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37
237화. 등용(騰龍)
뜻밖의 말이다. 천룡대부인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소명도 눈을 끔뻑였다. 마침 찻물을 잔뜩 머금어서 볼이 부푼 참이었다.
“허어, 그것참.”
천룡대부인은 흐린 눈을 몇 번이고 깜빡거렸다. 시비에게 다시 묻는 것이다. 시비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입니다. 대부인. 닮으셨어요.”
“광휘와 닮았단 말이더냐? 그것참.”
대부인과 시비는 곧 고개를 돌려서 소명을 빤히 바라보았다. 주근깨 맺힌 시비의 얼굴이나, 나이가 들었음에도 주름이 흐리고, 고아한 대부인의 얼굴이나. 빤히 보는 모습에 소명은 머뭇거리다가, 간신히 머금은 찻물을 넘겼다.
꿀꺽. 소리가 크게도 울렸다.
소명은 몰랐지만, ‘광휘’라는 이름은 지금 소천룡 회의 본명이었다.
“커, 큼. 그 어찌 그러시는지.”
“은공.”
“예.”
당혹감에 머뭇거리는 소명에게, 천룡대부인이 입을 열었다. 한결 진지한 어조였다. 다른 의미로 무게감이 다가와서, 소명은 저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잡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실례이겠지만, 내 은공의 얼굴을 좀 만져봐도 되겠소.”
“얼굴을, 얼굴을 말씀이십니까?”
“어렵겠소?”
“아니, 어려울 것은 없습니다만.”
소명은 영 생각지도 못한 일이어서, 머뭇거렸다. 천룡대부인의 얼굴은 그저 차분하여서 다른 기색은 조금도 찾을 수가 없었다. 눈을 들어서 대부인 뒤에 서 있는 시비를 보았지만, 시비는 배시시 웃기나 할 뿐이었다.
‘난처하군, 난처해.’
마지못해, 소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놓은 다탁을 돌아서, 천룡대부인 앞으로 다가가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오오, 미안하구려.”
“아닙니다. 하하.”
소명은 어색하게나 웃었다. 그리고 대부인은 손을 들었다.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머리에 닿았다가, 볼에 닿았다가, 턱에 닿았다. 그리고 차츰차츰 쓸어올리고, 쓸어내렸다.
대부인의 손끝은 차가웠다. 아니, 소명의 얼굴이 뜨거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느리고 신중한 손길이었다. 그러다가 점점 손이 급해졌다. 급기야는 우악스럽다 할 정도로 두 손으로 얼굴을 덥석 움켜쥐었다.
“으읍, 대, 대부인.”
“허, 허어…….”
“대부인?”
숨결이 갑자기 거칠어졌다. 그리고 치뜬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고요한 기색이 삽시간에 허물어졌다.
‘아니, 이게 뭔.’
“대부인, 어찌 그러셔요!”
뒤에 있던 시비도 놀라서는 급히 대부인 옆으로 돌아서 달려왔다.
천룡대부인이 자꾸 앞으로 몸을 기울이는 통에, 앉은 의자에서 미끄러질 듯했다. 소명도 얼굴 잡힌 와중에 대부인을 부축했다. 그러나 대부인은 전혀 그런 것을 따지지 않았다. 아니, 그리할 수가 없었다.
“너, 너는 궁삼매, 궁삼매로구나!”
“예? 예? 궁삼매라니. 아니 대부인.”
“궁삼매!”
대부인은 가슴에 맺힌 깊고 깊은 무언가를 마치 토해내듯이 끄집어내어서 울었다.
나이 든 노부인의 절절한 울음이다.
소명은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부인은 얼굴을 움켜쥐더니, 이내 소명을 덥석 끌어안고는 그리 서럽게 울 수가 없었다.
정말로 아연실색이다.
소명은 곁눈질로 시비를 향해 눈짓했지만, 시비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뭘 어찌하겠는가. 몇 년이고 부인의 수발을 든 처지였지만, 이런 일은 생각지도 못하였다.
소명도, 시비도, 두 사람은 뭘 어찌하지도 못한 채, 그만 굳어버렸다.
한 명은 품에 안겨서 굳었고, 또 한 명은 옆에서 멀뚱히 선 채 굳었다.
대부인은 소명을 꼭 끌어안고서 울고 또 울었다. 그 절절함이 너무도 뜨겁다. 소명은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엉엉 울다가 이제 흐느끼는 대부인을 조심스럽게 다독였다.
“대부인, 고정하십시오. 그만 고정하세요.”
“어허허헝, 어허허헝…… 삼매, 궁삼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지금 천룡대부인의 뜨거운 눈물을 어찌 외면할 수는 없었다.
노부인의 눈물이 이리 아프구나. 뚝뚝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에 그만 화상이라도 입은 듯이 화끈거렸다.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대체 궁삼매가 누구이기에 이리 서럽고, 안쓰럽게 통곡하는지.
