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57
257화. 홍천의 큰 그림
웃기는 꼴이다.
여기 한 곳에 대체 몇이나 모여 있는 것인가. 눈동자를 살짝 굴렸다. 대부분이 피처럼 붉은 장포를 축 늘어뜨리고서, 검은 가면으로 얼굴을 감추고 있었다.
자신 또한 그들 사이에서 똑같은 차림새를 하고 있기는 했지만, 영 마뜩잖았다.
사천을 뒤흔드는 사교, 홍천교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곳. 여기는 홍천이라 이름 붙인 작은 성시였다. 이전에는 흔한 산골 마을에 지나지 않았지만, 불과 수년 사이에 길을 내고, 어지럽게 건물을 올렸다.
여기 사람들은 그저 외지인이 정착하려 드는가 하였던 것인데.
지금은 누구랄 것도 없이, 홍천교의 교도가 되어 있었다.
사내는 지금 그런 곳 한복판에 있었다.
홍천교주가 거한다는 홍요궁(紅耀宮), 궁이라고 이름 붙이지만, 그냥 조금 큰 기와집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궁 옆에 이룬 가산이 어느 언덕처럼 거대했고, 그 아래로 이만한 공간을 이루고 있었다.
반구형으로 거대한 가운데에 어지러운 붉은 비단 깃을 몇이나 줄지어 늘어뜨렸고, 사방에서 환하게 밝힌 불빛 때문에 가산 아래, 지하라는 것을 잠시 잊을 정도로 밝았다.
그만한 공간 속에서도, 마땅히 앉을 자리가 없을 만치, 사람이 바글바글하였다.
사내는 좌우를 살피다가, 고개를 한 번 꺾었다.
대부분이 그와 다를 바가 없는 꼴을 하고 있지만, 몇은 붉은 비단장포의 모양이나 색이 조금씩 다르고, 또 누구는 검은 가면이 아니라 화려한 문양을 새겨놓고서 보란 듯이 턱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 자 앞에서는 한결 조심하는 모습이었다.
가면과 장삼 사이에도 차이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전혀 딴판인 자도 있었다. 딴판인 정도가 아니라, 자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작자였다.
검고 붉은 가운데에서, 혼자 금박이 번쩍거리는 갑주 차림이라니. 얼굴을 드러낸 것도 그렇지만,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사뭇 위맹한 풍채를 지녔고, 잿빛으로 물든 수염이 거칠었다.
무엇보다 한 자루 장군검을 앞에 세우고서, 검 자루에 두 손을 걸치고 있는 모습은 한없이 당당했다. 그러면서 투구를 쓰지 않아, 드러난 얼굴에는 불편한 기색이 잔뜩 어려 있었다.
숱이 많아서 굵은 잿빛 눈썹을 바짝 모았다. 오른쪽 눈썹 끝을 크게 가로지른 붉은 흉터가 한차례 꿈틀거렸다.
다들 수군거리면서 자기들끼리 입을 놀렸다. 오가는 은밀한 소리가 속닥거리자, 마치 한여름의 모기떼처럼 앵앵 울렸다.
이를 더 지켜보고 있기가 어려웠다.
갑주의 장년인은 불편한 속을 더 감추지 않았다.
“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으라 하는 건가!”
버럭 내지른 일성이 우렁우렁 크게 울렸다. 규모 있는 지하 광장, 그곳을 타고 퍼지는 목소리에 신경질과 짜증이 솔직했다.
그러자 속닥거림을 멈추고서, 검은 가면들이 고개를 돌렸다. 느닷없이 모인 눈초리에 위축될 법도 하겠지만, 장년인은 보란 듯이 턱을 세웠다.
한껏 부라리는 눈동자가 뜨거웠다.
“아하하하. 이거 바쁜 분을 모셔놓고, 우리끼리 다른 소리를 하고 있었으니. 큰 결례를 범하였군요. 감 장군, 사죄드립니다. 하하하.”
사이에서, 다른 한 사람이 불쑥 나섰다. 두 손을 맞잡으면서 가만히 웃었다. 일그러진 검은 가면 뒤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는 한없이 기이했다.
웃는 얼굴에 대고 성을 내기는 쉽지 않다.
감 장군이라 불린, 장년인은 헛기침을 흘렸다.
“크흠. 그대는?”
“이 사람이, 장군을 청한 일사령이올시다.”
“일사령이시라?”
“허허허.”
대사령 아래로 칠대사령이 있음은 일단 들어서 알았다. 그 중 첫 번째라고 하니. 여하간에 간단한 인물일 리는 없는 일이다.
감씨 장군, 변방을 지켜내는 정예 중의 정예, 서북팔로군의 장수인 감천방은 불편한 눈으로 나선 일사령을 노려보았다.
“본관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북방을 경계하는 것이오. 내 어른의 청을 감히 마다하지 못하여서 오기는 하였소만. 계속 허튼소리를 하면서 본관의 귀한 시간을 허비하게 하지 마시오!”
“허허허!”
크게 웃었다. 올곧은 모습이기는 하다. 지금 감천방이 신경질적으로 내뱉은 말에 틀린 것이 없었다.
