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87
287화. 불가지원(不可知原)
진혼제라 하기에는 마냥 조촐하고 부족했지만, 그래도 설법을 통하여서, 성도의 백성과 죽은 자들을 위로한 마당이었다.
아미파 장문인, 망진사태는 처소로 돌아왔다. 진혼제 와중에도 내내 흔들림이 없었지만, 궁가대원에서 마련해준 독방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지친 한숨이 흘렀다.
“하아, 이런, 이런.”
땀이 송골송골하게 맺혀 있었다. 신열이 오르는 탓인지, 노비구니의 얼굴은 발그레하였다. 지친 기색으로 방 한가운데에 놓아둔 좌구에 앉아서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장문인으로서 산사(山寺)를 이렇게까지 오래 비운 것은 좀체 없는 일이다.
오늘의 진혼제까지, 이제 속세에서 더 할 일은 없을 터였다. 천하 마도에 대한 걱정도 물론이었지만, 우선은 다른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 하겠으니.
목에 건 아미장문의 신물, 천불천주(千佛千珠)를 가만히 매만졌다.
본래에 정심의 효능을 지닌 천불주였다.
천 개에 이르는 염주 알 하나, 하나가 정향목을 다듬었고, 공력을 들여서 천수경을 새겨넣었다.
구세제민(救世濟民), 그것이 관음의 진의일진대.
망진사태는 목에 건 천불주를 벗어서는 그저 자리에 내려놓았다. 더는 목에 걸고 있을 수가 없었다. 답답한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나서, 다시금 한숨을 무겁게 내뱉었다.
방은 조용했다. 바깥도 조용했다. 아무런 인적도 다가오지 않았다. 홀로 있고 싶다 하여서, 주변 모두를 물린 까닭이었다.
망진사태는 새삼 허리를 세우고서, 귀를 쫑긋 세웠다. 모두 물러나 있으라 하였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라.
잠시 집중하여서는 사방 수십여 장에 있는 모든 기척을 살폈다. 따로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것도, 지켜보는 것도 없음을 확인했다.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망진사태는 마련한 대야에 물을 부었다. 세안이라도 하려는 모양인가 싶었으나, 사태는 전혀 다른 일을 했다. 손을 몇 가지 모양으로 맺었다.
보기에는 수인인데, 불가에서 전하는 수인의 모양이 아니었다.
“하늘 밖의 아득한 분이시여. 지금 모습을 드러내시어, 비천한 종에게 뜻을 전하여 주소서.”
그러자 청동 대야에 가득 담은 물결이 아무것도 없는 절로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물결은 한쪽으로 빙빙 돌았다. 사태는 수인을 맺은 채, 더욱 집중했다.
지금은 다른 수단을 쓸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 방 안이 급작스럽게 얼음장처럼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일체의 온기를 빼앗긴 것처럼 차가웠다.
집중한 망진사태의 눈썹에 점점 하얀 서리가 맺히는 듯했다.
“흐으…….”
벌인 입술 사이로 하얀 김이 치솟았다. 그 순간이었다.
“어인 일인가. 족장도, 풍마도 아닌 자네가. 직접 소식을 전해오다니.”
탁한 목소리가 울렸다. 인세의 목소리가 아닌 것처럼 탁하고, 음울한 목소리. 그제야 망진사태는 감은 눈을 번쩍 치떴다. 다시 눈을 뜬 망진사태의 동공은 아미 장문인으로서, 아니 불제자의 눈으로는 볼 수가 없었다.
동공의 흑백이 그대로 뒤바뀌었다.
검은자위에 한 점의 백안이 맺혀 있었다.
“홍천이 무너졌습니다. 홍혈족장이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였습니다. 풍마께서도 소식이 없으니. 대계를 미처 이루지 못하고 무너진 것으로 보입니다.”
“홍혈족장에 풍마까지? 흐음. 그것은 안타까운 일이군. 사천의 대계도 중요하나, 그들 둘도 중요한 사람이거늘.”
탁한 목소리는 지금의 보고를 탓하기보다는 장로의 안위를 안타깝게 여겼다.
“비복이 같이 있지 못하여서.”
“아니, 자네를 탓할 일은 아니지. 자네에게는 또 자네의 대업이 있는 것이니. 다만, 안타깝군.”
“예, 현사.”
“그래도 아주 실패라 할 수는 없지. 홍천의 도움으로 대계는 크게 앞당겨진 셈이기는 하니. 이것은 또한 망진, 자네의 공일세.”
“아닙니다. 공은요.”
어찌 공을 탐할까.
망진사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전히 맴도는 물결 속에서, 목소리는 말했다.
“공을 탐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이미 세운 공을 줄이려 드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닐세. 자네는 그만한 일을 해주었어.”
“아아, 삼생의 광영입니다.”
“음, 그래. 다시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비록 가짜 신분일지라도, 충실하게 해주기를 바라네.”
“예, 현사.”
“좋아.”
목소리는 뚝 끊어졌다. 다른 말을 할 것은 없었다. 대야의 물결은 이제 얌전하였고, 방 안을 가득 채웠던 냉기는 차차 흩어졌다.
