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82
282화. 불가지원(不可知原)
몰아라!
달려라!
감숙 정병은 무엇보다 집단을 가르고, 몰아붙이는 데에 있어서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거침이 없었다. 질주하는 기마가 무리를 가로지르면, 뒤따르는 창병이 바로 벽을 세웠다.
흩어져 버린 집단은 더는 위험이 되지 않는다.
그것을 막아내고, 지켜내는 것이 지휘관의 임무이고, 역량이라 하겠지만, 그만한 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우왕좌왕하다가, 죽어 나갈 뿐이었다.
아무리 대단한 무인이라 하여도, 수천 정병이 갖추는 군진을 비견할 수는 없었다.
군세를 가르고, 포위하여서 짓눌러버렸다.
그들은 조금도 용서가 없었다. 무엇보다 선두에서 그들을 이끄는 것은 황자였다.
십삼황자가 뒤에서 지휘만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들과 함께 말 달리는 판이다. 어찌 전력을 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감숙 변방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백전을 이겨온 정병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정예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감천방이 이끄는 백귀군이니.
시원하게 몰아붙여서는 삽시간에 에워쌌다. 퇴로가 있으나, 그것은 곧 죽을 장소로 더욱 빨리 등 떠밀 뿐이었다.
피에 담뿍 젖은 전포를 뒤로 걷어내고서, 십삼황자 이청은 고개를 들었다.
날이 이제 어둑어둑했다. 목불인견의 참상을 차마 보지 못하겠는지. 하늘에는 먹구름이 빠르게 밀려들었다.
이청이 어두운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고 있을 즈음에, 급한 발소리가 가까이 왔다.
거지 하나, 개방의 사천 분타주 백결호 오문이다.
“성문이 열렸습니다. 태자 저하. 남은 개방 형제들이 호응하오니, 명을 내려주십시오.”
달려온 오문은 바로 피에 젖은 흙탕 속에 한쪽 무릎을 꿇고서 두 손을 맞잡았다.
“하아, 너무 많은 피를 보았소.”
“…….”
이청은 지친 듯 한숨을 흘렸다. 안타까움이 절절 흐르는 모습이었다. 피에 젖은 금갑이 이리 안쓰러울 수가 있을까.
오문도 갑갑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선택밖에 없었을까마는. 둘러보니 이제 상황은 얼추 마무리되어 가는 중이었다.
이쪽에서는 감숙병이 저쪽에서는 사천련이, 또 저쪽에서는 당민이 이끄는 일군의 무인들이.
셋으로 갈라져서는 죽고 죽이니, 성도 주변에는 피와 죽음이 내려서 지친 숨만 흐를 따름이라.
이청은 고개를 흔들고서, 고개 숙인 오군에게 말했다.
“개방 협사들께서는 피아를 가리지 말고, 부상자들을 모두 수습토록 해주시오.”
“그리하겠습니다.”
오군은 더욱 고개를 숙이고서, 바로 물러났다. 철퍽, 철퍽, 고인 핏물을 밟는 소리가 울렸다.
이청은 착잡함이 가득한 채,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르릉, 우르릉.
고인 먹구름 사이에서 새삼 천둥이 울렸다. 한바탕 쏟아질 모양이었다. 그래, 차라리 비라도 내려서 고인 핏물이라도 죄 씻어냈으면.
이청은 얌전히 서 있는 전마를 다독이며 자리를 옮겼다.
영광이라고는 조금도 찾을 길 없는 승전이다. 착잡한 것은 잠시에 불과했다. 피에 젖은 진창을 따라서 지나는데, 이청의 눈초리는 투구 아래에서 파랗게 빛났다.
이러한 참상을 만들어 놓은 홍천교도 물론이지만, 그에 빌붙은 자들, 모른 척 눈 감은 자들. 무엇보다 마땅히 할 일을 하지 않은 자들.
그 모두에 대한 분노가 고요하게 일었다.
“결코, 결단코.”