참으로 어색하고 불편한 일이지만, 소명은 노부인의 울음에 젖어서는 같이 눈시울을 붉혔다.
시비도 처음에는 당황했고, 민망했다가, 이제는 대부인의 눈물에 공감하여서 같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런데 한차례 바람이 몰려왔다. 바람은 활짝 열어놓은 사방 창에서 불어 들어서, 창가에 늘어뜨린 비단 자락을 크게 흔들었다.
펄럭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소명은 슬쩍 눈을 치켜들었다. 언제 들어섰는가, 천룡대야가 침중한 안색을 한 채, 우뚝 서 있었다.
“허어, 이런.”
천룡대야는 펑펑 우는 대부인을 보면서 안타까움에 한숨을 흘렸다. 그리고 천천히 다가가, 대부인의 어깨에 살짝 손을 올렸다.
“부인, 부인, 진정하시오. 심기가 크게 흔들리면 위험하오.”
“허어, 부군이시오?”
“그렇소. 나요.”
“여기, 궁삼매가 왔어요.”
“부인.”
천룡대야는 크게 안타까운 얼굴이었다. 천룡대부인의 상태가 더욱 위중하게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천룡대부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대부인은 눈물 젖은 얼굴을 바짝 치켜들었다. 그녀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어서, 단호했다.
“참말이오. 참말로, 궁삼매가 돌아왔소. 여기 이 얼굴에 궁삼매가 있소이다.”
“그게, 그럴 리가.”
천룡대야는 흠칫하여 허리를 세웠다. 그리고 퍼뜩 소명의 헝클어진 얼굴을 다시 보았다.
‘으음, 이건 아무래도 민망하군.’
천룡대부인의 급한 손짓에 꼴이 엉망이었다. 앞머리가 뒤엉켜서 뒤로 넘어갔고, 볼이 짓눌려 있었다. 소명은 퍼뜩 등장한 천룡대야를 향해서 눈총을 쏘아댔다.
‘놀라고만 있지 말고, 어떻게 좀 해 보시오!’
그런데 천룡대야도 눈을 한껏 치뜨고서 드러난 소명의 얼굴을, 특히 눈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어, 어어.”
수염이 흔들거리고, 천룡대야도 얼이 빠진 것처럼 맹한 소리를 흘렸다. 상황이 이래저래 고약하다. 소명은 무언지 모를 불안감에 덜컥 가슴 아래가 내려앉았다.
‘뭐, 뭐야? 뭔데? 왜?’
소명은 슬그머니 몸을 뒤로 뺐다. 그런데 천룡대부인이 허우적거리면서 다시 소명을 끌어안았다.
“아니다, 아니야. 어디를 가려 하느냐. 안 된다!”
“아니, 대부인. 대부인? 이제 좀 진정을 하심이…….”
소명은 허우적거렸다. 그러면서 고개를 돌렸다. 천룡대야에게 어찌 좀 해보라고 할 참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소명은 재차 굳어 버렸다.
천룡대야의 모습도 심상치가 않았다.
어두운 얼굴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두 어깨를 축 늘어뜨렸고, 얼굴은 아연하여서 마치 못 볼 것을 보기라도 한 듯했다.
소명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불안하다. 아주아주 불안하다.
“하, 하하. 설마. 에이, 설마. 천룡마저 그러지는 않으시겠죠? 그렇지요?”
전혀 듣지 않는 모양이었다.
비척 물러선 천룡대야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어깨마저 들썩거렸다. 곧 고개를 치켜들면서 길고 긴 울음을 토해냈다.
―흐으어어어어어어!
“으윽!”
도가의 창룡음인가, 아니다. 그러한 음공의 경지가 아니다. 천룡대야는 그저 솔직하게 울어 젖혔다. 가슴 속, 어딘가에 깊이 맺혀 있던 무엇을 그대로 끄집어낸 것처럼.
장대한 서기가 어렸다가, 이내 북풍한설처럼 차가운 경력이 사방으로 몰아쳤다.
소명은 낭패하여 이를 악물었다.
‘이 양반이 정신이 돌았나!’
천룡대부인은 무공을 지니지 않았고, 가까이 있는 시비는 상당한 내력을 지녔지만, 천룡대야의 울음 앞에서 버티어 낼 정도는 아니었다.
그대로 두 사람의 심맥을 흔들기라도 하려는 것인지.
소명은 급히 허리를 세우고서 두 손을 치켜들었다. 지이이잉! 두 손에서 격한 울림이 일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두 손을 마주쳤다.
쩍!
소리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일어나는 모든 소리를 집어삼켜 버렸다.
전각 안이 일시에 공동 상태가 되어서, 사방의 소리가 싹 사라져버렸다. 모든 소리가 멎었다. 바람은 일었지만, 소리가 없었고, 새는 울었지만, 소리는 없었다.
