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3
3화. 우둔한 무재(武才)
날이 밝았다. 대일과 소명은 망산으로 향했다. 상화촌에서 발걸음을 부지런히 하면 한 시진 남짓 걸렸다. 두 부자가 향하는 무덤은 여기 망산에서도 깊은 곳에 있었다.
주인 모를 무덤만도 수십, 수백인 망산이다. 어미의 무덤은 그중 한 곳에 자리했다. 작지 않은 규모였지만 보기에 볼품없었다. 장식물은커녕 비석 하나 없었다. 주변은 무성하게 자란 잡초로 어지러웠다. 그래도 대일과 소명은 무덤을 바로 찾았다.
두 사람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벽돌을 쌓아 만든 무덤 외벽과 주변에 자란 잡초를 정리했다. 그리고 대일은 무덤 앞에 준비한 지전과 향을 사르고 술을 부었다. 비석이 있어야 마땅한 자리에 술이 흘러내려 땅을 적셨다. 그는 문득 입을 열었다.
“내 이곳을 도묘하러 들어갔다가 관속에서 우는 아기를 발견했었지.”
대일은 세월을 헤아리는 눈으로 말없는 봉분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옛일을 말했다. 소명은 대일을 올려다보았다.
“에휴, 알았다니까. 왜 매번 그 얘기를 하는 건데?”
“잊지 말라고, 어떤 일이 있어도 잊지 말라고 하는 말이야.”
“피이. 나 머리 좋아.”
“그래, 누가 모르겠느냐. 세상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지.”
소명은 장난스레 입술을 삐죽였다. 대일은 하하 웃으며 소명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향 연기가 사르르 피어올랐다. 봄철 햇살 아래에서 보랏빛의 향연은 고요히 흩어졌다.
대일은 소명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린 채 올라가는 향 연기를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도 이름 모를 관속 미부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후 대일은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보려 했지만 알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이 무덤을 만들었을 일꾼들도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치 무덤이 절로 생긴 것으로 생각될 정도였다. 게다가 달리 무덤을 찾는 사람 또한 없었다. 이곳을 찾는 것은 대일과 소명, 두 부자가 전부였다. 십여 년 동안 꾸준히 애써왔지만 대일로서는 더 이상 알아볼 방도가 없었다. 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인지.
쓸쓸한 무덤을 바라보던 대일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명아, 오늘을 잊지 말거라. 잊어서는 안 된다.”
“응.”
대일의 당부에 소명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십삼 년 전의 오늘이 바로 무덤에 묻힌 날이오, 소명을 구한 날이었다.
‘누군지 지금도 모르지만 감사합니다. 당신 덕에 보잘것없는 이 도굴꾼이 새 삶을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일은 누군지 모를 무덤 주인을 향해 계속해서 감사의 말을 전했다.
* * *
소명은 아이들과 함께 무관 앞에 섰다. 새로 칠한 정문 기둥에 간판이 걸려 있었다.
호가무관(胡家武館).
열린 문 안쪽으로는 아무런 기척도 없어 고요했다. 그것이 더욱 긴장되게 했다. 고개를 돌려 보니 다른 아이들의 얼굴은 기대감으로 붉었다. 탁연수와 당민은 물론이고, 소심한 이청마저도 들뜬 기색이었다. 이청은 호금을 꼭 끌어안은 채 무관의 모습을 기웃거렸다. 그러나 친구들과 달리 소명의 얼굴빛은 좋지 않았다.
“소명아, 뭐해? 들어가자.”
탁연수는 머뭇거리는 소명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재촉했다.
“으, 응. 자, 잠깐만.”
주저하는 소명의 모습에 셋은 이상한 눈으로 보았다.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당민이 눈살을 찌푸렸다.
“오늘 진짜 이상하다. 안 그래, 이청?”
“응, 이상해. 어디 안 좋은 거야, 소명아?”
“하, 하하.”
아이들 말에 소명은 그저 머리만 긁적거렸다. 이청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의 얼굴을 살폈다.
그때였다.
“야!”
버럭하는 큰 외침에 고개를 돌렸다. 뒤에서 두 아이가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소명과 친구들은 둘의 모습을 기억했다.
“어, 너희는.”
전날 언덕에서 보았던 무관의 남매다. 그러나 알은척할 새도 없이 남자아이가 다그쳤다.
“너희 뭐야? 뭔데 무관을 엿보고 있는 거야!”
“엿봐? 엿보기는 무슨.”
남자아이의 험악한 모습에 소명과 친구들은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그 녀석은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다짜고짜 달려들어 소명의 멱살을 덥석 움켜쥐었다.
“바른대로 말 안 해! 이 자식!”
