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49
249화. 서천 권야와 청성 가짜 도사
소명은 풍양자와 가볍게 손을 섞고서, 당가의 중지에서 당가주, 그리고 당거중, 두 사람을 마주했다.
“곧 출발하겠습니다.”
“괜찮겠는가. 권야 공.”
“아무렴요. 당민 녀석도 분명 무사할 겁니다.”
그 녀석이 어떤 녀석인데.
당가주는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않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그래야 하지. 그리고 슬쩍 고개를 돌렸다. 당거중이 원망 가득한 눈초리로 가주를 빤히 보고 있었다.
흘겨보는 것과 다르지 않은 눈초리였다.
“크흠, 그래. 우리 민이 녀석의 안위도 잘 부탁하네. 우리 당가를 위해서라도.”
“거, 가주. 그 무슨 말씀을 그리.”
“아니면. 자네가 어디 나를 가만히 놔두겠나.”
“…….”
당거중은 예의상이라도 마다하는 말을 해야 했을 테지만, 그냥 입술을 말아 물었다. 당가주는 마음 상하기보다는 입매를 슬쩍 들었다.
흐린 미소를 머금고서 소명에게 작은 주머니 하나를 내밀었다.
“받으시게, 권야.”
“가주, 이것은?”
“본가의 피독주일세. 만독(萬毒)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으나, 독고에서 털린 가문의 독은 모두 막을 수 있을 걸세.”
“사양하지 않고, 잘 쓰겠습니다.”
소명은 비단 주머니를 받아, 품에 잘 갈무리했다. 마다할 일이 아니었다. 당가의 독은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그리고 소명의 눈길이 당거중에게로 향했다.
소명은 눈을 반짝였다.
당거중은 당가주의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다가, 그 눈빛에 잠시 어깨를 들썩였다.
“응? 뭐, 뭐냐? 왜 그런 눈이야?”
“뭐 없으세요?”
“뭐가?”
당거중은 큰 눈을 한 번 끔뻑거렸다. 그러자 소명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히야, 참. 가주께서는 이렇게 피독주씩이나 챙겨주셨는데. 너무하십니다. 당 아저씨.”
“아니, 야 이놈아. 그, 그야.”
당거중은 뒤늦게 소명의 의중을 알고서는 부쩍 당황했다. 그런데 옆에서 당가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렇지. 권야께서 참 좋은 지적을 하였구먼. 여봐, 거중. 사람이 그러면 쓰나.”
“아니, 가주 형님까지.”
당거중은 진정 굵은 식은땀을 흘렸다.
소명은 마냥 웃는 얼굴로 당가전을 나섰다. 뒤에서 당가주는 허허, 사람 좋은 웃음을 흘렸고, 당거중은 오만상을 썼다.
“가주 형님, 해도 너무 하십니다.”
“내가 뭘 어찌하였다고.”
“아니, 그래도 그렇지.”
“왜, 아깝나?”
“그런 게 아닌 걸 아시지 않습니까.”
“알지, 잘 알지.”
당가주가 내어준 피독주는 쉽게 말하였지만, 남조류에서 보배로 여기는 기보 중 하나였다. 당거중 또한 그만한 것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디 기보가 아까워서 그러겠는가.
당거중이 말한 것은 피독주가 남조류의 후인을 기를 적에 필수적인 기보이기 때문이었다. 저것을 권야에게 주었다는 것은 곧 남조류의 미래마저 맡겼다고 할 수 있었다.
당가주는 문득 고졸한 미소를 머금었다.
“권야가 직접 쓸 것 같은가. 저것은 그대로 아민에게 갈 것일세.”
“아니, 그것을 어찌 아십니까.”
“사람 참. 만독이 무용한 사람에게 무슨 피독주가 필요할 것이며, 금강불괴에 이른 사람에게 자네의 천망갑(天網鉀)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당가주는 별소리를 다 한다는 듯이 대꾸했다. 당거중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괜한 소리를 할 리가 없다.
독군자라고 하는 당가주, 당성영이다. 그 말인즉슨, 자신도 미처 파악하지 못한 새에, 권야에게 시험을 하였다는 말이었다.
“아니, 어느 틈에.”
소명은 어깨를 툭툭 가볍게 털었다. 입가에 맺힌 웃음은 그대로였지만, 쓴웃음에 가까웠다.
“원 참. 괜히 독문당가라고 하는 게 아니구만.”
일거에 두 가지 암습을 가하다니.
공전무융이 자연스럽게 발동하여서 조금도 손해를 보지는 않았지만, 그저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나는 용독, 헤아리건대, 손톱 만큼에 불과한 독전(毒箭)이다. 그에 더하여서, 소명은 손을 펼쳤다. 솜털처럼 가는 세침 하나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당가은침이다. 당민이 이것으로 백우라고 하는 수법을 펼치지 않았던가. 고작 하나에 불과했지만, 그래서 더욱 위험했다.
