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48
248화. 서천 권야와 청성 가짜 도사
“어엇!”
미처 깨닫기도 전에, 몸의 방향이 바뀌었다. 당진령은 놀란 눈으로 소명을 돌아보았다. 처음 자리에 그대로 선 채, 소명은 턱을 슬쩍 들어 보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사람이 그리 쉽게 죽는 것도 아니고.”
“으윽! 사람의 생사가 걸린 일인데. 어찌 그렇게 쉽게 말씀을 하실 수가 있습니까.”
“아는 처지이니 그렇지요. 당 아가씨. 비결이 있어서 저렇게 용을 쓰는데. 방해하지 않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 비결이라는 것이 오히려 원정을 상하게 할 수도 있으니, 그렇지요!”
당진령은 안타까움을 솔직히 담고서 다그쳤다. 무엇이든 그렇지만, 급한 것에는 탈이 있기 마련이다. 이른바, 비결이고, 비방이라고 하는 것에는 항시 그만한 위험이나, 부작용이 따르는 바였다.
하다못해, 한 번이라도 더 고민하고 할 일이다.
그러나 소명은 그저 담담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소명은 흘깃 고개를 돌렸다. 닫힌 방문이 덜컹덜컹하면서 위태하게 들썩거렸다.
풍양자가 전신으로 발하는 기파가 어느 정도에 올라서,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도사이면서 또 무인이 아니겠소. 무인이라는 자가 무를 행할 때가 코앞인데. 마냥 누워서 안정만 취하고 있을 수는 없지.”
그리고 설사 위험한 길이라도, 이룰 수만 있다면 기꺼이 몸을 던지는 것이, 강호의 무인이 아니던가.
소명은 그러고는 너머를 향해서 눈을 돌렸다.
“그보다, 저기 오는 사람들이나 좀 진정시켜 주시구려. 오히려 저 사람들 때문에 피 토하고 죽겠구만.”
“아!”
당진령은 바로 고개를 돌렸다. 아닌 게 아니라, 소명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삼엄한 기운이 다급하게 몰려들었다. 나름 중지라고 할 수 있는 약곡전이었다. 여기서 기이한 기파가 마구 요동치는데, 어찌 사람이 몰려오지 않겠는가.
당진령은 급히 땅을 박찼다.
“멈추세요! 기운을 다스리세요!”
“아니, 진령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냐!”
서두르는 당진령의 모습에, 가장 선두에서 달려오던 당가의 고수 한 사람이 급히 물었다. 뒤로는 당가의 녹의가 펄럭이면서 내려섰다. 그뿐이 아니었다. 한쪽에는 청성의 도사들도 있었다.
약곡전에 청성의 대사형이 머무르고 있으니, 항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이것은 대사형의?”
청성 검객 한 사람이 바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청성내공이 지닌 독특한 기파를, 가까이 와서 감지한 것이다.
“선고,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대사형께서 어찌?”
“막 정신을 차리셨습니다. 그리고 중차대한 운공에 들어가셨으니. 여러분 모두 기세를 다스리세요.”
“그렇지요, 그래야지요.”
청성 도사들은 허둥거렸다. 당가인 또한 바로 수긍했지만, 눈가에 의혹이 솔직했다.
실상 가망이 없다고까지 여겨지고 있지 않았던가. 대체 어찌된 영문으로. 그런데 당가인은 당진령 뒤에 서 있는 외인의 모습을 퍼뜩 발견했다.
“아니, 저자는 누구……?”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팔짱을 끼고 있던 소명은 당진령과 함께 들어서는 당가 고수를 알아보고는 바로 두 손을 맞잡았다.
당가 고수, 당거중은 짙은 눈썹을 한껏 모았다.
“응? 나를 알아?”
“하하, 못 알아보시는군요.”
“아니, 아니. 가만.”
당거중은 잠시 거리를 두고서, 우뚝 서 있는 소명의 위아래를 찬찬히 살폈다.
