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66
266화. 감숙의 전귀(戰鬼)
천호라는 것들 몇 앞에서는 아주 서슬 퍼런 모습을 보였지만, 막상 군영이 가까워지자 영 불편한 기색이었다. 행여 십삼황자가 다른 마음을 품은 것이라면.
오군도 그렇지만, 감천방도 좋은 기색이 전혀 아니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안가를 중심으로 따로 갖춘 군영으로 들어섰다.
“장군!”
“장군!”
감천방을 알아본 백귀군의 군졸들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그들 얼굴에는 안도가 뚜렷했다.
“무사하셨군요. 장군!”
“정말 걱정했습니다.”
“허허, 걱정은 무슨…….”
감천방은 수하들을 다독이면서도 영 이상하다는 얼굴이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명도 없이 멋대로 여기까지 와 있는 것만으로도 참 열불이 솟는 일인데. 이들 기색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더욱 의아했지만, 한 명, 한 명을 붙잡고서 뭐라고 대화를 나눌 때가 아니었다. 한 걸음 앞에서 장벽군이 별다른 소리는 없어도, 눈길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크흠, 나중에 얘기하도록 하지.”
“아이쿠, 그렇지요. 황자전하께서 계시는데.”
군졸들은 대충 상황을 짐작하고는 우르르 물러났다. 일사불란한 모습인데. 그것이 또 기이했다.
“도대체가 모르겠군.”
감천방은 잇새로 낭패한 속내를 짓씹으면서 걸음을 다시 옮겼다.
안가, 허름한 그곳에 그대로 들어섰다. 햇빛이 스며들어서, 방 주변에 고인 먼지가 반짝거렸다. 그리고 한 젊은이가 상좌에 앉아 있었다. 그냥 손 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서류를 빠르게 살피는 중이었다.
한 장, 한 장이 백귀군의 군세에 관련된 것이고, 또 다른 것은 감숙 일대의 병력 규모였다. 어느 것 하나 중하지 않은 내용이 없었다.
그러나 소리 높여 따질 수는 없었다.
장벽군은 다른 예의를 따지지도 않고, 벌컥 안으로 들어섰다.
“황자 전하. 백귀군의 감천방, 감 장군이십니다.”
“감 장군이라? 행방이 묘연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가 돌아왔다고?”
서류 사이에서 황자는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예, 안가로 돌아오는 감 장군을 주변을 살피다가 조우하였습니다. 옆에는 개방의 사천 분타주, 오군 분타주라고 합니다.”
“오군 분타주. 아, 무사하셨던가.”
사뭇 단조로운 목소리였다. 그런데 말투를 들어보니, 자신을 아는 듯하지 않은가. 오군은 귀를 쫑긋 세웠다. 어째 들은 듯한 목소리이기는 한데.
“드시지요.”
장벽군이 한걸음 물러섰다. 그 자리로 두 사람은 마지못해 들어섰다.
감천방은 즉각 두 손을 맞잡고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
“십삼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천세, 천세, 천천세.”
거듭 머리를 조아렸다. 오군도 눈을 둥그렇게 뜨고서 무릎까지는 꿇었지만, 뭘 더하면 좋을지 몰라서 두 손만 맞잡았다.
“미거한 백성, 오군이…….”
감천방도 그렇고, 오군도 그렇고, 참 부족함이 많았지만, 그것을 트집 잡는 사람은 없다. 서류 사이에서 사내가 벌떡 일어나서는 오군의 말문을 잘랐다.
“오군 분타주. 무사하셨구려. 다행입니다.”
“예? 예, 예.”
오군은 고개도 들지 못하고 연신 대꾸했다. 그러자 십삼황자는 피식 쓴웃음을 그렸다.
“그쯤 해두고, 그만 고개를 드시지요. 감 장군도.”
“아아…… 으잉!”
오군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다가, 그만 두 눈을 한껏 치떴다. 잇새로 놀란 소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감천방은 상황을 전혀 몰랐지만, 오문은 놀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눈앞에서 싱긋 웃는 젊은 사내, 그는 바로 당가에서 같이 출발하였던 청년, 이청이 아닌가.
