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169
169화. 걸개대사(乞丐大事)
드넓은 선상에는 선부들만 피 흘리며 누워 있었다. 우뚝 서 있는 것은 그녀 한 사람뿐이었다. 와중에 선부의 우두머리인 공씨가 머리를 치켜들고 악을 썼다.
“아, 아가씨. 물러, 물러나십시오. 아가씨.”
“시끄럽다!”
피 흘리면서도 여인을 걱정하는 모습이 사뭇 절절하다. 그러나 흉적들에게는 꼴사나울 뿐이었다. 다른 이가 버럭 소리치며 공씨의 얼굴을 냅다 걷어찼다. 피와 함께 누런 이가 치솟았다. 무참한 모습이었다.
여선주는 으득 이를 악물었다. 당장에라도 발길질한 사내를 박살 내고 싶었다. 심중에서 노화가 맹렬히 솟구치며 노대를 쥔 손이 부르르 떨렸으나, 허투루 움직일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잘 헤아리고 있었다. 아직 어리다 싶었지만, 그녀는 분명 배를 책임질 만했다.
“이 빌어먹을 것들.”
사방이 흉적의 칼날이었고, 앞에 마주한 죽립인은 언뜻 보기에도 간단치 않은 무위를 지니고 있었다. 아니, 잠시 드러내는 기세만 보아도 그녀가 감당할 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녀는 끓는 한숨을 끊어 삼켰다.
“알았으니. 객선에 오른 손님들에게는 손대지 마라.”
“호오, 저런 하찮은 것까지 신경을 쓰시다니, 호남황보의 장중보옥(掌中寶玉)께서는 마음이 참도 넓으시오.”
“장중보옥? 그게 무슨?”
“흥! 이 지경이 되어서도 끝내 모른 체할 것인가! 아무리 계집이라도 무림가의 가인, 당당히 정체를 드러내라!”
여선주의 당혹감을 딴청으로 보았는지, 사내는 내처 발을 구르며 다그쳤다. 호통의 기세가 간단찮아서, 비록 죽립으로 얼굴을 감췄다고는 하나, 한낱 무명의 존재가 아님이 자명하다.
“아이쿠, 얼굴 가린 놈들이 당당 운운해 대는 것도 우습구먼.”
호통이 채 흩어지기도 전에, 웃음과 더불어서 놀리는 듯한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뭐야! 웬 놈이냐!”
“어허, 놈이라니. 이분이시다.”
선창 후미에서 위지백이 설렁설렁 걸어 나왔다. 무광도는 여직 그의 어깨에 걸쳐져 있었다. 그러나 그가 나섰다는 것은 여기 무리에게는 실로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선미를 맡기로 하였던 이가 누구인지 그들은 아는 까닭이었다. 면포로 얼굴을 가린 사내는 질끈 이를 악물었다. 대신이랄까, 거칠게 공씨의 얼굴을 걷어찼던 죽립인이 빽 소리를 높였다.
“배, 백기! 백기는 어찌하고!”
“응? 백기? 그 어설픈 칼잡이 말인가? 천지분간 못 하고 나서길래 곱게 다져서 물길에 던져 주었지.”
“뭣이!”
“아아, 너무 걱정하지 마시게. 그저 한쪽 팔만 깔끔하게 부러뜨려 놓았으니. 물질 재간 좀 있다면 죽지야 않겠지.”
“제, 제기랄!”
위지백은 마냥 태연하니, 그 낯짝이 어찌나 얄미울까. 그러나 면포 사내는 어금니를 악물고서 사내에게 나직이 속삭였다. 떠내려간 이를 구원하라는 것인지, 그들은 지체하지 않고 움직였다.
“어허, 이런. 지금 걱정할 것은 물길에 빠진 놈들 몇이 아닐 텐데.”
“무어라?”
위지백의 빙글거리는 낯짝 때문인지, 경망스러운 어조 때문인지, 면포 사내가 눈썹을 역팔자로 치켜들었다. 그는 위지백에 대해서 다른 위협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아닌 말로,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는 것이 더욱 정확했다. 위지백은 달리 마음 상한 기색이 아니었다. 그는 아직 젖은 노를 늘어뜨리고 있는 여선주에게 다가갔다.
“실로 여장부로구먼.”
“당신은.”
그녀는 멍하니 있다가 흠칫 어깨를 들썩였다. 촌각 전에 게으른 당나귀인 양, 축 늘어져 있던 사내가 지금 눈앞에 있는 도객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크게 치뜬 두 눈에 당혹감이 또렷했다. 갑작스러운 습격보다 위지백의 다른 모습이 더욱 당황스러웠다. 그녀는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제 눈이 멀어, 고인을 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였으니. 지금이라도 사죄드립니다.”
