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26
226화. 팔관용소(八關龍嘯)
이공천역(異空天域).
같은 하늘이나, 전혀 다른 공간. 그곳은 차라리 지옥이라고 하는 편이 더욱 어울렸다.
모두 여덟 관문으로, 일관부터 팔관까지 사람으로서는 촌각도 버틸 수가 없는 극한의 지역이었다.
처음으로 들어선 곳은 오로지 열기로만 가득했다. 음양의 이치가 무너져서, 열양지기만 가득하다. 붉고 마른 땅이 드넓게 펼쳐졌다.
천화(天火)의 열기가 이러할까.
불과 대여섯 걸음을 나서기가 무섭게, 온몸의 물기가 부글부글 끓어서 사라져버리는 듯했다.
몰아치는 바람에는 열독이 심하였다. 마른 땅에서 쓸려 나오는 열기를 머금은 붉은 모래먼지가 그것이었다.
여기를 돌파하는 데에 필요한 것은 고통을 감내하는 정신력, 그리고 천인합일에 가까운 보신경이었다. 열독으로 모공부터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도 끝없는 붉은 길을 서둘러 돌파해야 했다.
정답은 없다. 관문을 돌파하는 것이 우선으로, 두 소천룡은 각자 지닌 무용을 조금도 아낌없이 발휘할 뿐이었다. 무극과 혼원, 양대무맥을 극성까지 연성한 두 사람이었다.
한 명은 일체의 모공을 폐하고, 몰아치는 열독이 짙은 열풍을 감내하면서 묵묵히 나아갔고, 다른 한 명은 전력으로 공력을 일으켜서 바람에 항거하면서 더욱 앞서 나아갔다.
둘은 조금도 뒤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이공천역의 각 관문이 어느 정도인지 대략적으로는 알았지만, 그 순서는 실로 무작위. 무엇이 먼저 튀어나오고, 무엇이 나중에 나올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욕이 절로 나올 만한 상황이었다.
“후욱, 후욱!”
내뱉는 숨결에 역한 피비린내가 실렸다. 열독을 이겨내는 것만으로 약간의 내상을 입고 말았다.
소천룡 회는 이미 창백한 얼굴로 뻗은 길목을 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돌아갈 길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팔괘팔로라 하였는데. 지금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닐지…….”
앞으로 내달린 과의 모습은 여기서 보이지 않았다. 회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그런데 뒤에서 사뭇 태연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아닌 것 같소만.”
회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에 소명이 우두커니 있었다. 소명은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서, 사정없이 쏟아지는 따가운 햇볕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색 바랜 앞 머리카락이 가만히 흔들렸다.
언뜻 드러나는 눈매는 햇빛 때문인지 번뜩여서, 제대로 눈에 담을 수가 없었다.
회는 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생각하지 말자. 생각하지 말자.’
이공천역에 들기 직전에 이미 기겁하지 않았던가. 용문제자가 어떤 모습을 보이고, 어떤 위용을 보인다고 한들 어디 더 놀랄 일이겠는가.
회는 차라리 과가 훌쩍 앞서 나간 것이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저 모습마저 보았으면, 또 속이 어떠할지.
“후욱, 건천괘는 저기가 끝인 듯싶군요.”
거친 숨을 억지로 밀어냈다. 회는 마치 신기루처럼 아른거리지만, 분명 보이는 붉은 문루를 보았다. 언제라도 사라질 것처럼 일렁였다.
아지랑이가 짙은 것인가.
소명은 그곳을 멀뚱히 보다가, 헛웃음을 흘렸다.
“관문이라고 하더니. 그냥 길만 지나면 끝이 아닌가 보오.”
“그게 무슨?”
회는 소명이 하는 말이 의아하여서, 같이 고개를 돌렸다. 얼핏 보는 것이 아니라, 한껏 집중했다. 그러자 붉은 땅 위에서 바쁜 과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저런!”
과의 신형은 당장 고꾸라질 듯하면서도, 어찌어찌 버티어내면서 물러서기에 급급했다. 붉은 모래가 좌우로 세차게 솟구쳤다.
과를 쫓는 자는, 붉게 빛나는 황동의 인형이었다. 무겁게 발을 구르면서 과에게 살수를 펼쳤다. 기계적으로, 뚝뚝 끊어지는 움직임이었지만, 그 속도는 어지간한 일류 고수만큼이나 빠르고 신속했다.
터엉! 터엉!
황동인이 밟는 소리와 함께 쌍수를 번갈아 내질렀다. 그만 허를 찔린 모양으로, 과는 황동인의 공세를 어찌 받아낼 수가 없었다. 허공을 향해 내지른 황동의 두 주먹에, 전면이 크게 일렁였다.