“윽, 이게 뭐, 뭐하는 짓이야!”
“뭐하는 거야! 그 손 안 놔!”
녀석의 거친 행동에 소명은 물론이고 세 친구들 모두 당황했다. 그 녀석은 막무가내였다. 마구잡이로 소명을 밀어붙였다. 처음에는 당황해 버둥거리던 소명도 이내 울컥했다.
“이 자식이 정말!”
소명은 아이의 멱살을 맞잡았다. 불끈 힘을 주자 이번에는 아이가 당황했다. 겉보기와 전혀 다른 소명의 힘 때문이었다.
“억! 이, 이 자식이!”
소명이 더욱 힘을 쓰자 아이의 발이 주르륵 밀려났다.
“소명, 잘한다!”
“밀어붙여!”
옆에서 친구들이 소리를 높였다.
“이, 이것들이 정말!”
자기가 밀렸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 남자아이는 당장 주먹을 움켜쥐었다. 아이답지 않게 묵직한 주먹이었다. 당장 소명의 얼굴을 향해 내뻗으려는 순간에 큰 호통이 터졌다.
“호충인! 이 녀석!”
호충인이라 불린 아이는 우뚝 굳어버렸다. 소명과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소명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이 스륵 풀렸다.
문 앞에 등장한 이는 대일만큼이나 키가 큰 중년 사내였다. 붉은 안색에 검은 눈썹이 매섭게 솟았고, 검은 수염이 길었다. 부리부리한 두 눈에서는 빛이 번쩍였다.
그의 모습에 호충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아이는 움츠러들었다.
“아, 아버지.”
“이놈,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게냐?”
낮은 목소리는 무거웠다. 움츠러든 아이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 그게 저 자식들이. 그러니까…….”
“아버지, 오라버니는 잘못 없어요. 저 촌뜨기들이 무관을 엿보고 있었단 말이에요!”
옆에 있던 여자아이가 냉큼 나섰다. 그러자 둘의 모습에 중년 사내, 호경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어찌된 일인지 알 만했다.
‘허, 이 녀석들 하고는. 보나마나 이 녀석들이 서성이던 아이에게 시비를 건 것일 테지.’
붉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모습에 두 남매는 입을 꼭 다물었다. 아비가 화를 내기 직전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눈치를 보는 모습에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소명과 친구들을 돌아보았다.
“너희들은?”
“저는 소명이라고 합니다.”
소명을 시작으로 다른 아이들도 제 이름을 말했다. 호경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입관하기로 한 아이들이로구나. 그리 긴장할 것 없다. 나는 여기 호가무관의 주인인 호경한이라고 한단다. 이제부터 관주님이라고 부르거라.”
“예, 관주님.”
호 관주는 옆에 시무룩하게 있는 남매를 앞에 세우며 말했다.
“여기 이 녀석이 첫째 놈으로, 호충인이라고 한단다. 올해 열셋이니. 너희와 동갑이란다. 그리고 이 녀석이 호청연, 올해로 아홉이지.”
“하, 하하. 안녕.”
소명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자 남매는 홱 고개 돌려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에 당민이 오만상을 썼고, 이청과 탁연수가 좌우에서 말렸다. 소명은 그 사이에서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자 호경한의 호통이 다시 떨어졌다.
“이런 밥통 같은 것들. 어서 잘못했다고 하지 않고 그게 무슨 태도더냐!”
“하지만.”
“어허!”
큰 소리에 두 아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잔뜩 입술을 내민 뾰로통한 얼굴이다. 잘못한 줄 알면서도 사과하기는 싫은 모양이었다.
호경한이 쯧쯧 혀를 차자, 호충인이 마지못해 소명들에게 사과했다.
“미안하다.”
“괘, 괜찮아.”
입으로는 그리 말해도 얼굴은 전혀 미안해하는 표정이 아니다. 두 남매 모두 엉뚱한 곳을 보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불만이 참 많은 모습이다. 호청연은 아예 딴청이었다.
‘어쩔 수 없는 녀석들.’
문 앞에서 소란을 일단락 짓고, 그들은 무관 안으로 들어섰다. 연무장으로 쓰이는 무관의 앞마당은 넓었다. 벽면에는 여러 병장기들이 세워져 있었다. 창칼 같은 날붙이가 햇살을 받아 번쩍거렸다. 소명과 아이들에게 낯선 광경이다.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거렸다.
소명은 대장간에서 일을 돕고는 하지만 이런 병장기의 모습은 구경도 못 해봤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모습에 뒤에 있던 호 씨 남매는 피식하고 비웃었다.
“흥, 촌뜨기들.”
호 관주는 연무장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첫날이니 간단한 것부터 시작하자꾸나.”