사각에서 빠르게 날아들었으니.
곤음수가 아니었으면, 아무리 소명이라도 고생했을 것이다. 소명은 세침을 조심스럽게 집어서는 옷깃에 살짝 꽂았다.
저기 풍양자가 멀끔한 모습으로 뒷짐을 지고 소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뭐 이리 늦나?”
“아, 가짜도사. 기껏 생각해서 일부러 느긋하게 왔구만.”
“헹! 자네가? 행여나!”
풍양자는 싸늘하게 코웃음 쳤다.
* * *
소명과 풍양자, 두 사람은 홍천교의 산채라는 곳에 들어섰다. 우거진 수풀, 덩그러니 놓인 통나무 산채는 여전했다. 풍양자의 소란으로 박살 난 문도 그대로였다.
두 사람은 파편을 밟고 섰다.
풍양자는 눈매가 새삼 고약하게 일그러졌다. 항시 웃는 상이었던 것이 딱딱하게 굳어버리자, 그렇게 살벌할 수가 없었다.
텅 비어 있는 통나무 가옥들, 산채 마당, 그리고 산 바위에 면해 있는 창고까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반기는 것은 쌓인 흙먼지가 고작이었다.
신중을 넘어, 긴장까지 한 채, 주변을 샅샅이 훑고서, 풍양자는 오만상을 썼다.
“아무것도 없네. 아무것도 없어. 마구니 것들이 싹 쓸어가 버린 모양이야.”
“…….”
넋두리처럼 내뱉었다. 그러나 소명은 대꾸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산채 한복판에 서서,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찌푸린 얼굴이 새삼 심각했다.
한숨 쉬던 풍양자는 소명의 기색을 뒤늦게 보았다.
“뭔가 있나?”
“응. 이상한 게 있군.”
“이상한 거라니?”
“있으면 안 될 것. 그리고 없어야 하는 데, 있는 것.”
“도사는 난데, 왜 자네가 선문답을 하고 있나그래.”
“그야, 자네는 가짜도사니까.”
소명은 어리둥절한 풍양자를 직시하면서 말했다. 바로 주먹을 덥석 움켜쥐었다. 그리고 바닥을 향해 냅다 일권을 날렸다.
“삿된 것은 사라져라!”
꿍!
내지른 일권의 경력은 바닥을 그냥 때리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경력이 동심원을 그리면서 거듭 퍼져 나갔다. 지진이 올 듯이, 격하게 요동쳤다.
들썩거리는 통나무 가옥과 기울어진 산채의 담장이 그만 흩어졌다. 모두가 신기루인 것처럼 허망하게 흩어진 것이다. 그리고 드러난 것은 황폐한 산채의 모습이었다.
풍양자는 바로 눈을 치떴다.
“이런, 모두 환상이었던 건가?”
산채를 샅샅이 둘러보면서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도가의 명문이라는, 청성파 도사로서 영 낯이 서지 않는다. 소명은 주먹을 거두었다. 허리를 세우면서 후, 입바람으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넘겼다.
“그날, 꽤 격렬했던 모양이야.”
“아.”
다시 본 산채의 본모습은 어디고 할 것 없이 엉망이었다. 벽은 무너졌고, 지붕은 내려앉았다. 남긴 흔적에는 청성과 아미 무공의 기풍이 또렷했다.
바닥을 크게 할퀸 일검의 흔적이 특히 풍양자의 눈을 붙잡았다.
소양자가 펼친 검격이 분명했다. 오 척에 이르는 장검을 가볍게 부리면서 펼치는 칠십이파검결의 검흔이다.
도강언에 이르러서 거칠게 흐르는 장강의 물결 속에서 연마하고, 장강의 물결을 담아낸다는 칠십이파검이다. 소양자는 특히나, 오 척 장검으로 검결의 쾌속, 다변을 이루어내어서, 가히 대성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이건 아미창법인가.”
“음, 탕마창, 아미제일창이라고 하는 노선배가 같이 계셨지.”
각종 무공을 펼쳐낸 흔적이 역력했다. 당가의 절편과 암기도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그런데 소명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상한데. 이쪽이 펼친 것은 있는데. 저쪽에는 없어. 그냥 몸으로 받아내기만 했다는 건가.”
“마동이 그럴 리가 없는데. 사람 사지 찢어내는 걸 재미로 생각하는 괴물이 아닌가.”
“마동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겠지. 가짜도사가 봤다는. 회색인형들.”
두 사람은 새삼 드러난 각종 흔적을 헤아리다가 곧 입을 다물었다. 그날, 풍양자가 당한 날로 거슬러 올라갔다.
먼저 움직인 것은 소양자, 칠십이파검결의 검풍경인으로 시야를 확보했다. 그 뒤로 청성삼검이 뛰어들었다. 갖춘 것은 삼재진을 바탕으로 한 청풍검진이다.