혼원류 수비식 중 능히 으뜸으로, 전신으로 기막을 발하여서 일체를 방어해내는 혼원방신(混元防身)이다. 어지간한 위력이라면 오히려 반탄력으로 상대를 격살한다. 그러한 혼원방신이 크게 출렁이면서 과의 신형이 급하게 멀어졌다.
황동인이 발한 괴력이 상당하다는 뜻이었다.
회는 그 모습을 보고만 있지 않았다. 과의 낯빛이 찰나 창백해지는 것을 보기가 무섭게 땅을 박찼다. 솟구치는 신형 뒤로 붉은 모래가 후드득 쏟아졌다.
한 호흡 새에, 수 장의 거리를 바짝 파고들었다. 그야말로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쌍장을 내질렀다.
쩌릉!
날카로운 소음이 울렸다. 쇠붙이가 쪼개지는 소리였다.
황동으로 번쩍거리던 인형이 그만 산산이 깨어져서 부스스 흩어졌다.
“후우…….”
회는 숨결을 다잡으며 내지른 두 손을 천천히 내렸다. 손이 떨리는 것을 억지로 그러쥐어서 감추었다.
그러나 과는 그렇게 순순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허억, 허억! 내가 할 수 있었소!”
주저앉을 뻔한 몸을 억지로 세우고서, 과가 버럭 외쳤다.
신경질적이었다. 창백한 얼굴에 타오르는 두 눈의 불길이 거세다. 회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휘청거리는 과를 바라볼 뿐이다.
“그래, 할 수 있었겠지.”
저 높은 자존심을 굳이 건드릴 것 없다. 회는 바로 몸을 돌렸다.
“이 지독한 곳을 서둘러 빠져나가고자 할 뿐이다. 딱히 너를 도운 건 아니니.”
“……크으…….”
과는 허리를 세웠다. 질끈 깨문 입술 사이로 신음이 흘렀다. 맺힌 말은 한 바가지였지만, 속내를 털어놓기도 전에 토혈을 먼저 할 듯했다. 치미는 선혈을 억지로 눌러 삼켰다.
혼원방신으로 보호하면서도, 보신경을 극도로 발휘한 탓에 미처 황동인의 암습을 맞받아내지 못했다. 덕분에 상당한 내상을 당하였다.
등 돌린 회에게 뭐라고 하기보다는 속을 다잡는 것이 먼저였다. 그것을 알지만, 좀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과는 단단히 움켜쥔 두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한 과의 속내야 어떻든, 회는 일단 자신을 다잡아야 했다.
꿀꺽.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치민 울혈을 간신히 삼켰다. 너무도 다급하게 절초를 펼친 탓이었다. 그만 기맥이 흔들렸다. 내상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가벼운 손실은 아니다. 그래도 회는 내색지 않으려 과를 돌아보지 않았다.
한걸음 늦게, 소명이 닿았다. 일어나는 붉은 먼지바람을 휘휘 내저어서 밀어냈다.
“이곳이 일관의 끝인가?”
“그렇습니다.”
“후우, 다음은 또 어떤 곳일지.”
“무슨 괘가 나오든. 이보다 덜하지는 않겠지요.”
“거참.”
과의 차분한 말에 절로 한 소리가 나왔다. 주거니 받거니, 둘은 관문 앞에서 몇 마디를 나누었다. 서두름 없는 모습이었다. 그 사이에, 과는 눈을 질끈 감고서 전력으로 내상요결을 행했다.
혼원류의 내공은 깊고, 격렬하다.
단 한 호흡만에 전신의 기맥을 무려 다섯 차례를 왕복한다. 그만큼 거칠어서, 범인이라면 공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몸을 상하게 한다.
그렇기에 혼원류를 대성한다는 것은 타고나는 것도 중요했다.
소명은 조용한 과를 흘깃 보았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눈가에는 비록 잠깐이지만, 감탄의 눈빛이 어렸다. 상당한 내상으로 보였는데, 빠르게 혈색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는 것도 힘겨운 뜨거운 열기 속에서 몸을 보호하고, 동시에 내부를 살핀다니. 어지간한 경지가 아니었고, 어지간한 공부가 아니었다.
그 사이, 회는 짐짓 태연한 기색으로 있다가, 간단한 요상단을 슬쩍 입에 물었다.
영단(靈丹)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빠르게 효험을 볼 수 있는 물건이었다. 운공까지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상황은 아니다.
회는 사뭇 굳은 얼굴로 소명의 옆에 섰다.
둘은 붉은 모래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석문을 빤히 보았다.
좌우로 돌을 비스듬히 세워놓았을 뿐이지만, 그 사이로는 또 다른 검은 공간이 보였다. 이곳에 들 때에 등장하였던 흑문처럼 기이한 광경이었다.
