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92
292화. 천산마맥(天山魔脈)
홍화선자는 아함의 명을 받아서, 가장 발 빠른 자를 천산으로 보내었다. 같은 산인의 한 사람으로, 홍뢰(弘雷)라는 자였다.
홍뢰 산인은 한 호흡에 수십 장을 우습게 뛰어넘고, 수십 리 길을 한달음에 내달리고서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다.
보신경에 있어서는 가히 독보적이라 하겠다.
그것 하나로 팔대산인에 들었을 뿐만 아니라, 원체 가벼운 성격으로 이래저래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도 하였으니.
다른 이라면 산인의 지위에 있으면서 적정을 염탐하는 일에 자신이 직접 나서야겠느냐고 불평할 수도 있는 일을, 아주 반갑게 받아들였다.
아예 하늘을 날 듯이 가로질렀다.
화염산의 지극한 열양공으로, 열풍을 두 손의 장심과, 두 발의 용천으로 세차게 뿜어내어서는 무섭게 솟구쳤다. 허공을 가르는 와중에도 흐트러지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목을 꼿꼿하게 세우고, 눈가를 때리는 바람을 그대로 맞받았다.
완벽에 가까운 보신경, 잔망스러운 성격에 더하여서 열양공 하나로 특유의 보신경을 완성해내었으니, 그 재지는 또 어떠하겠나.
하지만 그런 홍뢰에게도 단점이라 할지, 약점이라 할 것이 하나 있으니.
“끄엑!”
홍뢰는 안개를 뚫고 엄습하는 새하얀 설산에 그만 내리꽂히다시피 했다. 퍽! 울리는 소리가 새삼 크게 울린다. 쌓인 것이 눈밭이라 망정이지, 그냥 바윗돌이나, 맨바닥이었으면 크게 상했을 뻔한 일이다.
홍뢰는 얼얼한 얼굴을 더듬었다.
“아이고, 코야. 또 안 보였네.”
그는 잔뜩 눈살을 찌푸리고는 쌓인 눈을 더듬었다. 그래도 산, 바위는 대충 헤아려서 피할 수라도 있지, 설산은 하늘빛과 닮아서는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홍뢰는 눈이 참으로 좋지 않아서, 제 눈앞으로 손바닥을 펼쳐 들이밀어도 눈금 한번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그는 연신 눈을 끔뻑였다.
“에고, 에고고……. 그래도 눈이 차갑게 쌓여 있으니. 아주 엉뚱한 곳으로 오지는 않았구만.”
홍뢰는 주변을 대강 둘러보았다. 한참, 한참 얼굴을 구기면서 이리저리 살핀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길눈마저 어두운 것은 아니라 다행이겠다.
홍뢰는 짧은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넘기고서 홀쭉 두 볼에 잔뜩 부풀렸다. 그는 흡흡, 눈 모래가 섞인 찬바람을 연신 들이켰다. 이제부터는 신중하게 움직여야 했다. 그는 전신의 모공을 열고서 가능한 모든 범위로 코와 귀를 집중했다.
천산 마도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애초에 숨었다고 할 수도 없었다.
천산 전역이 온전하게 성마의 권역이라 하겠으니.
비록 수 대 전부터 천산 한 곳에 검파가 이뤄져서 천산파라고 한다지만, 그것은 아득한 천산산맥의 한 줄기에 지나지 않는 바였다.
본래에 성마를 따르는 천산 마인의 규모는 일성이라 칭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홍뢰는 눈을 꼭 감고서, 조용히 움직였다. 여기서부터는 눈이 별반 도움 되지 않는다.
천산에는 무외계(無畏界)라고 칭하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
성마의 전설이 시작된 곳이며, 성마교의 본산이기도 한 곳이다. 홍뢰는 그곳을 찾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아득한 곳.
규모만 놓고 얘기를 하면, 분명 화염산은 이들 일족에 하나, 둘 정도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홍뢰는 창천 하늘 위로 흩어지는 눈발을 헤치면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귀와 코를 활짝 열었고, 흐린 눈이라도 잔뜩 집중했다.
그리 더듬어가면서 무외계 가까운 곳으로 신중하게 다가섰다.
얼마나 헤매었을까. 파악한 곳으로 다가가 홍뢰는 귀를 집중했다. 그런데 그의 야윈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어으잉?”
당황한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이상한 일이었다.
마도의 체취가 짙게 배어 있었다. 오래도록 그곳에 거하였다는 뜻이겠다. 그런데 오직 정적뿐으로 때때로 이는 바람에 수풀이 흔들리고, 쌓인 눈발이 흩어지는 소리만 닿았다.