일사령은 그만 헛웃음을 흘렸다.
감천방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일사령의 웃음이 크게 거슬렸다. 냅다 성질을 이기지 못하여서 내지르기는 하였지만, 이곳이 어디인가.
나라에서 금한 사교 집단의 한복판에 와 있었다.
‘제기, 이런 자리일 줄이야…….’
평소 교분이 있는 어른이 이런 곳으로 자신을 등 떠밀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감천방은 혀를 차는 한편으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장군검을 움켜쥔 손에 남몰래 힘이 들어갔다.
“장군, 그렇게 걱정하지 마시오. 오늘 장군을 청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본교의 대사령께서…….”
“이곳이 나라에서 금하는 사교라는 것이 분명한 일. 내 비록 사적인 인연으로 인해서 이곳에 들기는 하였으나. 나라의 명이 있으면 당장에라도 토벌해야 마땅할 자들이오.”
“오호, 맺고 끊음이 확실하시군요.”
“사교의 대사령이 본관에게 무슨 용무가 있는지는 몰라도.”
“그것은 이 사람이 직접 말하지.”
머리 위에서 가는 목소리가 울렸다. 말이 끊긴 감천방이 번쩍 고개를 치켜들었다.
마치 아이가 투정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가늘고 높은 목소리였다. 그런데 기이한 힘이 있어서 좌중을 한순간에 짓눌렀다.
드넓은 공간을 한마디로 침묵하게 하였다.
장수는 자기도 모르게 장군검을 잡은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을 듯하던 얼굴이 크게 요동쳤다.
“본교에서 귀관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오.”
목소리가 가만히 울렸다. 그리고 어디서 다가오는 것인지, 어지러운 기척이 피어올랐다.
“흡!”
장수는 빠르게 몸을 비틀었다. 그의 쏘아보는 시선에 사람들이 분분히 물러났다. 그러자 목소리는 다시 울렸다.
“그것은 귀관만이 내어 줄 수가 있어.”
“이익!”
이번엔 전혀 다른 쪽이다. 장수는 이를 악물고서 홱 몸을 돌렸다.
“이게 무슨 귀신 놀음이냐! 나라의 장수를 희롱하고서 무사할 줄 아느냐!”
장수는 장군검을 기울여서 당장에라도 검을 뽑아낼 듯했다. 입안이 바짝 말라붙었다. 사방을 연신 경계하는데, 기척이 여기저기 있으면서도 정작 목소리의 실체는 발견할 수가 없다.
초조함이 크게 일었다. 그것은 곧 불안함이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감천방은 그만 흔들리고 말았다.
“저런, 저런, 자네는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었어야지.”
“흐아압!”
바짝 다가온 목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속삭였다.
감천방은 벼락같은 일성을 터뜨리면서 바로 검을 뽑았다. 허리를 뒤트는 것과 동시에 뽑혀나오는 거친 장군검은 의전용의 물건이 전혀 아니었다.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어지간히 베고 또 베었던지, 두터운 검신에는 온갖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러한 장군검이 크게 횡을 그리면서 길게 베었다.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사뭇 날카롭다. 길이가 육 척에 가까운 장군검이었다. 그럼에도 검 끝에 닿은 느낌은 아무것도 없었다.
“흐으윽!”
감천방은 장군검을 앞에 세우고서, 좌우를 빠르게 살폈다. 어디냐, 어디에 있는 것이냐. 그러는 사이에, 일사령이라고 하는 자들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분분히 물러나 있었다.
다들 적잖이 당황한 눈초리였지만, 그렇다고 다른 두려움을 품거나 하지는 않았다.
감천방은 연신 헐떡거렸다. 고작 일검을 떨쳤을 뿐인데, 이렇게 지친 느낌이라니. 입안이 바짝 말라붙었고, 어깨는 단단히 뭉쳐서 아플 정도였다.
주춤, 주춤하면서 쉼 없이 사방을 계속해서 경계했다. 대체 어디냐, 어디서 오는 것이냐. 흔들리는 눈초리가 역력했다. 이제는 가슴을 다잡을 만한 여력이 없었다.
갑자기 다가왔다가, 갑자기 멀어지는 목소리를 경계할 뿐이었다. 실체도 없이, 몇 마디 말로 군문의 으뜸가는 장수라는 자신이 이 지경까지 몰리다니.
“헉, 허억, 허억.”
“이제 진정이 되는가? 아니면 아직도.”
“차합!”
목소리는 닿기가 무섭게 꼬리를 길게 남기고서 또 홱 사라졌다. 감천방은 즉각 반응하였지만, 아무도 없는 허공만 베었을 뿐이다.
“크윽!”
힘주어 악문 잇새를 잔뜩 드러냈다.
뜨겁게 치미는 분노가 머릿속을 태울 듯하지만, 가슴 한구석이 홀연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공포였다. 닿지 못하는 상대에 대한 공포가 슬금슬금 퍼져가기 시작했다. 하하, 하하하하.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둥글게 맴돌았다.
