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46
246화. 사천련(四川聯)
노파는 지저귀는 새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느 틈에 날이 밝았다. 가득 막아놓은 들창 사이로 햇빛이 가늘게 스며들고 있었다.
잠시 멍하였다가, 노파는 퍼뜩 허리를 세웠다. 야윈 몸이 힘겹지만, 힘겨운 것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아이고! 아이고! 아가야! 내 아가! 우리 아가!”
노파는 텅 비어버린 아이 수건을 그러쥐고 통곡하고 말았다. 수건에 주름진 얼굴을 파묻고, 하늘이 무너져라, 땅이 내려앉아라, 그렇게 울어 젖혔다.
노파의 울음은 길고, 또 길게 이어졌다.
가까이에 사는 이웃들은 울음을 들으면서 몸을 떨었다. 같이 슬펐고, 같이 안도했다. 적어도 당장 이 집은 화를 피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슬프고 두려웠다.
이것이 홍천교의 아래에 있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 * *
당가는 졸지에 사천련의 중심이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홍천교의 교세가 불과 며칠 사이에 성도 가까이 이르렀다. 주변으로는 마땅한 곳이 없었다. 마도라는 진실한 정체를 알아버린 이상에야, 처음처럼 홍천교를 한낱 사교 따위로 여길 수도 없었고, 대할 수도 없었다.
토벌하는 데에 큰 준비가 필요하다.
“어찌하면 좋겠나?”
“모조리 죽여 없애고자 한다면야 못 할 것도 없겠지요.”
차분한 목소리가 그것을 맞받았다. 그러자 같이 자리한 여럿의 얼굴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그것이 무슨 무도한 소리란 말인가.
노성이 터지지 않은 것은 말 꺼낸 사람이, 거지이기 때문이었다.
“홀리는 놈도 죽이고, 홀린 놈도 죽이고. 그렇게 죄 잡아 죽이면 그놈 종자들도 죄 끝장나지 않겠습니까?”
비아냥이 역력했다.
사천의 한구석을 전부 아우르고, 수만이나 되는 백성을 홀려놓은 홍천교였다. 아무리 뒤에 마도가 있다고 한들, 그들까지 어찌할 수가 있을까.
거지는 그런 소리를 아주 태연히 내뱉었다. 그런데 당가주와 두 장문인은 뭐라고 하기보다는 신음을 삼키면서 눈을 피했다.
거지는 개방 사천 분타를 맡은 젊은 분타주, 백결호(百結虎) 오군이다.
백결이라는 별호대로, 누덕누덕 기운 넝마를 걸치고서, 오군은 사천의 여러 무림 명사 앞에서 꼿꼿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검댕이 그득한 갈색 얼굴이 짐짓 심통이 나 있었다. 심통이라고 하기보다는 불만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했다.
당가주는 쓴웃음을 잠시 머금었다.
“오 분타주. 계속 그리 몽니만 부릴 참인가?”
“제가 오죽하면 이럴까요. 가주.”
오군은 바로 쏘아붙였다. 노려보는 눈초리가 사뭇 험악하다.
“하, 하하. 그도 그렇네. 다 내 불찰이요. 내 잘못일세.”
당가주는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당황할 법도 한데, 개방의 거지는 과연 개방의 거지이다. 끝내 찌푸린 얼굴 그대로 당가주를 보았고, 좌우에서 당황하는 다른 문주들을 둘러보았다.
“어허, 오 분타주.”
“그만 하십시다.”
“이래서야 어디 회의가 이루어지겠소.”
책망하는 듯한 말도 튀어나왔다. 오군은 고개를 흔들고서는 두 손을 펼쳐 보였다.
“에효, 하기야 뭘 어쩌겠습니까. 일은 이미 이 지경까지 왔으니.”
오군은 일단 표정은 풀었다. 대신일지, 지쳐서 어깨가 무거운 듯했다.
처음 홍천교의 일이 벌어졌을 때에, 토벌을 말한 것도 백결호이고. 사교의 교세가 들불처럼 일어나기 직전에 먼저 말한 것도 백결호이다. 심지어 마도의 개입마저도 외쳤건만, 크게 귀 기울이지 않았다.
중원 강호에서 마도가 들불처럼 일었다고 하나, 어디 사천에서까지 그러겠느냐는. 안이하기 그지없는 생각 때문이었다.
백결호는 이번 일로 단단히 상심한 마당이었다.
개방의 사천분타주가 다 무엇인가. 사교의 수작에 고통 받은 민초를 살피지도 못했고, 그들의 패악질을 막아내지도 못하였으니.
오군은 고개가 절로 무거웠다. 그러다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가능한 만큼 상황을 파악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네들이 벌이는 짓거리가 하도 가당치 않더군요.”
좌중은 침묵 속에 오군의 설명에 귀 기울였다.