미심쩍어서 눈살을 한껏 찌푸렸다가, 떠오르는 바가 있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다시금 눈을 힘껏 치떴다.
“너, 소명. 소명이로구나. 대일의…….”
“예, 저 소명입니다. 당 아저씨.”
“하! 하하. 살아 있어. 살아 있었어. 아이구, 이 녀석.”
당거중은 바로 다가서서 소명의 손을 덥석 움켜쥐었다. 그 옛적이 새삼 선명했다. 상화촌의 그 어린 녀석이 이렇게 자랐다니.
헌앙하기 이를 데가 없다.
당거중은 실로 감격에 겨웠다가, 문득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소명을 보고 있으려니, 절로 당민과 이청에게로 생각이 미친 탓이었다.
“흐어어. 그것참.”
“아민 녀석 때문에 그러십니까?”
“음, 그래. 뭐 어디서부터 얘기하면 좋을지 모르겠구나.”
“그렇지 않아도, 아민에게 소식을 받고 달려온 참입니다.”
“그 녀석이?”
당거중은 새삼 눈을 크게 떴다. 그제서야, 소명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네가 어찌 여기서.”
“예전에도 그랬지만, 아저씨. 여전히 많이 늦으십니다.”
소명은 히죽 웃었다.
청성파 도사들이 객방을 에워싸고서 가부좌를 취했다.
생사대적(生死大敵)이라도 마주할 사람처럼 진지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해가 중천에 이르렀을 즈음에 시작한 풍양자의 운공은 꼬박 밤을 지새우고서, 동틀 무렵까지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객방을 뒤흔드는 기파는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당진령이었다. 가슴을 바짝 졸이는 모습이었다.
풍양자는 다른 것도 아니고, 독과 마기에 당하였다. 자신으로는 짐작 못 할 수법으로 이지를 회복하였다지만, 원기가 크게 상한 상태였다.
제대로 몸을 돌보지도 않고서, 저렇듯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다니. 아무래도 불안하여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후우…….”
당진령은 한숨을 흘리다가 문득 눈살을 찌푸렸다. 괜찮다고 웃는 소명의 모습이 떠올랐다.
“세상에, 그 사람이 용문제자라니.”
어디 단순한 용문제자이기만 한가. 천하의 고수, 가히 절대라고까지 할 수 있는 반열에 최연소의 나이로 오른 사람이다.
천하육절, 권야.
죄 풍문으로 들려온 탓에, 어디 전부 믿을 수가 있겠느냐만.
“흐음.”
그래도 천하육절로 손꼽히는 것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성질 고약한 만천옹이 직접 떠들고 다니고, 개방을 통해서 사방팔방으로 퍼뜨리고 있으니.
당진령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방에서 일어나는 기파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드디어 변화가 일어날 모양이었다. 당진령뿐만이 아니었다. 에워싼 청성 도사들도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객방을 돌아보았다.
모두의 눈가에 숨길 없는 긴장의 빛이 넘칠 정도로 흘렀다.
후으, 후으으으……
내뱉는 숨결이 괴롭다.
숨을 들이쉬고, 내뱉는 것이 이렇게 힘들 수가 있을까. 가슴뼈가 한껏 벌어졌다가, 다시 움츠러들었다. 폐부가 터질 듯했다. 그와 함께 심장 또한 힘껏 뛰었다.
몸속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변화를 모두 지켜보는 것과 동시에, 파고드는 공력의 흐름에 더욱 집중했다. 자칫 놓치기라도 하면 돌이킬 수가 없다.
그리고 결국 막바지에 닿았다.
“크흐!”
마지막 숨과 함께, 검붉은 울혈이 왈칵 튀어나왔다. 앞으로 고꾸라질 것처럼 한껏 움츠렸다.
그리 굳어 있기를 한참. 격한 오한이 온 것처럼 진저리를 치면서 고개를 들었다.