세 방향에서 맴돌면서 일행을 지켰다. 그리고 아미파가 움직인다. 선두는 무엇보다 살기 넘친다. 허공을 박차면서 내지른 일천의 창격이 날카롭다. 그것 하나로 두터운 통나무 가옥이 그대로 내려앉았다. 뒤이어서 아미의 비구니가 창을 앞세웠다.
당가는 한 호흡이나마 늦었지만, 실로 시기적절하게 파고들었다. 당가의 암기는 목표를 거의 놓치지 않았다. 다만, 암기가 소용이 없었을 뿐이다.
이미 쏘아진 암기는 허망하게 바닥에 꽂혀 있거나, 뒹굴고 있었다. 던진 암기가 다시 튕겨난 것이다. 바위를 향해 던졌던 것처럼.
우모침, 비도, 비황석, 등등.
종류도 여럿이다. 바닥을 뒹굴어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버려져 있었다. 당문의 것이라면 상당한 값어치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다시 쓸 수가 있었으나, 누구도 손 댄 흔적이 없었다.
청성과 아미, 그리고 당가.
세 곳의 흔적을 모두 둘러본 끝에, 소명은 고개를 들었다. 특히 청성의 흔적을 집중해서 둘러보는 풍양자의 얼굴이 한껏 일그러져 있었다.
득라의 긴 소매 아래로, 풍양자는 두 주먹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어떤가?”
“소양자 녀석의 칠십이파검은 분명 힘을 다 발휘하였어. 이 흔적의 정도로 보건대, 일거에 칠십이식을 전력을 발휘했지, 금강동인이라도 분명 갈라버렸을 거야. 그리고 좌우로는 청성삼검, 세 녀석이 검진을 단단히 이루었지. 마도와는 상극이랄 수 있는 정진정의 검세야.”
“꽤 힘을 발휘했는걸.”
비록 몇 날이고 한참 흘러서, 남은 흔적이 흐렸다. 그래도 소명과 풍양자는 어지러운 발자국을 빠르게 헤아렸다. 검진을 이룬 세 검객의 발자국은 흐렸고, 소양자는 발끝만 살짝 남았을 뿐이었다.
여기 무거운 발자국은 전혀 다른 자들이다. 풍양자가 보았다는 회색괴인이 분명했다.
“음, 그런데. 여기서부터 진세가 흐트러졌어.”
풍양자는 한 곳을 가리켰다.
“마동 놈이 움직였나? 아니, 아니야.”
소명은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다른 변수가 생겼다. 마동은 뚜렷하게 흔적을 남긴다. 그것은 감추고 싶다고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소명이 바로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서 당했다.”
“뒤라고?”
“아미파, 그들 중에 손을 쓴 자가 있어.”
“그런!”
헝클어진 검세가 바닥을 마구 할퀴었다. 그것이 청성삼검이 이룬 검진을 뒤흔들었다. 소양자가 즉각 호응했지만, 한번 일어난 뒤틀림을 막을 수는 없었다.
회색괴인이 머릿수를 앞세워서 들이닥쳤다. 부랴부랴 검진을 다시 갖추려고 했지만, 때가 늦었다.
하나가 여기서 당했다. 다음은 저기서 당했다. 그리고 마지막이 소양자였다.
소양자는 마지막까지 버티어 냈다. 뒤까지 물러나서, 고개를 치켜들었다. 헉, 헉, 몰아쉬는 숨결이 거칠었다.
누렇게 일어나는 먼지 사이에서 여럿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당가는 먼저 당했다. 그들과는 상극인 자들이니, 다른 도리가 없을 터였다.
독과 암기는 소용이 없다. 결국, 정종내력을 바탕으로 손을 쓰지 않으면 생채기 하나 남길 수가 없다. 독중기린 당기륭이 상당한 공력을 발휘하지만, 두서없이 짓누르는 괴인들 앞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을 터였다.
정작 문제는 달리 있었다. 소양자는 있는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 흩어지는 누런 먼지 사이에서, 소양자는 자신을 보면서 웃는 한 사람을 볼 수가 있었다.
살풋 머금은 미소.
노화가 들끓는다. 그럼에도 소양자는 대검을 곧게 세웠다.
지잉, 지잉.
검이 울었다. 청풍심결이 전신을 타고 휘돌았다. 어차피 물러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소양자는 불현듯 입술을 모으고, 길고 긴 휘파람을 불었다.
휘이이이!
검명과 호응하면서 울어 젖힌 휘파람 소리는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밖에 있을 풍양자와 남은 당가인을 위해서였다.
물러나라는 뜻이다.
퍼뜩 자신을 향한 미소가 흔들렸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소양자는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청성파의 오랜 절기 중 하나, 칠십이파검, 끝없이 몰아치는 장강의 물결을 닮은 검기의 파도가 세차게 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