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191
191화. 칼바람에는 자비가 없다
눈길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손에 든 기왓장 따위를 툭 집어 던지고, 허리의 칼자루에 손을 올렸다. 서서히 그러쥐며, 도문 제자가 가리킨 기둥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눈길이 차분해지는 순간, 발도했다.
도갑을 스치는 소리가 날카로웠지만, 그 소리는 끝까지 뻗어 가지 못했다. 쩡! 둔탁한 소리가 들리며 칼날의 궤적이 끊겼다.
“으헉!”
호흡이 크게 흐트러졌다. 사내는 나무 기둥을 베어 내지 못했다. 아니,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손목이 부서질 듯했고, 칼날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나 사내의 눈에는 고통보다는 놀람이 더욱 짙었다. 기둥을 이루고 있는 나무를 이제야 알았다.
“처, 철령목(鐵嶺木)!”
“이제 아시겠소?”
도문 제자가 차분히 말했다. 사내를 비롯한 황가련 도객들은 다른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철령목은 호남의 깊은 산중에서나 겨우 볼 수 있는 진귀한 나무였다. 그 단단함은 강철에 비견될 정도였다. 벌목하기도 어려운 것으로 산문을 만든 것도 놀랄 일이지만, 위지백은 그런 철령목을 바로 베어 버린 것이다.
“나도 한번 해 보자!”
“나도, 나도!”
좀체 보기 힘든 나무를 앞에 두고서, 도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칼자루를 잡아갔다.
쩡! 쩌엉! 괜한 소리와 함께 고통에 찬 신음이 뒤따랐다.
“으악, 아이고.”
“으어억!”
손목을 부여잡는 도객들이 연이어 나왔다. 도문 제자들은 그 모습에 어이가 없었지만, 어느 틈엔가 그네들도 같이 뒤섞여서는 손목을 부여잡았다. 그들도 산문을 철령목으로 지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감히 칼질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결국에는 다들 손목을 부여잡는 처지가 되었다. 그들은 서로의 모습을 보면서 피식피식 웃었다.
억지로 다잡아 놓았던 앙금이 잠시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힘내어서 산산조각이 난 산문을 말끔히 정리했다. 볼품없이 내려앉은 산문 자리에는 곧 새로운 산문이 세워질 것이다.
햇빛이 중천에 닿을 무렵이 되어서야, 산문을 모두 정리했다. 땀에 옴팡 젖은 그들은 누구랄 것 없이 멋쩍은 웃음을 안고서 발걸음을 돌렸다.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에 젖은 몸이 추웠다.
자리를 피하려는데, 문득 고개를 돌렸다. 부는 바람을 타고서 서두르는 발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내밀어 산 아래를 살피자, 없는 산문 자리로 몇몇 인영이 빠르게 내달렸다.
비탈진 험한 길이었지만, 누구 하나 뒤처지지도, 비틀거리지도 않았다. 그들의 날랜 몸놀림은 분명 남악도문의 보신경인 백원비영이다. 삽시간에 산문 자리에 닿은 그들은 퍼뜩 고개를 치켜들었다.
파란 도포의 옷자락을 펄럭였다.
“아니, 이게 무슨 꼴이야!”
그들은 없는 산문 앞에서 버럭 소리쳤다. 갑작스러운 일갈이 도궁의 앞마당에서 높이 울려 퍼졌다.
여덟의 젊은 도사였다. 그들은 먼 길을 황급히 달려왔는지,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다. 하나같이 새파란 안광을 발하면서 부르르 몸을 떨었다.
살기가 또렷한 그들의 눈초리는 곧 앞마당에 있는 황가련 도객들을 향했다.
“황가의 들개 따위가 감히!”
대뜸 노갈을 터뜨리는 그들을, 황가련 도객들은 바로 알아보았다.
“남악팔수(南嶽八秀).”
장문인의 고제로, 남악도문을 대표하는 절정검수 여덟이다. 황가련 도객들은 거친 욕설에 딱히 발끈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난처한 표정이었다. 강량의 당부도 있었거니와, 이미 한바탕 흉금을 떨쳐 낸 참이었다.
여기에 뛰쳐나와 만류하는 것은 남악도문 제자들이었다.
“사형! 멈추십시오!”
“뭐얏! 멈추라니!”
“장문인의 명이십니다. 그리고 오해는 다 풀렸으니. 그만 진정들 하세요.”
동배의 몇몇 제자가 다급하게 그들을 막아섰다.
“오해는 무슨 놈의 오해!”
“당장 비켜랏!”
팔수는 조금도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본산에 저들이 있다는 것 자체로 명백했다. 황가련 무사들은 그저 굳은 낯으로 몸부림치는 팔수와 막아서는 도문 제자들을 보고만 있었다.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멈춰라!”
묵직한 공력이 실린 일성이 팔수의 고함을 차분하게 짓눌러 버렸다. 그리고 남조궁 본당의 높은 문이 벌컥 열리면서 백진자가 장로들과 모습을 드러냈다. 잿빛 수염이 흔들렸다.
“돌아왔느냐.”
“장문인.”
