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78
278화. 성도대란(成都大亂)
당민은 사천련의 숙영지를 조용히 벗어났다.
곳곳에 잠 못 이룬 자가 여럿이고, 친숙한 얼굴 또한 많았지만, 굳이 마주하면서 회포를 풀 때가 아니었다. 바로 치고 들어가기로 한 마당이었다.
괜히 말을 섞으면 오히려 때가 늦어질 뿐이고. 정보가 샐 염려가 무엇보다 컸다. 모르는 상대와 알고 기다리는 상대는 전혀 딴판이니까.
지금처럼 대규모의 일전이라면 더욱 큰 불안요소라 하겠다.
당민은 일행에게 바로 돌아갔다.
수룡기 일백무사, 그리고 풍양자와 양정, 장우빙이 눈을 크게 반짝이면서 당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쪽은 어떤 상황인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더군. 무엇보다 선봉에 대한 부담이 상당한 모양이야. 어느 한 곳에 맡기기에는 불안하고, 미덥지 못한 것이겠지.”
“음.”
풍양자는 가만히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여력이 있는 곳이라면 희생을 강요한다고 여길 것이고, 여력이 없는 곳은 실패의 위험이 크다. 어느 쪽이든 고약한 상황인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말이 좋아서, 사천의 무림련이라고 하지만, 결국에는 급조한 연합체인 것이다. 한계는 쉽게 드러난다.
“그럴 법한 일이기는 하지.”
풍양자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들이 움츠린 언덕 너머로 붉은 깃발이 한참 불길하게 펄럭였다. 달빛조차 저문 지금에도, 저기 불길한 만큼은 조금도 뒤덮지 못했다.
당민과 풍양자, 두 사람은 잠시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어둑한 너머를 노려보았다.
당민도 그렇지만, 풍양자도 또한 고요한 불길을 품고 있었다.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사형제가 당한 변을 어찌 잊겠는가. 다만, 때가 아니기에 다잡고 있을 따름. 그나마도 이제 곧이었다. 풍양자는 잠시 숨을 다잡았다.
“슬슬 놓을 때가 되었으려나.”
바람은 불길을 억누르기도 하지만, 더욱 크게 키우기도 한다. 그때가 곧이다.
풍양자는 수염으로 거친 턱 아래를 긁적였다. 꽤 서두른 탓에 관은 물론 걸친 도포조차 흙먼지가 그득하다.
“그래서 계획은 따로 세웠나?”
“일거에 중앙을 꿰뚫고, 좌우로 흩어지는 자들은 사천련에 맡긴다.”
“흠, 간단해 좋군.”
“그대로 돌파해서, 머리를 쳐야 해.”
“굳이 할 필요도 없는 말이라…… 하고 싶지만, 유념하지. 머리, 머리를 치면, 저것들 광기가 좀 줄어들까나?”
“줄어들지. 줄어들고말고.”
당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제일 경계해야 할 것은 홍천의 군세 자체가 아니라, 저들을 휩쓸고 있는 광기였다. 신을 위한 것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몰라도 제대로 이지를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삿된 술법에 당한 것인지. 수천에 이르는 자들이 넋을 잃고, 그저 홍천 세상만을 읊어대고 있다. 저들이 보이는 광기는 들불처럼 일어나 붉은 깃발처럼 펄럭거린다.
그러나 다른 눈으로 자세하게 살피면, 저것이 전부 사람의 피요, 원혼이며, 넋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도를 에워싸고서, 지옥의 한 귀퉁이를 펼쳐내는 셈이다.
“무량수불, 참담한 것들이로다.”
“무량수불도, 원시천존도 당장은 없으니. 도사께서 힘 좀 써주셔야지.”
도호와 함께 한탄하니, 당민이 넌지시 말을 건네었다. 그러자 풍양자가 짐짓 심각한 얼굴로 있다가 히죽 웃었다.
“흠, 흠, 파사의 재주는 딱히 없네만. 그래도…… 당 아가씨가 그리 말씀하시니. 먼저 나서 보도록 하지.”
“도와줄 건?”
“뭐, 딱히 있을까. 그래도 기왕에 손을 쓸 셈이면 너무 기다리게 하지 말라고.”
풍양자는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는 턱을 당기면서 먼 곳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저기 동천에서부터 서서히 색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날은 곧 밝아온다.
