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59
259화. 미끼
‘몸 상태는 그럭저럭인데…….’
평소와는 비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까무룩 정신을 잃을 때를 생각하면 상당한 정도로 회복한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어딘지 모를 곳에서 함부로 난동을 부릴 수는 없었다.
내공을 비롯한 신체에 다른 구속을 해놓지 않았다는 것부터가 찝찝한 일이다.
그만한 자신감이 있다든가, 아니면 자신이 감지하지 못하는 다른 제재가 있다든가.
어느 쪽이든 경거망동할 수는 없다. 그리고 길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차분한 발소리가 울렸다. 하나, 둘이 아니었다. 오군은 새삼 허리를 세웠다.
곧 문창 너머로 여럿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림자가 문창을 가득 메울 정도였다.
“손님께서는 일어나셨는가?”
“예, 주인.”
제법 위엄을 갖추었지만, 그럼에도 나이는 감추지 못하니. 한참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오군은 문득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뭐라는 상황이냐.
두 시비가 조용히 문가로 다가와서 좌우로 방문을 활짝 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한낮의 햇빛이 쏟아졌다. 그리고 긴 그림자가 먼저 들어섰다.
문가에는 여럿이 있었지만, 문지방을 넘어서 들어서는 것은 한 사람뿐이었다. 붉은빛이 감도는 금포가 화려했다.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짐 없이 올린 머리에는 금잠을 꽂았다. 그러나 결국에는 어린아이였다.
이제 열이나 되었을까. 한참 어린 녀석은 침상 앞까지 걸어왔다. 시비 한 사람이 바로 의자를 가져왔다. 아이는 턱 끝을 들고서 의자에 편히 앉았다.
금포자락에 주름이라도 잡힐까, 문을 열었던 두 시비가 좌우에서 아이의 옷자락을 단정하게 정리했다. 참 분주한 모습이다.
“허어, 이거참.”
오군도 그렇지만, 장수도 어찌 입을 열어야 할지 몰라서 혀를 찼다. 범상치 않은 모습이기는 하지만, 한참 어린아이가 아닌가.
“음, 뭐라고 불러야 하려나. 여하간, 그쪽이 우리를 구하였나?”
“그런 셈이지요.”
“음, 먼저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구먼. 소공자.”
“별말씀을요. 서정팔로군의 기둥이라고 하는 감 장군을 이리 모시게 되었으니. 제가 영광입니다.”
“음, 이 사람을 아는가?”
“대략적인 정도입니다만.”
감 장군, 감천방은 적잖이 놀란 얼굴이었다. 자신은 엄연히 군부의 인물, 군부 밖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따로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놀라는 감천방과 달리 오군은 한층 심각하여서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편히 앉은 채, 무릎 위에 올린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내 짐작이 틀리지 않다면, 아직 이곳은 홍천교의 복판인 듯싶은데.”
“바로 그렇습니다. 역시 개방의 협개시로군요. 이곳이 본교의 총단이지요.”
“흠, 본교라.”
오군은 눈을 가늘게 떴다. 경계하는 기색을 굳이 감추려 들지도 않는다.
“이 거지가, 개방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굳이 내 소개를 할 것도 없겠군. 그럼, 소공자에 대해 물어도 되겠나?”
“홍천교의 교주입니다.”
“응? 뭐라고?”
“제가 홍천교의 교주라고요.”
아이는 그렇게 말했다.
아, 이런 미친 세상.
오군은 저도 모르게 험한 한 마디를 짓씹었다. 저리 어린 것을 교주라 하여서 대체 무슨 짓거리를 벌이는 것인가.
생각할수록 갑갑한 마음뿐이라서, 그것은 오군뿐만이 아니라, 옆의 감천방도 마찬가지였다. 일그러진 얼굴로 있다가 그만 한숨을 흘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 * *
헉, 헉, 헉…….
숨찬 소리가 맴돌았다.
