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90
290화. 천산마맥(天山魔脈)
아득한 사막, 돌아오지 못하는 땅이라고도 불리는 혹독한 그곳에는 붉은 불길이 타오르는 것처럼 우뚝 솟은 붉은 산이 하나 있었다.
전설의 화염산이 이곳이다.
붉은 바위로 이루어진 높은 산은 일대가 마른 사막이라는 것을 떠나, 가까이 다가서면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지독한 열기를 품고 있었다.
사막의 다른 곳은 해가 저물면 급변하여서 혹독한 추위가 몰려오지만, 화염산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야말로 년년세세(年年世世), 밤낮없이 열기가 맴도는 땅이었다.
아지랑이가 절로 일어나는 그곳인데, 그래도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다.
바로 화염산 일족이라 불리며, 신화시대부터 화염산을 터전 삼아서 살아가는 자들이다.
서천 무림에서는 또한 독보적인 열양공으로 그 이름을 널리 떨쳤다.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자들. 혹독한 환경도 한 이유이겠으나, 화염산 일족은 과거 서천 무림을 암중에 지배하였던 자객의 왕, 적야(赤夜)조차 섣불리 손대지 못한 저력과 역사가 있는 자들이었다.
당시에는 주인이 없었음에도, 대하기를 꺼릴 정도였으니.
그런 화염산 일족이 모처럼 분주하여서는 바삐 뛰어다니고 있었다.
산으로 드는 길목부터가 소란이었다.
붉은 바위 위에 더욱 붉은 융단을 끝도 없이 길게 깔았고, 차양을 드리웠다. 부랴부랴 그늘을 만들었다. 그리고 좌우로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화염산 일족 전부가 몰려나와서 엎드려 고개 조아렸다.
뜨거운 바닥이지만, 그 정도 열기로 눈살 찌푸릴 자는 아무도 없었다. 태생적으로 열에 익숙한 일족이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지금은 참으로 귀하고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들의 주인. 화염산주가 방황의 여정을 마치고 막 산으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하얀 맨발이 붉은 융단을 밟고 섰다.
“산주! 산주!”
“주인께서 돌아오셨도다!”
“신화의 불을 밝혀라!”
일족은 일제히 외쳤다.
발목까지 푹푹 들어가는 붉은 융단을 밟으면서 천천히 걷는 이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화염산의 주인, 아함이다.
폐관을 마치자마자, 도망하듯이 산을 떠난 그가 이제 돌아왔다. 떠날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맨발이라는 것만 빼면, 실로 가인의 자태라 하겠다.
백옥처럼 하얀 얼굴에, 눈 아래는 살짝 발그레하고, 입술은 한참 붉어라. 고운 비단결처럼 검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에는 홍옥은잠(紅玉銀簪)을 꽂아서 가볍게 장식했다.
과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일견 수수하게 보이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야말로 최상급으로 준비한 차림이었다. 기품이 넘치는 모습인데, 그렇게 단정하게 손을 써서, 아함을 돋보이게 한 것은 공손한 모습으로 뒤따르는 세 여인이었다.
그들은 아함을 따르면서도 감히 산주의 붉은 융단은 밟지 않고, 좌우에서 천천히 걸음을 맞추었다.
세 여인은 천룡세가의 가인으로, 육대천녀(六大天女)라 하는 여섯 중 셋이다. 진실한 신분이 따로 있는 셈이나, 굳이 밝힐 것도 없었다. 이들 셋은 다만 아함을 보필하는 시비의 역할로서 멀고 먼 화염산까지 왔다.
아함은 사뿐사뿐 걷다가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다른 마음은 하나도 없이, 모두가 일심으로 자신의 귀환을 한없이 기뻐하고 있었다. 안도하고, 누구는 감동으로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아함은 눈치 보듯 곁눈질로 옆을 흘겨보았다.
천룡세가의 세 여인과 함께 따르는 여인, 홍화선자가 있었다.
홍화선자는 살짝 득의한 눈초리였다.
“말씀드렸지요. 모두 얼마나 산주의 귀로를 기다렸는지.”
“흠, 흠, 알았다니까. 계속 잔소리는…….”
아함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래, 보는 것으로 알았다. 투정은 부리고 싶은 마음인데, 자신의 사람들이 이렇게 기뻐하는 마당에 딱히 할 말은 없었다.
아함은 그러다가 문득 홍화선자 옆에서 한껏 어깨를 움츠린 채, 따르는 소녀에게로 눈을 돌렸다.
