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58
258화. 홍천의 큰 그림
“아, 정말.”
문득 한숨이 울컥 솟아올랐다. 여기 자리에 끼어들려고 몇 날을 납작 엎드려서, 온갖 눈치를 다 보았는데. 그렇다고 저 모양을 내내 지켜보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슬그머니 눈빛을 반짝였다. 웅크린 시뻘건 장포 너머로 불길한 붉은 안개가 뭉클거리고, 거기에 휘감긴 장수의 모습은 애처롭기만 했다.
힘주어서 잔뜩 부릅뜬 장수의 눈길이 장렬하기는 하였지만, 그뿐이었다. 거미줄에 걸린 날벌레처럼 조금도 항거하지 못하는 처지였다.
이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그것도 그대로 속이 불편한 일이다.
“썩을.”
다시 고개를 움츠리면서 험한 욕설을 한번 읊조렸다.
짧은 욕설이지만, 주변에 들리기에는 충분했다. 좌우에서 기이한 눈으로 흘겨보았다. 자중하라는 경고의 뜻이 분명했다.
눈길에 어색한 미소를 한번 지어 보였다. 그리고 한층 고개를 숙였다. 붉은 장포 아래에서 뭔가 꿈지럭거렸다. 그러는 사이, 대사령은 천천히 장수를 끌어당겼다. 뭐라고 떠드는 데, 그런 소리는 귓등으로 흘려 넘겼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아니, 이보게. 지금 뭣하는 건가?”
어깨가 들썩거리는 꼴이 심히 수상하다. 가까이 있던 자가 꾸짖듯이 속삭였다. 소곤거림에 힘이 실려 있었다. 그러자 슬쩍 고개를 돌렸다.
이목구비 짙은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어렸다.
“음, 뭐 약간의 준비라고나 할까요.”
“준비? 무슨?”
“히히.”
이를 드러내면서 방정맞은 웃음을 보였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걸친 장포가 어깨 뒤로 후드득 떨어졌다.
좌우에서 놀란 얼굴로 눈을 치떴다. 그런 이들을 향해서 두 손을 거침없이 뻗었다.
덥석 움켜쥔 손아귀 힘은 우악스럽기 그지없었다. 너무 당황한 것도 있었지만, 그 손놀림은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을 만큼 빨랐다.
“받아라!”
뱃심에서 터지는 괴성이 우렁차게 울렸다. 그리고 좌우에 있던 붉은 혈포의 사내들을 냅다 집어던졌다. 둘뿐만이 아니었다. 앞에 있는 자들은 고개 조아린 모습 그대로 엉덩이를 뻥뻥 걷어찼다.
끄어억!
어어억!
놀라고 당황한 비명이 울렸다. 그것은 곧 끔찍한 단말마의 비명으로 돌변했다. 대사령의 전신을 에워싸고 있던 붉은 혈무 속에 닿자마자 처참한 몰골로 갈가리 찢겨나갔기 때문이었다.
“으응?”
대사령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자리를 주관하는 셈이었던 일사령이 바로 고개를 세웠다.
“웬 놈이냐!”
“알 바냐!”
사내는 버럭 외치고서는 앞으로 뛰쳐나갔다. 서슬에 축 늘어진 장수의 뒷덜미를 잡아채고서 그대로 내달렸다. 요동치는 붉은 혈무가 장수와 사내의 뒤를 노렸다.
하늘을 향해서 쏘아 올린 강전(鋼箭)이 뚝뚝 떨어지는 것처럼 날카롭고 세찬 경력이었다. 파파팍!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다. 그러나 사내는 그만 좌우로 휘청거리면서 넘어질 듯하면서도 용케 몸을 가누면서 내달렸다.
휘청휘청하는 것이 불안한데, 내달리는 속도는 오히려 더욱 빨랐다. 저러한 독특한 보신경이 다른 곳에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일사령은 바로 알아보고서 이를 악물었다.
“취팔선(醉八仙)! 개방의 거지새끼로구나!”
그리 알아보거나 말거나.
개방의 사천분타주, 백결호 오군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마구 내달렸다.
“아오, 젠장! 젠장! 젠장!”
바락바락 악을 써대듯이 욕지거리만 마구 내뱉었다. 지금 위험한 것보다는, 여기까지 숨어든답시고 공들인 것이 아까워서 이렇다.
“여보쇼! 죽었소!”
“으, 으, 안, 안 죽었네.”
덜그럭거리는 서슬에 감천방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지만, 어찌 대꾸는 할 수 있었다. 오군은 혀를 질끈 깨물었다.
“조금만 버티쇼! 지금은 뭘 어찌할 수가 없으니까!”
“……으음.”