높은 곳에서 한낮 햇볕이 따갑게 떨어졌고, 사방은 녹음이 한없이 짙었다. 어디가 어디인지, 전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깊은 숲 한가운데에서 헤매는 인영은 한껏 야위었다. 당장 쓰러지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해서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크게 휘청거렸다.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고서 향하는 걸음이 아니었다.
비틀거리는 대로 나아가는데, 높이 자란 수풀이 마구 흩어지고 짓밟혔다.
급기야 풀 더미에 발이 걸려서는 크게 엎어졌다.
“흑!”
놀란 숨소리마저 한참 흐렸다. 그렇게 쓰러져 있기를 잠시, 인영은 느리게 꿈틀거렸다. 수풀 사이에 처박은 얼굴을 힘겹게 치켜들었다.
야윈 얼굴이 흙먼지로 지저분했다. 드문드문한 흙을 어찌 쓸어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초점 없어서, 몽롱한 눈빛이 기이했다.
“가야, 가야 해. 가야…….”
검은 피딱지가 앉을 정도로 터진 입술 사이로 흐린 소리가 새어 나왔다. 무언가 홀린 것이 분명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잿빛 가사 차림을 한 인영은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서, 앞으로 나아갔다.
휘청거리는 그 모습은 한없이 불길하다. 그런 모습으로 인영은 수풀 짙은 녹음 속으로 차차 파묻혀 갔다.
민강어룡 두홍의 마지막 안가, 민강에서 멀지는 않지만, 그래도 산속 깊은 곳에 교묘하게 숨은 초옥은 고즈넉하여서, 쏟아지는 햇빛 아래에서 한참 평화롭게만 보였다.
정작 집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두홍은 영 엉뚱한 곳에 대충 널브러져 있었다.
“흐어…….”
이제 무엇을 하면 좋으려나.
두홍은 아무런 의욕도 없었다. 초옥이 내려다보이는 바윗가에 등을 기대고서는 한숨을 길게 흘렸다. 날은 참 화창하기도 하여라.
대를 이어오면서 갖춘 근간을 다 잃었고, 마지막 터전이랄 곳도 저렇게 털린 마당이다.
가슴 속에서 무슨 열기가 끓어오를까. 의기소침 정도가 아니라 망연자실하여서, 두홍은 축 늘어진 채 거듭 한숨만 내뱉었다.
“민강어룡.”
“에?”
두홍은 다가와서 넌지시 건네는 목소리에 고개를 세웠다. 복면을 벗고, 이제 모습을 드러낸 당가인이다. 현무고의 현무칠십이성 중 하나라던가.
여하간에, 두홍은 드리운 당가 사람의 그림자가 불편하여서 주춤주춤 몸을 일으켰다.
아직 통증이 남아서 움직임이 굼떴다.
“크흠, 거 무슨 일이시오?”
“몸은 괜찮으신가?”
“뭐, 그럭저럭이랄까.”
불편함이 솔직한 얼굴로, 두홍은 붕대를 묵직하게 감아놓은 어깨를 천천히 돌렸다. 지끈거리는 통증이 일었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다행이구려. 풍양자께서 찾으시더이다.”
“으익, 가, 가짜 도사가?”
“하, 하하.”
당가인은 질린 두홍의 표정에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청성파의 대사형으로, 사천 무림에서는 상당한 영명을 떨친 풍양자이다. 그런 사람을 가짜 도사 운운할 정도라면 상당한 친분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민강어룡께서는 풍양자와 어떤 인연이 있은 것인지, 사뭇 궁금하구려.”
“인연은 무슨…… 그냥 악연이오. 악연.”
두홍은 불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래, 다시 생각해도 악연이다. 두홍은 절뚝거리면서 허리를 세웠다. 일어서는 것도 아직 힘이 잔뜩 들어가는 처지였다. 당가인은 쓴웃음을 짓고서, 그런 두홍의 한쪽 팔을 덥석 붙들었다.
“갑시다. 부축해드리지.”
“아니, 그, 그럴 것 없는데.”
두홍은 흠칫하더니, 떨떠름한 얼굴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당가인은 손을 풀지 않았다.
