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41
241화. 사천(四川), 잿빛 하늘
“아청, 여기면 멀지 않았어.”
“그래? 후우, 날씨가 영 고약하군.”
여인이 돌아보면서 외쳤다. 그러자 사내는 피풍의에 달린 두건을 뒤로 넘겼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대충 털어내고서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청이었다. 황궁의 새로운 실세인 심삽황자 주이청, 그러나 옛 친우들에게는 그저 이청에 불과하다. 그리고 하얀 여우 목도리의 여인은 당민이었다.
둘은 사천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소식을 듣기가 무섭게, 이청은 바로 당민과 함께 사천행을 결정했다.
사교를 앞세운 마도의 발호라니. 하북에도 비슷한 짓을 하더니만, 사천에서도 똑같은 짓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그도 그렇지만, 당민의 본가에도 일이 있었다고 하니, 이청은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이청은 검미를 살짝 찌푸렸다.
“뱃길로 가는 편이 더 빨랐을까?”
살짝 아쉬움을 드러냈다. 배편을 준비하기에는 시간도 그렇지만, 돌아가야 했다. 그럴 여유는 마땅치 않아서 말을 몰아 잔도를 바로 넘는 것을 택하지 않았던가.
당민은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아니, 차라리 말이 나아. 그보다 하남을 지나면서도 녀석들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네.”
“음.”
이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세 친구, 소명과 탁연수, 그리고 호충인. 셋을 생각하니, 분명 그러했다.
하북에서 크게 일을 벌인 것은 좋았지만, 그 뒷정리가 만만치가 않았다.
황자의 권위가 있었지만, 실무의 확인은 온전히 이청의 몫이었다.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간신히 마무리 짓고서 이제야 황도에서 해방인가 싶었더니.
십삼황자는 황도를 떠나, 남경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이청이 자처한 일이었다. 하북을 평정한 황자가 계속 황도에 남아 있는 것은 태자에게 그리 좋은 일이 아니었다.
이청은 모조리 내려놓고서, 스승인 상 부인과 몇을 데리고서 순순히 황도를 떠났다. 하북에서도 그러하였듯이, 남경에서 또한 마도를 경계하겠다는 것이 본뜻이었다.
황제도, 태자도, 그것을 마다치 않았다.
적어도 당장, 십삼황자 주이청을 해코지할 만한 이들은 황궁에 없었다.
이청이 생각하기에 그것은 온전히 소명의 도움이었다.
여러 황자 중에서도 이청을 제일 못마땅하게 여기고 수시로 목숨을 노렸던 칠황자, 그리고 칠황자의 배후인 봉 공공.
소명이 산서에서 그들을 일거에 처단하지 않았던가.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청은 졸지에 유산이나 다름없는 봉 공공의 남은 세력을 덥석 집어삼킨 셈이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소명의 기지로 확보한 봉 공공의 유언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청은 남경으로 향하다가 말고, 이렇듯 사천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북을 막 벗어나기가 무섭게 접한 소식 때문이었다.
사천, 그리고 독문당가에 생긴 변고였다.
이청은 하아, 한숨을 흘렸다. 하얀 김이 뭉클 솟았다가 그만 흩어졌다. 날은 흐렸고, 산중이라서 엄습하는 추위가 가볍지 않았다.
“마냥 이러고 있을 게 아니지.”
“음.”
둘은 잠시 숨 돌린 것으로 충분하여서 바로 움직였다.
말들도 더운 김을 훅훅 뿜어내면서 다시 힘겨운 길을 나섰다.
잔도를 지나는 데에 힘겨웠지만, 검문관을 넘어서 성도까지 달리는 데에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당민도 그렇지만, 이청도 노상(路上)의 경험이 상당했다. 봉 공공에게 쫓긴 세월이 어디 한두 해이던가.
잘 시간도 쪼개어 가면서 말을 몰아간 덕분에, 어려움 없이 성도에 이르렀다. 지나면서 본 사천은 사뭇 을씨년스러웠다. 인적은 드물었고, 곳곳이 황폐하였다.
이청은 입매를 힘주어 비틀었다.
가을걷이가 마무리된 곳도 있었지만, 그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곳이 부지기수였다.
무언가에게 쫓기듯이 마을을 비운 것이다. 그런 모습은 성도에 가까울수록 드물었지만, 없지는 않았다. 그리고 사천의 중심, 성도에 이르렀다.
굳이 황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곳도 그래 가볍지 않은 규모였다.
당민은 사뿐히 말에서 내려섰다.
“본가는 성도를 지나서 한두 시진 정도면 닿으니. 오늘은 여기서 쉬자.”
그리고는 먼지 그득한 옷을 팍팍 털었다. 젖은 먼지가 후드득 흩어졌다. 아닌 게 아니라, 하늘도 노을빛이 가득했다.
날이 언제 저물지 모를 일이다.