검이 흔들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목소리의 주인이 이들이 말하는 대사령이 틀림없을 것이다. 실로 귀신같은 보신경으로 자신을 들었다가 놓아댄다.
짙은 자괴감 속에서도, 감천방은 쉽사리 검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이제 그만 검을 거두는 게 어떻겠는가?”
“흐으, 흐으, 장수가 검을 놓을 때는 그저 목을 잃을 때이다!”
“하하하, 그거 좋은 말이구나. 그래 딱 필요한 것이 바로 네놈의 얼굴이니.”
“흡!”
바로 코앞이다. 붉은 연기가 휘돌더니, 불쑥 사람 얼굴을 이루어냈다.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붉은 연기 속에서 사람의 형체를 갖추었고, 붉은 연기가 마치 손발을 뻗어대는 것처럼 빠르게 밀려왔다.
괴변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는 현상 앞에서, 감천방은 발작하듯이 몸을 뒤틀었다.
어김없이 검광이 번쩍이면서 솟구쳤다. 공력 한 점을 아낄 때가 아니었다. 지닌바 검공을 아낌없이 흩뿌렸다. 난도질하듯이 휘두르는 검적을 따라서, 날카로운 바람이 솟구쳤다.
형식은 그야말로 전장의 살벌한 검세로, 오로지 상대를 먼저 베어 죽이는 것이 목적인 살검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검법을 뒷받침하는 것은 상당히 정심한 내공기력이었다.
“캬아아악!”
붉은 연기를 거침없이 휘둘러서 가두고는 그대로 베어버렸다. 일점에 집중한 내가공력은 그야말로 진신내력의 전부였다.
붉은 연기가 모래알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터져 나오는 괴성에 절로 소름이 돋았다. 허허, 웃으면서 지켜보는 다른 이들도 소리에 놀라 움츠러들었다.
감천방은 장군검을 휘두른 그대로 굳었다. 헐떡임이 더욱 거칠어졌다. 눈앞이 깜깜할 정도였다. 마지막의 기력, 한 줌까지 쥐어짜냈다.
그러나 힘찬 일검에 닿은 것은 미미할 뿐이었다.
검세가 다한 지금에, 흩어졌던 붉은 연기가 머리 위에서 다시 모여들었다. 감천방은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위를 보는 두 눈이 망연할 따름이다.
대사령의 붉은 연기는 감천방의 두 손을 덥석 얽어맸다.
“커억!”
감천방은 그 순간에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몸을 떨었다. 뿌리치고자 해도 뿌리칠 수가 없었다. 공력을 소진한 탓도 있었지만, 손목을 뒤트는 역도가 상상 이상이었다.
단련된 강골이었지만, 휘감은 붉은 기운 속에서 수숫대처럼 그대로 바스러질 듯했다.
일그러진 얼굴에 식은땀이 역력했다. 살짝 비틀린 채, 당기는 힘으로 그대로 끌려갔다. 버티고자 하였지만, 속절없는 일이었다.
붉은 연기를 전신으로 휘감고서, 모습을 드러낸 자는 아주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얼굴이 있다고 해서,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일 수가 없었다.
“대사령의 존체를 뵈옵나이다.”
“대사령!”
붉은 연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기가 무섭게, 사방에서 신도라는 것들이 분분히 무릎을 꿇었다. 남녀노소를 구분할 것 없었다. 무겁게 고개마저 숙였다.
대사령이라는 괴이한 것은 드러낸 앳된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었다.
사특한 미소였다.
“자아, 이제 얘기를 할 자세가 되었느냐?”
“너는…… 무엇이냐? 요, 요괴냐?”
“호오, 아직도 반항할 마음이 남아 있다니. 서북방에서 으뜸가는 장수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로군.”
“이이익!”
“그 정도 반항심이야 어여삐 여겨줘야겠지. 자자, 어차피 내가 필요한 것은 네놈의 얼굴이니라.”
“뭐라?”
“얼굴을 빌려야겠다. 이것은 귀한 분을 위한 대업의 하나이니. 너는 마땅히 영광으로 알라.”
“개……소리!”
감천방은 마지막이 다가왔음을 알았다. 항거할 수 없는 거력에 붙들린 와중이었고, 자신의 재간으로는 아무 수단도 남아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한들, 어찌 마음조차 꺾이랴.
감천방은 눈을 찢어질 듯이 눈을 부릅떴다. 얼굴 가죽을 벗겨가든 어쩌든, 저 괴이한 것을 죽는 순간까지 눈에 담아내리라 단단히 각오하였다.
그 지독한 눈길을, 대사령은 오히려 기껍게 받아들였다.
“그래, 원망하여라. 저주하여라. 너의 원망과 저주가 대업을 이루는 초석이 될지니.”
점점 모를 소리였다. 그런 것이야 어떻든, 뭉클 솟아오른 또 다른 안개의 한 가닥이 예리하게 모습을 달리했다. 칼날처럼 섬뜩하게 날이 서는 듯했다. 그 자체로 예기를 드러냈다. 그리고 얼굴을 향해서 차츰차츰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