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50
250화. 서천 권야와 청성 가짜 도사
소명과 풍양자는 같이 서서 쩍쩍, 갈라진 바닥을 물끄러미 보았다. 실낱같이 예리한 검기가 사방을 휩쓸었다. 대부분은 흙먼지가 뒤덮었지만, 그래도 알아보기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소양자는 칠십이파검의 검법을 끝까지 펼쳐내지는 못했다.
강제적으로 막혔다. 딱 끊어진 검법의 흔적 앞에서, 풍양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
‘사제……’
그리고.
“진짜는 저기에 있네.”
소명이 턱짓으로 너머를 가리켰다. 산 바위에 면한 창고가 있는 자리였다.
소양자의 흔적을 좇아서, 폐허를 가로지른 끝에 마주했다. 소양자는 한껏 물러났다가, 온 힘을 다해서 검세를 몰아쳤다. 그리고 여기 앞에서 끊어졌다.
다른 곳은 허물어진 모습을 가린 정도라면, 창고가 있는 곳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그곳에는 입을 크게 벌린 동혈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동혈은 한눈에도 수상했다. 입구부터 음산한 기운이 맴돌았다.
소명과 풍양자는 지체하지 않았다. 조심할 것도 없었다. 즉각 동굴로 뛰어들었다. 묵묵히 들어서는데, 두 사람의 발소리가 벽을 타고 울렸다.
깊어질수록 어둠은 짙어갔다. 불빛은 따로 밝히지 않았다. 그래도 두 사람은 다른 불편함 없이 움직였다.
울퉁불퉁한 바닥을 밟으면서 한참을 들어섰다.
동혈은 갈수록 넓어졌고, 음산한 기운은 더욱 짙어갔다. 이는 바람 소리가 머리 높이서 윙윙 울어댔다.
마구니가 웅크리고 있을 법한 공간이다.
깊이, 더욱 깊이 들어가기를 한참, 둘의 걸음이 딱 멈췄다.
소명과 풍양자는 어깨를 맞닿고서 좌우를 빠르게 훑었다. 더는 동혈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땅 속 깊은 공동 속에 들어선 것 같았다.
한 걸음을 두고서, 공간감이 전혀 달랐다.
풍양자가 살짝 고개를 꺾었다.
“호흡도, 온기도 없는데. 분명히 움직인단 말이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붙잡아서 살펴보지.”
소명은 바로 손을 뻗었다. 덜컥 붙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강제적으로 끌려나왔다. 잿빛의 인영이다. 그것은 표정 없는 얼굴로 그저 버둥거렸다. 몸부림에는 이해할 수 없는 거력이 실려 있었다. 그러나 소명의 손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어라, 이 얼굴은.”
“아는 얼굴인가?”
“당가 녹음대 중의 한 명이 이런 모습이었는데.”
“불을…… 밝혀봐야겠군.”
치익, 화륵!
화섭자에 불을 당겼다. 심지가 빠르게 타들어 가더니, 노란 불꽃을 뿜었다. 그리고 동굴 속의 거대한 공동이 드러났다.
화섭자 끝에 타들어 가는 작은 불꽃으로는 이곳을 전부 밝히기에는 부족했다. 그래도 대강 살피는 데에는 충분했다.
당가의 앞마당만큼, 드넓은 공동이었다. 그곳에 우뚝 선 석주처럼 잿빛 인영이 무수하게 서 있었다.
풍양자가 목격했던 그것들이 분명했다.
그중에는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당가의 녹음대, 그리고 청성삼검의 모습조차 있었다.
풍양자는 삼검의 모습을 대번에 발견해 냈다.
“이럴 수가! 이게 대체 무슨 짓거리냐! 이게 대체!”
풍양자는 허겁지겁 그들 앞으로 달려가 울부짖었다. 넝마가 된 득라를 그대로 걸치고, 가슴의 동경이 화섭자의 흐린 빛을 받아서 반짝였다. 얼굴이고, 손이고, 옷자락 사이로 드러난 곳이 전부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렇게 변하여서, 눈 감은 채,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으, 으으으.”
빛없는 잿빛의 낯에서 신음이 잠시 흘렀다. 풍양자는 번쩍 정신을 차렸다.
“정신이 드느냐! 대사형이다. 대사형이 여기 왔어!”
“으, 으으.”
“젠장, 물러나!”
소명이 버럭 소리쳤다. 아니, 소리보다 먼저 달려들었다. 풍양자의 뒷덜미를 덥석 붙잡는 것과 동시에 발길질을 날렸다.
쿠당탕!
꿈틀거리는 삼검이 전부 뒤엉켜서 뒤로 나가떨어졌다. 소명은 풍양자의 목 뒤를 붙잡고서 바로 물러났다.
풍양자가 서 있던 자리로 붉은 채찍이 날아들어, 바닥을 크게 할퀴었다. 돌바닥이 그대로 갈라졌다.
“크으, 아이고.”
풍양자는 엉덩이를 그만 호되게 찧어서는 앓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눈살을 잔뜩 찡그리고서 고개를 치켜들었다.