이청은 당민의 뒤를 그대로 뒤따랐다. 당민은 익숙한 듯, 말고삐를 잡고서 성도를 걸었다. 사람이 많아 복작거렸다. 이제껏 비어 있는 마을의 사람들이 모조리 여기로 모여든 듯했다.
이청은 굳이 당민에게 어디로 가느냐 묻지 않았다. 그렇지만, 당민은 뻔한 곳으로 향하지 않았다. 오히려 외곽 쪽으로 빙글 돌았다.
갈수록 가옥이 허름했고, 거짓말처럼 인적이 드물었다.
그런 곳에 백마를 이끌고 가는 당민의 모습은 영 어울리지가 않았다. 이내, 당민은 다 허물어질 듯한 가옥에서 멈춰 섰다.
갈라진 문짝에는 잔뜩 색바랜 관제의 그림이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얼마나 오래 방치되었는지 모를 곳이었다. 당민은 계단 위로 성큼 올라가더니, 탕! 탕! 탕! 힘껏 두드렸다.
먼지가 뽀얗게 일었다. 그리고 한참을 기다렸다. 안쪽에서 다른 기척은 조금도 없었다.
이청은 영문을 몰랐다. 당민의 백마와 자신의 흑마 고삐를 같이 쥐고서는 멀뚱히 지켜만 보았다.
‘여기는 대체?’
침묵이 길어지자, 당민은 팔짱을 끼고서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사뭇 불편한 기색이었다.
“아니, 이것들이.”
당민은 불현듯 잇새로 구시렁거리더니, 다시 문을 두드렸다.
쾅! 쾅! 쾅!
“당장 안 기어나와!”
그러면서 험한 소리를 터뜨렸다. 그제야 우당탕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내려앉을 듯한 눈앞의 허름한 가옥에서만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주변의 모든 집에서 서둘렀다. 불이 확 밝아오고,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너 나 할 것 없이, 여러 인영이 달려 나왔다.
“아가씨!”
“민 아가씨!”
그들은 당장에 당민을 에워쌌다. 반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당민의 눈초리는 영 곱지 않았다. 쯧, 혀를 차면서 찌푸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사람들이. 재깍재깍 안 나타나지?”
“헤, 헤헤. 소식을 좀 주시지 않고요.”
“그러니까요. 이렇게 뚝딱 나타나시면 저희가 어디 다른 도리가 있겠습니까?”
“평소에 잘하라고 했지. 평소에.”
“크흠, 크흐흠.”
여기 사람들은 당민의 면박에 헛기침을 흘렸다. 그것도 잠시, 이내 함지박만 한 웃음을 흘렸다.
“어서 들어가지요. 어서요.”
이청은 영문을 몰라서 눈만 끔뻑거렸다. 그런 와중에 여기 사람들은 이청에게도 몰려와서 길을 이끌었다.
당민이 두드린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들은 전혀 다른 쪽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러자 그곳은 바깥에서 보는 것과 전혀 다른 광경이었다.
우선 엄습하는 것은 뜨거운 열기였다.
몇이나 되는 대장간이 줄지어 있었다. 후끈한 열기 속에서 검게 그을린 사내들이 공손하게 서 있었다.
“돌아오셨습니까.”
“응, 모두 강건해 보이네.”
“아무렴요. 하하하.”
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웃는 모습은 참으로 순박하다. 그러다가 사내들은 물론이고, 여기 아낙들의 눈초리가 슬그머니 이청에게로 향했다.
흘깃, 흘깃거리는데, 입을 열지는 않아도, 누구냐고 묻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쪽은 옛 친구. 이청. 이후로도 나처럼 생각하라고. 알았어?”
“옛 친구요? 딱 그게 답니까?”
“쓰읍!”
사뭇 짓궂은 투로, 누군가 슬쩍 고개를 내밀면서 물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따갑기 이를 데가 없는 당민의 눈초리였다.
“으익!”
파란빛이 번뜩인다. 사내는 냉큼 목을 집어넣었다. 저 눈빛은 진심이다. 함부로 장난치다가는, 하루 이틀 몸져눕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당민은 곧 눈빛을 거두었다.
“상황이 상황이니. 내일 바로 본가로 갈 테니까.”
“예, 그렇지요. 장문인께서도 그곳에 계십니다.”
“음. 아구, 손님께 방을 안내해드려라.”
“네잇!”
짓궂게 나섰다가, 그만 눈빛 한 번에 깨갱 하였던 사내였다. 아구라는 그는 힘주어 대꾸했다.
이청은 아구의 안내로 마을의 다른 가옥으로 향했다. 겉은 폐허로 감쌌지만, 내부에는 이렇듯 야장의 거리가 숨어있다니.
새삼 신기했다.
“여기는 뭐라고 하는 곳이오? 아구 소협.”
“헤헤, 소협은요. 무슨. 그냥 이놈, 저놈 하셔도 좋습니다.”
