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47
247화. 사천련(四川聯)
당민과 이청, 그리고 백결호를 비롯한 아미, 청성의 두 제자가 당가타를 떠나고서 닷새가 흘렀다. 그 사이에 아무 소식도 없었다.
크게 가슴 졸일 일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허둥거릴 수는 없었다.
바깥에서 살필 수 있는 것이라도 마땅히 살펴야 했고, 그에 맞추어서 대비를 갖추어 나아갔다.
적어도 며칠의 시간은 있다. 그동안, 사천은 더욱 혼란을 거듭했다. 심지어 성도에서도 물러 나오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었다.
이제는 사천련의 깃발을 새롭게 세운 당가타가 유일한 피난처로 여겨질 정도였다. 불과 서너 달 전에 비하자면, 당가타의 영역이 배 이상으로 불어난 듯했다.
그렇게 사람이 복작거리는 당가타에서, 누군가 당가를 향해서 걸어갔다.
꽤 먼 길을 서둘러서 달려온 모양이다. 걸친 피풍의에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다. 그는 피풍의에 달린 두건을 깊이 눌러쓰고 있었다.
“휘유.”
독문의 현판을 빤히 올려다보면서, 두건을 뒤로 넘겼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아주 엉망이었다.
“멀기도 하다.”
한숨 섞인 목소리였다. 딱히 지친 것은 아니었다. 잔뜩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유독 흑백이 뚜렷한 눈동자가 어수선한 당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외인이 가까이 왔건만, 어디의 누구도 사내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주변이 원체 소란한 까닭이었다.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필요한 물류가 계속해서 들락거리는 판국이었다. 분명 당가의 앞마당이건만, 당가의 녹의가 드문드문 보일 지경이었다.
피풍의를 툭툭 털면서 독문당가의 정문을 넘었다.
느린 걸음으로, 좌우를 찬찬히 두리번거렸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붙잡고서 말 붙일 상대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분주한 와중이다.
그렇다고 딱히 서두르지 않았다. 사뭇 느긋한 모습으로 주변을 살피며 거닐다가, 어느 곳을 똑바로 보았다.
“저기로군.”
먼지 섞인 탁한 목소리였다. 더 두리번거리지 않았다. 입술을 슬쩍 깨물고서 성큼성큼 걸었다. 내외당의 구분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처음에는 분주한 마당이어서, 미처 외인의 등장을 눈치채지 못하였다면, 이제부터는 외인의 보신경이 실로 뛰어난 탓에 파악하지 못하였다.
당진령은 한숨을 흘리면서 백포를 걸쳤다. 앞치마를 단단히 묶고서,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굳게 닫아건 약고전 격리실로 향했다. 그러나 걸음이 참으로 무거웠다.
벌써 달포에 가까운 날이 흘렀지만, 상태가 호전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든 유지하는 데에 급급했다. 그나마도 위태하였으니.
수백 년 세월 동안 쌓아오고, 더욱 발전시켰다고 자부하는 당가의 의학이다. 그것이 이렇게나 부족하단 말인가. 아무리 마도의 수작이라고 하지만, 씁쓸할 따름이었다.
“에잇, 정신 차려야지!”
당진령은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정신 차린 이들은 없다지만, 그래도 다들 귀는 열려 있다. 자신이 시무룩하고,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이 절대 좋은 영향을 줄 리가 없다.
당진령은 힘주어서 문을 벌컥 열었다.
“자아, 여러분. 엇?”
억지로 밝은 목소리를 내던 당진령이 그만 주춤했다. 다른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 곳인데, 다른 사람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검은 피풍의를 한쪽 팔에 걸치고서, 침상 가에 서 있었다. 이쪽을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한눈에도 허가받지 않은 외인이 분명했다.
“누, 누구?”
잠시 의아했다. 그러다가 헛 번쩍 정신을 차렸다. 여기가 어디인가. 당가의 내실, 그곳에서도 가장 내밀한 곳으로, 금지라 할 만했다. 그런 곳에 외인이라니.
“누구냐!”
당진령은 한 호흡 늦었지만, 그래도 정신이 들기가 무섭게 공력을 끌어올렸다. 녹피장갑을 낀 두 손이 바로 허리 뒤로 돌아갔다.
“쉿!”
그러나 손을 쓸 수는 없었다. 언제 거리를 파고들었는지, 바로 귀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당진령은 입을 벌린 채, 딱 굳어버렸다.
‘어, 언제?’
“마기에 당한 것은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요?”
‘……’
당진령은 입을 열지 못했다. 혀가 굳어버렸다. 그렇다고 눈을 돌리지도 못했다.
“그런 모양이군.”
외인은 씁쓸한 어조로 속삭였다. 그러던 차에 고통에 찬 신음이 왈칵 터져 나왔다.
“끄으! 으으윽!”
당진령은 소리에 눈을 번쩍 치떴다. 풍양자였다. 침상이 내려앉을 것처럼 격렬하게 들썩거렸다. 요동은 그렇게까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흐어어!”