뒷짐을 진 채,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조용하게 걷는 모습은 어디 산보라도 하듯이 가벼운 모습이다. 다만, 어깨 위로 서서히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서서히.
당민은 먼저 나서는 풍양자를 지켜보다가 문득 손을 들어서 얼굴을 덮었다. 그리고 드러나는 것은 예의 녹면이다.
녹면옥수, 그 이름대로. 당민은 투명한 유리알 같은 눈동자를 번뜩였다.
홍천교는 뒤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은 성도의 높은 성벽을 향한 채, 기이한 울음만 거듭 토해낼 뿐이다. 우두머리라는 것들은 가까이 사천련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치려거든 쳐보라는 듯이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탓인지. 바로 뒤로 낯선 이가 설렁설렁 다가설 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애초에 경계라는 것이 없으니.
풍양자가 바로 뒤에 이르고서야 느리게 고개를 돌리는 자들이 태반이었다.
“…….”
그럼에도 초점 없는 그들 눈초리에는 어떤 놀람이나, 두려움도 없었다. 가까이 다가선 풍양자의 모습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저, 적? 적인가?”
느리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혀가 굳은 채, 약에 취한 사람처럼 떠듬떠듬 한마디 뱉는 것이 힘겨웠다. 그래도 본래에 힘을 쓰던 자인지, 풍양자를 향해서 경계하듯 투박한 칼날을 들이밀기는 했다. 그러면서 몽롱한 눈가에 붉은빛이 서서히 피어올랐다. 광기가 일어나는 것이다.
고개를 잔뜩 비트는 것과 함께 끄으윽, 기이한 신음을 쥐어짰다. 하나, 둘이 아니라 고개 돌린 전부가 그렇게 돌변하는 모습은 섬뜩할 정도였다. 풍양자는 냉정한 모습으로 손을 들었다.
바람이 일었다.
풍양자를 중심으로 빠르게 맴돌았다.
검기를 품은 바람, 풍령인을 전신에 두르고서 풍양자는 그대로 나아갔다.
더욱 서두를 것도 없이, 평범한 걸음, 그러나 스치는 모든 것은 풍양자 앞에서 갈라졌다. 피가 튀고, 목과 팔다리가 마구 치솟는다.
비명은 없었다.
느리게 움직이는 자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한 것인지 바로 깨닫지 못했다. 땅에 떨어지고서 목이 떨어졌구나, 허리가 끊어졌구나를 알 뿐이었다.
고통도, 두려움도 느끼지 못하는 자들이다. 느리게 허우적거리다가 천천히 멈췄다.
풍양자는 굳은 얼굴로 깊이, 더욱 깊이 나아갔다. 파고드는 걸음에 지체는 없고, 주변으로는 피바람이 거칠게 일었다.
홍천의 광기가 타오르기 시작했지만, 한참 뒤늦었다. 달려드는 뜨거운 광기, 휩쓸린 홍천의 군세들은 괴성을 내지르면서 풍양자를 짓눌러 버리고자 뛰어들었다. 그러나 도도하게 솟구치는 차가운 바람에 쓸려나갈 뿐이다.
어중간한 바람이라면, 광기를 부채질하여 되레 큰 불길을 초래할지도 모르려나, 풍양자의 손끝에서 일어나는 풍령인은 단호했다.
청성산에서 비롯한 맑고 청량한 바람은 모든 것을 휩쓸었다. 품은 예리한 기운은 농밀하였고, 위력적이었다.
캬아아아!
달려드는 자의 헛된 괴성은 끝에 비명으로 돌변하여 힘을 잃었다. 몰아치는 바람에 소리는 흩어졌다.
몇 걸음 만에 한 축이 아예 무너졌다. 주변으로 피 비가 쏟아지고, 핏물이 잔뜩 고여 진창을 이룬다.
풍양자는 전신에 검기경풍을 두르고 그대로 가로질렀다. 가장 외곽을 감싸고 있던 일군을 관통하는 것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분분히 솟구치고 나가떨어졌다. 어디 하나 성한 모습이 없었다.
성큼 나아가는 걸음에 좌우로 뻗어낸 손짓으로 도포 자락이 세차게 펄럭였다. 어김없이 일어나는 회선풍은 강렬하다. 조각난 시체가 후드득 떨어진다.
맑은 바람이 스치는 자리에 피 비가 내리니.
