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4
24화. 나서는 걸음
쌍흉은 엉거주춤한 채 고개를 돌렸다. 불길 앞에 한 사내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오관화는 자리에 앉은 채 눈살을 찌푸렸다.
쌍흉은 사내의 위아래를 살피더니 곧 오만상을 썼다. 놀라기는 했지만 그 행색에 마음이 놓인 것이다. 허름한 옷차림에 헝클어진 머리가 눈앞을 가리고 있으니, 딱 비렁뱅이 몰골이다.
그들은 짜증이 가득하여서 외쳤다.
“넌 뭐야?”
“…….”
그는 답하지 않았다.
“아니, 이 새끼가…….”
쌍흉은 그 모습에 침을 탁 뱉더니 흉흉한 칼날을 뽑아들었다. 불에 비친 두터운 칼날이 요란한 빛을 발했다. 그러나 그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는 타오르는 불길을 끄기 시작했다. 주변의 흙을 발치로 끼얹으니 불길이 약해지며 새삼 어둠이 밀려왔다.
그 모습에 대흉이 버럭 외쳤다.
“뭐, 뭐하는 짓이냐?”
그러자 사내는 꺼져가는 불씨를 하나하나 지그시 밟아가며 말했다.
“이런 밤에는 불빛이 멀리까지 가지.”
“그게 무슨?”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잔잔한 목소리였다.
“나는 개를 잡는 도중에 다른 사람에게 방해를 받고 싶지 않거든.”
말을 맺는 것과 동시에 마지막 불씨가 짓밟혔다. 어둠이 확 내려앉았다.
소명은 어둠 속에서 그들의 눈동자를 하나하나 마주 보았다. 움츠러든 두 흉한(兇漢), 그리고 자리에 앉은 채 재밌다는 듯한 눈으로 보고 있는 한 사내. 그 사내는 미소를 머금은 채 조롱하듯 소명을 보고 있었다.
그 눈, 그 얼굴.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순서란 것이 있는 법이다.
대가리를 치려면 사지를 먼저 부러뜨리고 나서 치는 게 더 편하다. 다 잦아든 모닥불을 질끈 밟고 앞으로 나섰다.
오관화는 등장한 불청객이 흥미로웠다. 험상궂은 쌍흉을 두고 부리는 여유나, 불을 끄며 하는 짓거리나. 그러나 그뿐이었다.
내일 이른 시간부터 일을 벌이기 위해서라도 지금 헛힘을 쓸 필요는 없다. 그는 주저하는 쌍흉에게 턱짓하며 말했다.
“귀찮다. 정리해.”
“예, 예!”
싸늘한 목소리에 퍼뜩 정신 차린 둘은 냅다 칼을 치켜들었다.
“이런 빌어먹을 잡놈이! 헙!”
버럭 악을 쓰며 함께 칼을 휘둘렀다. 그렇지만 둘의 욕설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기척 없이 다가온 것과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둘 사이로 파고들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둘의 턱을 덥석 움켜쥐었다. 칼을 치켜든 팔을 어찌하지도 못할 정도였다. 빠르고 느리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소명은 허리를 세우며 두 손을 아래로 내렸다. 둘의 얼굴도 덩달아 아래로 내려갔다.
“어어, 으어어어!”
“아으으!”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손아귀의 어마어마한 힘에 정신을 못 차렸다. 칼 든 손에서 힘이 절로 빠졌다.
“호오?”
그 모습에 오관화는 눈썹을 모았다. 쌍흉이 아무리 시정잡배라고 해도 아무한테나 한 수에 제압당할 만한 자들은 아니었다.
‘제법 재간이 있는 놈이라 이건가?’
의외이기는 했지만 오관화는 크게 마음 두지 않았다. 그는 그저 비릿한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소명의 눈길을 마주할 뿐이었다.
쌍흉의 턱을 일시에 제압해버린 소명은 눈 하나 깜빡 않는 뱀 눈 사내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사이 쌍흉은 아예 무릎을 꿇고 뭐라 울부짖었다. 사정이라도 하려는 모양이지만, 턱이 움직이지 않으니,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다.
소명은 그들에게 눈을 돌리지 않았다. 다만 움켜쥔 손을 좌우로 움직였을 뿐이다. 순간 덜컥하는 소리가 울렸다. 쌍흉에게는 어떤 소리보다 큰 소리였다.
“어억! 으어어!”
“악! 으거거!”
