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81
281화. 성도대란(成都大亂)
마도옥은 무릎 꿇었다는 것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라, 점점 땅을 파고 들어가고 있었다. 오로지 어깨를 짓누르는 무시무시한 거력 탓이었다.
“으으, 어어어억!”
신룡대주 마도옥. 다른 신분으로 말하자면 무산일대 제일검객이라, 무곡검군(無哭劍君)이라고 불린다.
헌데, 그 무곡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지금 소리가 터져 나오고 말았다. 마도옥은 입을 한껏 벌린 채, 굳었다. 이내, 꺽꺽거리며 질린 소리가 겨우 흘렀다. 소명이 대관절 무슨 수를 쓴 것인지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부대주와 남은 조장, 그리고 정예들은 아연실색하였는데, 그렇다고 달리 손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당하는 사람은 직속상관이다. 그런데 가하는 사람은 무조건 보필하라 명을 받은 대상이 아닌가.
“어, 어어.”
문득 멍청한 소리가 새었다. 특히 부대주인 마량은 난처함이 더욱 솔직했다.
보필해야 할 천룡대공자에게 감히 손을 쓸 수도 없고, 손을 쓴다고 상황이 달라질 것도 딱히 없어 보인다. 뭐라 하여도 천하 고수의 반열에 최연소로 당당히 올라선 사람이 아닌가.
본가에서 보인 신위 또한 기억하는 바이니.
“부, 부대주. 어찌해야.”
당황한 조장들이 마량을 돌아본다. 그러자 마량은 고민하기를 관두고 곧 고개를 끄덕였다.
“저 일은 대주께서 알아서 감당하실 일이다. 우린 우리 일을 해야지. 자자, 집중하라고.”
“으, 냉정도 하십니다.”
“어허, 어서. 지금 대공……자께서 홍천의 유민을 챙기라 하지 않으셨더냐. 시간을 지체하면 지체하는 만큼 일은 더 꼬여간다.”
마량은 그러고는 다시 지도를 펼쳤다. 지금 있는 곳을 먼저 확인하고서, 한 곳을 짚었다. 그곳은 천룡세가가 관장하고 있는 지역 중 하나였다.
가문을 따르는 분가, 혹은 수하들을 돕기 위해서 여러 준비를 해두고는 하는데. 이곳도 그런 지역 중 하나였다.
“이곳이라면 거리도 가까운 편이고, 지리적으로도 상당히 은밀하지. 어떻게 생각하나?”
“음, 부대주 말씀대로군요. 아무리 천천히 움직여도 사흘이면 도착하겠습니다.”
“부상자나 환자를 생각하더라도 가능한 거리겠어요.”
“좋아, 이곳으로 하지. 일조장은 앞서간 두 조장과 함께 홍천 유민을 이곳으로 호위하도록. 오조장은 앞서서 맞이할 채비를 갖추는 것으로 하고. 인원이 상당하겠지만, 그래도 고생 좀 하게.”
“그러죠, 그러죠.”
마량이 말끔하게 정리하니, 조장들도 순순히 따랐다. 상황도 그렇지만,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저기 권야는 굳이 천룡대공자라는 신분이 아니더라도, 신룡대 조장 몇 정도로는 상대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그만한 격차가 선명했다.
그들은 아직 꺽꺽거리는 대주는 내버려 두고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몇 마디를 쑥덕거리다가 바로 움직였다. 흩어지는 그들 모습은 일사불란하여, 실로 정예라 할 수 있었다.
홍천교의 어린 교주. 홍산아.
이제는 교라는 것을 버리고, 교주라는 것도 떨쳐냈지만, 그래도 홍천의 유민들은 그를 각별하게 여겼다.
얻고자 한다고 쉬이 얻을 수 없고, 끊어내려 한다고 쉽게 끊어낼 수 없는 것이 인심(人心)이 아니겠나.
홍산아는 또한 여기 유민들에게 적잖은 책임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거침없이 다가서는 신룡대를 경계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신룡대라고 밝힌 그들은 구릉 아래에서 아직 힘겨운 유민들을 빠르게 단속했다.
머릿수를 먼저 파악하고, 환자나 부상자는 없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이들은 대체……?’
홍산아가 비록 다른 실권이 없는 처지로 이름만 교주라고 하나, 자리는 있어서 홍천교에 든 이런저런 고수들이나, 군세를 보았다. 하지만 지금 신룡대와 같지 않았다.
