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73
273화. 무너지는 홍천
당민에게 제압당한 삼사령은 대사령을 두고서, 십변만화하는 존재라 하였다. 교주 홍산아 또한, 대사령에 대해서는 진실한 정체를 감추고서, 수많은 모습으로 변모하는 이능을 지녔다고 했다.
그럼에도, 사지육신을 갖추고 있는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타고난 마도의 핏줄로 기기묘묘한 이능을 발휘할 뿐이다.
소명은 그런 것에 저어되지 않았다.
제대로 모습을 드러낸, 대사령 모습을 마주하고서 고요한 눈빛만 발했다.
소명은 그를 빤히 보다가, 툭 한 마디를 던졌다.
“그렇군. 홍혈족의 족장이시군. 하기야 그 정도는 되었어야, 좌현사도 일을 맡겼겠지.”
“…….”
대사령이기 이전에, 성마를 모시는 다섯 혈족 중 홍혈족 족장으로서, 아람타는 입을 닫았다.
눈가를 온통 뒤덮고 있는 푸른 불꽃의 문양이 흐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눈가에 맺힌 하얀 안광이 색을 달리했다. 혼탁한 검붉은 빛이 은은하게 머물렀다.
혈족의 존재를 아는 외인이 있다는 것 또한 믿을 수가 없거늘, 상대는 자신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럴 수 있는 외인이 대체 누가 있단 말인가.
마도의 오랜 숙적이라 할 수 있는 소림과 개방에서도 오대혈족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적다. 지금처럼 십분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정체를 알아보다니.
한참 침묵한 끝에, 아람타는 고개를 기울였다.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가면서, 잔인한 웃음을 드러냈다.
“참 여러 가지를 아는 모양이구나. 점점 네놈 정체가 궁금해지는군. 설마…… 배교자인가?”
아이의 얼굴을 하고서 짓는 악마의 웃음은 더욱 기괴하였고 주변을 압도하는 바가 있었다.
“배교는 개뿔. 그쪽으로는 발가락 하나 담근 바가 없다.”
“오호호. 그래. 그렇구나.”
둘러대는 말일 수도 있었지만, 아람타는 깊이 따지려 들지는 않았다. 무언가 있는 자. 그러나 큰일을 앞에 두고서, 섣부르게 손 쓸 생각은 없다.
아람타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주춤 한쪽 발을 뒤로 뺐다.
소명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뭐냐, 족장씩이나 되는 자가 물러나려는 건가?”
“흐, 흐흐. 물러나? 아니, 그건 내가 할 말이지. 너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나 하는 게냐? 네놈 스스로 지옥 굴로 뛰어들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음산하게 웃었다. 지옥 굴 운운하는 소리에, 소명은 이를 드러냈다.
“지옥, 그래 지옥 굴인 줄은 아주 잘 알지. 아주…… 잘…….”
고개를 돌렸다. 바위 아래에서 낯선 눈길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고개 숙인 채, 빗어낸 토우처럼 고개 숙이고 서 있던 수많은 그림자가, 지금 빳빳하게 고개 들어, 소명 한 사람을 빤히 보고 있었다.
바윗돌에 깔려서 상당수를 잃었다고 하나, 그래도 일천에 가까운 자들이었다.
각양각색의 차림으로, 승도속(僧道俗)은 물론, 무장, 무관의 차림을 한 자도 수도 없었다. 소명으로서는 면면을 정확하게 알아볼 수가 없었다. 아니, 누구라도 그러할 것이다. 워낙에 많은 이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누구랄 것 없이, 다들 각자 경지를 갖춘 고수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납빛으로 물든 얼굴에, 백태가 어린 것처럼 탁한 눈이 소명, 한 사람을 보고 있었다.
역천대묘(逆天大墓).
아람타는 지하를 그렇게 칭했다.
자신들도 알고 있다. 이것은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다.
산 자를 현혹하여서 부리는 실혼의 술 따위, 여기서 벌어지는 일에 비하면 장난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죽은 자들, 혹은 거의 죽어가는 자들의 백을 빼앗아서 병기로 삼는 일이다.
여기 있는 자들을 두고서, 마혼병이라 하였다.
사람이되 사람 아닌 병기로, 저것은 성마가 직접 제작한 마동에 버금가는 삿된 존재이다.
창천을 똑바로 마주하고서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다.
아람타는 이것 하나를 상당히 공을 들여서 주도면밀하게 준비했다. 마혼병 일천을 갖추기 위해서 홍천교의 교세를 더욱 크게 키웠고, 닥치는 대로 세를 부풀려 오지 않았던가.
무수한 생명이 필요한 일이었다.
마혼병이라는 뛰어난 병기를 만들기 위해서, 소요되는 재물은 굳이 계산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재물이었다. 인혈과 생목숨이 바로 그것이다.