여선주는 바로 두 손을 맞잡으며 깊이 허리를 숙였다. 하나 주저함이 없었다. 잘못함을 바로 사과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터였다. 더구나 지금처럼 흉험한 상황의 한복판에서라면 더할 나위 없었다.
“이 배를 책임지고 있는 황보가의 도옥이라 합니다.”
“오호, 황보의 도옥이시라. 그렇군.”
위지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보’라는 성씨에도 그러려니 하는 모습이었다. 반면 죽립인들은 빠드득 소리 나게 이를 갈아붙이면서 황보도옥을 향해서 한층 살기를 드러냈다. 분명 그들이 노리는 목표였다.
황보도옥은 일순 숨결이 흐트러졌지만, 노리는 살기에 움츠러들지는 않았다. 위지백은 버티는 그녀에게 편히 말했다.
“천산에서 온 위지 모라 하네.”
무슨 훈훈하여서 한담이라도 나누는 듯하는데, 주변 죽립인들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모양새였다. 보다 못해, 그들은 버럭 노성을 터뜨렸다.
“이 정신 나간 것들이 감히 뉘 앞에서!”
뱃전이 들썩거릴 정도로 쩌렁 울렸다. 그러나 위지백은 힐끔 돌아보고는 히죽 웃었다. 그의 눈길은 소리친 사내들을 그대로 지나쳐서 면포 사내에게로 향했다.
“남방의 단정도라면 내 한 번은 겪어보고 싶었지. 애송이 칼맛으로는 영 개운치 않으니. 어디 어울려 봅시다.”
“네놈이 단정을 어찌?”
웃음과 함께 내뱉은 단정도의 한마디, 침묵하던 면포 사내가 눈을 부릅떴다. 가볍게 흘려들을 수 없었다. 앞서 말한 백기라는 도객은 분명 그의 제자였다. 그가 무턱대고 절기를 드러내지는 않았을 터이건만. 상대는 바로 자신의 원류를 밝혀낸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위지백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칼을 들이댄 것들을 죄 치우고, 제대로 여문 단정도를 견식할 생각뿐이었다. 히죽거리며 웃는 얼굴이 그리 밉상이다.
“허, 낭패로군. 호랑이를 잡으러 왔다가 그만 용의 수염을 건드린 격이구나.”
사내는 한탄하며 얼굴을 가린 면포를 거칠게 벗어던졌다. 그러자 드러난 것은 뜻밖에도 청수하기 그지없는 인상을 지닌 중년인이었다. 한 사람의 유자(儒者)처럼 단정한 얼굴에 짙은 호목(虎目)을 지녔고, 회색 수염을 단정하게 다듬었다. 더불어 들고 있는 박도를 내던지고는 허리 뒤에서 새로이 칼 한 자루를 뽑아 들었다. 낭창거리는 유엽도(柳葉刀)는 내리는 햇빛을 받아 무광도에 못지않은 반사광을 번뜩였다.
“청사도(靑蛇刀)!”
황보도옥은 푸른빛을 머금은 보도를 바로 알아보았다. 그녀는 더욱 놀라 사내를 바라보았다. 유자의 고아한 외견(外見) 속에 수라의 살기를 지닌 도객이라니. 강호도상에 달리 있을 리가 없었다. 더구나 청사도의 주인이니. 그녀는 터진 입술을 질끈 물었다. 통증을 느낄 새도 없었다.
“청사도주 강량!”
그렇다는 것은 곧 여기 몰려온 무리는 다른 누구일 리가 없었다. 그녀는 긴 숨을 토하며 중얼거렸다.
“당신들 황가(荒家)의 사람들이군.”
황량한 가문이라니, 기이한 이름이다. 그러나 이는 무가련, 특히 호남황보에 세를 빼앗긴 크고 작은 무가의 결집체를 뜻했다. 황보도옥은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놀람은 잠시, 그녀는 하얀 이를 질끈 물었다.
“당신들이 호남황보에 적의를 지닌 것은 십분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본선을 노리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오! 대선을 이용하는 것은 일반 백성들이며, 황보가와는 하나 상관없는 이들뿐이거늘, 어찌, 어찌!”
“흥! 시끄럽다. 뒤에서 압박하고, 앞에서는 공명정대한 척, 거드름이나 피워대는 황보의 씨족이 지금 백성이 어쩌고를 떠들어? 하하, 우습구나!”
주장(主將)이라 할 강량은 가만히 있는데, 한 사내가 불쑥 튀어나와서 노성을 터뜨렸다. 흉적 중에서도 유독 거칠었던 이였다. 그 또한 하나 감출 의도가 없는지 얼굴 가린 면포를 벗어던졌다. 황보도옥은 그의 노성에 어깨를 들썩였다. 처절하기 이를 데가 없어 흡사 원귀(寃鬼)가 양광에 모습을 드러내기라도 한 것만 같았다. 황보도옥은 그 또한 알아볼 수가 있었다.