저기를 넘으면 또 어떤 곳으로 이어질지.
분명 만전을 기한다고 하여도, 부족한 상황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여기 건천에서부터 호락호락 길을 내어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소명은 쯧, 혀를 찼다. 회의 안색도 그리 좋지 않았다. 과는 아직 상황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우뚝 서서 요상에 집중하니, 당연한 일이다.
“소명 공.”
“여기서는 거들지 않을 수가 없구려.”
참관인이라지만, 두 소천룡 중 하나라도 화를 입는다면, 누군가를 볼 낯이 없다. 이래서 달갑지 않았는데. 소명은 들을세라, 싫은 소리는 꾹 눌러 삼켰다.
그리고 붉은 모래를 늘어뜨리면서 일어서는 몇의 황동인을 마주했다.
“서두릅시다.”
단호하게 손을 쓸 때였다. 소명은 회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나섰다. 황동인이 미처 전열을 가다듬기도 전이었다. 소명은 빠르게 파고들었다.
내지른 손은 마치 무른 황토를 짓누르는 것처럼 황동인의 머리를 으깨어버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호흡을 돌릴 것도 없이, 좌우로 손을 썼다. 무슨 대단한 권법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보다 빠르게 거리를 좁혀서,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먼저 친다. 더욱이 소명의 두 손은 이미 완성경을 진즉 돌파하여서 또 다른 경지로 나아가는 곤음수였다.
황동이 아니라, 설사 금강불괴지신에 이르렀다고 한들,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두 손이다.
회는 다른 쪽에서 다가서는 황동인 다섯 구를 동시에 상대했다. 무극류, 다함이 없는 공력이 치밀었다. 회의 주변으로는 기이한 기류가 요동쳤다.
혼원류에는 혼원방신이 있다면, 무극류에는 무극천류(無極遷流)가 있었다.
격렬한 기류가 끝없이 맴돌면서 일체의 외력을 무산시킨다. 그리고 유려하게 파고드는 무극류의 손길.
콰아악!
휩쓸린 황동인은 처참하게 비틀렸다. 마치 빨래를 쥐어짜 버린 것처럼 처참한 모습이다. 그대로 후드득 널브러졌다. 회는 웅크린 두 손을 느릿하게 늘어뜨렸다.
낯빛이 잠시 흔들렸으나, 눈초리는 차분했다. 일거에 막대한 공력을 발휘한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회의 뒤로 붉은 모래가 왈칵 솟구쳤다. 숨은 것이 또 있었던가. 그만 어깨가 흔들렸다.
‘이런!’
무극천류가 마침 흩어진 참이었다.
회는 바로 두 손에 억지로 공력을 밀어 넣었다. 덮쳐드는 그림자를 그대로 맞받을 작정이다. 그러나 머리 위에서 폭음이 터졌다.
뻥!
그림자가 일격에 튕겨 나갔다. 어찌나 세찬 힘이었는지, 참으로 멀리도 나가떨어졌다. 바닥에 부딪히면서 마구 튀어 오르는데, 황동의 부스러기가 길게 흩어졌다.
회는 나가떨어진 황동인을 흠칫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과가 있었다. 한쪽 발을 힘껏 구르고, 일권을 내지른 모습이었다.
“흐어어어…….”
탁한 숨을 길게 토해내며, 주먹을 거두었다.
혼원류, 일천붕격(一千崩擊)이다. 붕권일식에 천권을 담아낸다 한다. 그것은 붕권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산을 무너뜨릴 만한 권력을 뽑아낸다.
쉽게 펼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빚은 갚았소!”
“그래, 그렇구나.”
회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을 대로 생각하여라, 딱히 말을 꺼내지 않고, 짙은 쓴웃음만 머금었다.
소명은 붉은 흙 속으로 황동인을 죄 밀어 넣었다. 곤음수 앞에서 태반의 황동인은 형편없이 우그러져서, 그저 황동의 덩어리 쇠가 되었을 뿐이었다.
소명은 가볍게 손을 털었다. 과가 작정하고 펼친 일권을 잠시 감탄하는 눈으로 보았다. 저 정도면, 위력만 놓고 보았을 때에 백보신권과도 겨루어 볼 만하겠다.
‘과연 천룡이란 말인가.’
감탄은 여기까지. 소명은 곧 소리를 높였다.
“거, 문 닫히기 전에 갑시다.”
손을 휘휘 흔들었다. 두 소천룡이 또 저들끼리 눈싸움한다고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소명의 재촉에 회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도 마지못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일단 몸을 돌렸다.
분명 이공천역의 팔관이 들은 것보다 험난했고, 뭔가 다른 상태였다. 마냥 여유를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