사람 소리가 하나 없으니.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홍뢰는 결국 감은 눈을 떴다.
“흐으음. 이것이 또한 마도의 진세 탓일 수도 있는 것이니.”
그는 한층 신중한 모습으로 허리를 세웠다. 파진은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그 틈바구니를 찾는 것 정도는 어찌 가능하지 않겠나.
웅크리고 있다가 나서는데, 눈발에 하나 흔적을 남기지 않고(踏雪無痕), 조용히 움직였다.
어느 틈엔가 하늘에는 잿빛 구름으로 가득했다. 눈 한 번 깜박할 사이에 굵은 눈발이 펑펑 떨어졌다. 이는 바람 소리는 요란했다.
눈 쌓여가는 바위 위에 설표 한 마리가 소리 없이 올라섰다. 하얀 몸에 검은 주름이 짙었다. 설표는 노란 눈을 깜빡거리면서 바람을 따라서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삽시간에 사방이 하얗게 물들어 있는데, 문득 두 개의 점이 꾸물꾸물 움직이고 있었다. 설표는 그르릉, 고개를 갸웃하면서 움직이는 것을 한참 지켜보았다.
멀리서 설표가 보고 있는 것이야 어떻든, 둘은 열심히 앞으로 나아갔다.
“으아악! 이딴, 이딴 눈바람!”
짜증을 한참 담은 일갈이 버럭 터졌다. 세찬 바람 소리를 뚫고 울릴 정도였다. 나선 그는 앞장서서 움직이는 탓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하얗다.
눌러쓴 털모자가 하얗게 보일 정도로 쌓인 눈이 묵직했다.
“각오는 했지만, 이렇게 급격하게 고약해질 줄은!”
바로 뒤를 따르는 이가 소리를 높였다. 둘 모두 공력이 상당한 경지에 이른 자들이었지만, 목이 아플 정도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소통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바람 소리는 거세었고, 날은 험하다.
두꺼운 가죽으로 감은 각반이 눈 속으로 푹푹 파고들었다. 이래서야 기껏 가죽을 준비한 의미가 없을 정도였다. 바람에 흩날리는 굵은 눈발은 얼어 있기까지 해서, 스칠 때마다 따끔거렸다.
두 인영은 한참을 고생해서 겨우 비탈진 길목 위에 올라섰다. 그러다가 선두의 사내가 버럭버럭 소리쳤다.
“저기 바위! 바위 뒤로!”
이대로 계속 나아갔다가는 조난당하든가, 동사하든가 둘 중 하나다.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의 급한 소리에 뒤따르는 이도 알았다고 크게 소리쳤다. 두 사람은 허겁지겁 발길을 돌렸다.
비스듬하게 기울어 있는 바윗돌이 큼직했다. 그 아래에 틈이 있는 것이 얼핏 보였다. 둘은 그곳으로 뛰어들다시피 했다.
그러자 울리는 바람 소리가 당장에 줄어들었다.
흐악, 흐악.
바윗돌에 등 기대고서 그만 주저앉았다.
숨 돌리는 게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천산에 익숙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만한 악천후는 드물었다.
이런 날씨에도 강행군을 택하여서 천산 오지에 오른 연유가 오히려 의아할 정도이다.
분명한 것은 아주 최악의 날씨에 최악의 장소에 있다는 것이다.
선두의 사내는 주저앉기가 무섭게 눈 쌓여 무거운 털모자를 냅다 벗어 던졌다. 그러자 상투를 올린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어둑어둑한 가운데, 흑백이 뒤섞여서 잿빛 머리카락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바위 밑에 든 것만으로도 일단은 살 만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상황은 전혀 아니었다.
두 사내는 부랴부랴 자리를 잡고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공력을 돌렸다.
머리에서 발 끝까지. 이런 곳에서 젖은 몸을 내버려 두었다가는 험한 꼴을 당한다. 아무리 고수라고 한들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소란한 참에도, 두 사람은 이내 운공에 들었다. 그들 어깨 위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각자의 방식으로 몸을 살피기를 한참, 이내 먼저 깨어난 이가 젖은 옷을 간단히 털고, 어둑한 바깥을 잠시 살폈다.
비스듬하게 기울어 있는 바위 덕분에 눈바람은 피해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내내 이렇게 있을 수도 없으니. 얼굴이 한참 심각했다.
“후우, 성소 있는 곳이 바로 너머인데. 여기서 딱 험한 날씨에 마주할 줄이야. 난처합니다.”