대성회는 마지막으로 필요한 관문이고, 그에 대한 뒤처리도 물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을 위한 감숙병이었건만, 영악한 어린 교주 녀석의 훼방으로 그만 틀어졌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홍천을 버리는 쪽으로 계획을 달리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크.”
아람타는 쓰게 웃었다.
여하간에, 아람타는 우뚝 버티고 서 있는 불명의 사내를 물끄러미 노려보았다. 다시금 살피지만, 딱히 기억할 만한 건덕지는 없었다.
하얗게 먼지 앉은 남색 장포를 걸쳤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대충 뒤로 넘겼다. 드러난 외견으로는 사뭇 심지가 굵은 듯한 모습이다. 아울러, 마혼병이 깨어나면서 서서히 발하는 사기를 앞두고도 미동도 없다는 것이 주목할 만한 점이었다.
무공의 고하와는 관련이 없는 일이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꺼리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으련만.
“정체가 무엇이지. 사람이기는 한 건가.”
아람타는 새삼 눈을 가늘게 떴다. 얼굴 한쪽을 뒤덮고 있는 푸른 반점에서 은은한 열기가 맴돌았다.
소명은 느리게 움직임을 시작한 마혼병을 둘러보았다.
아직 완전하지 않다. 저것들이 제대로 마성을 드러내고, 복종하게 하기 위하여서는 다른 수작이 필요하고, 그것이 곧 대성회라 부르는 짓거리일 터이다.
“대성회 어쩌고 하는 것이. 고작 이딴 것들을 깨우는 일이었던가?”
“깨운다. 아니, 그런 정도로 말하기에는 부족하지. 대성회라 함은 곧 성마께서…… 하, 하하. 아니지. 아니지. 굳이 여기까지 입에 담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어디 재주껏 용을 써보아라.”
훌쩍 물러선 아람타는 키득거렸다.
바윗돌에 제대로 깔린 마혼병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어느 정도에 불과한 자들은 느리게나마 몸을 세웠다. 그들이 꿈틀거릴 적마다 우득, 우드득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틀어진 뼈마디가 절로 맞춰지는 소리였다.
소명은 아직 마성을 드러내지 않고, 서성거리기 시작하는 일천 마혼병을 물끄러미 보았다.
저들은 낙양에서 마주한 실혼인과는 전혀 다르고, 또한 천산에서 마주한 마도의 괴인과도 다르다.
소명은 주먹을 그러쥐었다. 조금도 물러나려는 기색이 없었다.
“때가 좀 이르기는 하지만. 대성회의 시작이다!”
아람타는 퍼뜩 두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쿠웅! 쿠웅! 그러자 사방 벽을 타고서 묵직한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소명은 번쩍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런 젠장…….”
이를 드러내고서, 낭패한 속내가 새었다.
벽이 열렸다. 한쪽 벽이 좌우로 천천히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곳으로부터 이제껏 맴돌던 냉풍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치 차가운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아쳤다.
그래도 띠를 두른 듯이 공동을 에워싼 붉은 불길은 흔들리기만 할 뿐, 꺼지는 일은 없었다. 홍혈족의 족장이 일으킨 마도의 불길이 오죽할까.
“흐, 흐흐흐.”
아람타는 스산한 웃음을 흘렸다.
열리기 시작하는 벽을 향해서, 마혼병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백탁 어린 눈가에서 서서히 검은 빛이 차올랐다.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흐압!”
두웅!
땅이 크게 울리고, 힘껏 내지른 기합성은 그것마저 압도한다. 허리가 틀어지고, 만여 근에 이르는 발 구름이 쌓인 돌무지를 짓눌렀다.
그리고 내지른 일권.
족히 백 걸음 이상이나 떨어진 거리를 격하고서, 서서히 열리는 벽의 좌우를 후려쳤다.
끼이익! 듣기 싫은 기음이 귀를 찔렀다. 서서히 벌어지던 벽이 그만 멈췄다. 한 사람이나 간신히 들어설까 싶을 만큼 벌어졌을 뿐이었다.
끼이익! 듣기 싫은 기음이 귀를 때렸다. 그러고는 열리던 벽이 그만 멈췄다.
그리고 소명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몸을 날렸다. 아직 진면목을 드러내지 못하는 마혼병은 두려울 것 없었다. 그리고 홍혈족장 아람타도 순간적이나마 멍하여서는 바로 손을 쓰지 못했다.
소명은 열리다가 멈춰버린 벽 앞에 우뚝 멈춰 섰다.
“일단은 이 정도.”
장정 한 사람이 어깨를 맞닿으면서 간신히 지날 수 있을 정도였다. 사이로 보이는 것은 끝 모를 깊은 어둠이다.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이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거칠게 흩어냈다.
소명은 곧 몸을 돌렸다.
침묵하는 마도 종자들을 향해서.
“자아, 어디 와봐라.”
