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17
217화. 마도 소탕
“소식이, 소식이 올 때가 되었건만.”
“그렇지요.”
“하아, 답답하구려.”
호충인은 지금 순간, 어느 때보다 솔직했다. 이것은 작게는 친우의 안위였고, 크게는 중원의 앞날이 걸린 일이었다.
그 무슨 거창한 소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마도라는 것은 그러했다.
언제고 떨치고 일어나면, 못해도 만인혈로 강산을 적시고, 무수한 원혼이 하늘에 이르게 한다.
“후우…….”
호충인은 길고 긴 숨을 토해냈다. 선고는 그 마음을 달래듯이 맞잡은 손에 꼭 힘을 주었다.
그때였다.
노을빛 젖어 든 구름이 차츰 멀어질 무렵에, 담 너머로 급한 소란이 일었다.
누군가 전력으로 이쪽을 향해서 내달렸다.
사람 그림자가 언뜻 드러나는 순간, 버럭 소리쳤다.
“급보! 급보입니다!”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호충인은 당장 땅을 박차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실로 비호와도 같은 몸놀림이다.
그는 영령당을 박차고 나서서, 길목에서 전서를 받아들었다.
전령은 전서를 전하기가 무섭게 털썩 주저앉았다.
헐떡이는 숨소리가 거칠었다. 그러나 그의 안부를 생각할 겨를은 조금도 없었다.
호충인은 봉한 것을 거칠게 찢고, 전서를 활짝 펼쳤다.
글자는 많지 않았다. 단정한 필체로 고작해야 몇 글자가 있었지만, 그것으로 뜻을 전하기는 충분했다.
와락, 힘주어서 전서를 움켜쥐었다.
“…….”
호충인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전서를 움켜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호 가가.”
“장로들을 모두 모아주시오.”
“그리하지요.”
기원원은 묻지 않았다.
등용문의 심처, 심천각.
그곳에 여러 중진이 빠르게 모여들었다.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에 급히 소집한 만큼, 기다리던 소식이 도착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들어서기가 무섭게 입을 굳게 다물고서 심각한 호충인의 표정을 보고는 다들 움찔하였다.
일이 잘못되었단 말인가.
들어서는 족족, 장로를 비롯한 등용문의 중진, 모두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호충인은 문득 참았던 숨을 길게 토해냈다. 턱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러면서 고개를 들었다.
“모두 모이셨소?”
“그렇습니다. 문주. 내원과 이각, 삼당, 오사. 하나 빠짐없이 모였습니다.”
“팔대장로도 여기 모두 왔소이다.”
“감사합니다.”
호충인은 수염 허연 장로들에게는 공수하여 고개를 숙였다.
“모두 짐작하다시피, 기다리던 소식을 받았소. 하북의 소식이오.”
“으음.”
“하북 땅에 퍼졌던 사교 무리가 마도의 소행임을 밝혀내었고, 그 배후까지 들어서 일망타진하였답니다.”
“오오, 다행이군요.”
“다만.”
호충인은 말을 끊었다. 묵직함이 몰려왔다. 잠시 안도하였던 장로와 당주들이 숨을 삼켰다.
“그 배후가 황궁에 있었다고 합니다.”
“저런!”
“그것은 실로 두려운 일입니다.”
“황궁에도 그들의 그림자가 있다는 것이 참말이었다는 건가?”
“설마 하였거늘.”
모두가 한두 마디씩 흘렸다.
황궁에 마도가 스며들었다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싫은 일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강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명운이 걸린 일이지 않겠는가.
한층 가슴이 무거웠다.
하남 무림만 하여도, 단속하기 전에는 마도의 종기가 이렇게까지 깊이 틀어박혀 있으리라고는, 이렇게까지 넓게 퍼져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대공자의 일이 있어서, 위험을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을 뿐이었다.
서두르는 호충인을 안타깝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판을 벌여놓고 보았더니. 이게 대체 무슨 참상이었던지.
하루하루가 그야말로 살얼음판이나 다름없었다. 마도의 손을 잡은 이가 누구인지, 어디서 튀어나올지 전연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속절없이 목숨을 잃은 자만도 몇이나 되었다.
하남의 소림파 안에서도 등용문에 버금갈 정도로 강성한 문파가 몇이 있었는데, 그중 태반이 마도의 수작에 놀아나고 있었다.
그것을 알았을 적에 황망함이란.
흑선당과 개방이 아니었다면, 도대체 얼마나 큰 후환이 되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호충인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남은 삼백 마인을 유인하는 데에 일천. 그들을 상대할 적에 금군의 정병을 다시 일천을 잃었다는군요.”