공동의 다른 쪽에서 사람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소명이 그쪽을 향해 화섭자를 내밀었다.
발소리가 가만히 울렸다. 그리고 불빛을 등진 채, 한 가녀린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찌 외인이 들었나 하였더니. 청성의 도사였던가?”
흐린 불빛 사이로 드러난 것은 착 달라붙는 옷차림의 여인이었다. 산발한 머리카락이 일렁였다.
여인은 떨친 채찍을 느릿느릿 거두어서 도도하게 걸어 나왔다.
소명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쪽으로 훌쩍 화섭자를 던졌다. 그러자 불꽃이 화르륵 타오르기 시작했다. 일어난 불길이 드넓은 공동을 에워싸고 빠르게 번져갔다.
공동 주변으로 기름이 흐르고 있었다. 사뭇 환하게 타오르면서 공동과 여인의 모습을 새삼 바로 볼 수 있었다.
여인은 하얀 머리를 산발하였고, 붉은 얼굴에 교교한 미소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드러난 두 눈은 핏발이 선 것처럼 붉었다.
“본 선자가 지키고 있는 마원동으로 들다니. 재주가 어지간한 모양이구나. 여기를 어떻게 찾았지? 환마공령(幻魔空靈)의 진세는 그렇게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닐 텐데.”
소명과 풍양자는 대답 없이 입술을 비틀었다. 여인은 수장 길이에 이르는 긴 채찍을 둥글게 말아 쥐고서, 뾰족한 턱을 슬쩍 치켜들었다.
“너!”
풍양자가 불현듯 손가락을 치켜들면서 버럭 소리쳤다. 여인 뒤로 나타난 작은 그림자 때문이었다.
“저놈이군. 그 마동괴령.”
소명은 고개를 흔들었다. 저 저주받은 마물이 아직도 남아 있을 줄이야.
마동을 옆에 두고서, 여인은 턱을 세웠다.
“마동까지 알아본다. 점점 기이하군. 그리 흔히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닐 텐데. 대관절 너희는 누구냐?”
“여기 많은 이들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여인의 의아함 따위는 알 바가 아니었다. 풍양자는 이를 드러내며 버럭 노성을 터뜨렸다.
“후, 후후. 존체를 다시 이루고자 하는 대업의 일환이지. 말한다고 너희 같은 잡졸이 어찌 알아듣기야 하겠느냐.”
여인은 높은 콧대를 세우고서, 교소를 흘렸다. 오만함이 가득하다.
“이, 이 요녀 따위가 감히…….”
가는 눈에서 파란 전광이 튀었다.
풍양자는 좌우 손을 펼쳤다. 그곳에서부터 휘리릭, 바람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소명은 어이쿠, 한소리를 흘리면서 냉큼 뒤로 물러섰다.
“저 요녀는 내가 맡는다!”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았다. 좌우로 흔들리더니, 풍양자의 모습이 마치 연기가 꺼지는 것처럼 푹하고 사라졌다. 삽시간에 몸을 날렸다.
바람의 영을 담아냈다는 청풍령인의 보신경, 그 진체를 작정하고 펼쳤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촤악! 촤악!
“하! 말코 주제에, 어디 감히!”
요녀는 붉은 채찍을 빠르게 떨쳤다. 채찍 끝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유려하게 움직였다. 휘감아 때리는 기가 무섭게 요동치면서 파고들었다.
그러나 풍양자의 신형을 번번이 놓쳤다. 허공을 꿰뚫었을 뿐이었다.
기껏 닿았다고 해도, 결국에는 옷자락이나 겨우 찢었을 뿐이다. 그러면서 풍양자는 사방을 일거에 점했다.
“요녀! 사람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흥! 어차피 죽은 자들이다. 썩어 없어질 몸에 따로 쓰일 곳을 찾아주었으니. 이 또한 자비가 아니더냐!”
“이런 요악한!”
요녀는 까르륵 웃으면서 외쳤다. 심령을 뒤흔드는 마공기력이 가득 실렸다. 그러나 이미 단단히 마음을 다잡은 풍양자였다.
청성의 호심기가 이미 전신을 에워싸고 있었다.
스스로 선자라고 하는 요녀는 수장 길이의 장편을 빠르게 휘저었다. 허공을 전부 에워쌌지만, 흩어지는 것은 풍양자의 신형뿐이었다.
풍양자는 한 호흡씩 빨랐다.
“이익! 쥐새끼 같은 놈. 그럼, 태워버리면 그만이다!”
여인은 싸늘하게 코웃음을 터뜨렸다. 채찍을 신경질적으로 던져버렸다. 채찍은 창처럼 곧게 날아서는 동굴 벽에 깊이 틀어박혔다.
그러고는 여인은 두 팔을 활짝 펼쳤다.
화르르륵!
여인의 손짓을 좇아서, 선홍의 불길이 무섭게 솟구쳤다. 그렇지만, 풍양자의 눈에는 조금도 흐림이 없었다. 가는 눈매에 맺힌 전광이 더욱 뚜렷해지기만 했다.