풍양자는 전혀 사정을 두지 않는다. 살업이고, 악업이고 그 모든 것을 어찌 마다하겠나. 사사롭게는 사형제의 원한이 산처럼 쌓였고, 다르게는 성도에 갇힌 백성의 안위가 걸린 일이다. 그보다 더욱 크게는 마도의 검은 구름이 한참 짙은 상황인데.
사정을 남긴다고 힘을 헛되이 쓸 수 없는 노릇. 무엇이 더욱 중한지는, 스스로 물어도 답할 수는 없다.
풍양자는 그저 지금 순간에 모든 것을 감당하기로 한 것이다. 눈길 닿는 사교 무리는 용서 없이 쓸어버리겠노라. 차분한 기색으로 보보를 이어갔다.
앞장서는 풍양자, 그리고 뒤이어서 일행들 또한 빠르게 다가섰다.
수룡기 일백은 과연 정예, 그들은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인다. 그야말로 집단전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무공을 지닌 무림인으로서 보일 만한 전격전이 아니었다. 전차를 앞세우기라도 한 것처럼 무참히 짓밟았고, 전열을 갈랐으며, 그대로 각개격파였다.
그들 덕분에 이와 같은 전장은 처음이라고 할 수 있는 양정과 장우빙도 발 빠르게 적응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당민이 있었다.
검기경풍이 일대를 사납게 휩쓸고, 그렇게 만들어낸 틈바구니를 수룡기가 짓밟는다. 그리고 폭염이 솟구쳤다.
꽈릉! 꽈릉!
땅을 흔드는 폭음과 함께 솟구치는 붉은 불길이 높았다. 화탄이다. 그것도 보통의 화탄이 아니라, 당가에서 비장한 염룡환(炎龍丸)이다.
겉보기에는 적두 한 알처럼 작고, 폭발력도 보잘것없는 정도였지만, 여럿을 함께 쓰면 쓸수록 위력은 배가 된다.
당민은 염룡환을 한 주먹씩 거침없이 떨쳤다. 폭발력과 불길은 방원 수 장을 휩쓸어 재만 남긴다.
솟구치는 불길, 그리고 일어나는 청풍의 바람은 불길을 더욱 크게 키워서 홍천이라는 가짜 이름을 조금도 남김없이 쓸어버렸다.
나름대로 발악을 하면서 악다구니를 써대지만, 선수를 제압당한 마당에, 이들은 속절없이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같이 죽고자 달려들어도 조금의 거리도 내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발 디딜 틈도 없이 몰려 있는 가운데에서 뻥뻥 터지는 폭발과 솟구치는 검풍은 이지 없는 자들이라도 공포를 느끼게 할 정도였다.
그것은 멀리 있는 자들을 향한 신호이기도 했다.
사천련은 당장 어수선해졌다.
“저것은!”
놀란 소리가 터지는데, 당진진은 눈을 크게 뜨고 불길이 연이어 솟구치면서 포위의 한 축이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저건 무엇이지? 당가에서 따로 나선 게요?”
“아니, 그것은.”
뾰족하게 답할 말이 없었다. 당가 사람들도 대부분은 당황한 얼굴이었다. 오직 한 사람만이 침착했다.
당진진이다.
“나서지요. 지금 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바로 나선 그녀의 한 마디는 무겁다. 꼭두새벽부터 은밀히 사람을 보내어서 한데 모으게 한 판이었다.
담담하지만, 사뭇 단호하다.
이전에 없이 강한 그 모습에, 일문의 주인들은 고개를 흔들지 못했다. 그들이 보기에도 이러한 기회는 다시 없을 듯했다.
“음! 당 군사의 말이 옳구려. 지금을 놓쳐서는…….”
그들도 무인이다. 기세가 승하는 지금 순간을 어찌 모르겠나.
“출진!”
“출진이다!”
“각 문파는 깃발을 높이 세워라!”
“사천련의 깃발을 선두로!”
급조하였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갖출 것은 갖춘 사천련이다. 그들은 서촉백기를 앞에 세우고, 좌우로는 제 문파의 깃발을 연이어 세우고는 그대로 뛰쳐나갔다.
뜨거운 바람에 몰아치니, 여럿의 깃발이 한껏 펄럭인다.
피를 부르는 바람이 몰아치고, 광기를 불태우는 불길이 솟구치니, 뒤이어서 정예라 자부하는 사천 무인들의 돌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