팔수는 부랴부랴 무릎을 꿇고, 백진자를 향해서 두 손을 맞잡았다.
백진자는 댓돌 계단을 천천히 밟으면서 내려섰다. 그는 고개는 숙였지만, 여전히 불복하는 팔수의 눈빛을 바로 읽어 냈다. 그들 중 맏이인 원덕이 퍼뜩 고개를 치켜들었다.
“장문인! 대체 어찌 된 영문입니까. 저기 저자들은 본산을 범한 자들입니다.”
“그렇습니다. 몸 성히 돌려보낼 수야 없는 일입니다. 이래서야 무림에서 본문을 어떻게 여기겠습니까.”
“어떻게 여기기는, 수행자의 본분을 잊고서 무림의 일에 크게 개입하던 한심한 도문으로 볼 것이겠지.”
“장문인!”
원덕을 비롯한 팔수는 그 말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치미는 분기에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그만, 너희는 더 소리를 높일 것 없다. 여기 계신 분들에게 사죄하고 물러나도록 하라.”
“아니,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외침이 절절했다. 그러나 백진자의 눈길은 미동조차 없었다. 그는 무릎 꿇은 이들 면면을 노려보았다. 장문인의 노한 눈길에 팔수는 도리어 당황했다.
“장문인, 저들은, 저들은.”
“너희 뜻은 알았으니, 물러서도록 하라.”
백진자는 조금도 흔들림 없이 다그쳤다. 엄한 어조에 팔수들은 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지그시 어금니를 악물고서, 한 걸음 물러섰다. 그제야 백진자는 무거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내저었다.
부족함 없는 제자들이라 여겼건만, 지금 순간 수양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리 혈기를 앞세워서야 어디 도문의 제자라 할 수 있을까.
백진자는 곧 고개 돌려, 황가련 무사들에게 두 손을 맞잡았다.
“대신 사죄드리오, 강 문주. 제자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이 사람의 부덕이외다.”
“어허, 어찌 그런 말씀을.”
장문인이 직접 사죄한다니. 무사들은 사죄가 부담스러워 부랴부랴 고개를 숙였다.
물러나던 팔수가 그대로 굳었다. 그들은 번쩍 고개를 치켜들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팔수는 칠흑같이 어두운 얼굴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주고받는 눈길이 크게 요동쳤다. 원덕은 퍼뜩 이를 악물었다. 크게 마음을 다잡은 것이다.
“장문인,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그는 백진자의 발 앞에 몸을 던져, 통곡하듯 외쳤다. 엎드린 그의 외침이 절절했다. 다른 팔수도 부랴부랴 백진자를 에워싸며 한마음으로 울었다.
“남악도문의 영명을 이리 저버리시다니요!”
“장문인!”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어허! 이런 방자한 일을 보았나!”
백진자는 다시금 노성을 터뜨렸다. 그러나 팔수는 모두 절박했다. 그들은 큰 꿈이 있었다.
남악도문을 넘어서, 과거 형산의 이름을 되찾고자 하는 꿈이었다. 헌데, 다른 곳도 아닌 호남 무림과 구적이 되어 버린 황가련에 먼저 고개를 숙이다니. 그들로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매달리는 제자와 뿌리치려는 스승의 모습이다. 이때에 팔수 중 뒤에 있는 두 사내가 남몰래 눈빛을 주고받았다.
팔수 중 성덕과 무덕이었다. 두 사람은 뒤에서 노한 백진자를 급히 부여잡았다. 딴에는 진정시키고자 하는 듯하다.
“이놈들, 놓아라!”
“장문인, 진정하십시오!”
“장문인!”
목소리를 높이며 치뜬 눈에 물기가 어렸다. 참으로 절절한 광경이지 않은가. 그런데 불현듯 백진자의 호흡이 흐트러졌다.
‘흐읍!’
다리를 부여잡고, 손을 부여잡은 두 제자의 다른 손이 동시에 백진자의 맥문을 눌렀다. 노하여 일으킨 공력이 길을 엇나가 버리면서 몸이 요동쳤다.
“크헉!”
백진자는 그만 피를 토하며 몸을 구부렸다.
“장문인!”
그를 걱정하는 것처럼 소리를 높였지만, 젖은 눈가에는 악독한 빛이 일었다.
‘너, 너희가 지금!’
소명과 위지백이 한목소리로 경고하였던 마장에 미혹된 자들이 결국.
“꺼윽! 꺼으으으!”
기혈이 뒤틀리며 한탄은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벌린 입에서 선홍의 핏물과 함께 짓눌린 신음만이 새었다. 두 제자의 공력이 그를 치명에 이르게 했다.
“장문인, 정신을 차리십시오! 장문인!”
피 토할 듯이 절절하게 외쳤다. 실로 스승의 위급한 모습에 오열하는 제자의 바람직한 모습이 아닌가. 백진자의 경악한 얼굴은 혈색을 잃고 시시각각 창백하게 질려갔다. 그를 에워싸고 머리 조아리던 여섯은 기겁하여서 고개를 치켜들었다.
“자, 장문인!”