신광 어린 눈매와 차분한 몸가짐, 그럼에도 은근한 기파를 두르고 있다. 어디에 이런 자들이 있다는 말인가.
옷자락 끝에 새긴 구름 문양, 그 끝에는 용 꼬리인지가 살짝 드러나 있다. 말하자면 운중용문(雲中龍紋)이라 하겠다. 이런 문양을 상징으로 삼은 곳이 어디인지.
홍산아는 잠시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모를 일이었다. 다만 깊이 고민할 틈도 없이 또 다른 신룡대의 무리가 다가왔다. 구릉을 넘은 그들은 먼저 한쪽에서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는 위지백에게 먼저 다가갔다.
“신룡대 일조장, 관창이라 합니다. 위지 가주를 뵙습니다.”
“음, 가만 보니. 내 안면이 좀 있는 듯한데.”
“기억하시는군요. 그때에는 신세 좀 졌습니다.”
눈앞까지 포권을 취한 일조장 관창은 싱긋 웃었다. 솔직한 신분에 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흐하하하.”
위지백은 흥소를 터뜨렸다. 그 웃음이 호탕하다. 장관풍과 도기영이 유민들 사이에서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다가 웃는 관창의 모습을 보고는 동시에 어어, 놀란 소리를 내었다.
“당신이 여기 어찌?”
“하하, 두 분도 여기서 뵙는군요.”
일조장, 그는 천룡세가에서 한번 손을 나눈 바가 있는 중천조였다. 본가를 지키는 중천조라는 것은 평소 신분이었고, 다른 신분으로는 신룡대라는 것이니.
그때와는 또 다른 모습이 아닌가.
“어찌, 어찌 이겼다고 여겼더니. 젠장.”
더 말할 것도 없겠다. 도기영은 절로 입술을 삐죽거렸다. 당시에는 중천조장이었고, 지금은 신룡대 일조장으로 여기 있는 것이니.
그러자 관창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겨우 한 끗 차이이니. 그런 걸로 씁쓸해하면, 본인은 어쩌라는 거요. 젊은 도객.”
“크, 크흠. 도기영입니다.”
치기 어린 속내가 읽힌 셈이라, 도기영은 그만 얼굴을 붉혔다. 멋쩍은 얼굴로 고개 숙여 서로 통성명을 하고 나서, 관창은 아직 어리둥절한 채, 계속 경계하는 홍천 유민들을 둘러보았다.
“음, 이 정도 인원이라면 어찌 가능하겠군.”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 가능하다는 말씀이신지요?”
“음? 여기 소형제께서는?”
“본인은 홍…….”
홍산아는 성큼 나섰다가, 그만 말문이 턱하고 막혔다. 머릿속으로 오만 생각이 스쳤다. 내내 고민하였지만, 아직 답을 내지 못한 물음이다. 자신은 무엇인가.
그것도 잠깐, 홍산아는 한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관창을 마주하여 두 손을 맞잡았다.
“저는 홍산아라고 하는 어린 녀석입니다.”
교주라는 이름을 떼어냈다. 그 모습에 홍천 유민들이 웅성거렸다. 사뭇 기이한 상황이지만, 관창은 굳이 따져 묻지는 않았다.
“그렇군. 홍 소형제. 너무 경계하지 마시게. 명을 받기로, 여기 모든 분을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라 하시었네. 마침 멀지 않은 곳에 본가가 관할하는 땅이 있으니. 그곳까지 호위하려 하네.”
“안전한 곳……. 헌데, 본가라고 하시면.”
“하, 하하하.”
본가라고 하면 대체 어디를 말하는 것인지, 당연히 의아해한다. 그러나 관창은 한번 웃기만 했다. 곧 고개를 돌려서 주변 유민들을 둘러보았다.
“자자, 움직이지요. 걷기 어려운 사람은 없소? 없다고? 좋군. 가는 길이 마냥 편하지는 않을 것이니, 힘든 지경이 오면 사양할 것 없이 말씀 주시구려.”
관창과 신룡대는 바로 움직였다. 그들은 홍천 사람들을 기꺼이 거들었다.
위지백은 무광도를 품에 안고서는 그런 모습을 흘깃 보았다.
“역시나, 일 처리 하나는 시원하구만. 아니, 그런데 저기 저놈은 왜 저러고 있는 거야?”
위지백은 고개를 한번 갸웃거렸다. 제법 거리가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보는 데에 어려울 것은 없었다.