감천방은 신음하듯이 겨우 소리를 내었다. 그러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온몸의 기운이란 기운은 쏙 빼앗긴 것처럼 깊은 탈력감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감천방의 체구도 체구였지만, 거기에 갑주까지 당당히 걸치고 있다. 백결호라는 별호에 부끄럽지 않게, 호랑이처럼 빠르게 내달리는 것은 좋았지만, 발걸음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험한 꼴을 피할 수가 없겠는데.’
오군은 질끈 혀를 깨물었다. 그러다가 불현듯 눈앞으로 가파른 절벽이 펼쳐졌다.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머리 잡아! 머리!”
“으, 으응?”
감천방은 느닷없는 외침에 감기는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 올렸다.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그런데 눈을 어렵게 뜨기가 무섭게 몸이 부웅, 떠오르는 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놀랄 겨를도 없다.
감천방도 냅다 고개를 숙이고, 부러질 뻔한 두 손을 치켜들어서는 머리를 감쌌다. 그렇게 두 사람은 바닥을 데구르르 구르기 시작했다.
구르고 또 구른다. 그렇게밖에는 이곳을 내려갈 방책이 없었다.
쿵! 쾅! 퍽!
돌부리에 채이고, 자기들끼리 부딪치고, 까지고 온갖 난리를 치면서도 수 장에 이르는 까마득한 비탈을 그렇게 굴렀다.
오군도 그렇지만, 감천방도 아주 죽을 맛이었다. 몸도 성치 않은 판국인데. 족히 수십 근은 나가는 갑주를 단단히 걸치고서 돌바닥을 냅다 구른 것이다. 갑주의 무게에 없던 내상도 생기겠다.
그래도 사교 무리에게 붙잡혀서 얼굴 가죽을 뜯기는 것보다야 나은 일이다.
“으어어어어!”
진심으로 비명이 길게 터졌다. 그리고 구르고, 구르는 것의 끝은 차디찬 강물이었다.
“아아아아!”
두 사람은 몸이 허공으로 부웅 떠오르는 것을 느끼고는 한목소리로 새된 비명을 흘렸다. 그리고 첨벙! 묵직한 물소리가 크게 울렸다.
둘을 집어삼킨 강물은 한차례 혼탁해졌지만, 곧 흐르는 물결에 쓸려서는 다시 도도하게 흘러만 갔다. 그렇게 오래지 않아서, 두 사람이 똑 떨어진 절벽가로 수십의 인영이 솟구치듯이 모습을 드러냈다.
좌우로 쫙 늘어서서는 흐르는 강물을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보이는 것은 흐르는 세찬 물결뿐이다. 아래로는 뻔히 확인할 수 있어서, 달리 숨을 곳은 없었다.
“너희는 하류로 내려가 보아라. 거기서 그물을 치든, 물에 뛰어들든, 무슨 수를 써서든 찾아내! 너희는 강을 따라서 내려가도록 하고. 그리고…… 혹시 모르니, 상류 쪽으로도 올라가서 살피도록.”
아무리 그래도 상류로는 거슬러 올라갈 수 없겠다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것을 배제할 수 없었다. 일사령의 무거운 지시에, 혈포 차림을 한 자들은 답 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빠르게 흩어졌다.
일사령은 절벽 끝에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런! 이런 일이 있나!”
짜증이 또렷하게 어렸다. 다른 사령들을 제치고, 대사령의 눈에 들 기회였다. 그런데 눈에 드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눈 밖에 나는 것을 걱정해야 할 판이니.
일사령은 좀체 자리를 뜨지 못하고, 흐르는 강물을 무서운 눈으로 노려만 보았다.
우스운 일이었다.
그렇게 목맸을 때는 멀었던 일이, 손에 닿을 듯하여지자 이렇게 일이 틀어지다니.
일사령은 한참 만에야 한숨을 토하면서 고개를 치켜들었다.
“사는 것 참.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하더니.”
한숨과 함께 내뱉은 한마디에는 아무런 기운도 없었다. 결국, 두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서 몸을 돌렸다.
비척비척, 걸어가는 뒷모습은 그저 왜소할 따름이었다. 앞날에 먹구름이 드리웠음을 직감한 까닭이다.
“아그로로로!”
오군은 말소리인지, 뭔지 모를 소리를 물거품과 함께 토해냈다. 거친 탁류 속에서 눈을 무섭게 치떴다. 잠깐이라도 정신을 놓았다가는 물결에 휩쓸려서 고대로 익사할 판이다.
오군은 흐르는 바위를 한 손으로 붙들고도 모자라, 천근추의 공력으로 강바닥에 두 발목을 깊이 파묻었다. 그런 채, 때리는 물결을 맞받아가면서 버티고 또 버텼다. 다른 손으로는 축 늘어져 있는 감천방의 갑주를 정말 힘껏 부여잡았다.