고삐를 쥔 손에 우드득 힘이 잔뜩 들어갔다. 분노에 몸을 떠는 데, 불현듯 눈을 돌렸다. 역한 피 냄새로 후각이 모두 사라진 듯한 가운데, 한 줄기의 익숙한 향기가 코끝을 파고들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한순간이나마 바로 풀어졌다.
이청은 고개를 돌렸다.
피에 담뿍 젖어버린 가운데에, 별빛처럼 반짝이는 눈동자, 당민이 어깨를 늘어뜨린 채,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아민.”
“이청.”
이때만큼은 두 사람 모두, 아수라의 살기를 흩어내고서 한없이 그윽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살기와 사기가 요동치는 곳이라지만, 그래도 두 사람에게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리 오래지도 않아서, 고작해야 촌각에 지나지 않으려나, 둘은 눈빛만으로 서로에 대한 염려한 마음을 주고받았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따로 소식이라도 전해줄 일이지.’
그리고 둘은 서로 다른 길로 성도로 들어섰다.
이청이 군을 이끌고 처리해야 할 곳이 있듯이, 당민은 당가인으로 살펴야 할 곳이 따로 있었다.
사교를 몰아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 * *
성도 성벽, 누란의 세월 속에서 버텨온 고성은 본래 모습을 다 잃었다. 불탄 흔적이 역력하고, 곧 허물어질 듯 위태한 곳 또한 여럿이었다.
성벽 위로는 다른 곳이 아니라 감숙 군의 깃발이 줄지어 펄럭였다. 백귀군을 뜻한 백자가 선명했다. 아무리 사천 무림이 모였다고 한들, 군에 앞서서 깃발을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홍천의 군세는 일망타진했다.
살아남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위로, 아래로 모조리 소탕했다. 내빼려는 수뇌 또한 단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대군장이라는 자는 청성의 검에 목을 잃었고, 아래에 따르는 여러 군장은 당가의 암기가 빼곡하게 틀어박힌 채, 피 웅덩이에 버려졌다.
처음에는 대단한 용력을 발휘하여서, 일거에 수 명을 상대하기도 했지만, 잠시에 불과했다. 그들의 용력은 오래가지 않았다.
빠르게 힘을 잃었고, 이내 두 손을 늘어뜨리고 있다가 목이 달아났다. 끝에 그들은 영문 모를 소리만 울부짖었다.
“홍천이 우리를 버렸다!”
“대사령이 우리를 버리고 말았어!”
영문 모를 울부짖음, 그렇다고 사정을 보아줄 일은 전혀 없었다. 단숨에 목을 날렸고, 사지를 갈라버렸다.
사천련에서도 그러하나, 뛰어든 감숙 정병들 역시 무자비하면서도 효율적으로 내달렸다. 군문의 교범이라 할 수 있겠다.
이후, 사천의 개방도가 사방을 뛰어다니면서 부상자를 발 빠르게 챙긴 덕분에 목숨 구한 이도 여럿이었다.
수일의 대치가 날 저물 즈음에 비로소 일단락이 났으니. 이것을 완전한 끝이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그날 밤만큼은 성도 일대가 고요했다.
밤이 한참 늦은 때에, 몸을 쉴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만큼,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었다.
이만한 큰일이다. 마땅히 사후로 처리해야 할 일은 산처럼 쌓일 수밖에 없었다. 그간 마비되어 있었던 행정은 물론이고, 일대의 정리, 희생자들을 분류하는 등.
열거하자면 끝도 없을 무수한 일이 있었고, 계속해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일을 처리해야 할 성도의 관리는 죄 도망하여서 흩어졌고, 아무에게나 맡길 수도 없는 일이라. 그것은 또다시 큰일이었다.
결국, 전부 떠맡을 수밖에 없는 것은 싫든 좋든, 십삼황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체제를 갖추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다. 그 부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무력일 수밖에 없었다.
감숙 백귀군은 여전히 병장기를 놓지 않은 채, 밤늦은 시간에도 흉흉한 눈빛으로 성도 일대를 순찰했다. 혹여 반심을 품은 자나, 홍천의 잔당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특히 홍천교의 모략에 죽다 살아난 감천방은 더욱 단호했다. 갑옷에 맺힌 핏방울을 닦아낼 생각도 않고, 형형한 안광으로 자리를 지켰다.