“복양문주.”
“그래, 내가 복양문 사대문주, 진종길이다!”
복양문이라면 수 년 전에 황보가의 눈 밖에 나서 그 터전을 잃고만 문파였다. 사대에 이르기까지 세월이 무려 일백여 년이니. 그러한 터전을 잃었다는 것은 곧 전부를 잃었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절절함은 당장 피눈물을 쏟아낼 지경이었다.
황보도옥은 말을 잃었다. 그런데 위지백이 앞으로 나섰다.
“무슨 구연인지 내 알 바는 아니고 좀 비켜주지그래? 아니면 같이 덤비든가 말이야.”
“감히, 낭인 주제에!”
“진제, 그만하게.”
“하지만.”
“여기 이자는, 아니 이분은 낭인이라 할 분이 아닐세.”
노한 복양문주를 강량이 낮은 목소리로 만류했다. 위지백을 향한 눈길은 여전했다. 그 신중함에 진종길은 물론, 황보도옥과 다른 무인들도 한껏 놀라고 말았다. 강량은 그 무위만큼이나 오만함으로 유명한 자였다. 그런 이가 몸가짐을 바르게 하면서 존대를 하였으니.
“이제야 그대가 누구인지 알았소. 무례를 용서하시구려, 위지 선생.”
“위지? 위지라 하면?”
“천산의 위지 씨라 하니, 다른 사람일 리가 없지. 당대의 서장제일도. 그리고 다음의 천하제일도라 불리는 도객.”
“위, 위지백!”
강량은 차분하게 말했다. 그러자 복양문주를 비롯한 황가련의 인물들은 눈을 치뜬 채, 위지백을 다시 보았다. 마치 왈짜 무리인 양 건들거리는 모양새인데, 실상 절세의 도객이란 말인가. 위지백은 쏟아지는 눈길에 피식 웃었다.
“오호, 알아봐 주니 감사하기는 한데. 그렇게 띄워 준다고 칼을 거둘 생각은 없는데.”
“그것은 이 사람도 마찬가지. 다시 인사드리겠소. 청사도주 강량이오.”
“새삼 말할 것도 없겠지.”
위지백은 있는 대로 오만을 드러냈다. 히죽 웃는 모습에 황가에 속한 여타 무인들은 불끈하면서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그들이라도 뛰쳐나갈 기세였다. 그러나 강량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장제일도라면 마땅히 오만할 자격이 있다.
“허면, 길게 말할 것도 없겠구려.”
강량은 퍼뜩 이를 드러냈다. 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나, 그 또한 무도를 쫓는 도객이다. 강자와 겨룰 기회를 마다할 리가 없었다. 청사도 얇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가, 강 문주.”
“물러서게. 어차피 오늘 일은 다 글렀네.”
“으, 으윽.”
진종길은 신음을 흘리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리고 품은 독기를 잃고서, 힘없는 눈으로 위지백을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그 눈길은 숨을 몰아쉬는 여선주, 황보도옥에게로 향했다가 그만 고개를 떨구었다. 반면 황보도옥은 안도하여서, 저도 모르게 한숨을 흘릴 뻔했다.
‘헉, 안 되지, 안 되지.’
생각 없는 작은 행동으로도 여기 황가련의 사람들을 자극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다독이고 우뚝 선 위지백의 뒷모습을 새삼 바라보았다. 강량이 청사도를 눈앞에 세운 채, 서서히 도세를 드러내고 있었다.
청사도, 시린 빛을 뿌리는 보도는 쏟아지는 불볕더위에도 차가웠다. 강량은 도신을 곧게 세우고서, 퍼뜩 눈을 감았다. 대적자를 앞에 두고 홀연 눈을 감다니, 그게 무슨 짓이냐 싶었지만, 위지백은 그것을 보고는 퍼뜩 눈살을 찌푸렸다.
“오호라, 이번에는 진짜 제대로구먼.”
그러고는 더욱 밝게 웃었다.
단정, 오욕칠정(五慾七情)의 심근(心根)을 끊어내는 것이니. 단정지도(斷情之刀)의 무경을 이룬 모습은 곧 이러하다.
다시 눈을 뜬 강량의 얼굴은 흡사 밀랍으로 빗어낸 가면을 덮어쓴 것처럼 아무런 표정도 없어 싸늘했다. 위지백의 말마따나 제대로 된 단정도의 발현이다. 청사도의 흉광이 차츰차츰 가라앉았다. 단정도는 흉험함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깊이 품은 도광은 쏟아지는 햇빛을 속이고, 거리를 갈랐다. 일말의 잡념도 실려 있지 않은 일도, 그 궤적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있는 위지백의 미간으로 빨려 들어갈 듯했다. 그에 비하면 무광도는 한참 늦게 움직였다.