둘의 턱뼈가 좌우로 크게 뒤틀리며 빠져버렸다. 상상 못할 고통에 그들은 빠진 턱을 어찌하지 못하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더 괴로워할 필요는 없었다.
“시끄럽군.”
오관화가 중얼거렸다. 편히 앉은 채 한쪽 손을 뒤집었다. 희미한 소음이 팟 하고 울렸다.
“꺽!”
쌍흉은 순간 고개를 바짝 치켜들었다. 그리고 두 눈을 하얗게 뒤집은 채 앞으로 고꾸라졌다. 엎어진 둘의 뒷덜미에는 가는 비침이 하나씩 박혀 있었다.
바로 눈앞에서 둘이나 되는 목숨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소명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는 담담한 눈으로 앉은 오관화를 바라보았다.
그 눈길에 오관화는 의외라는 눈을 했지만, 곧 피식 웃었다.
“저놈들이 파락호치고는 실력이 괜찮은 놈들이었는데…… 네놈 솜씨도 제법이군. 그래, 어디 이름이나 말해봐라.”
“호가무관에 신세를 진 사람일 뿐이다.”
“그래?”
호가무관이라는 말에 오관화는 재차 헛웃음을 흘렸다. 잠시 낯을 굳혔던 자신이 바보스러울 정도였다. 고작 무관 제자에게.
소명은 웃는 오관화의 모습에 물었다.
“뭐가 우습지?”
“뭐가 우습냐고? 무관의 제자라는 놈이 내 앞에서 이렇게 꼿꼿이 서 있다는 것이 우스워서 말이야.”
“무관의 제자라는 것이 우습다는 말인가?”
“그래.”
말이 끝나기가 무서웠다.
퍽!
둔중한 울림이 울리며 오관화의 웃는 얼굴이 뒤로 확 젖혀졌다.
오관화는 천천히 고개를 바로 했다. 그의 높은 콧대가 벌겋게 달아오르며 두 줄기 핏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소명은 그에게 물었다.
“아직도 웃기나?”
오관화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손을 들어 흘러내린 코피를 닦아냈다. 그는 양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제법 손이 빠르군. 하하, 이렇게 기분이 더럽기도 정말 오랜만이야.”
여유로운 척하지만, 핏물을 훔쳐낸 손끝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순간, 오관화는 움직였다.
바닥에 쌓인 잿더미를 발로 차올렸다. 아직 열기를 품은 잿가루가 확 솟구쳤다. 뾰족하게 모은 오관화의 관수(貫手)가 소명의 명치를 향해 찔러왔다.
한 호흡에 벌어진 일이다. 그러나 소명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덮쳐오는 잿더미를 그대로 맞이하며 찔러오는 오관화의 관수를 마주 잡아갔다.
“큭!”
오관화는 짧은 웃음을 흘렸다. 잡았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순간 관수를 접으며 일격의 정권을 내질렀다. 짓쳐들어가는 몸과 함께한 일권이었다.
준비한 공력이 시위를 떠난 활처럼 쏘아졌다. 단단한 바위조차 부술 만한 공력이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힘껏 앞으로 내질렀어도 소명은 처음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오관화의 정권을 정면에서 맞잡은 채였다.
어찌 된 것인지 발한 공력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반발력조차 없었다. 맞잡는 순간 소명의 손에서 기이한 울림이 한 차례 일었을 뿐이었다.
크게 놀랐지만 그렇다고 공세를 멈출 정도로 오관화는 미련하거나 경험이 얕지 않았다. 그는 당장 뻗은 손을 끌어당기며 다른 주먹을 내질렀다.
“크윽!”
섬전처럼 뻗은 정권이다. 그의 주먹은 인중, 멱, 명치를 차례로 노렸다. 그러나 첫 번째 주먹부터 인중이 아닌 소명의 이마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빠각!
“끕!”
몰려든 고통에 오관화는 이를 악물었다. 주먹이 부서진 것 같았다. 능히 바위도 부수는 그의 정권이 사람 머리 하나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힘이 풀리는 순간, 소명은 손을 뻗어 그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오관화의 하늘과 땅이 뒤집혔다.
“흐억!”
미처 방비할 새 없이 바닥에 처박혔다. 극통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공력이 끊기며 숨통이 콱 막혔다. 그렇지만 정신을 놓치는 않았다.
오관화는 이를 악물고 당장 두 다리를 차올렸다. 소명의 머리를 부숴버리려고 작정한 것이다. 두 다리가 풍차처럼 맹렬히 돌았다. 그렇지만 채 한 바퀴를 다 돌기도 전에 두 발목마저 소명의 손에 덥석 잡혔다. 그의 손은 오관화의 발악 일체를 용납하지 않았다.