“이천!”
병력 이천이라니.
그것이 어디 쉬운 숫자인가. 떠올리기조차 어렵다.
비록 정병과 일반 병력 상에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일천, 이천이라는 숫자의 실체가 바로 와 닿지가 않았다.
등용문의 중진으로 가장 연치가 부족하다고 하여도, 산전수전을 겪은 자들이건만.
지금껏 등용문의 방식은 각개격파였다.
예리하게 모은 증좌로, 가장 취약한 순간을 노려 전력을 제압했다. 어설프게 목숨을 살려두었다가는 되레 후환을 당하니.
그렇게 제압하면서도 희생을 피할 수는 없었건만.
“토병 삼천과 정예의 금군이 삼천이었답니다. 그야말로 회전에 버금갈 정도의 일이었지요.”
“하아, 마도란 것의 두려움은 그 기이함에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당대에 새삼 마주하니. 정말, 정말…….”
선뜻 말을 맺지 못했다.
경험 많은 노강호라 하여도 선뜻 감당 못 할 일이었다.
“이제부터가 시작일 것입니다.”
“으음, 문주의 말씀이 옳소.”
“하북과 하남에서 일이 글렀다는 것을 알았으니. 아마도 숨겨놓은 다른 수단을 꺼내 보일 수도 있겠지요.”
“예, 제가 걱정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본산의 의견을 구하는 한편으로, 더욱 신중하게 전력을 정비해야 할 것입니다.”
밤늦도록, 심천각에 밝힌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그만큼 오늘의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여기 모두가 절실히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도를 상대함에 있어서 일말의 방심이나, 자만이란 결코 있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두려운 이름이었고, 두려운 자들이었다.
* * *
이렇게 일이 거듭하여서 엎어지다니.
지금 당면한 상황을 앞에 두고서, 이곳의 주인은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나, 하나를 공들여 준비하였다. 들어간 세월이 아무리 짧아도 수년이고, 길게는 십 년, 이십 년을 들이기도 했다. 황궁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오대 성사가 자신의 지위를 포기하고 일개 환관으로 들어가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니.
한 번의 실패를 겪고서, 더욱 신중하였건만.
잘못 들은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장구한 계획의 상당수가 아주 엎어지고 말았다.
“허, 허허허허.”
헛웃음이 절로 새었다. 그의 앞에는 피로 젖은 천 조각이 몇 장인가 놓여 있었다. 이렇게 전해져서는 아니 되는 것이었다.
황궁 실패, 흑마군 이하, 삼백 전멸.
하북 실패, 종마, 곤마 사망.
하남 실패……
여러 이름이 어지럽게 적혀 있었다. 누구는 하북의 작은 무관의 주인이고, 누구는 평범한 나졸이기도 했다. 소림파의 젊은 영웅이거나, 일문의 장로 대우를 받는 자도 있었다.
다들 오래도록 정체를 감추고서, 깊이 동화된 자들이었다.
이들이 교인이라는 것은 성마교 안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알았다.
그런 이들이 죄 죽어나간 것이다.
황도에서, 하북에, 하남에서, 심지어 강남까지.
생각하면 하남 등용문에서 꼬리가 밟힌 것이 그 시작이었다. 되면 좋고, 안 되어도 그만이라, 가볍게 여겼던 것이 문제였을까.
이후로 어찌 된 영문인지 족족 일이 엎어졌다.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한쪽 얼굴을 지그시 움켜쥐었다. 손 아래에서 묵직한 통증이 퍼뜩 일었다.
“으음…….”
가만한 신음이 흘렀다.
이것은 실체적인 고통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의 일로, 심란이 일어나면 이만한 통증이 밀려왔다.
“아무래도 이해할 수가 없다. 황가에 파악하지 못한 세력이 있었더냐? 등용문의 신임 문주가 그만큼이나 뛰어난 자였더냐? 대관절 어찌 된 영문이지?”
그는 감싸 쥔 손을 내렸다.
청수한 인상의 장년인이었다. 그는 단아한 풍모를 지녔다.
잿빛으로 물든 머리카락을 바르게 쓸어올려, 관건을 갖추었다. 흔한 청삼 차림으로 그의 자세는 바르고 곧았다.
풍진이야 어떻든, 속세와 멀리 있을 법한 문인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얼굴 한쪽을 가리는 검은 안대가 있어서 그가 단순한 문인이 아님을 알 수가 있었다.
눈가의 통증이 아직도 어릿하다.