그저 당민의 어렸을 적 친구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단정한 모습의 평범한 유생이 아니었다. 금빛 번쩍거리는 두정갑을 갖추었고, 딱 올린 머리에 금박의 용문건을 둘렀다.
은은한 위엄을 드리운 듯했다.
“어, 어어?”
자리를 지키는 장벽군이 퍼뜩 눈을 부라렸다. 아무리 황자가 고개를 들라 하였다지만, 저렇게 빤히 보면서 손가락을 들썩거리다니.
“무엄하다! 어느 앞이라고 감히!”
쩌렁 내지른 일성이 묵직하다. 오문은 바짝 정신을 차렸다. 이래저래 머릿속이 뒤엉킨 실타래처럼 엉망이라고 해도, 자리를 파악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이코, 미거한 백성이 그만…….”
“그만 두시오. 장 천호, 자네도 관두고. 여기 오군 분타주는 사천의 백성을 위해 직접 몸을 던진 일세의 의협지사일세. 자네나, 나나. 허례허식 따위로 트집 잡을 분이 아니야.”
이청이 어지러운 상황을 무마했다. 그리고 따로 자리를 마련토록 하였다. 내내 감천방은 얼떨떨했다.
이윽고 마련된 자리에서 이청은 오문과 감천방, 두 사람을 마주하고 앉았다.
“그…… 황자 전하.”
“말하게.”
“상황이 어찌 된 것인지?”
“그 자리에서 각자 헤어진 이후, 본 황자는 바로 감숙으로 올라갔소. 사천일대의 병력이 비었다는 것을 알았으니. 다른 방책이 떠오르지 않더군. 그런데…….”
이청은 담담한 어조로 일어난 일을 설명했다. 그저 강호의 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사천의 병력이 뻥 뚫린 것처럼 비었다. 그것은 다른 이유일 리가 없었다. 홍천교와 손을 잡았을 확률이 훨씬 높았다. 그것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군세가 필요했다. 아울러서 변방의 상황을 살펴야 했다.
그런 와중에, 감숙의 정병 중에서도 손꼽히는 백귀군에 변고가 있는 것을 파악했다.
백귀군을 이끄는 장수가 홀연 실종된 것이다. 수하들에게 다른 언질을 주지도 않고 자리를 비웠다는 것이다. 거기서 이청은 시작했다.
은연중에 따로 언질을 두었기에 일을 처리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도 소탕을 위해서, 이미 황명을 받아놓지 않았던가.
하남 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몇몇 정예를 따로 불러모으면서, 백귀군을 그대로 움직이게 했다. 그것도 아주 은밀하면서도 신속한 이동이었다.
아직 사천으로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감숙병은 이곳에서 모든 준비를 다 끝내었다. 채 보름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건만, 이청은 모든 것을 속전속결로 해치웠다.
힘 있는 사람의 추진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감천방은 면목이 없어서, 고개를 숙였다. 군령에 의해서 목을 내어도 할 말이 없었다.
“감 장군.”
감천방은 눈을 질끈 감았다. 자리에 더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털썩 한쪽 무릎을 무겁게 꿇고서 퍼뜩 두 손을 맞잡았다.
“황자 전하. 다시없을 큰 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청컨대, 죄인을 벌하시어 감히 임지를 벗어나려는 자가 다시는 없도록 하게 하소서.”
일벌백계를 청하는 바이다. 이청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당장 눈앞에 마구니가 한가득하다. 지금은 사천이라는 한 지역이었지만, 저 불길이 어찌 번져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감 장군, 상황을 직시하시오. 국경을 지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천을 어지럽히는 삿된 무리를 처리하는 것이 급하오.”
“황자 전하.”
감천방은 놀라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청은 웃음기라고는 조금도 없이, 딱딱한 얼굴이었다. 다과 따위는 다 집어치우고, 먼저 펼친 것은 일대의 행로를 그려놓은 지도였다.
대강 그려놓아서,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아니면 마구잡이로 선을 죽죽 그어놓은 낙서처럼 보일 뿐이었다. 감천방은 지도를 보기가 무섭게 더 할 말도 잊고서, 덥석 지도를 붙들었다.