감숙군 중에서도 손꼽는 것이 바로 여기 있는 백귀군이다. 그들이 자칫 홍천교의 수족으로 전락하였을지도 모르는 최악의 상황이 있었으니.
홍천교의 어린 교주, 그리고 개방 사천 분타주 오문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어찌 되었을지.
잠깐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감천방은 속에서 천불이 솟구쳤다. 아직 전장의 열기가 가라앉지 않기도 하였지만, 감천방은 치뜬 눈에 불길을 품은 채, 어둠 짙어가는 성도의 고요함을 꿰뚫을 것처럼 노려보았다.
그렇다고 분노에 눈이 멀지는 않았다.
약간의 소홀함도 없이 휘하를 단속하면서, 성도 일대를 단단히 틀어쥐었다.
“감 장군.”
“오, 장 천호.”
장군검 한 자루를 옆에 세우고서 잠든 성도를 지켜보는 참이다. 문득 다가오는 젊은 장수가 있다.
십삼황자의 수족으로 금군 장수 중 최연소라고 하는 천호 장벽군이다. 그는 감천방 앞에 군례와 함께 고개를 숙였다. 처음에는 불편하게 마주했지만, 지금은 감천방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바였다.
“전하께서 백귀군의 피해를 알아보라 하시었습니다.”
“이런, 직접 가서 보고해야 할 일인 것을.”
“지금 보고한다고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성도가 멈춰 버립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장벽군은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음, 오문 분타주가 발 빠르게 손을 써준 덕분에 피해는 적었소. 사망은 열다섯 정도. 물론 중상을 입은 자들이 일백은 넘어가기는 하지만, 적어도 불구 된 이는 없으니. 이만하면 대승이라 할 만하겠지.”
“그렇군요.”
감천방은 애써 밝게 말했다. 수치로만 말하면 확실히 대승이겠다.
배가 뭔가, 몇 배에 이르는 사교 무리를 소탕하는 데에 있어서 죽은 자가 몇 되지 않는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일 뿐만 아니라, 당장 공세의 최선두에 섰던 십삼황자의 무용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었다.
감천방은 새삼 감탄한 기색이기도 했다. 그 눈길은 사뭇 익숙한 눈빛이라, 장벽군은 쓴웃음을 지었다.
“응? 장 천호는 어찌 그런 눈인가?”
“아니, 아닙니다. 하하.”
장벽군은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웃음으로 무마하고서, 그는 곧 안색을 굳혔다.
“그보다, 장군.”
“응, 다른 일이 있으시오?”
“예, 멀리 나가 있던 개방 제자가 급히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개방의?”
“사천군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 합니다.”
사천군이라.
사천의 군병이 성도로 오고 있다. 언뜻 듣기에는 이상할 것이 없겠으나, 본래에 군의 이동은 허투루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평시가 아닌 지금이라면 더욱 수상한 일이다.
감천방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있다가,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백귀군도 준비하도록 하겠소.”
“예, 장군. 저희 또한.”
장벽군은 다시 한번 군례를 갖추고서, 빠르게 물러섰다.
날이 하얗게 밝아왔다.
성도 밖은 수많은 시체를 다 처리하지 못한 탓에 연기가 곳곳에서 솟구치고 있었다. 성도 안은 비록 색이 크게 바래었지만, 안도함으로 고요했다.
일대를 아우르는 감숙의 정병들이 있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크게 지친 탓이 더욱 컸다. 심신 일체가 힘겨웠다.
그런 성도로 멈춰 있던 일체의 물자가 빠르게 몰려들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들어서는 것은 대관절 누구의 수완인지 모를 일이었다.
십삼황자는 마치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그 물자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성도의 수만 백성이 모여들어서, 식량을 배분받기도 하고, 진맥을 받기도 했다.
그 모두가 십삼황자와 감숙 정병의 관할 속에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