황보도옥을 비롯한 선부들은 그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차마 절망의 순간을 똑바로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반면에 황가련은 한껏 이를 드러냈다. 역시 강남불패도라 하는 청사도이다. 속으로 그렇게 부르짖을 새, 강렬한 일순의 섬광이 터지며 모두의 시야를 가렸다.
소리는 뒤늦었다.
눈이 멀 듯한 것을 자각하고 나서야 날카로운 쟁명이 모두의 귀를 때렸다. 퍼뜩 정신을 차렸을 적에, 적아를 떠나서 그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위지백은 여전한 얼굴이었다. 다만 한 걸음 뒤로 물러섰고, 어깨에 걸쳤던 무광도는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채였다. 그러나 그는 오연한 모습이었다. 이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역시 단정도. 이야, 이야, 가슴이 철렁할 정도라니.”
강량은 고개 숙인 채, 쓴웃음만 흘렸다. 맥없이 늘어뜨린 손은 비어서 멋대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절세보도인 청사도가 빛을 잃은 채, 뱃전에 틀어박혀서 칼자루가 좌우로 흔들거렸다.
“허어.”
강량은 긴 한숨을 흘렸다. 약관의 나이에 강호출두하여서, 무수한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강남불패도라는 별칭이 괜한 이름이 아니었건만. 누가 보아도 명백한 결과였다. 청사도를 놓치다니. 다만, 결과에 이르는 과정은 여기 있는 누구도 헤아릴 수가 없었다.
“아니, 이게. 이게 무슨?”
“지금 뭐가 어떻게 된 일이지?”
임무를 그르친 마당이었지만, 황가련의 이들도 엄연한 무인이었다. 천하를 아우르는 고수의 대결에 이목을 집중하지 않을 리가 만무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헤아릴 수가 없었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한껏 웅성거리는데, 강량은 애써 담담한 척 말했다.
“졌소.”
서장제일도를 마주하고서, 일도에 아낌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애초에 각오하고 단정구도(斷情九刀)에서 제일 자신하는 무욕도폭(無慾刀暴)을 펼쳤는데, 이렇게 완벽하게 튕겨 내다니. 사실을 말하자면, 마주한 강량조차 위지백의 도초가 어찌 변화하는지, 두 눈으로 보았음에도 헤아릴 수가 없었다. 무광도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뻗어 가는 청사도를 휘감아 멀리 던져버린 듯했다.
“이야, 정말 화끈한 일도였소. 당신 정말 멋진데.”
패배를 자인하는 것만큼, 무인에게 괴로운 것이 어디 있을까. 위지백은 한쪽 입매만 슬쩍 올린 채, 편히 말했다. 그리고 무광도를 바로 거두었다. 눈가를 어른거리던 백광이 싹 사라져버리자, 새삼 뱃전이 어둑했다.
“위지 선생께서는 뜻대로 하시구려. 여기 강 모는 처분에 따르겠소.”
“강 문주!”
“강 대협!”
승복하는 강량의 한마디에 황가련 사람들은 비명처럼 빽 소리쳤다. 임무의 실패나, 강량의 패배보다도 지금의 일이 더욱 절망적이었다.
위지백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채, 고개 숙인 강량을 다시 보았다. 그는 곧 황가련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처분, 처분이라. 뭐 양쪽의 사정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고. 여하간, 이 사람은 광동에 들어서야 한단 말이야. 그럼 어쩌면 좋을까? 응?”
은근하게 하는 말에는 웃는 기색마저 섞여 있었다. 그러나 웃음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여기에 단 한 명도 없었다. 어깨에 걸쳐 올린 무광도의 칼날이 새삼 번뜩였다. 그들을 이끄는 강량은 이미 고개 숙이고서 두 손, 두 발을 다 든 처지였다. 이를 악물고 대든다면야 못해도 황보가의 밥이나 빌어먹는 선부들을 모조리 베어 버릴 수도 있을 테지만. 그리했다가는 황가련의 명분과 명운은 그래도 끝장이었다. 침묵하는 강량을 대신하여서 복양문주 진종길이 대신 나섰다.
“이만 무, 물러나겠소.”
“응? 물러나시겠다?”
“그렇소.”
“아니지, 이대로 물러나면 아니 되지.”
“그게 무슨?”
“이런 젠장, 배를 몰아야 할 선부들이 다 이 지경인데. 네놈들이 훌쩍 빠져버리면, 배는 어쩌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