움켜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고작 몇의 선으로 이어놓았을 뿐이지만, 감천방은 경험 많은 전장의 장수, 그 행간을 파악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어떤 것은 어려운 길이고, 어떤 것은 가능한 길이다.
이렇게 지도를 따로 남기기까지, 얼마나 고민을 거듭하였을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훤할 정도였다.
“허, 허어.”
감천방은 그만 벅찬 숨을 토했다. 길목은 위험했다. 상당한 보신경을 지닌 무림의 고수라도 결코 쉽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길목으로 일군을 이끈다는 것은 더군다나 어려운 일이었다.
“황자 전하, 이것은…… 이것이면…….”
“피해는 무시하지 못할게요. 그러나 마냥 손 놓고 있다가는 백성의 피해가 더욱 커지겠지. 본 황자는 그것을 간과할 수가 없소이다.”
“지당하신, 실로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감천방은 바로 얼굴을 돌변하여서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모험에 가까운 일이다. 따로 들기에 힘겨운 사천이다. 그런데 지금 십삼황자는 실낱같은 길목과 길목을 기어코 이어서 군세가 지나갈 만한 자리를 마련했다.
그것은 여기 감숙의 제일 남방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소수정예로 들어가야 하오. 어디 그것뿐이겠소. 아무도 뒤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마도의 수작은 무시할 것이 아닐 터이고.”
이청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나직이 읊조렸다.
뭔 소리인고, 마냥 멍하니 잇던 오군이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이청 소……아니, 황자 전하.”
“말씀하시오. 오군 분타주.”
“다 좋은 말씀입니다만…… 과연 군세로 마도의 수작을 제압할 수가 있겠습니까?”
오군은 걱정이 앞섰다.
사교는 모르겠지만, 뒤에 마도가 있다는 것은 이제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아무리 정예의 강군이라 한들, 일반 병사가 마도의 괴물을 어찌 제압할 수가 있을까. 그것은 감천방과 그 군세를 무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마땅한 걱정이었다.
개방이다. 마도의 제일적이라 하면서 서로 천하에 다시없을 원수로 여기는 마당이다. 그만큼, 마도에 대한 정보는 물론 두려움조차 다른 어느 곳보다 빠삭하다.
“확실히 오군 분타주의 지적은 일리가 있소. 본 황자는 이들로 하여금 홍천교에 넘어간 사천의 군병을 제압하고자 함이오. 마도를 일소하는 것은 또 다른 이의 몫이란 말이지.”
“다른?”
“지금쯤이면 모두 마주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청은 사뭇 자신만만했다. 삼천의 군세, 그리고 이끄는 것은 십삼황자인 자신이다. 명분으로는 단연 압도할 수 있겠지만, 막상 전력으로 삼자면 채 한 줌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청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아오, 인간아. 뭐가 그리 급하다고, 혼자 달려가냐.”
민강의 굽이진 물줄기가 더욱 세차게 흐른다. 그런 곳에서 소명은 대뜸 험한 소리 한 바가지를 먼저 들었다. 그러나 싫은 기색보다는 흐린 미소가 떠올랐다.
거대한 배 한 척이었다.
민강의 깊은 물결에도 이만한 배는 좀체 볼 수가 없었다.
뱃머리에 용두를 세웠고, 층을 이루어놓은 마당에, 노만 해도 수십에 이르렀다. 일대의 군선도 이만한 위용을 보이지는 못할 터이다.
그런 곳에서 소명은 위지백과 마주했다. 대선과 함께 등장한 위지백은 사뭇 득의만만한 얼굴이었다. 어떻게 알고 왔느냐는 말은 필요치 않았다.
천룡세가가 갖추고 있는 정보망은 방대하였고, 또한 이청이 손을 쓰기도 하였던 터였다.
위지백은 도를 어깨 위에 걸쳐놓고서, 풍양자를 홱 돌아보았다.
“이야, 가짜 도사. 멀쩡히 살아 있네. 딱 봐도 객사할 관상인데. 용케 화는 면한 모양이군.”
“쯧.”
풍양자는 콧등을 잔뜩 찌푸리고서, 못마땅함에 혀를 찼다. 같이 어울려 주기에는 피곤하다는 투로 홱 고개를 돌려버렸다.