“홍혈 일족의 화염익(火焰翼) 따위!”
풍양자도 싸늘하게 내뱉었다. 그 또한 성마교의 오대혈족에 대해 모르지 않았다.
자객불원 두 사람과 얼마나 치열하였던가.
그리고 이미 심중에 살기가 일었다. 그리고 두 손에 맺힌 기이한 기류를 드디어 떨쳤다.
촤라라락!
날카롭기 이를 데 없는 바람 소리가 공동의 높은 천장을 한껏 뒤흔들었다.
소명은 온몸을 던져오는 마동을 똑바로 상대했다. 다른 명령은 필요하지 않았다. 요녀가 뛰어오르는 것과 동시에 마동도 땅을 박찼다.
“히히, 히히히히!”
마동괴령은 기괴한 웃음을 마구 터뜨리면서 빠르게 움직였다. 아이의 원령(怨靈)을 가둔 강시이다. 그야말로 무수한 사술을 동원해 인간병기로 만들어버린 괴물이다.
마도의 사악한 공력과 무공을 잔뜩 품기까지 했다.
눈앞의 마동괴령은 특히 마룡조를 장기로 삼아서, 조막만한 손이지만, 손가락 끝에는 짙은 묵광이 맺혀서 번뜩거렸다. 오므린 손끝이 사방을 할퀴었다. 여기에 소명의 곤음수도 물러남 없이 마주 뻗어 갔다.
쾅! 쾅! 쾅!
손과 손이 마주치는 데에, 벼락 치는 듯한 소리가 연이어 터졌다.
손끝에서 일어나는 날카로운 경풍이 살짝 스쳤다. 머리카락 몇 가닥이 흩어졌다. 그래도 소명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았다. 되레 마주 거리를 좁혀서, 두 손을 덥석 맞잡았다.
마룡조와 곤음수가 단단히 맞물렸다.
“키히? 히히히!”
마동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곧 낄낄거렸다. 얼굴에 들뜬 기색이 더욱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렇게 힘 겨루는 것은 마동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다.
이대로 마동은 상대를 그대로 찢어발긴다.
“아?”
하지만 상대는 소명이었다. 마동의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힘껏, 있는 힘껏 손을 쓰지만, 상대의 손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소명이 고요한 눈으로 마동을 내려다보았다.
“용은 다 썼느냐?”
“아하하.”
마동은 입을 벌리고서, 그저 웃었다. 우득! 소명이 손을 비트는 순간, 강철 같았던 마동의 손목이 부러졌다. 그리고 짧은 두 팔이 전부 뒤틀렸다. 우두둑! 섬뜩한 소리 끝에, 힘없이 축 늘어졌다.
마동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두려움은 알았다. 웃는 아이의 얼굴을 한 채,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부디 내세에는 평안하기를.”
소명은 짧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손가락을 튕겼다.
“아우아!”
마동은 다급히 몸을 돌렸다. 그대로 도망하려 했지만, 채 한 걸음을 제대로 내딛지 못했다. 미간에 작은 점이 튀었다. 그리고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털썩.
작은 몸이 쓰러지는 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으, 으아아악!”
불길이 세차다고 하여도, 더욱 세찬 바람 앞에서는 어찌할까. 더구나 검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었다.
풍양자의 진정한 절기, 풍검백변의 검기. 바람 한 줄기, 한 줄기마다, 청풍검법의 검기를 잔뜩 머금었다.
풍양자는 색 없는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갈가리 찢겨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요녀를 굳이 돌아보지도 않았다.
요녀에게는 남겨줄 경전의 문구 따위는 없다.
풍양자는 혼자 불길에 휩싸이는 마동의 시신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소명에게로 다가갔다.
“요녀는.”
“시체조차 남기지 못했지.”
풍양자는 한층 창백한 얼굴로 대꾸했다. 그리고 맺힌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망할 마도의 것들.
“여기 청성삼검은 있지만, 아미파 비구니들 모습은 없어.”
“여기서 다른 곳으로 향했겠지.”
“역시, 홍천교인가.”
풍양자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리고 이내 서글픈 눈으로 동혈을 빼곡하게 메운 채 서 있는 회색 인영들을 둘러보았다.
저들을 구명할 방도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홍혈족의 요녀가 떠들어댄 것처럼 이미 죽은 자들이다.
슬픈 일이었다.
소명은 축 떨어진 풍양자의 어깨를 한 번 다독였다. 그리고 몸을 돌렸다. 동혈 밖으로 나가는 소명의 걸음 또한 무거울 따름이었다.
풍양자는 잠시 자리를 지켰다. 비록 수양이 깊지 않아서, 소명에게 가짜도사라는 소리를 듣지만, 죽은 자들을 위한 진혼주 정도는 모르지 않았다.
풍양자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입술을 달싹였다. 넋을 기리는 진혼주가 공동 위로 맴돌았다.
소명과 풍양자는 벽을 무너뜨려서, 동혈을 막았다. 그것밖에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대로 홍천교의 근거지가 되어 있는 민강 일대를 향해서 움직였다.
가는 내내,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