굵은 땀방울이 비 오듯이 흘러서 후드득 떨어졌다. 고개 든 얼굴은 눈 아래가 우묵했다. 들창 사이로 드는 햇빛이 눈을 따갑게 찔렀다.
“날이 얼마나 흘렀나?”
아이고, 아이고. 앓는 소리를 흘리면서 천천히 몸을 세웠다.
가부좌를 취하고서 한참이다. 몸 상태는 둘째치고 뻐근하지 않을 수가 없다.
풍양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몸을 하나, 하나 점검해나갔다. 손발을 살피고, 팔다리를 살피고, 허리와 가슴을 더듬었다.
최상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폐인으로 자리보전하고 있던 것을 생각하면 훌륭하다. 기운이 새삼 돌아왔다.
청성의 기본인 청풍심법, 풍양자는 그것 하나로 육체를 다시 이루어냈다. 아예 태를 달리하는 환골탈태의 경지는 아니었지만, 쇠락한 육신을 되살리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이것도 지독할 정도로 수련한 연골연신의 바탕이 남아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에고, 아야.”
그래도 팔다리가 삐걱거린다.
풍양자는 팔다리를 휘저었다. 적당하게 되살린 근육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고약한 냄새가 그득한 땀을 젖은 옷으로 대충 닦아내고는 뒤로 벗어던졌다.
“밖에 누구 있느냐?”
“대사형!”
“목소리를 들으니. 삼오로군.”
“네!”
“가서 씻을 물이나 좀 챙겨 와라. 냄새가 고약해서 숨쉬기도 어렵다.”
사제들은 풍양자의 외침에 즉각 뛰었다.
겨우 씻고 나온 풍양자의 모습은 사뭇 멀끔했다. 과거에 비하면 조금 야윈 듯하나, 피골이 상접하였던 모습에 비하면야 훨씬 사람 같다.
그것이 고작 하루, 이틀 만에 이루어낸 변화였다.
“그래, 어떻소?”
“음, 남은 마기나, 독은 없는 것 같군요. 다행입니다.”
약곡전의 객방, 급하게 치우기는 했지만, 아직은 고약한 냄새가 흐리게 고여 있었다.
문이고, 창이고 죄 활짝 열어놓고서 풍양자는 당진령에게 진맥을 받았다.
당진령은 신중한 기색으로 거듭해서 맥을 살폈다.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청성의 도가비방으로 몸을 되살렸다고 하지만, 그만큼 무리가 가는 일이다. 따로 원기를 보하는 약을 쓰고, 몇 차례인가 시침을 거듭한 참이었다.
당진령은 손을 거두고, 고개를 들었다.
“정말 다행입니다. 기맥도 그렇고, 근맥도 그렇고, 정말 좋아지셨습니다.”
“하하.”
안도하는 당진령이다. 풍양자는 시원하게 웃었다. 하지만 바로 당진령의 눈총이 날아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바로 그렇게 무작정 대법을 행하시다니요. 행여 마기나, 독이 남아서 발작하였다면 어쩔 뻔했습니까.”
“하하, 이제부터는 덤으로 사는 것과 다름없는데. 뭘 아끼겠소.”
“풍양자 선배!”
당진령은 저도 모르게 빽 소리쳤다. 배분은 물론이고, 나이도 한참 어린 당진령이다. 그러나 풍양자의 한 마디를 그만 넘겨 들을 수가 없었다.
“어찌 그런…….”
“소양자가 당했다지. 삼검은 실종이고.”
“…….”
“그러니 어쩌겠소. 이제부터는 덤인 삶이야.”
풍양자는 달리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갚아줄 것을 갚아주어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풍양자는 고개를 돌렸다.
이맛살을 찌푸리고서, 소명이 휘휘 손을 흔들면서 방문 앞에 섰다.
“냄새 하고는.”
“닦고 치웠는데도 이 모양이라네.”