위지백은 실실 웃기만 웃었다.
‘아오, 저 골치 아픈 놈.’
같이 있으면 불편하지만, 등을 맞대기에는 저이보다 듬직한 사람도 없다. 풍양자는 얼굴은 찌푸렸을지라도 험한 소리는 하지 않았다.
장관풍, 도기영은 위지백 뒤에서 멀뚱거리는 눈으로 있었다. 소명은 그들도 환대했다.
“이렇게 한칼을 거들겠다고 와주다니. 고맙네.”
“아이코, 천만의 말씀을요. 응당 나서야지요.”
“그럼요, 그럼요. 마도가 얽혀 있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어찌 마다할 수가 있겠습니까.”
둘은 냉큼 고개를 숙였다. 사뭇 결의가 넘쳤다. 소명은 그런 둘의 모습에 언뜻 눈을 다시 떴다. 얼추 달포 남짓, 그 정도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두 사람의 기파가 이전과는 또 달랐다.
상당한 성취를 보인 것이 분명한데. 소명은 오래 고민할 것도 없이, 곧 연유를 깨달았다.
“아하, 이것 참. 고생이 많았겠군.”
“……읍!”
“허읍!”
둘은 동시에 어깨를 들썩거렸다. 별말을 하지 않더라도, 바로 상황을 짐작하는 소명이 놀랍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였다.
소명이 있을 때도 그러하였지만, 없을 때 위지백은 한층 독하게 손을 쓰고, 둘을 굴렸다. 딱 죽다 살겠다는 소리가 간신히 흘러나올 지경이었다.
그렇게 십수 일이라서. 자신들이 돌아보아도 말도 못 할 정도로 각자 성취를 이룬 것을 깨닫고 있었지만, 마냥 대견하기보다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진경을 이루었으면, 또 이룬 만큼이나 드높은 시련이 자신들을 기다리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네에.”
“위지백, 저놈이 장난은 심하더라도 이루지 못할 사람에게 마구 손을 쓰는 무도한 놈은 아니야. 자네들, 잘 이겨내었어.”
소명은 두 사람을 잠시 다독였다. 그런데 풍양자 옆에 있던 위지백이 냉큼 고개를 돌렸다.
“뭐야? 뭐? 지금 내 욕했지!”
“아닙니다!”
“그럼요, 결코 그러지 아니하였습니다!”
장관풍과 도기영은 소명의 차분한 말에 감동하여서 눈물을 글썽하다가, 화들짝 놀라서는 빽 소리쳤다.
소명은 위지백이 소매를 걷어붙이고서 이를 잔뜩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장난기 가득한 모습이다. 얼굴은 험악하게 하지만, 당황하는 둘을 보면서 내심으로는 웃고 있을 것이다.
“하이고, 저놈. 하여튼…….”
“대공자.”
문득 뒤에서 단삼 걸친 사내가 조심스럽게 다가섰다. 소명은 웃던 입술 끝에 힘주어 찌푸렸다. 편치 않은 소리였다.
불편한 눈으로 고개를 돌리자, 다가선 단삼의 사내는 그만 고개를 숙였다.
“그리 부르지 마시오.”
“허나, 천룡께서.”
“…….”
변명처럼 말을 꺼내려다가, 그는 지그시 보는 눈길에 짓눌려서 일단 말을 삼켰다.
“세가에서 이리 도움 준 것은 잊지 않으리다. 그 정도로 해두시오.”
“네, 대……아니……권야 공.”
단삼 사내, 천룡세가 아래에 있는 수룡기의 일기주는 얌전히 고개를 조아렸다.
수룡기는 장강의 물결을 끝에서 끝까지 아우르는 건실한 일문이었다. 몇 척인가 대선으로 직접 운송을 하기도 하고, 운송을 지키기도 한다.
무가련의 황보씨가 자랑하는 흑선회와 함께 장강일대에서 이름이 견고했다. 장강수로십팔채라 일컫는 수적들도 수룡기 앞에서는 바로 양보할 정도였다.
누구는 뒤에 황실이 있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쌓은 성과에 비하면 알려진 바가 드물었다.
그런 수룡기는 본래 천룡의 깃발 아래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