젖은 도포를 걸친 사내가 뒤에서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밖을 내다보던 사내가 어색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죄송합니다. 악 도형. 제가 굳이 살피고자 하지만 않았어도…….”
“어디 그런 말씀을. 성마교의 동정을 파악하는 것은 본파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저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마도가 중원에서 큰 소란을 피우고 있다는데. 하아, 어찌 보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악씨의 도사는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그는 천산파의 대제자로, 비응십삼검의 수장인 악무기라는 인물이다. 그리고 면목 없는 얼굴로 있는 사내는 중토(中土)의 귀한 손님이다.
천룡세가의 가인으로, 혁련후라는 자였다.
천룡의 후대를 책임지는 잠룡 중 하나, 그리고 소천룡 과를 보필하였던 그가 천산파를 찾은 것이다. 천룡대야의 명이니 어찌 마다할까.
그는 천산파에서 소식이 끊긴 막내 사제, 장관풍의 소식을 직접 들고 왔다.
처음에는 멋대로 하산이라도 하여서 탈문한 게 아닌가 하고 노발대발하기도 하였고, 아니면 천산 어디에 실족하여 변을 당한 것이 아닌가 하여서, 수시로 산길을 헤집고 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천만뜻밖에도 수만 리 바깥에서 그놈 소식을 들고 온 자가 있을 줄이야. 어디 꿈에라도 생각하겠나. 그것도 중토 무림의 전설이라고 하는 천룡세가였다.
더불어서 화염산 쪽에서도 사과의 뜻을 같이 전해왔다.
그 전령으로 온 것이 눈앞의 사내, 혁련후이다. 외견으로는 단아하여서 언뜻 유생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깊은 천산파에 이르러서도 숨결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지금만 해도, 바로 숨과 공력을 다잡지 않았는가. 천산파 대제자인 자신보다 공력을 수습하는 게 빨랐다.
상당한 자였다.
그에게는 또 한 가지 임무가 있었으니, 그것은 천산파에 장관풍의 소식을 전하는 한편, 천산 성마교의 동정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중원 일대가 성마교의 마인들로 인해서 작지 않은 혈겁이 거듭 벌어지고 있었다. 천산에 거하고 있는 마인들 마저 넘어왔다면, 그것은 곧 전면전을 뜻하는 게 아니겠는가.
악무기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곱은 손에 후후, 더운 숨을 불어넣고서 주변을 살폈다.
눈과 바람은 피했지만, 그렇다고 추운 데에서 젖은 채, 내내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공력으로 몸을 살피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바위 아래는 한참 어둑어둑해서, 한밤중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혁련후가 밖을 살피고 있을 무렵, 악무기는 짐을 잔뜩 뒤적여서는 무엇이라도 태울 것을 찾았다.
“이런, 불씨라도 챙겼어야 했는데.”
“여기 화로가 있네.”
“오오.”
문득 옆에서 작은 화로 하나를 밀어주었다. 시커먼 화로는 비록 볼품없었지만, 이때에 더없이 반가운 물건이 아닌가.
젖은 바닥에서는 아무래도 불을 붙일 수가 없으니.
악무기는 반기면서 당장 짐 속에서 잡다한 것을 때려 넣었다. 찢어진 옷자락이라든지, 낙서하다가 만 목편 조각 따위였다.
그러고서 바로 불을 붙여볼 참이다. 쪼그리고 앉아서는 한참 낑낑거리는데, 바람도 바람이었지만, 눈보라를 헤치면서 온 탓에 죄 젖어서, 불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이런…….”
“쉽지 않아 보이는구먼.”
혀 차는 소리에 옆에서 가만히 거들었다.
“음, 아무래도 한껏 젖었으니. 도리가 없겠소.”
“내가 해보지.”
“아, 미안합니다.”
“어디 미안할 것까지야.”
너무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악무기는 다가선 기척에 슬쩍 옆으로 비켰다. 그 자리에 다른 이가 앉아 손을 뻗었다.
그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차갑게 굳은 나뭇조각 하나를 집어 들어서는 휙휙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 단박에 쩌적! 소리가 나면서 말라붙더니, 곧 연기가 피어올랐다.
치지지직! 화륵!
사내는 같은 방식으로 주변 나뭇가지를 대강 그러모아서 작은 화로 속에 불붙여 던져 넣었다. 그러고는 손을 탁탁 털었다.
불길이 새삼 일어서 주변을 밝혔다.
“후우, 그래도 제법 잘 타네.”
“그렇군요. 으이잉!”
악무기는 뒤늦게 사내 모습을 다시 보았다. 화들짝 놀라서 주춤 물러났다. 당연히 혁련후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