숨이 정말 간당간당해질 무렵에 이를 즈음에, 오군은 눈을 치떴다. 물 바깥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더는 물 밑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으르르르!”
오군은 괴이한 소리를 물거품과 함께 토해내면서 있는 힘껏 몸을 솟구쳤다.
바윗돌을 파고드는 손가락에 핏물이 맺힐 지경이다. 그렇게 의지해서 겨우, 겨우 물 밖으로 고개를 내빼었다.
“에페페페!”
흙 섞인 강물을 대충 뱉어내고서, 오군은 빠르게 좌우를 둘러보았다. 다행이랄지, 주변에 다른 인적은 없었다.
여기까지 쫓아온 것들은 하류를 살피든, 강물을 따라서 달리든 하겠지. 오군은 물가의 바위를 붙들고서 고개를 흔들었다.
하필 지금 있는 곳은 굽이 산을 타고서 크게 맴도는 위치인지라, 강의 흐름이 한층 격렬할 뿐만 아니라 여타 잡스러운 것이 잔뜩이었다.
오군은 후우, 후우 간신히 숨을 가다듬었다. 이제 어쩌면 좋을지, 딱히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냥 이리 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벌써 손가락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오군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서, 갑주의 장수를 돌아보았다. 아주 정신을 놓은 듯이 축 늘어진 채, 두둥실 떠 있었다.
물을 너무 먹어서 행여 숨이나 막히지 않았을지.
“보쇼! 보쇼! 죽었소? 죽었냐고!”
“크, 크허윽…… 아, 안 죽었소…….”
“손은? 손은 움직일 수 있나?”
“끄으……으읍…….”
감천방은 급하게 다그치는 말에 겨우 반응했다. 두 눈은 초점 없어서 흐릿했고, 입가에는 핏물이 연신 흘렀다.
손을 움직일 수 있느냐고 묻는 말에, 그는 이를 악물었다. 굳어가는 손을 어떻게든 움직여보겠다고 용을 썼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스치는 물결이 아플 정도였다.
“안 되겠소. 힘이 들어가지 않아.”
“젠장.”
“그만 놓으시오. 나 때문에 귀하마저…….”
“에잇, 어차피 저지른 일이오!”
오군은 바락 소리쳤다. 그리고 아프도록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래, 어차피 저지른 일이다.
오군은 죽기 살기로 남은 내력을 바닥까지 박박 긁었다. 계속해서 몰아치는 물결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공력을 잘못 집중하였다가는 그대로 주화입마에 빠진다. 그러나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판이다. 무엇을 가릴까.
“에라잇!”
바위를 틀어쥔 손아귀에 전력으로 공력을 불어넣었다. 요동치는 물결을 타고서 몸이 흔들리는데, 그때에 허리를 힘껏 튕겼다.
평소의 몸이라면 이것 하나로 두어 장의 높이가 우습겠지만, 지금은 고작해야 반장 남짓도 되지 못했다.
철퍽! 철퍽! 흙탕물이 엉망으로 튀었다. 자칫 물살에 휩쓸려서 떠내려갈 판이다. 굴곡진 곳이라서 유속이 한도 빠르지만, 강폭이 좁은 것도 있었다.
“하으읍!”
죽자고 몸을 끌어당긴 끝에, 오군의 피투성이 손이 겨우 뭍에 이르렀다. 실로 천운이 따랐다고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젖은 흙을 한 손으로 찍어대면서 오군은 겨우 몸을 끌어올렸다. 그러고는 사지가 덜덜 요동쳤다.
무리에, 무리를 거듭한 탓에 전신의 근육이 제멋대로 뒤틀렸다. 뼈나 부러지지 않았으면 다행이겠다. 그것을 챙길 정신은 조금도 없었다.
덩달아서 어찌 뭍으로 올라온 감천방도 매한가지였다.
엎어진 채,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그렇게 있기를 한참, 바로 옆에서 물 흐르는 소리만 시끄럽게 울렸다.
죽은 듯이 널브러진, 두 사람 위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소리 없이 솟았다.
“죽었나? 살았나? 아니면, 죽지도 살지도 못한 걸까?”
어린 목소리였다. 이리 갸웃, 저리 갸웃하기만 할 뿐이지, 딱히 다가서지는 않았다.
“끄응.”
고통에 겨운 신음이 흐르자, 그제야 그림자는 폴짝 물러섰다.
“이야, 죽지 않았구나!”
반기는 목소리인지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이어지는 행동은 목적이 참 명확했다. 엎어진 둘을 발끝으로 툭툭 건드렸다. 그러자 벌러덩 몸이 절로 뒤집어졌다. 젖은 채로 흙바닥에 얼굴을 단단히 처박은 덕분에, 하나같이 시커멓다.