소명이 딱 보기에도 한 덩치를 하는 사내 하나를 붙들고서 어디 목인형이라도 다루듯이 했다. 손을 쓸 적마다, 사내는 꽥 소리를 하고서는 어김없이 흙바닥에 처박혔다. 그러기를 한두 번이 아니니. 저게 뭐 하는 것인지는 도통 모를 일이다.
위지백은 묘한 눈으로 그걸 보다가, 그만 고개를 흔들었다.
“에라, 어디 내 알 바냐.”
소명과 위지백, 그리고 홍천 유민들이 천룡의 신룡대와 조우하였을 그 무렵, 성도에서 몰아치는 격전은 한층 뜨겁고, 더욱 뜨겁게 용솟음쳤다.
가장 뜨거운 곳에, 호충인이 있었다.
단순히 무림의 고수로서 여기 있는 것이 아니었다. 중원 강호에서도 가히 으뜸으로 손꼽는 소림파, 그 이름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등용문의 문자가 가장 앞에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자비는 필요 없다!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중후한 공력이 실린 일성이 맹호의 울음처럼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사교의 광기도 이들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땅을 흔드는 동시에, 호충인은 그야말로 비호처럼 날았다. 날개를 단 맹호, 등천비호군의 무명이 솔직하게 드러났다.
덮쳐들 때마다 하나, 둘이 아니라, 한 무리가 뒤엉켜서 나가떨어졌다. 그러고는 다시 일어나는 자는 없었다.
꿈틀거리다가, 결국 핏물을 왈칵 토해내는 것으로 명이 다했다. 호충인은 흐으으……길게 숨을 밀어냈다. 정광 어린 두 눈에는 한 점의 흐림이 없었다.
피아를 분간할 수 없을 만큼 한껏 뒤섞인 난전, 거기서는 분명 호충인과 등용문, 그리고 소림파의 무인들이 가장 특출했다.
사천련 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홍천의 군세를 돌파하여서, 성도에 이르렀다. 호충인은 어지럽게 꽂혀 있는 홍천의 깃발을 냅다 걷어찼다.
“쯧!”
지키는 사람이 없으니, 깃발은 맥없이 흙바닥을 굴렀다. 그걸 보더니 호충인은 곧 고개를 돌렸다.
“붉은 깃발은 모조리 넘어뜨려라!”
꼴도 보기 싫다. 호충인을 따라서 붉은 군세를 그대로 가로지른 하남 무림인들은 헉헉, 숨을 몰아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호충인은 땀과 피로 흠뻑 젖어버린 이마께를 대충 훔쳐냈다. 후드득 떨어지는 핏방울이 짙기도 하였다. 이마뿐만이 아니었다. 온통 피로 젖어서, 혈인이 되었다고 할 만했다.
늘어뜨린 두 주먹에는 맺힌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하얀 뼛조각이 섞여 있기도 했다.
지친 숨을 내뱉는 것도 잠깐, 호충인은 형형한 안광을 발하면서 전장 구석구석을 노려보았다. 어찌 되었든 주공은 사천 무인들의 몫이다.
“문주, 이제부터 어찌하면 좋을지.”
“자리를 지킨다.”
“더 손 쓰지 않고요?”
“이만하면 차고 넘칠 정도로 힘을 썼지. 여기서 더 나아갔다가는 끝 맛이 씁쓸할 터.”
호충인은 팔짱을 꼈다. 이미 전열은 무너졌고, 저기를 압도하는 상황이었다. 괜히 나서서 공을 탐하는 듯한 모습을 보일 것 없었다.
나름 일문의 주인으로 관록을 내비치는 모습이다.
넌지시 물었던 수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그들도 지쳐서 숨 돌릴 틈이 필요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참 끔찍한 일입니다. 얕은 생각이기는 합니다만, 하남에서도 이런 참상이 벌어질 뻔한 것이니. 새삼 아찔하군요.”
“음.”
탄식하듯 내뱉었다. 호충인도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남에서도 마도의 수작에 큰 피를 보지 않았던가. 굳이 차이가 있다면, 발호가 이루어지기 전에 먼저 손을 썼다는 것 정도일까. 때를 놓쳤다면, 지금 성도에서 벌어진 참상 못지않은 혈사가 일어났을 터였다.
착잡한 마음이 노도처럼 일었다.
아직 치열한 전장의 복판이지만, 적어도 호충인이 선두로, 하남 무림인들이 치워버린 북벽 일대만큼은 죽음만 남아서 고요할 따름이었다.
다 꺾어버린 붉은 깃발 사이에서, 하남의 무림인들은 형형한 눈으로 전장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