망진사태는 하아, 한숨을 흘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의견전성(意見傳聲)의 술은 참으로 편리하면서도 크게 공력을 소모하는 술법이었다. 뜻을 보이고, 목소리를 전하는 데에 거리는 중요하지 않으니. 그러나 같은 술법과 공력을 지닌 자여야만 하고, 소모되는 공력은 어마어마했다.
불과 촌음 정도에 지나지 않은 짧은 대화였지만, 망진사태가 크게 지칠 정도였다. 공력으로만 말하면 감히 사천 제일을 말할 수가 있을진대.
망진사태는 창백하게 탈색한 얼굴을 한 채, 고개를 흔들었다. 파리한 미간에 식은땀이 점점 맺혔다.
“그래도 절반의 성공이기는 하였으니. 다행이라 하여야 하려는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몸을 돌리는 순간, 사태는 딱 굳어버렸다.
어떻게, 아니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던 것인가. 그 자리에는 장우빙이 조용히 서 있었다.
“아니, 네가 어찌 여기에. 아니, 언제부터…….”
망진사태라 하여도 이런 때에는 횡설수설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술법을 행하기 전에 일체를 확인하였건만, 설마하니 장우빙이 그새 자신의 이목을 속일 정도로 무공이 급상승했다는 것인가. 당황하는 망진사태야 어떻든, 그 모습을 보는 장우빙의 얼굴은 한참 고요하였다.
아무런 감정도 없어서, 마치 가면을 덧씌우기라도 한 것처럼 차갑기만 했다.
“…….”
“…….”
장우빙의 침묵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서, 망진사태는 그만 입을 닫았다. 어찌 된 일인가. 그것을 거듭 생각했지만, 뾰족한 답은 조금도 나오지 않았다.
“크, 크흠. 크흠.”
망진사태는 일단 헛기침을 흘렸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몰라도, 지금 무슨 말을 하든 조금도 소용이 없을 것이 불 보듯 했다. 그렇다면, 망진사태에게도 다른 수단이 없었다.
망진사태는 안타까운 표정을 그리면서 슬쩍 몸을 기울였다. 뭐라 할 말이 없다는 듯이 하면서 천불주를 들었다. 평소처럼 목에 염주를 거는 것처럼 펼쳐서 손을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스팟!
공간을 가르는 예리한 기파가 스쳤다.
“크헛!”
망진사태는 그만 손을 쓰지 못하고 황급히 뒤로 몸을 날렸다.
“감히, 이게 무슨 짓이냐!”
버럭 소리쳤지만, 망진사태는 채 이어서 소리치지는 못했다. 손을 쓴 것은 장우빙이 아니었다. 그 뒤로 녹면을 쓴 이가 고요히 모습을 드러냈다.
“녹면……옥수…….”
“어디서 허튼수작을.”
녹면옥수 당민이 차디찬 어조로 중얼거렸다. 흉측한 녹면 속에서 이쪽을 보는 눈초리는 차갑고도 차가웠다.
의견전성의 술을 썼을 때에 이루어 낸 냉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망진사태는 미처 허리를 세우지 못한 채, 굳었다. 장우빙 하나라면, 어찌 손을 쓸 수 있겠지만, 녹면옥수가 함께 있다니. 그제야 망진사태는 비로소 주변을 환기할 수가 있었다.
“이, 이게. 이것이…….”
망진사태는 그만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장우빙 뒤에서 나타난 당민이 전부가 아니었다. 벽 한쪽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여럿에 이르는 자들이 있어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연한 얼굴, 분노한 얼굴, 황망한 얼굴.
표정은 제각각이나, 하나같은 것은 오로지 하나였다. 강한 불신이었다. 그러나 어찌 믿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자, 장문…….”
한 비구니가 더듬거리면서 겨우 목소리를 내었다. 지독한 불신이 어려 있어서, 치뜬 눈동자는 크게 요동쳤다.
아미파를 가리키는 금정 아래 삼사 중 한 곳, 뇌음사의 주지로, 장로라 할 수 있는 비구니, 현정사태였다. 주지인 망진사태, 탕마창의 정진사태와 함께 아미파 삼대고수로 손꼽는 그였다.
“지금 이것이 어찌 된 일입니까.”
“허허…….”
망진사태는 답하는 대신에 메마른 웃음을 흘렸다. 이미 처음부터 보았음에, 무엇을 굳이 묻는다는 말인가.
“더는 할 말이 없구나. 현정.”
“크윽!”
현정사태는 불끈, 힘주어서 손에 쥔 염주를 굳게 틀어쥐었다. 부르르 손이 떨리면서 길게 늘어진 염주 알이 달그락거렸다.
“아! 미! 타! 불!”
현정사태는 버럭 사자후를 터뜨렸다. 쩌렁 터져 나오는 음파는 강렬하다. 망진사태는 반사적으로 손을 휘저었다.
대천서영장.
공력이 바닥에 이른 지금이라도, 능히 펼칠 수 있는 장법이었다. 단숨에 현정을 노리고 몰아쳤다. 그러나 닿는 일은 없었다.