아람타는 소명이 앞을 막아서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못 볼 것을 본 모습이다. 아니, 이제 소명의 정체를 알아본 것이다.
그는 덥석 이를 악물었다. 온몸에 힘이 뻣뻣하게 들어갔다.
“으, 으으으.”
잇새로 신음이 흘렀다. 이내, 휘감은 불길이 화르륵 일었다.
“네놈 권야, 권야로구나!”
알아보았다. 아니, 어찌 알아보지 못할 수가 있을까.
내지르는 일권에 산악이 무너진다. 성산을 크게 뒤흔들었던 그 소리가 지금 여기서 다시 터져 나왔다.
덕분에 성마의 존체를 찾는 일이 더욱 늦어지지 않았던가.
백년을 준비하였던 대계가 크게 어그러진 것을, 좌현사가 죽을힘을 다하여서 붙잡았다. 그때 일이 아니었다면, 홍혈족장인 자신이 여기까지 오는 일도 없었을 것인데.
아람타는 노성을 터뜨리면서 양손을 빠르게 휘저었다.
드넓은 공동 벽을 타고 일렁이던 불길이 다시금 폭발하여 솟구쳤다. 마치 하나의 화룡을 불러낸 것처럼, 펄럭이는 불길이 아람타의 머리 위에서 맴돌았다.
으르릉!
화룡의 효후가 낮게 울렸다.
그 앞에서 소명은 남색 장포를 뒤로 거칠게 넘겼다. 비스듬히 마주하면서, 느릿하게 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것으로 일체의 준비는 다한 셈이다.
화룡의 형상은 이를 드러내더니, 냅다 앞으로 달려들었다.
허공을 태우는 열기가 무엇보다 뜨겁다.
소명은 엄습하는 화룡을 향해서 묵묵히 손을 마주했다. 허공을 그러잡고, 다시 휘감는 듯하다.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화룡의 열기는 소명의 한 손이 그리는 궤적을 꿰뚫지 못하고, 산산이 흩어졌다. 불똥이 마구 치솟아서, 엉뚱한 곳을 태웠다.
소명은 앞으로 내민 손을 천천히 거두었다.
장심에서는 하얀 연기가 뚜렷하게 솟았다. 화룡의 열기는 과연 대단하여서, 스친 자리에는 바윗돌이 녹아내렸을 정도였다. 그래도 소명의 손에는 다른 흔적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피어오르는 연기야 몇 번 손을 흔드는 것으로 죄 흩어졌다.
화룡의 불이 아무리 뜨겁다고 한들, 곤음수를 어찌하지는 못하였다.
상극 중의 상극이었다.
맥없다 할 정도로 흩어진 화룡.
아람타는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훌쩍 물러났다.
“과연, 과연 권야가 분명하구나.”
소명은 열기가 은은하게 맴도는 한 손을 가볍게 쥐었다가 피면서 고개를 비틀었다.
“흐, 흐흐. 여기서 권야를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아람타는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분노가 실린 목소리가 공동의 벽을 타고서 크게 울렸다.
“좌현사께서 네놈을 마주하기를 얼마나 고대하고 있는지, 네놈은 모를 것이다!”
“모르겠지. 알고 싶지도 않고, 알 바도 아니고. 뭐 좋은 사이라고.”
소명은 살기가 요동치는 아람타의 일성을 시큰둥하게 받아쳤다. 솔직한 심정 그대로였다.
전혀 알 바가 아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홍혈족장과 막 뛰쳐나가려 드는 마혼병을 막아내는 것이 전부일 뿐이다.
소명은 길목을 막아선 채, 그저 주먹만 내밀어 보였다. 더는 나눌 말이 없었다. 여기서 저것들이 뛰쳐나가면 피해를 입는 것은 홍천을 빠져나가는 일반 민초이다.
“노옴! 방자하다.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여!”
좌현사에 대한 비아냥에, 아람타는 다시금 핏대를 잔뜩 세워 다그쳤다.
“자아, 웃기는 소리는 그쯤 해두라고.”
아람타는 덥석 입술을 깨물었다.
홍혈족장으로서 이토록 무력한 것은 좌현사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그래도 좌현사는 성마의 가호를 받는 자.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저기 권야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흐, 흐흐. 그래. 어차피 치울 자. 고민하는 것이 우습지. 마혼병이여, 치워라.”
아람타는 이내 스산한 웃음을 흘렸다. 여기서 마주하게 될 줄이야. 성마 이래로,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마도제일적이 아닌가.
이보다 마혼병의 시작으로 어울리는 목은 없을 것이다.
마혼병은, 개중에는 아람타의 홍혈족 불길에 타들어 가는 몇도 있었지만, 그들은 그저 옷가지나 타들어 갈 뿐이지,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고서 소명을 향해 움직였다.
이제 시작인 셈이다.
아람타가 발하는 열기와 급하게 외우는 주문을 쫓아서 마혼병은 하나, 둘 몸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