뭔가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 너무도 거대한 계획을 짠 탓이었을까.
그의 탄식에 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리한 모두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이곳에는 한두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반백에 가까운 사람이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그들 모습은 실로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고, 각양각색이었다.
한쪽에는 새카맣게 어린 아이가 혼자 앉아 있고, 반대쪽에는 당장 관으로 들어가도 이상할 것 없을 노인이 왜소한 어깨를 잔뜩 움츠렸다.
울긋불긋 광대의 꼴을 한 자도 있었고, 사냥꾼이나 기녀는 물론, 관복 차림을 한 이도 몇이나 있었다.
그런 자들 모두가 허름한 초옥에 한데 모여 있었다. 그리고 모두 침중한 안색으로 고개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좌현사.”
“허허, 이 또한 나의 불찰이오. 성마의 존체를 찾는 급한 일을 위해서, 잠시 소홀하였더니. 일이 그만 이리되어 버렸구려.”
“어찌 그런 말씀을.”
좌현사는 자책 어린 말을 흘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마른 얼굴에 흐린 미소가 어려 있었다. 씁쓸한 심정이 솔직하게 드러난 얼굴이다.
외눈의 문인, 그가 바로 지금 성마교를 이끌고 있는 좌현사 등벽이었다.
좌현사는 깊이 고민했다.
중원무림을 모두 아우르는 삼천지계.
그 일각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이제야 그 결과를 기대할 정도가 되었건만. 수년 세월이 한순간에 물거품이라니.
“좌현사.”
“그래도 여러분은 무사하여 다행이오.”
좌현사는 고개를 돌렸다. 그의 외눈이 자신을 에워싸고 앉아 있는 여럿의 면면을 차분하게 훑어갔다. 빈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자리 하나, 하나에는 모두 주인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비어 있는 자리는 대계에서 중요한 축을 이루는 자들의 자리였다.
잃은 것은 절대 가볍다고 할 수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전부는 아니었다.
굳이 선을 그어 보자면, 하남과 하북, 그리고 강남 일부를 잃은 정도였다. 좌현사의 오랜 계획은 그 뿌리가 천하 각지로 뻗어 있었다.
다만, 그저 씨앗만 뿌린 자들이 아니라, 성마를 따르는 오랜 종복을 잃은 것이 크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좌현사는 마련한 자리에서 빈자리 몇 곳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 자리에 주인이 앉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언제고 주인이 돌아오리라 기대하였건만.
그 기대는 허망하게 스러진 셈이다.
“허나, 삼천의 계책은 차근히 진행하는 중이니.”
“예.”
“성화환천(聖火還天)의 날은 그리 멀지가 않소. 존체를 찾는 대로, 삼천이 발동할 것인즉.”
자리한 마인 모두가 고개를 조아렸다.
성화환천, 그리고 삼천이라.
분명 지금 어려움이 닥쳤지만, 대업을 이루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여기 모두가 합심한다면.
“아니…… 그것도 아닌가.”
좌현사의 고개가 천천히 한 곳으로 돌아갔다. 그의 외눈이 한쪽으로 향했다. 모두라고 하지만, 낯선 이가 하나 저기에 있었다.
은연중에 거리를 두고서 한참 몸을 웅크린 거지 노인이었다.
“젠장.”
외눈을 받은 자는 짧게 혀를 찼다. 그는 옹송그린 몸을 더욱 옹송그린 채, 히죽 웃었다.
“들켰나?”
“아무리 모습을 따라 한다고 하여도, 성화를 품지 않은 자는 바로 알 수가 있지.”
“헤에…… 성화라.”
거지 노인은 싱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노인은 아니었다. 먼지가 수북한 백발을 끌어내리자, 비슷하게 때가 꼬질꼬질하지만 그래도 검은 머리가 드러났다.
노인의 검버섯과 주름이 같이 뜯어지고, 한 젊은 사내의 얼굴이 드러났다.
“휘유. 뭐, 들킨 마당에 계속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도 답답하고…….”
“그래, 젊은 거지는 누구신가?”
“응? 나를 몰라?”
거지는 착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그 모습이 너무도 태연하여서, 좌우로 있는 성마의 성도들이 절로 눈살을 찌푸렸다.
퀴퀴한 냄새야 그렇다고 하지만, 흩어지는 하얀 가루는 어찌할까.
거지는 킁! 시원하게 코를 한 번 풀어버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태연히 두 손을 맞잡았다.
“개방 호리시랑 사걸의 아랑(餓狼)이라고 하는 소후찬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