풍양자는 긴 숨을 토해냈다. 동시에 참을 수 없을 만큼 역한 악취가 일었다.
“흡!”
당진령은 똑똑히 보았다. 침상 아래로 떨어질 만큼 검은 물이 줄줄 흘렀다. 전신 모공이 다 열려서 체내에 맺힌 탁기를 일거에 쏟아낸 듯했다.
“휘유, 냄새 한 번 지독하다.”
외인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가벼운 손짓, 그러나 일어난 결과는 두려울 정도였다. 홀연 일어난 경풍이 삽시간에 격리실을 휩쓸어버렸다.
냄새를 전부 거두어 낼 수는 없었지만, 훨씬 흐려졌다.
그리고 외인은 당진령을 지나서 헐떡거리는 풍양자 옆에 섰다.
“어찌 살아 계시오?”
“허어, 허어, 아오, 죽는 줄 알았네.”
“거, 오랜만이오.”
“아니, 가만. 내가 산 게 아니라, 죽은 건가? 어찌 자네를 보고 있는 거지?”
“쯧, 또 허튼소리 하시네. 이 가짜 도사.”
“히히히.”
풍양자는 기괴한 웃음을 흘리고는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지친 눈을 두어 번 끔뻑이고서, 서 있는 외인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드러누워 있었던 것만 벌써 달포가 훌쩍 넘었다. 피골이 상접하여서, 해골바가지라 해도 딱히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 얼굴로 헤에 웃는 데, 평소 풍양자의 경망스러운 웃음, 딱 그대로였다.
그리고 풍양자는 웃으며 말했다.
“무지 오랜만이야. 서천 권야.”
“그러게나 말이오. 청성 가짜 도사.”
서천의 권야, 그리고 천하육절의 권야이기도 한, 소명이 피식 웃으면서 대꾸했다.
* * *
음식 냄새가 가득했다. 텅 빈 그릇을 치우기가 무섭게 다음 요리가 계속 이어졌다.
소명은 손 놓고서 물끄러미 앉아 있었다. 그저 걸신이 들린 사람처럼 먹고 또 먹어대는 풍양자의 게걸스러운 모습을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풍양자를 달래기 위해서, 요리는 급하게 나오고 있었다. 이름 높은 사천의 진미가 아니었다.
지금 풍양자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양이 많은 것이다. 빠르게 먹고, 또 먹는다. 턱이 쉴 새가 없었다. 쌓이는 것은 만두였고,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은 볶아서 내오는 소채였다.
그러기를 한참이다.
장정 대여섯이 배 터질 정도로 먹고도 남을 만한 분량이 사라졌다. 그리고 풍양자는 한껏 부풀어 오른 배를 부여잡고서 한참 헐떡거렸다. 마치 해산(解産) 날이 머지않기라도 한 것처럼 힘겨웠다.
한참 굶은 탓에, 얼굴이며, 팔다리는 홀쭉한데, 억지로 채워 넣어서 배만 뽈록하다. 참 기괴한 모습이었다. 편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풍양자는 야윈 두 팔을 뒤로 뻗어서 몸을 지탱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앓는 소리가 절로 흘렀다.
“에고, 에고에고.”
“그놈의 식탐하고는.”
“무려 한 달 가까이 쫄쫄 굶었단 말이야. 뭐, 정신을 놓은 것도 있지만.”
“그러다 속이 놀라겠네.”
“놀라라고 이 난리를 하는 게지.”
풍양자는 몸을 가누기 어려워서, 한 손으로 등을 기대면서 히죽 웃었다.
“이봐, 권야. 이게 얼마 만에 보는 거지?”
“한 육 년? 아니지 칠 년 정도인가?”
“흐흐흐, 세월 참. 서천의 권야가, 소림의 용문제자. 그리고 천하육절이시란 말이지.”
“뭘, 그런 것 같고 그러나. 천산 변두리의 가짜도사가 청성파 대사형 소리를 듣기도 하는데.”
소명도 쓴웃음을 짓고서 대꾸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머나먼 서천 땅에서 이어졌다. 그때에 풍양자는 도호(道號)를 받기 전이었다.
적하검선이 말년에 거둔 제자라고 하지만, 아직 청성파에서 관건의 예를 치르지 않았다. 그때에, 풍양자는 스승인 적하검선의 마수(魔手)를 피해서, 냅다 도망하였다.
말로는, 그러다가 딱 죽겠다 싶었다는 것이다.
아주 작정을 한 도망이어서, 어중간한 곳이 아니라, 험한 서천, 그것도 천산으로 달려가 숨어버렸다. 와중에 서천에서 그만 자객불원의 두 사람, 소명과 위지백을 만나서는 크게 얽혀들었으니.
얽혀든 일에는 지금 말하는 마도, 성마교가 관련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위지 놈은? 아직도 자기 산장에서 혼자 놀고 있나?”
“아니, 중원에 있어. 내가 따로 부탁한 일이 있어서.”