우득!
“끄윽!”
오관화의 몸속에서 천둥소리가 울렸다. 두 발목에서 동시에 울린 소리였다. 소명은 미련 없이 잡은 두 발목을 놓아주었다.
“크악!”
바닥에 떨어지는 충격으로 오관화는 더 큰 고통에 몸부림 쳤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한 손과 두 다리가 완전히 나가버렸다. 그는 발작적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순간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달빛을 등에 진 소명의 검은 얼굴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담담한 눈빛이 오관화를 짓눌렀다.
“끄…… 으으…….”
악문 잇새로 신음이 새었다.
소명은 입을 열었다.
“어때, 아직도 우습나? 오, 관, 화.”
소명이 힘주어 내뱉은 자신의 이름에 오관화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나를 아는 놈이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지금껏 저질러온 짓거리가 하나둘이 아니기는 하나, 호가무관에 대해 걸리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눈이 흔들리는 그에게 소명은 나직이 속삭였다.
“네가 호경한, 호 관주님을 암습했다지.”
“흡!”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관화는 숨을 끊어내며 멀쩡한 팔을 번쩍 치켜들었다. 손목을 움직여 비침을 날리려는데 툭 소리가 났다. 오관화는 멍한 눈동자를 돌렸다.
대관절 언제 손을 썼는지 손목이 힘없이 덜렁거렸다.
“으, 으으…… 으아아악!”
오관화의 날카로운 비명이 어두운 야공(夜空)을 갈랐다.
* * *
호청연은 자신을 흔드는 느낌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청연……. 연아…….”
“으음, 누가 깨우는 거야?”
호청연은 짜증을 내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흔들던 손이 멈췄다. 그녀는 반쯤 감긴 맹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 여기가 어디?”
“일어났어?”
호청연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달빛 아래로 소명의 모습이 보였다.
아직 상황이 파악되지 않은 모양인지 멍하니 있던 호청연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방이 캄캄하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그야…… 나도 모르지.”
소명은 고개를 흔들었다. 순간 호청연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뭐, 뭐야! 네가 왜 날 엎고 있어!”
“어, 응? 아니, 안 일어나길래…….”
“내, 내려! 당장 안 내려!”
호청연은 발버둥치며 고래고래 목청을 높였다. 그 서슬에 놀라 소명은 황급히 몸을 낮췄다. 호청연은 두 발이 땅에 닿기가 무섭게 후다닥 물러섰다. 그리고 도끼눈을 치뜨고 엉거주춤한 소명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소명에게 화를 낼 때가 아니었다. 해가 이렇게 저물었으니. 그녀는 퍼뜩 약포를 찾았다.
“약, 약은!”
“여기.”
호청연은 소명이 내민 약포를 낚아채고는 급히 달려갔다. 소명은 그런 호청연의 뒷모습을 쓴 미소를 머금고 바라보았다.
그는 문득 손을 들었다. 그의 손에는 얇은 비침이 들려 있었다. 오관화의 것으로, 호청연의 혼혈을 제압한 물건이다.
그는 감정 없는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멀리 야산이 있는 방향이다.
그곳을 보며 소명은 천천히 주먹을 그러쥐었다. 비침은 마치 종이로 만든 것인 양 형편없이 구겨져 원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었다.
호가무관으로 돌아오니 호 관주가 불안한 신색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급하게 돌아온 호청연에게 그만 노성을 터뜨렸다.
“너는!”
“아, 아버지. 잘못했어요오…….”
호청연은 방에서 무릎을 꿇은 채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어야 했다. 뭐라고 변명할 말도 없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소명의 등에 업혀 있었고, 사방이 캄캄해져 있었으니.
그녀는 뭐라 말 좀 하라는 듯이 옆에 서 있는 소명에게 계속 눈짓을 보냈지만, 그는 멀뚱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라고 달리 할 말이 있을 리가 없었다.
호 관주는 한참 노성을 터뜨리고서야 화를 풀었다.
“이제, 됐으니 들어가 보아라. 시간이 많이 늦었구나.”
“예에…….”
호청연은 오래 꿇어앉고 있어 저린 다리를 절뚝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그래도 문을 닫기 직전에 소명을 찌릿하게 노려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호 관주는 닫힌 문을 보며 안도한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나직이 소명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