“갑시다. 풍양자께서 굳이 당부하시더군. 아픈 척, 절뚝거리면 그 핑계로 한참이랄 것이라고.”
“…….”
이건 뭐라고 말도 못하겠다. 두홍은 그냥 부축을 받으면서 절뚝절뚝 걸었다.
안가의 가장 큰 죽옥, 그곳에 소명과 풍양자, 그리고 당민이 마주하고 있었다. 소명은 가운데에 놓은 다탁에 편히 앉아 있었고, 풍양자는 창틀에 걸터앉아서는 창밖만 물끄러미 보았다.
다들 속 편한 모습인데.
당민은 문가에 기대어 선 채, 다만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지금 상황이 아무래도 마뜩잖은 것이다.
안가로 몸을 숨기고서 사흘, 청성의 양정과 아미의 장우빙이 합류하고서 하루가 지났다.
몸을 살핀다는 핑계는 참 그럴듯하나, 아무리 그래도 너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당민은 새삼 힘이 들어간 눈초리로 조용한 소명을 바라보았다. 달리 이유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당민은 촉이 빠른 사람이다. 팔짱을 끼고서 슬쩍 턱 끝을 치켜들었다. 찌푸린 눈매가 언뜻 날카롭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당민의 눈매에 움츠러들 두 사람은 또 아니었다.
“대체 뭐야?”
지켜보다가, 결국 당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자 딴청인지, 아니면 정말로 다른 생각 중이었던지. 그냥 조용히 앉아 있던 두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응?”
“뭐가?”
“뭐가 있잖아. 뭐가 있으니까, 이렇게 주저앉아 있는 거잖아.”
“그야, 뭐 그렇지.”
풍양자는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주저하는 기색은 조금도 없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뭐가 있기는 하지만, 자신은 말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당민은 찌릿, 풍양자를 더욱 따가운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소명은 그냥 쓴웃음을 한 번 그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당민에게 다가섰다. 아니, 지나치더니 가옥 밖의 기척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 모습은 분명 수상하였다. 여기서 따로 이목에 신경 쓸 이유가 무어 있다고 이러는 것인가.
당민의 짙은 눈썹이 한층 깊이 찌푸려졌다. 그렇지만 언성을 높이지는 않았다. 슬쩍 입술을 말아 물었다.
“그러고 보니 청성의 소도사는?”
소명은 여전히 밖을 내다보면서 은근히 물었다. 풍양자가 대꾸했다.
“고 녀석, 풍신령의 기본이 덜 되어 있단 말이야. 저쪽 들판에 있을 걸세. 아미의 소신니도 수련이 필요하다고 같이 나섰지.”
“흠.”
소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의자로 돌아와 앉았다. 이제야 뭔가를 말해 줄 모습이다.
당민은 눈살 찌푸린 그대로 소명을 지켜보았다. 이렇게까지 주변을 신경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뭐야?”
“이거 말하기가 좀 어려운 일인데 말이야.”
“계속 뜸들일 거야?”
“아무래도 아미파 쪽에 배신자가 있는 것 같다.”
“아미파의 배신자? 그야 알려진 일이…….”
당민은 쉽게 대꾸하려다가 그만 입을 굳게 닫았다. 소명과 풍양자가 어디를 거쳐 왔던가. 그것이 즉각 떠올랐다. 당민은 눈을 감았다.
팔짱 낀 한 손을 들어서 얼굴을 감싸 쥐었다.
후우, 답답함에 내뱉는 한숨은 새삼 뜨겁다. 당가에서도 현무고의 뼈아픈 배신이 있었다. 아미의 사정이 뻔히 그려지면서 더 갑갑하다.
우선 진정하고서 비스듬히 고개를 들었다.
다시 뜬 당민의 눈초리에 짜증이나 당혹의 감정은 전혀 없었다. 착 가라앉은 두 눈은 그저 진지할 뿐이다.
“그렇군. 의심할 만한 상황이라는 건가?”