“흠, 그래. 그쪽도 마도 잡것들이 들쑤시고 다닌다지.”
풍양자는 잔뜩 부른 배를 슬슬 어루만졌다. 그러면서 툭 던지듯이 말문을 열었다.
“마동이었어. 마동괴령.”
“그 망할 것이 아직도 남아 있었단 말인가?”
소명은 대뜸 이맛살을 찌푸렸다. 성마교에서 부리는 인간병기 중 하나, 그것은 실혼, 괴뢰, 강시와는 또 다른 것이었다.
풍양자는 홍천교의 산채에서 마주한 마동을 떠올리면서 혀를 찼다.
“밖에 일행을 피신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단 자리를 피하려고 했는데. 아주 단단히 당해버렸지 뭐야.”
“중독이 먼저였군.”
“괜히 독문당가가 아니더라고.”
독에 당할까, 그리 조심했는데, 어느 틈에 중독되었고, 이어서 마동의 마기가 파고들었다.
“후우, 호심기의 발동이 조금만 늦었다면, 어땠을지.”
풍양자는 착잡하여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면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미련한 놈.’
마도, 마인이라고 경고하였으면 알아서 물러났어야지.
풍양자는 없는 사제들을 생각을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소명도 풍양자의 얼굴에 내린 그늘을 헤아렸는지, 입을 다물었다.
방 안이 문득 고요했다.
풍양자는 곧 눈에 힘을 주고는 낑낑거리면서 허리를 세웠다. 몸에 기운이 없기도 하지만, 원체 많이 먹은 탓에 배가 걸려서 힘들다.
“자아, 이제 운공 좀 할라니. 호법 좀 서달라고.”
“호법은 개뿔. 여기가 어디 야산이야? 얼어 죽을.”
“그래도 혹시 모르잖나.”
“하여튼.”
사람 귀찮게 하는 데에는 뭐가 있는 사람이다. 저것도 넉살이라 하면 좋을지. 소명은 쯧, 혀를 찼다. 위지백이 있었으면 허튼소리 한다고 칼 먼저 뽑았을 테지만.
소명은 방 밖으로 나섰다. 약곡전에 딸린 작은 객방이다. 아직 소식을 알리지 않은 모양인지, 주변에 다른 소요는 없었다.
방문을 등지고서 팔짱을 꼈다. 등 뒤에서는 서서히 기파가 일어나는 것이 선명했다. 풍양자가 발하는 기파가 차츰차츰 위력을 더해가면서 방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이제껏 짓눌려 있던 기맥을 단번에 틀어잡고, 기운을 바탕으로 쇠한 신체를 다시 이루어낸다. 도가의 기공 중에서도 가히 으뜸이라고 할 만했다.
내가공력이 하늘에 이르고, 신공이라고 할 정도의 법문요결(法文要訣)이 있다면, 이른바 탈태환골(奪胎換骨).
태를 달리하고, 골격을 다잡아내는 경지를 넘어선다고 한다. 지금 풍양자가 행하는 것은 그 정도라고까지 할 수는 없었지만, 흡사한 무리를 몸소 행하는 것이었다.
오래도록 단식하여서 신체를 피폐하게 하는 대신에 정신을 날카롭게 하고, 그때에 영단, 선약 등을 섭취하여서 일시에 경지를 높이는 것이다. 청성에서도 이와 흡사한 요결을 전하는데, 이제는 아는 사람도 드문 것이었다.
풍양자는 그것을 급하게 행하였다. 일단은 힘겹더라도 가장 빠르게 몸을 회복할 수 있는 요결이었다.
방 안에서 강렬한 기파가 한도 끝도 없이 거칠게 맴돌았다. 지붕이라도 내려앉을 것처럼 자꾸 들썩거렸다. 소명은 뒤를 흘깃 보았다가, 쯧 혀를 찼다.
“하여튼 요란하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뭐, 발전이 없어.”
소명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이 소란을 어떻게 가릴 수가 있을까. 하기야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저 어깨를 늘어뜨리고서 자리만 지킬 뿐이었다.
이내 사방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당장에 먼저 달려온 것은 격리실에서 마주했던 당가의 여인이었다. 직접 나서서, 끝도 없는 음식을 준비해 주기도 했다.
“오, 당씨 아가씨.”
“대체,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일어나려고 아등바등하는 중이지요.”
“풍양자께서는 지금 안정이 필요합니다. 섣불리 운공을 하였다가는…….”
“그야, 뭐. 자기가 알아서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소명은 싱긋 웃으면서 가벼이 대꾸했다. 여인, 당진령은 당장에 눈살을 일그러뜨렸다.
세상 해맑은 당진령이지만, 위중한 상태의 환자를 두고서는 그보다 엄격할 수가 없는 그녀다. 질끈 입술을 깨물고서, 홱 고개를 돌렸다.
바로 방문을 박찰 기세였다. 그렇지만 한 발을 내밀기가 무섭게 눈앞이 잠시 어질하더니, 방문이 아니라 들어선 길목을 마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