“아주귈, 너는 자라서 저러면 안 된다.”
“예? 아니, 제, 제가 어찌 감히!”
소녀 아주귈은 흠칫 고개를 들었다가 깊이 허리를 접었다. 너무 놀라서 허둥거리는 모습이다.
백산족의 남은 후예로 하동 땅에서 소명, 위지백에게 구함을 받았던 그 소녀였다.
고생으로 빼빼 말라 있던 소녀가 이제는 전혀 딴판이었다.
홍화선자가 직접 거두어서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내린 바이기에, 의젓한 자세도 그렇고, 반짝이는 눈동자에는 정광이 어려 있었다.
“산주도 참. 왜 괜한 아이는 희롱하고 그러신답니까. 체통을 지키세요. 체통을…….”
“피이, 희롱은 무슨.”
달리 무슨 말을 했다고 그러나, 아함은 재차 입술을 삐죽였다. 그러면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아함이 붉은 융단을 밟으면 앞장서고, 홍화선자와 아주귈이, 그리고 융단 밖으로 천룡세가의 세 여인이 얌전히 따랐다.
세 여인, 삼천녀도 사뭇 웃음을 지었다. 처음에는 크게 어렵기만 하였지만, 아함과 홍화선자 간의 사이가 이렇게 허물없음을 알고서는 한층 마음을 놓기도 하였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천룡이 직접 믿고 맡긴 대사였다. 어찌 소홀함이 있을까.
그리고 붉은 융단의 끝으로, 이제 화염산의 중심으로 드는 동혈 입구에 이르렀다.
한자가 아닌 서장의 말로 남겼으나, 적어도 뜻을 말하자면 이러하다. 천화동(天火洞). 하늘이 내린 불을 품은 동혈이었다.
천화동으로 들자, 주변 열기에도 불구하고 사뭇 서늘한 기온을 느낄 수 있었다. 바깥과는 전혀 딴판으로 한참 쾌적한 곳이었다.
깊이 모를 동혈 속에서 이는 바람인데, 습하거나 불쾌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외부인이라 할 수 있는 삼천녀는 잠시 놀라는 듯했지만, 큰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아주귈은 아주 놀라서는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산 아래로 들어가는데, 어찌 빛을 끌어들이는 것인지 땅속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이나 밝았다.
화염산 일족 전원이 거할 만한 곳이다. 쾌적하다고 할 정도로, 동굴 속은 서늘한 바람이 절로 맴돌았다. 이곳에는 물이 흐르며, 바깥의 햇빛을 끌어들여서 온갖 작물을 길러내기도 했다.
복지(福地)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 아래에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특히 신성시되는 곳은 바로 화명정(火明鼎)이라 하는 곳으로, 그 자리에는 천화의 불길이 타올랐다. 사각의 청동화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얼마나 길고 긴 세월이 화로에 새겨졌는지는 감히 헤아릴 수가 없다.
사방천자신염흑신정(四方天子新炎黑神鼎).
길고 복잡한 이름이 참으로 거창하려나, 실상으로 좌우로는 석 자 반 치, 위아래로는 두 자 남짓에 불과한 작은 화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이 한없이 깊었다.
네 다리에는 닳고 닳아서 알아볼 수 없었지만, 사방신수를 새겼고, 울퉁불퉁한 청동에는 무수한 글귀가 어지럽게 남아 있었다. 불길이 타오르는 자리는 흑옥(黑玉)을 연마한 것처럼 반질거렸다.
사각화로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화염산에서 일어나는 성스러운 불로, 정이니, 마이니, 구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전설에 이르니. 하늘에서 내리는 최초의 불길을 당시의 신인이 직접 받아서 천하만민(天下萬民)을 이롭게 하고자, 불씨를 퍼뜨렸다고 한다. 그것으로 인간은 비로소 문명에 눈을 떴다고 한다.
신화시대의 불이다.
하여, 화염산주의 불길은 신화시천염(神火始天炎)이라고도 한다.
화명정에서 아함은 오래 기다렸다는 귀빈을 마주했다. 오래 기다린 시간도 시간이려나, 신분 또한 마냥 무시할 것이 아니었다.
뭐라 하여도, 화염산과 더불어서 서천 양대 신비로 손꼽는 천산에서 내려온 자이기 때문이었다.
“흐음.”