절박하여서 뜻에 반하였다고 하나, 설마 장문인이 토혈하는 지경에 이를 줄이야. 검게 물든 얼굴이 더욱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이때에 불퉁한 목소리가 그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이러다 사람 잡겠다.”
“아닌 게 아니라, 더는 못 봐주겠네.”
오열하던 제자들이 퍼뜩 고개를 치켜들었다. 물러나 있던 소명과 위지백이 각자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느릿느릿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 무도한 작자들이 있나!”
팔수 모두가 그만 머리가 굳고, 손발이 얼어서 미처 반응하지 못할 새, 성덕 도인이 노기를 드러내며 성큼 나섰다. 백진자를 제압하는 것은 무덕 혼자로 충분했다. 그러나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불문곡직 위지백이 달려들었다.
“이놈아!”
입을 벌리기가 무섭게 몸이 날았고, 놈! 소리가 터지기가 무섭게 무광도가 성덕의 머리를 쪼개었다. 성덕은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검갑을 치켜들었다. 콰직! 소리가 바로 머리 위에서 울렸다.
“으, 으헉!”
검갑이 가벼운 일격에 그대로 쪼개졌다. 번쩍 치켜들지 않았다면 쪼개지는 것은 분명 성덕의 머리였다.
“이, 이게 무슨! 켁!”
일격을 용케 막았다고 해서, 따져 물을 틈은 없었다. 위지백은 대뜸 명치 어림을 걷어찼다. 성덕은 그대로 수 장에 이르는 거리를 날아서, 그러고도 힘이 남아서는 데굴데굴 한참을 구르다가 호되게 처박혔다. 누구도 붙잡아 줄 정신이 없었다.
대범하다 못해 미친 짓이다.
위지백은 무광도를 어깨에 걸쳤다. 그러고는 스윽 고개를 돌렸다. 남은 제자가 백진자를 붙든 채 어쩌지를 못하고 있었다.
“흐.”
위지백은 그를 빤히 들여다보면서 히죽 웃었다. 마주한 무덕은 절로 소름이 일었다. 마공기력에 홀려 버린 와중이었지만, 절대적인 강함을 눈앞에 두고서는 어떤 반항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떻게, 손쓰지 않을 텐가?”
“나, 나는.”
무덕은 더듬거릴 뿐이었다. 흡사 이 자리를 뒤엎을 것처럼 요란스럽게 기운을 일으켰던 자라고는 볼 수 없을 만치, 얼빠진 얼굴이었다.
어찌 보면 이것이 마공기력의 한계라고도 할 수 있었다.
격차를 확인하는 순간 쉬이 포기해 버리고 만다.
“손, 그만 거두지.”
“소, 손?”
“그래, 그 손.”
위지백은 무광도를 뻗어서 스승을 부축하는 무덕의 두 손을 가리켰다. 스승을 제압한 손이고, 스승의 생명을 위협하는 손이다. 무덕은 이때에 퍼뜩 깨달았다. 여기서 백진자를 놓아 버리면 그는 모든 것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
머뭇거릴 새, 찰나의 빛줄기가 눈앞을 스치고 사라졌다.
“어, 어어!”
무덕은 멍한 소리밖에 낼 수가 없었다. 어느 틈에 손을 쓴 것인가, 그의 치뜬 눈앞에 한 쌍의 손이 천천히 솟아올랐다. 자신의 손이었다.
공력을 거두고 어찌할 새도 없었다.
그 모양에, 소명은 땅이 꺼질 듯이 깊은 한숨을 흘렸다.
“아이고, 저놈.”
그는 바로 나아가서 넋을 놓은 무덕의 잘린 손목을 지혈했다. 이대로 죽게 놓아둘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따로 제압할 필요도 없었다. 너무 놀란 탓에 그대로 눈을 까뒤집고 정신을 놓아 버렸다. 그때까지, 무덕은 물론 나가떨어진 성덕 역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위지백은 가뿐하게 무광도를 거두었다. 도갑으로 도광이 밀려들어 사라지자, 그제야 멈춘 바람이 다시 흘러갔다. 일어나는 피 냄새는 나중이었다.
“으허억! 이게 무슨 짓이오!”
여기저기서 놀라고 당황한 소리가 터졌다. 남악도문의 제자들은 각자 검자루에 손을 올렸다. 기껏 잦아든 상황이 다시 일촉즉발로 치달을 듯했다. 그러나 백진자가 있었다.
“흐읍! 멈추어랏!”
그는 심맥이 흔들리고, 기맥이 뒤틀린 와중에도 한껏 공력을 발하여 외쳤다. 그러고는 울컥 핏덩이를 토해 냈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나서는 뭇 제자들을 향해 손을 펼쳤다.
“감히 한 걸음이라도 움직이는 자는 배분고하를 떠나 기사멸조(欺師滅祖)의 대죄로써 다스릴 것이다!”
백진자는 창백한 낯을 하고서도 힘주어 다그쳤다.
“허어, 그, 그런.”
장문인과 함께 걸음하였던 뭇 장로들도 그의 노기 실린 일갈에 주춤했다. 일을 벌인 성덕과 무덕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백진자는 불길이 이는 눈길로 둘을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