문득 오군이 말문을 열었다. 기운이라고는 단 일점도 없었다. 신음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런 목소리라도 일단 말은 나왔다.
“아가야. 여기가 어디냐?”
“물가인데요.”
“그래. 안 죽었나.”
“안 죽었어요.”
“허, 기연이로세.”
“그렇게까지 기연은 아닐걸요.”
“…….”
오군은 마른 입가를 한 번 달싹거리고서, 어렵게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눈꺼풀이 이렇게까지 무거운 것인지. 덜덜 떨리는 끝에 겨우 실눈을 떴다.
아직 희뿌옇기만 한데, 자신을 빤히 보는 자리에 작은 인형의 모습이 보였다.
“너 홍천의 아이냐?”
“음, 뭐 비슷해요.”
“그래, 그렇구나. 에라, 모르겠다. 할 만큼 했지, 뭐. 에효.”
오군은 뒤로 고개를 젖혔다. 더 생각하기도 싫다. 정말로 숨 쉬는 것도 힘들었으니. 뒷머리가 땅바닥에 닿기가 무섭게 겨우 붙잡은 정신줄을 다시 놓쳐버렸다.
세상없이 몽롱하다. 감긴 눈이 천근으로 무겁다. 아니, 애초에 눈 뜰 생각도 없다. 깊을 뿐만 아니라, 달기까지 한 단잠이었다. 그런데 문득 몸을 흔드는 손길이 있었다.
“죽었소?”
“아, 몰라.”
“여보쇼. 거지.”
“에헤이, 자는 거지는 건드리지 말라고.”
“그게, 그래도 지금 일어나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아, 왜에. 뭐? 왜애?”
오군은 자꾸 툭툭 건드리는 것에 잔뜩 짜증을 부렸다. 그래도 꼭 감은 눈은 뜨지도 않았다. 지금 눈을 뜨기에는 딱 누운 자리가 너무도 알맞았다. 푹신한 보료 속에서 마치, 구름 속에 파묻히기라도 한 것처럼 포근하였고, 은은한 온기마저 적당했다. 이만한 곳은 달리 없을 듯했다. 얼굴에 닿는 부드러운 느낌은 또 어떠한지.
깨우는 손짓을 짜증으로 밀쳐내고서 오군은 몸을 돌렸다.
“으음.”
그러다가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이렇게 편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오군은 더 눈 감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한순간에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온몸이 싸늘해졌다.
“그러게 일어나시라니까.”
“크흠, 크흠.”
움찔한 속내를 읽었던지, 혀 차면서 하는 소리였다. 오군은 마른 입술로 헛기침을 흘렸다.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돌리자, 화창한 햇빛이 쏟아지듯이 들어왔다.
높은 천장, 사뭇 으리으리한 실내의 모습이 먼저 보였다. 그리고 갑주를 벗은 감천방이 사뭇 난처한 얼굴로 있었다.
“여기가 어디요?”
“그야 나도 모르지요.”
“거참.”
두 남자는 여전히 맹한 얼굴로 서로 얼굴만 보았다. 다시 방을 살피니, 큼직한 침상 두 개가 번듯하게 놓여 있었다. 그리고 둘만 방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단정한 차림의 시비 다섯이 공손한 모습으로 한쪽에 가만히 서 있었다.
“하, 하하. 이거야 원.”
다른 사람이 있으면, 그것 먼저 말해 줄 일이지.
오군은 어쨌든 마른침을 한번 삼켰다. 얼굴에 철판 까는 것은 거지로서는 첫째로 갖추어야 할 일이다. 오군은 두 손을 얼굴을 한차례 쓸어내렸다.
감천방도 어리둥절하였다가, 바로 신색을 회복했다. 어디인지 모를 곳에서 깨어난 것도 그렇지만, 일단 몸 상태를 약간이라도 회복하였으니.
숨을 다잡고서, 감천방은 헛기침을 흘렸다.
“이곳의 주인은 어느 분이신가?”
한 시비가 고혹적인 미소를 머금고는 살짝 무릎을 굽혔다.
“주인께서 곧 돌아오십니다.”
“그, 그런가?”
시비는 참으로 정중하였다. 그러면서도 단호한 면이 있어서, 저 미소를 어떻게 깨트릴 수가 없을 듯했다. 감천방은 헛기침을 흘리면서 오군에게 속삭였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소.”
“뭐, 나라고 다르겠습니까? 그냥 다른 도리가 없으니.”
오군은 심드렁하여서 대꾸했다. 말투는 그리하여도, 저기 있는 시비 다섯을 경계하는 눈초리는 역력했다. 뭔가 심상치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