“예, 예!”
“잘 보아라.”
그의 말에 소명과 아이들은 새삼 긴장했다.
“충인.”
호 관주는 호충인을 찾았다. 멀찍이서 이쪽을 보고 있던 아이는 그의 부름에 움찔해서 급히 달려왔다.
“예, 아버지.”
“아이들에게 마보(馬步)를 보여주려무나.”
호충인은 다른 말 않고 자세를 취했다. 두 발을 어깨너비만큼 벌리고 허리를 세운 채 그대로 무릎을 직각으로 굽혔다.
“이것이 마보란다. 모든 무술의 기본이지. 자, 해보거라.”
아이들은 주춤거리며 호충인의 마보를 따라했다. 엉거주춤한 모습에 호 관주는 다가가 한 명, 한 명의 자세를 바로잡아주었다.
“팔은 더 들고, 허리는 펴고, 엉덩이는 더 아래로. 다리에 힘을 주어야지. 그래, 그대로 버티는 거다. 잘하는구나.”
오래지 않아 소명은 콧등을 실룩거렸다. 무릎이 아팠다. 허벅지가 끊어질 것 같았다. 부들부들 몸이 떨렸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
“힘이 드느냐?”
“에, 그, 그게.”
“그렇게 힘들어야 하는 것이다. 자, 팔을 좀 더 올려야지.”
말하며 호 관주는 슬그머니 내려간 소명의 팔을 다시 올려주었다. 팔이 빠질 것 같았지만 내색할 수가 없었다. 소명은 일그러지는 얼굴에 억지웃음을 지었다.
모습을 둘러본 호 관주는 그리 마보를 세워둔 채 자리를 비웠다. 호충인도 마보를 선 채 자리를 지켰다. 그만이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다른 도리가 없었다.
연무장에서 호충인과 소명들은 서로를 마주본 채 마보를 섰다. 조용한 와중에 끙끙 참는 소리만 들렸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무작정 참고 있는데, 호청연이 쪼르르 와서는 아이들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빤히 보고 있으니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 너 지금 뭐하는 거니?”
“너희들 딴 짓하나 안 하나 지켜보는 거야.”
“뭐야?”
호청연의 얄미운 말에 당민이 당장 얼굴을 찌푸렸다. 그 모습에 청연은 자리에서 발딱 일어섰다.
“아빠한테 일러준다!”
“이, 이게.”
“다, 당민아. 참자. 우리 이거 해야지.”
옆에서 달래서야 당민은 화를 참았다. 가늘게 뜬 눈으로 호청연을 흘겨보았지만 그 아이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 중에서 제일 죽을 지경인 아이는 다름 아닌 이청이었다. 이 상황에서도 호금을 꼭 쥔 채 놓지 않고 있었다.
“으, 으으.”
내려놓으면 조금이라도 나으련만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서도 호금을 포기하지 않았다.
“괜찮아? 잠깐이라도 내려놓지그래?”
“싫어! 호금은, 호금은 안 돼!”
소명이 보다 못해 말해봤지만 이청은 격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를 악물고 미련스레 버텼다. 홑옷 아래 이청의 얇은 팔은 어린 대나무처럼 위아래로 마구 흔들거렸다.
소명과 친구들은 머리 높이 있던 햇살이 기울 때까지 마보를 섰다. 지쳐서 엎어졌다가 다시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그러기를 몇 번, 몇십 번이었다. 누가 뭐라 하는 사람도 없는데도 아이들은 악착같이 마보를 취했다. 넘어져서 헐떡거리다가도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호충인은 그런 네 아이들을 노려보고 있었고, 아이들도 버티고 선 호충인을 노려보았다. 그 사이에서 쪼그려 앉은 호청연은 끄덕끄덕 졸았다.
시간이 흘렀다. 하늘이 어둑해지고 한참 뒤에 나온 호 관주는 사색이 된 아이들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음, 좋구나. 오늘은 그만 돌아가도 되겠다.”
“가, 감사합니다.”
대꾸할 힘도 없었지만 소명은 간신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네 아이는 서로를 부축해가며 무관을 나섰다. 호 관주는 아이들의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호청연에게 넌지시 물었다.
“꾀부리는 아이는 없더냐?”
호청연은 잠시 생각하더니 곧 대꾸했다.
“음…… 그러지는 않았어요. 다들 끝까지 하던데요.”
“그래? 그렇단 말이지.”
딸아이의 말에 호 관주는 눈썹을 치켜들었다.
‘그 정도 끈기라면 무재야 어떻든 가르칠 만하겠군. 물론, 내일 나오느냐가 문제겠지만.’
입가에 쓴 미소가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