 두서가 없었다. 소명은 쓴웃음을 그린 채 말했다.
“얼굴을 보지 못한 세월이 한 십여 년이라 그렇소.”
“그, 그렇군요.”
종칠은 고개를 끄덕였다. 십 년 세월이라면 모호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난감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컫기를 중원 십팔만 리라 하는데, 얼굴 하얗고, 입술 붉은 여인이 몇이겠는가. 종칠은 모필의 끄트머리로 귀밑머리를 긁적거렸다.
“다른 특이점이라고 한다면.”
“음, 맨발로 다니기를 좋아하오.”
“맨발, 맨발이군요.”
“그리고 성격의 기복이 좀 있다오.”
위지백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 녀석, 주사(酒邪)도 좀 있지. 술도 약한 주제에 좋다고 쫓아 마신단 말이야.”
“성격의 기복에 주사까지.”
종칠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보는 눈앞에서 민망한 일이지만, 듣고 있자니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다. 맨발에 술을 좋아한다는 것이야 어디 탓할 일이겠느냐만, 주사가 있다는 것은 문제가 많은 일이 아니겠는가. 영 떨떠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소명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퍼뜩 생각이 났다는 듯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그 녀석이 술에 취하면, 불장난이 크게 일어났더랬지.”
“네? 불장난이요?”
아니, 아이도 아니고 무슨 불장난인지. 종칠은 선뜻 그려지지가 않았다. 술에 취한 여인이 불쏘시개를 들고 사방에 흔들어대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런데 위지백도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그렇지. 그 녀석이 그래도 손꼽히는 고수인지라, 한번 작정하면 거리 하나쯤은 삽시간에 태워 버릴 거요. 아니, 지금은 더하지 않으려나? 폐관도 끝났다고 하니.”
위지백은 히죽 웃으며 소명을 돌아보았다. 소명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대공을 이루었다는 홍화선자의 한 마디가 새삼 떠오른 탓이었다. 여기에 종칠은 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거, 거리를 태워요? 그, 그럼 불장난 수준이.”
“에헤이, 거리라고 해도.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니오. 기껏 여기 골목 하나 정도에 불과하지.”
위지백은 기겁하는 종칠을 달랜답시고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하하, 그래도 나쁜 녀석은 아니라오. 아니, 아닐 거요.”
소명은 이때만큼은 자신이 없어서, 말끝을 흐렸다. 종칠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가 이제껏 마주한 중에 소명이 이토록 침울한 기색은 본 바가 없었다.
“하하, 제가 당장 알아보겠습니다. 그럼요. 당장 알아보지요.”
종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우당탕하고, 다른 사내가 허겁지겁 달려들어 왔다. 귀인이 있는 자리였다. 이렇게 무작정 들어서다니. 종칠은 와락 이맛살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야?”
“광, 광동육가(廣東陸家)에서 큰불이!”
“무슨 소리냐?”
“화염마녀가 등장하여서, 광동육가의 십삼분가가 홀라당 타버렸답니다!”
“뭐, 뭐얏!”
다급한 보고에 종칠은 벼락 맞은 사람처럼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