무슨 수작을 부려놓았던 것인지, 마을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붙잡혔다. 설사 밀마를 남겼더라 하더라도, 밀마를 확인할 방도가 없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멀리서 눈 밝은 자들로 하여금, 밖에서 홍천교의 영역 안에 있는 마을을 살피게 하였는데.
하루, 또 하루가 지날수록 사람들 수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인세의 지옥이 따로 없는 상황입니다. 한시라도 지체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지요.”
“그렇구려. 그렇구려.”
청성 장문인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가까이 접근이라도 할 수 있어야 뭔가를 파악할 일이다.
아무것도 알 수가 없는 판국인데, 시간마저 촉박하다.
급하게 이루었다지만, 사천련은 빠르게 체계를 갖추었다. 그 자체로 막강한 힘이다. 다만, 이 힘을 어떻게 쓸 수가 있을지는 온전히 홍천교의 상황에 달린 것이다.
“방책이, 방책이…….”
뭘 알아야 방책을 세우든 말든 할 일이지 않은가.
당가주는 문득 고개를 돌렸다. 한 사람을 향해서였다. 그러나 눈길을 뻔히 알면서도 그 사람은 영 딴청이었다.
당가에서, 당가주의 눈길을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여기에 있었다.
“이봐, 거중.”
결국, 당가주는 입 밖으로 소리를 내고 말았다.
당민의 부친, 그리고 북조류의 장문인인 당거중은 이를 드러냈다.
“택도 없는 소리!”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녀석을 중원까지 보냈던 것으로 충분하지 않소. 이번에는 안 돼!”
“어허, 이보게 거중.”
“몰라, 몰라. 안 돼. 안 돼!”
숫제 투정을 부리는 듯하다. 사정 아는 사람은 그러려니 하지만, 모르는 사람은 아연하여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것이 어디 당가의 수뇌라고 할 사람들 사이에서 오갈 대화란 말인지.
그런데 문이 벌컥 열렸다.
“가지요. 제가 갑니다.”
좌우에서 막아서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들을 뿌리치면서 당민이 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당거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녀석, 아민!”
“시급합니다. 하북에서 마주한 마도의 주구들은 자신이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어 나갔습니다. 지금 마각을 드러낸 자들을 제압하지 않으면, 들불은 사천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단호하기 이를 데가 없다.
가주 당성영은 느린 눈으로 당민을 잠시 지켜보았다. 당거중이 바르르 몸을 떨어대고 있으나, 전혀 돌아보지 않았다.
“몇이나 필요하느냐?”
“가주! 정녕!”
당거중이 홱 고개를 돌렸다. 통나무처럼 굵은 목이 부러질 듯했다. 그런데 뒤이은 당민의 말이 더욱 가관이라서. 당거중은 그만 기함하는 것도 잊고 말았다.
“필요 없습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내부에서 엎치락뒤치락하였지만, 하겠다는 사람이 강하게 주장하는 판국이었다.
그것을 내내 마다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리 본인의 뜻이라 한들, 혼자 보낼 수는 더더욱 없었다. 다들 주저할 적에 먼저 나선 것은 청성파 장문인이었다.
청성 장문인 또한 소규모로 들이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점에는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한 한편으로, 당가에서도 손꼽히는 젊은 고수라는 녹면옥수가 나서는 마당인데, 적어도 그 정도에 이르는 고수를 권하여야지 모양새 나지 않겠는가.
그런 것은 고민할 만한 일이었다.
그런즉, 청성파 장문인은 자신의 제자 한 사람을 보냈다. 아미파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과연 사천의 삼세라.
여기에 다른 명사들은 주저주저했다. 쉽사리 끼어들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천만뜻밖에도 불쑥 끼어든 자가 있었다.
“나도 끼지.”
“어이쿠!”
좌우에서 그만 당황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개방의 분타주가 직접 끼겠다는 것이다. 실로 놀랄 일. 그러나 놀라기는 하여도, 누구도 만류하지는 못했다.
개방 제자가 대체 몇이 희생되었던가.
분타주로서, 백결호는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죽든 살든, 아니면 자신 또한 실종되어버리든 간에, 사천련에 틀어박혀서 답도 아니 나오는 난제에 골머리 썩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당성영과 당거중마저도 매우 놀라는 눈이다. 그러나 당민은 한 번 흘깃거리기만 했다.
당황하기는커녕, 솔직하게 말하면 그러든지, 말든지 괘념치 않겠다는 뜻이 분명했다.
새벽 날, 날이 어슴푸레하게 밝아오기도 전이다.
당민은 어둑한 방에서 채비를 갖추었다. 은빛 비늘처럼 반짝거리는 짧은 단배자를 걸치고, 위로 녹삼을 다시 입었다.
왼손에는 한층 신중한 모습으로 비갑(臂鉀)을 찼다. 그리고 허리끈을 바짝 조여 묶었다.
마지막으로, 당민은 녹색 가면을 새삼 집어들었다. 울퉁불퉁하여서 언뜻 보기에도 참으로 흉하다. 여기저기 긁히고, 깎인 상처가 역력했다.