아구는 배시시 웃었다. 그러고는 검댕이 묻은 코 아래를 손등으로 슥슥 훔쳐냈다.
“여기는 당문북가(唐門北家)라고 하지요.”
“당문북가라.”
“별 뜻은 없습니다. 헤헤헤. 본가인 독문당가의 북쪽에 있다고 해서, 북가라고 한답니다.”
그리고 아구는 따뜻한 방으로 안내했다. 편히 쉬라는 말을 남기고서 조심스럽게 물러갔다.
이청은 짐을 내려놓고서 주변을 찬찬히 살폈다. 작은 토방에 불과했지만, 방은 정갈했다.
이청은 놓인 침상에 걸터앉아서, 잠시 숨을 돌렸다.
통통.
잠깐 잠들었던 것일까. 이청은 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에 퍼뜩 눈을 떴다.
“자?”
“아니.”
이청은 일어나, 문을 열었다. 막 씻고 나온 당민이었다. 촉촉한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감싸고 있었다.
“이런, 다 말리지 않고서.”
“흥, 별소리를.”
당민은 방으로 성큼 들어와 침상에 편히 앉았다. 그리고 수건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털어냈다. 이청은 잠시 웃고서, 문가에 등을 기대고 섰다.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토방에 밝혀 놓은 유등의 불꽃이 가만히 일렁였다. 한참 만에 당민은 젖은 수건을 무릎 위에 놓았다.
“생각보다 상황이 더 안 좋은 것 같아. 다른 곳도 아니고, 성도 가까운 곳마저 그리 황폐하였을 줄은. 여기도 그렇고 말이야.”
당민은 사뭇 복잡한 심경이었다. 본래의 성도는 이러하지 않았다. 계절을 가릴 것도 없이, 늦은 시간까지 불을 환히 밝히고 끝도 없는 사람들끼리 돌아다닌다. 그런데 지금은 갈 곳 없는 사람들이 곳곳을 차지하여서 쇠하여 갔다.
유민들로부터 일어나는 두려움이 퍼져가는 듯했다.
이청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공포와 두려움은 실로 역병과도 같은 것이다. 한번 휩쓸리면, 병근(病根)을 끊어내지 않는 이상, 백약이 무효이다.
이청이 금군은 물론이고, 하북 무림인들까지 전부 동원하여서 마도를 단번에 끊어버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래도, 마냥 늦었다고는 할 수 없지.”
“그런가.”
이청은 차분하게 말했다. 힘이 되었을까. 당민은 잠시 미소 지었다. 그리고 이청은 문득 물었다.
“그런데 아민. 여기는 대체 어떤 곳이야? 당문북가라고 하던데.”
“일단은 당가야. 성도의 분가이지만.”
“분가가 따로 있는 건가?”
“응.”
당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독문당가는 남조류와 북조류로 구분한다.
독과 약을 다루는 남조류, 그리고 암기와 무공을 다루는 북조류, 그렇다고 당가에서 어느 한 곳만 따르는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는 남북류를 고루 아우른다.
독을 모르고 암기를 쓸 수 없고, 약을 모르고서 무공을 단련할 수도 없는 일이다.
다만, 개인의 성향을 좇아서 더욱 집중하는 것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당가의 가르침이 그러했다. 그리고 당민은 북조류의 직계인 셈이었다.
당가타에 본가가 있고, 북조류의 분가는 성도에 그리고 남조류의 분가는 또 다른 곳에 있었다. 이들은 단순한 상하의 관계가 아니었다.
모두 동등하게 협력하는 관계로, 아무리 본가의 가주라고 하여도 분가의 일에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었고, 마찬가지로 분가의 가주라고 본가의 일에 나서지 못할 것도 없었다.
바깥에서는 독문당가를 두고서, 독심일절이니, 편협하다니 하지만. 가문의 가르침은 단순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그 하나였다.
물론 갈등이야 없겠느냐만. 결코, 가문끼리 등 돌리는 일은 없다.
“아버지는 본가에 계신다는군.”
“마도의 일 때문이겠지.”
“음.”
당민은 슬쩍 입술을 깨물었다. 애써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막상 분가까지 왔다.
마냥 입 닫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실종되었다는 당가의 공자는.”
“음, 당기륭. 그 녀석은 남조류의 직계. 그리고 가주의 금지옥엽이야. 오죽하면, 본가에서 먼저 무림첩을 돌렸을까 싶어.”
당민은 쓴웃음을 보였다.
보통 사천 무림에서 벌어진 일은 사천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당가였다.
그런데 당가에서 먼저 통문을 돌리고, 사천 밖으로까지 소식을 알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당가주의 외동아들이 당한 것은 물론이지만, 마도라는 것은 그만큼 대단한 것들이었다.
이청은 고운 불빛을 밝혀 놓은 토방에서 잠시 입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