“몸은 어떤가? 멀쩡해 보이기는 하는데.”
“한 십성 정도는.”
“무리해서?”
“어, 약간 정도는?”
“쯧.”
무슨 소리를 주고받는지. 당진령은 사이에서 두 사람을 번갈아 두리번거렸다. 마지막에 풍양자는 잠시 찔끔하여서 대꾸했다.
소명은 혀를 찼다.
“괜찮겠어?”
“어허, 예전의 십성이 아니야.”
“그으래?”
풍양자가 새삼 허리를 세우면서 엄히 말했다. 눈썹을 바짝 모았다.
청성 대사형의 공력을 얕잡아 보는 것인가. 그러자 소명은 바로 말꼬리를 슬쩍 올렸다.
“그럼, 한번 받아보겠나?”
“……아, 암! 좋지! 좋아!”
풍양자는 턱을 세우고서 힘주어 대꾸했다. 분명 주저했다. 주저한 것이 분명한데, 억지로 힘을 내는 것이다. 그리고 쿵쿵, 힘주어 발소리를 내면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당진령은 만류할 듯이 입술을 떼었다가, 푹 한숨을 내뱉었다.
“에효, 모르겠다. 이제 나는.”
어디 죽기야 할까.
당진령은 그냥 외면하듯 일어나서 침구를 하나하나 챙겨나갔다. 그리고 등 뒤에서 벼락이 떨어진 것처럼 굉음이 터졌다.
꽝!
기둥이 들썩거리고, 천장에서 고인 먼지가 부스스 떨어졌다. 마음을 다잡은 당진령은 이제 놀라지도 않는다. 어깨 위로 떨어진 먼지나 툭툭 털었다.
소명은 내지른 일권을 천천히 거두었다. 그리고 턱을 슬쩍 비틀었다.
“그 정도가 십성?”
“끄으…… 시, 십성.”
풍양자는 쥐어짜는 듯한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성의, 그리고 자신의 자랑인 청풍령인의 보신경을 한껏 발휘했건만, 소명의 일권 앞에 그대로 휩쓸려 버렸다.
하늘의 벼락을 곧이곧대로 맞이한 듯하다.
풍양자는 허리를 잔뜩 굽힌 채, 어찌 두 다리로 버티고 서있기는 했다. 무릎이 후들거렸다. 그리고 눈앞의 돌바닥에는 풍양자가 주욱 밀려나면서 남긴 자국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무려 석 장에 이르는 거리만큼이나 밀려났다.
끝에서 끝까지 밀려났을 정도였다. 피는 토하지 않았지만, 힘겹기는 더럽게 힘겹다. 풍양자는 한참 만에야 겨우 허리를 세웠다.
“권야, 너 힘 아꼈지?”
“당연한 거 아니냐. 일어나자마자 골로 보낼 일 있나. 어디.”
소명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거둔 손에는 아직도 공력이 잔뜩 머물러 있었다. 어느 정도의 공력인지 물을까 했지만, 풍양자는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아니다. 묻지 말자. 괜히 나만 상처받는다.’
“크흠, 크흠. 어쨌든. 시험은 통과냐?”
“시험? 뭔 시험. 못 간다고 해도, 끌고 갈 생각인데.”
“뭐잇? 그럼 왜 느닷없이 주먹질인데!”
“이봐 가짜도사, 도사가 하겠다고 했잖아. 됐다고 하면 안 했지.”
소명은 이제 와 무슨 소리냐는 듯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풍양자는 오만상을 쓰고서 잔뜩 이를 드러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명은 엉거주춤한 풍양자를 보면서 말했다.
“바로 채비 갖추라고, 해 지기 전에는 당가타를 나설 생각이니까.”
“끄응.”
어디로 가느냐는 말은 없었다. 하기야 필요하지도 않았다. 풍양자는 앓는 소리를 흘리면서 간신히 허리를 세웠다. 운공할 시간은 줄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