이것으로 녹면이라는 이름이 별호에 붙었다.
당가에서 외부활동을 할 적에 누구나 쓰는 녹면이지만, 결국 이름을 떨친 것은 당민, 한 사람뿐이었다.
당민은 동경을 마주하면서 천천히 가면을 들어서 얼굴을 가렸다.
눈을 맞추고, 코를 맞추고, 턱을 맞추었다.
“후우…… 좋아.”
이제부터 녹면옥수라고 해야 할 터이다. 당민은 홱 몸을 돌렸다. 그 자리에는 이청이 있었다.
“이청.”
“시작은 본거지라고 하였던 곳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도록 하지.”
“음.”
이청은 녹면 사이로 반짝이는 당민의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했다. 서로 만류하는 일은 없었다. 해야 할 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새벽 공기가 차갑게 밀려왔다. 무겁고 습했다. 날이 날인 탓일지도 몰랐다.
녹면을 갖춘 당민과 평소 모습 그대로 나서는 이청의 모습은 너무도 달랐다. 묵묵히 북관을 나서자, 둘을 따로 기다리는 자들이 있었다.
하나는 백결호이었다. 누런 죽장을 세우고, 거기에 기대어서 이쪽을 빤히 보았다. 그의 좌우로는 방갓 쓴 비구니와 환한 인상의 젊은 도사가 있었다. 도사는 파란 득라에 검 한 자루를 등에 메고 있었다.
짙은 눈썹 아래로, 두 눈에는 정광이 맺혀 있었다.
“이런, 어찌 알고.”
“과거 녹면옥수의 행적을 생각하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나. 흐아암!”
백결호는 하품을 쩍쩍 흘렸다. 그러면서도 용케 예리함을 잃지 않았다. 거지의 눈가에는 졸음이 눈곱과 함께 뒤엉켜 있지만, 아래에는 날카로움이 번뜩였다.
“아미타불, 당 소저께서는 정녕 혼자 움직이려 하시었습니까?”
“따로 움직이는 것도 한 방편이 아니겠소.”
당민은 턱을 들고서 당당히 말했다. 부정하지 않았다. 방갓 아래로 드러난 아미파 비구니의 입술 끝이 그만 파르르 떨렸다.
“원시천존, 원시천존. 청성의 양정이라 합니다. 당 여협께서는 너무 고깝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도 그렇고, 여기 아미의 소신니(少神尼)도 그렇고 강호 경험이 부족하지만, 모자란 사람은 아닙니다.”
청성파의 양정이라고 하면, 분명 청성 장문인의 제자 중에서 무공이 으뜸간다고 소문이 자자한 젊은 기재였다. 아미의 소신니는 또 어떤가.
망진사태가 직접 길러 내서, 아미금정의 비전을 이었다고 전해졌다. 그러나 당민은 시큰둥했다.
“다들 그렇게 여기지. 강호 초출이란.”
짤막하게 대꾸했다. 나선 양정이 머쓱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당민은 백결호를 돌아보았다.
“우루루 몰려가서 좋은 꼴 볼 리는 없을 것이고. 알아서 모이도록 합시다. 우리 둘은 홍천교의 숨은 본거지라는 곳을 살피고 움직일 생각이오.”
“음, 그곳이라면 나도 잘 알고 있지. 어떻게 안내는 필요 없나?”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시오?”
당민은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백결호는 소리 없이 입술 끝만 삐죽 치켜들었다.
당민은 조용한 이청과 함께 걸음을 재촉했다. 새벽 안개 사이로 사라지는 뒷모습을 한참 지켜보았다.
백결호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허 참, 저놈의 성질머리는 참 여전도 하군.”
“백결호 선배, 이제 어찌해야 할지.”
“어쩌기는 알아서 움직이라 하지 않으냐. 우리도 알아서 움직여야지.”
백결호는 어리둥절한 양정에게 한 마디를 툭 던지고서, 곧 돌아섰다. 죽장을 뒤로 돌린 채, 느긋한 팔자걸음이었다. 끌끌, 혀 차는 소리는 입 안에서 맴돌았다. 당민의 말이 딱힌 틀린 것은 아니다. 무공은 자파에서 손꼽히지만, 경험은 한참 부족한 둘이다.
구파일방의 의리를 생각하면 마냥 알아서 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양정과 소신니는 잠시 서로 마주했다.
“도우, 어찌하시겠소?”
“어쩌기는요. 달리 갈 곳도 없는데. 백결호 선배라도 쫓아가야죠. 어영부영했다가는 사부님께 아주 치도곤을 당할 겁니다.”
양정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대꾸하고는 백결호 뒤를 바로 쫓았다. 하기야 소신니도 크게 다른 처지가 아니다. 고개를 한 번 끄덕거리고는 바로 움직였다.
선장을 짚으며 나서자 매달린 고리가 흔들리며 짤랑, 맑은소리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