현정의 사자후와 함께 좌우에서 즉각 달려드는 네 그림자가 있었다. 펄럭이는 승포자락이 세차게 울렸다. 망진의 일장을 그대로 몸으로 맞받으면서 몰아쳤다.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아미 장문인이 떨친 일장이거늘, 등장한 그림자는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흑색 가사 차림을 한 비구니로, 넷의 기세는 우선 흉험하기 이를 데가 없어서, 아미 정종의 제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아미불출(峨嵋不出) 사법승!”
넷을 알아보고서 청성 장문인이 묘한 탄성을 흘렸다. 바람직한 때는 아니겠지만, 전설처럼 들려오는 아미파의 신비를 지금 목격한 셈이었다.
아미불출이라는 이름대로, 산 아래에서 모습을 볼 수 없는 사법승이었다. 반도를 제압하고, 계도하는 특수한 임무를 지닌 비구니들이다.
사법승은 비호처럼 날랜 모습으로 당황하는 망진사태를 에워쌌다. 이때, 망진은 대천서영장의 세를 수습하면서 바로 금광을 발했다.
장문 비전인 금정파(金頂波)였다.
아무리 기진했더라도, 장문이라는 이름에 부족함이 없는 무위였다. 휘두르는 일수에 금광이 솟구쳤다.
꽝! 콰앙!
사법승이 동시에 손을 쓰는 데, 망진사태는 공력을 크게 소모한 상황에서도 어려운 기색 없이 그들의 손발을 받아냈다. 과연 아미 장문인이라 할 만하다. 도수(徒手)로 사법승을 상대하는 데에 비록 압도하지는 못하더라도, 대등하게 버티어냈다.
사법승은 굳은 얼굴로 더욱 공세를 몰아쳤다.
터져가는 경풍이 어지럽다. 실내의 온갖 물건이 휩쓸려서 죄 박살 났다. 기둥을 올린 침상이 우지끈 내려앉는 순간에, 사법승은 잠시 주춤했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가면서, 맹렬히 몰아치는 때에 드러난 잠깐의 틈바구니였다. 사정이야 어떻든 망진사태는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흡!”
숨을 딱 끊어내는 것과 동시에, 사법승 사이를 뚫고서 뒤로 몸을 날렸다. 순간적으로 신형이 요동쳤다.
정명한 아미 무공을 펼치는 와중에 여기서 마공 한 조각을 드러낸 것이다.
“저것은!”
지켜보는 현정이 번쩍 눈을 치떴다. 설마, 설마 하였던 마지막 한 조각의 미련마저 와장창 깨어지는 듯했다. 잿빛 운무를 발하면서 이매처럼 신형을 부리는 모습은 한눈에도 사이하기 이를 데가 없어서, 아미정종의 무공으로는 볼 수 없었다.
사법승이 그만 주춤할 지경이었다.
“하, 하하하!”
신형을 뒤로 남겨두고서, 웃음은 이미 저 멀리에서 터진다. 색은 달랐지만, 저것은 풍마의 풍인마령이다. 그것은 분명 아미 정종의 호쾌한 보신경과는 영 딴판으로, 당초 목적이 전혀 달랐다.
사법승은 뒤늦게 몸을 돌렸지만, 그들보다 앞서서 손을 쓴 자가 있었다.
쐐액!
이미 거리를 수 장이나 벌린 망진사태였지만, 미처 엄습하는 기파를 감지할 새도 없었다. 반사적으로 풍마의 마공을 한껏 끌어올렸다. 그러나 오히려 패착이나 다름없었다.
“허억!”
일어나는 귀무는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습하는 기파를 끌어당긴 셈이 되고 말았다.
커윽!
고통에 찬 신음이 왈칵 터졌다. 정확하게 허리를 꿰어버린 창 한 자루, 이와 같은 수법이 있다던가.
이기어검도 아니고, 던진 창이 빙글 돌아서 허리를 꿰뚫어버렸다.
망진사태는 그만 몸을 가누지 못하고, 세차게 바닥을 뒹굴었다. 여파에 내장은 더욱 진탕되어서는, 울컥 토해낸 검은 핏물이 하도 짙었다.
연신 토혈하면서 겨우 고개를 들었다. 땅을 짚은 손은 피로 흥건했다. 아니, 손이 젖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허리에서 쏟아지는 핏물이 불과 잠깐 사이에 후드득 흘러내려서 자리에 잔뜩 고였다.
이것은 어찌 돌이킬 수도 없는 것.
망진사태는 납빛으로 물든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돌렸다. 사법승의 아연한 얼굴, 아미 동문의 놀란 얼굴, 그리고 그들 너머에 장우빙이 있었다. 장우빙은 손을 떨친 채로 그냥 그대로 있었다.
표정 없는 얼굴이었다.
“우, 우빙. 네가…….”
“아미타불.”
장우빙은 두 손을 공손하게 모으며 나직이 불호를 읊었다. 장중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일체의 오욕, 심마를 끊어내는 일성이었다.
아연한 기색으로 넋을 놓고 있던 여러 아미 제자들도 일제히 두 손을 모았다. 무슨 말을 달리하겠는가.
“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