“아미파 전부라고는 할 수 없겠지. 상황을 보면 아미의 탕마창이라 하였나, 그분이 먼저 당했어. 뒤에서의 암습이었지. 그리고 다른 아미제자 대부분도.”
“등 뒤의 비수가 제일 두려운 법이지. 아미의 진세가 와르르 무너졌더군.”
창틀에 앉아 있던 풍양자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거들었다.
당민은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알아들었어. 그런데 그것과 여기서 사흘째 이러고 있는 것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그야 기다리고 있는 거지.”
“기다린다니? 뭘 기다린다는 말이오?”
풍양자가 툭 내뱉었다. 그 말을 받아서 되묻는 것은 전혀 엉뚱한 사람이었다. 현무 중 한 사람에게 붙들려서 끌려오다시피 한 두홍이었다.
두홍은 앞뒤를 전혀 모르고서, 기다린다는 소리에 눈을 둥그렇게 치떴다. 이미 사용한 안가라고 하지만, 계속해서 뭔가 찾아오는 것은 정말 마다하고 싶은 일이다.
이미 청성과 아미의 제자가 들어온 것만으로도 가슴이 쿵쿵 내려앉을 지경이다. 그런 판국에 또 누가 찾아온다는 것인지.
도저히 모를 지경이라서, 한층, 또 한층 불안했다.
불안이 솔직한 두홍의 검은 얼굴을 보면서 풍양자는 히죽 웃었다. 소명은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가짜 도사!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거야!”
“어허, 수작이라니. 사람 서운하게.”
창틀에 앉은 풍양자는 거드름 피우듯이 헛기침을 한 번 내뱉었다.
“그럼, 그럼, 뭔데!”
“저쪽에서 찾아올 것을 얌전히 기다린다는 것이지.”
“저……쪽? 설마 홍천교? 아니, 여기를 어찌 알고?”
“하하하.”
두홍은 상황을 바로 알아듣지 못하고서, 어벙한 기색으로 되물었다. 그러자 풍양자는 그만 소리 내어 웃었다.
수작을 부리기는 한 것이다.
두홍은 그만 열이 올라 뒷목을 덥석 움켜쥐고, 억! 소리를 터뜨렸다.
“이, 이이. 가짜…… 가짜 도사아!”
저기서 일어나는 소란이야 어떻든, 당민은 문가에 기대고 있다가 허리를 세웠다.
“풍양자, 그들이 여기를 알고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나?”
“당연하지. 그러라고 소식을 흘린 건데.”
풍양자는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소식을 흘렸다니. 그것은 양정과 장우빙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수작질은 수작질이 아닌가.
당민은 눈동자를 치켜들어 다른 곳을 보면서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풍양자는 턱을 들고서, 딴청 피우듯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밝은 햇빛이 눈가를 비추었다. 눈이 부신 모양인지 눈매를 가늘게 떴다.
조용히 쓴웃음만 짓고 있던 소명도 문득 턱을 치켜들었다.
“왔나?”
“음, 가까이 오는데.”
풍양자는 창가에서 고개를 돌렸다. 히죽 웃는 입매였지만, 그 웃음은 싸늘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엄지로 창밖을 가리켰다.
당민은 영 미심쩍었지만, 풍양자가 가리키는 창가로 다가갔다.
사방이 녹음은 짙었고, 내리는 햇살이 환하여서 눈부시다.
이는 바람이 수풀이 간간이 흔들렸다. 그러나 당민의 눈길은 착 가라앉았다. 먼 곳, 더욱 먼 곳에서 흔들리는 수풀이 부자연스러웠다.
무언가 이쪽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다.
“그렇군.”
당민은 묘한 탄성을 흘렸다. 두홍은 뒷목을 잡고서, 한참 끙끙거리다가 겨우 숨을 다잡았다. 좀 나아졌던 안색이 다시 시커멓게 물들었다.
사태를 이제야 파악했다. 안가는 들통이 난 셈이고, 또 몸을 피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두홍은 정말 싫은 얼굴로 어깨를 늘어뜨렸다. 이제는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아, 정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