화염산에서만 구할 수 있는 적염석, 불길이 솟구치는 듯한 무늬가 뚜렷한 흑적의 바윗돌이다. 온기를 깊이 품고 있는 신묘한 바위였다. 그 적염석으로 빗어낸 거대한 태사의, 그 자리에서 아함은 다리를 꼬고 앉았다.
턱을 든 채, 눈 아래로 단 아래를 흘겨보았다. 거기에는 좌우로 홍화선자를 비롯한 팔대산인이 줄지어 섰고, 가운데에는 한 사내가 깊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한쪽은 새카만 흑발, 다른 한쪽은 새하얀 백발을 한 기이한 행색이었다. 그는 고개 숙인 채, 아함의 말을 신중하게 기다렸다.
“천산 공야씨족이라고.”
“예, 산주.”
천산에 거하면서, 성마를 모시는 다섯 혈족 중 한 곳이다. 그들 오대혈족이라는 자들은 하나같이 선조가 성마에게 직접 피를 받아서, 마인으로 거듭났다고 했다.
눈앞에 있는 장년인은 그 중 공야혈족의 노족장이다. 외견은 이제야 사십 줄에 이른 듯하지만, 실상 그 연배는 백수를 훌쩍 넘긴 늙은 괴물이었다.
반흑반백의 머리카락은 나이와 무관하게 공야씨의 특징이기도 했다.
그런 공야노족장, 공야근이 여기서 아함을 기다린 지가 벌써 닷새였다.
“흐음.”
아함은 고개를 꺾으면서 재차 한숨을 흘렸다.
가만히 향하는 눈초리가 사뭇 의아하면서도, 수상하게 여기는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여기에서 공야근은 아무런 적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좋은 조건을 들고 왔다는 사실을 애써 드러내야 했다.
그러나 쉽게 입술을 뗄 수가 없었다.
‘경계하고 있다. 어째서?’
천산과 화염산이 딱히 돈독한 사이라 할 수는 없으나, 이렇게 대놓고 경계할 정도로 갈등을 빚은 일도 달리 없는 바이니.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공야근은 의아함이 무엇보다 컸다. 머릿속이 한없이 복잡하게 뒤엉키면서도, 그는 어찌 되었든 말문을 열고자 했다. 성사 여부는 둘째라도 용건은 꺼내야 하지 않겠는가.
“크흠, 산주. 말씀 올리는 것을 허락해주십시오.”
공야근은 더욱 깊이 머리를 조아리면서, 극공의 예로써 감히 청하였다.
“하라.”
“이것을…….”
“오호.”
공야근은 참으로 공손한 모습으로, 소매에서 둘둘 말아놓은 죽간을 꺼내었다. 그것을 두 손으로 받쳐서 머리 높이 들어 올렸다. 그것을 받고자 홍화선자가 한걸음 나서는데, 아함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공야씨여. 직접 펼쳐라.”
“……!”
뜻밖의 말이다. 그만 어깨를 들썩였다. 공야근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에는 분노마저 어렸다. 이제까지는 아무래도 좋았다.
푸대접에 가까운 것이나, 경계하는 눈초리는 다 참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전하는 전서를 직접 펼치라니.
“산주시여. 어찌 그런…….”
“펼치지 못한다면, 볼 것도 없다. 물러가라.”
아함은 턱을 괸 채, 사뭇 심드렁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다. 말은 그리하지만, 눈가에는 붉은 기운이 또렷하게 맺혔다.
보다 못해, 홍화선자가 아함을 돌아보았다.
“산주, 그래도 천산과는 대대로…….”
“말장난을 하려 드는군. 말장난을 하려고 들어.”
“산주시여, 그런 것이 아니오라.”
“너는 내가 마냥 어리게 보이느냐?”
“어찌 감히!”
홍화선자는 바로 엎드렸다. 지금 아함의 웃음은 단순한 웃음이 아니다. 오체투지(五體投地)하듯이 고개를 조아리는 홍화선자는 일체의 주저함도 없었다.
공야근은 이 와중에도 뜻밖이라는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산인의 우두머리로, 화염산 일맥에서도 항시 첫째가는 큰 어른이자, 여장부가 아니었던가. 그런 홍화선자가 아무리 산주라 하여도, 고개 조아리는 것도 부족해, 냅다 엎드리기까지 하다니.
자신이 분노할 때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거 뭔가 잘못…… 돌아가는…….’
그런데 아함의 눈길이 다시 그에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