당혹감에 전각으로 달려오던 자들도 그만 멈춰 섰다.
서로 돌아보면서 입을 뻐금거리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것이 장장 수십여 장에 이르렀다.
소명은 두 손을 마주치고 한참을 신중했다. 천룡의 울음이 행여 한 줄기라도 새어나갈까 저어되는 까닭이었다. 신중하고 또 신중하다.
천룡은 곧 두 어깨를 늘어뜨렸다.
한결 지치고, 지친 모습이다. 그제야 소명도 겨우 두 손을 풀었다. 가두었던 소리가 그제야 몰아쳤다. 우당탕거리면서 주변의 집기가 나동그라졌다. 멀쩡한 것은 오직 천룡대부인이 걸터앉은 의자 정도였다.
다탁은 아예 창밖으로 날아가서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창문은 세차게 떠밀린 탓에 바깥에 겨우 매달려서 끼익, 끼익 소리를 내었다.
시비는 마냥 놀란 얼굴로 있다가, 곧 눈동자를 겨우 돌렸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조금도 헤아릴 수가 없었다.
천룡대부인에 이어서, 천룡대야까지. 그런데 그러한 천룡의 울음을 막아내기까지 하였다. 시비는 차차로 눈을 돌리다가, 안도하는 소명의 모습을 다시 보았다.
무슨 수법인지, 무슨 경지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소명의 한 수로 무사한 것은 분명했다. 퍼뜩 마른침을 한 번 삼켰다.
목이 타는 듯했다
소명은 거칠게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러고서 성난 눈초리로 천룡을 노려보았다.
“사람 잡으려고 작정이라도 하시었소. 이게 무슨…… 하아, 정말이지.”
소명은 말하다 말고 고개를 흔들었다. 천룡대야는 마냥 처연하기 이를 데 없는 눈으로 자신을 보았다. 딱 보아도 말을 듣지 않는 상태였다.
“그래,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역시 천룡궁가의 핏줄이라니까.”
“아니! 끄응, 아니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또 그 소리.
소명은 발끈하려다가, 아직 자신의 소매를 붙잡고 있는 천룡대부인 때문에 겨우 소리를 참았다. 잔뜩 억누르고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악문 잇새로 나오는 목소리는 험악할 따름이다.
그러나 천룡대야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한 걸음 더욱 다가섰다.
“내 어찌 그 얼굴을 몰라보았을꼬. 내 어찌…….”
“내 얼굴이 뭐가 어떻다는 겁니까.”
소명은 마냥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이쯤 되면, 천룡의 두 내외가 마냥 정신이 나갔다고 할 수는 없었다.
소명은 아직 주저앉은 천룡대부인을, 그리고 가까이 다가선 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천룡대야를 번갈아 보았다.
두 내외는 다들 굵은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죽다 살아난 자식을 대하는 듯하지 않은가. 앞뒤야 어떻든, 소명은 이 상황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고, 외면할 수도 없었다.
“하, 정말이지.”
결국, 소명은 한숨을 툭 내뱉었다. 어깨가 괜스레 뻐근하다. 손가락으로 코 아래를 스윽 훔쳐내고서, 고개를 비틀어 들었다.
“뭐가 뭐라는 겁니까?”
“…….”
난장판이 된 전각을 나서서, 천룡 부부는 자리를 옮겼다. 그곳은 정리가 아니라, 다시 지어야 할지도 몰랐다. 기파의 싸움으로 집기만 난리가 난 것이 아니었다.
주춧돌은 물론이고, 기둥, 대들보 등등에 균열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목재 하나, 하나가 범상한 것이 아니건만. 그나마 소명이 손을 썼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건물이 아니라, 주변 수십 장 내에 자리하였던 전원이 심각한 내상을 당하였을 터였다.
그런 사연으로.
소명은 더욱 널찍한 내실에서 노부부와 마주하고 앉았다. 딱 세 사람뿐이었다. 아니 마주한 것은 천룡대야뿐, 천룡대부인은 소명의 옆에 앉아서, 손을 꼭 맞잡았다.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것처럼 굳게 다잡았다.
노부인의 손이 불편한 것은 아니었다.
소명도 얼이 나가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입을 굳게 다물고서, 천룡을 끔뻑거리는 눈으로 보았다.
무슨 말을 들었는가.
소명은 고개를 흔들었다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서 창밖을 향해서 눈을 돌렸다. 모처럼 드러난 눈가에, 검은 눈동자가 급하게 흔들렸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모르는 일이라고 해버리면 좋겠지만, 그러기도 쉽지 않았다. 자리가 마냥 불편했다. 그렇다고 천룡대부인의 손을 뿌리칠 수도 없었다.
이래저래.
소명은 혼란 속에서 불편한 자리에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