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301
301화. 삼우여신룡(三友與神龍)
숭산(嵩山).
중원에서 손꼽는 다섯 명산, 오악에서 중악(中嶽)이라 하며, 유불도에서 모두 성지로 여긴다.
유가에서는 숭산서원(嵩山書院)이 있고, 도가에서는 숭산중악묘(嵩山中嶽廟)를 두어서 산신을 모셨다. 그러나 역시 숭산이라 하면 소실봉에 자리한 불가 선종의 시원, 소림사를 먼저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달마선사께서 여기서 선종의 가르침을 전했다.
뿐이랴, 당시로부터 무공이라는 체계가 이루어졌다고도 할 수 있었다.
무림이 소림사를 천하무종(天下武宗)이라 칭하면서 무림계 성지로 여기는 이유였다.
그러한 숭산이고, 특히 소실봉 위로 짙은 암운이 맴돌고 있으니. 그 암운은 불길하고, 두려우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파팍!
마른 수풀을 헤치고 나선 발걸음이 다급하다. 무성한 수풀 사이로 뛰쳐나오는 세 인영이 있었다.
사이로 뛰쳐나왔다고 하기보다는 셋이 향하는 방향에서 알아서 몸을 눕혀서 길을 내었다고 하는 편이 더욱 정확했다.
서두르는 그들이었다. 드러내는 기파가 뚜렷하여서 무성한 수풀이든, 울울창창하게 드리운 나뭇가지든 거침없이 밀어냈다.
바람이 등을 밀어주고, 땅이 발을 받쳐주는 듯하다.
무서운 질주 끝에, 그들 셋은 산정에 하얗게 드러난 산 바위 위에서 허리를 세웠다.
잠시 숨을 돌리고자 후우, 내뱉는 탁한 숨이 그렇게 뜨겁다.
산 높은 곳이니만큼 차디찬 바람이 제법 거칠게 몰아쳤지만, 그들 주변으로는 열기가 가득 맴돌았다. 굵은 땀방울이 콧등에 맺혀 있었다.
소명과 호충인, 그리고 탁연수, 세 사람이다.
셋은 정말 정신없이 달려온 참이었다. 멀리 사천 성도에서 소식을 듣기가 무섭게 뛰쳐나와서, 여기 숭산까지. 그 거리가 몇이던가.
셋은 그야말로 직진 일로였다.
산이 있으면 뛰어넘었고, 물이 있으면 가로질렀다. 돌아갈 시간도, 정신도 없었다. 그리고 끝에 숭산을 보고 있다.
셋 중 누구 하나 뒤처지지 않았다.
이미 천하를 오시할 만한 셋이었다. 그런 이들이 각자 보신경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였으니.
“후우…… 죽겠네.”
심각한 얼굴로 옆에 선 탁연수는 여전히 굳은 얼굴을 하고서 그만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는 뻣뻣하여서 굳은 무릎을 힘주어 부여잡았다.
무릎을 굽힐 때마다 관절이 삐꺽거리는 듯했다.
강시당의 보신경은 분명 천하일절이지만, 수만 리 길을 쉴 틈 없이 내달리기에는 무릎에 부담이다.
“쯧, 그러니까 평범하게 뛰라니까.”
“시끄러…….”
옆에서 혀 차는 소리에, 탁연수는 대뜸 이를 드러냈다. 소명을 흘겨보는데, 험한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만도 대단한 자제력이다.
“내가 아무리 그래도 너한테는 그런 소리 듣기 싫다!”
“아니, 내가 뭘.”
소명은 어이없어 잠시 헛웃음을 흘렸지만, 하얗게 뜬 탁연수의 눈초리는 진심이었다.
옆에서 호충인도 고개를 흔들면서 툭툭 허벅지를 두드렸다.
같은 소림파라고 할 수 있는 호충인도 나름대로 보신경을 발휘했다. 등천비호군이라는 무명이 괜히 붙었겠나.
그런데 소명은 그냥 뛰었다.
정말 다른 게 없었다. 그냥 두 발로 부지런히 달리면서 강시당 비전이니, 등용문 비전이니 하는 보신경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니. 아니, 그보다 빨랐다.
“다른 것도 아니고, 철비각(鐵飛脚), 철비각이라니!”
보법, 신법, 경신의 이치를 모두 담았다고 하지만, 소림사에서도 기초 중 기초로 삼는 공부가 아닌가.
이런저런 말을 해도, 어쨌든 빨리 뛰는 게 전부였다.
“야야, 그만해라. 달리 저놈보고 권야라고 하겠나. 흥분하면 너만 손해야.”
호충인이 나름대로 위로랍시고 하는 말이었다. 그도 약간은 체념한 상태였다.
소명은 둘이 하는 양을 멀뚱히 보고 있다가, 그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직 기운들이 있기는 하구나. 너희 둘.”
“흐흐. 그렇지 뭐.”
호충인은 찡그린 얼굴로 다가섰다. 어깨를 같이하고서 산봉을 헤아렸다. 산세를 타고 부는 바람을 맞으면서 후우, 후우, 숨을 몰아쉬었다.
바람은 차갑지만 탁하다. 아직 거리가 있었는데에도, 벌써 마주하는 바람 속에 피 냄새가 섞여 있는 듯했다. 향하고자 하는 곳은 피와 죽음이 산처럼 쌓여 있을 것만 같았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호충인은 질끈 입술 깨물고서 물었다.
“그럼, 당장 들이칠까?”
소명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급해도, 이대로 들이닥쳐서는 될 일도 없지. 일단 숨 좀 돌리자고.”
“괜찮겠냐?”
소명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콧등에 맺힌 땀 한 방울을 가볍게 털어냈다. 여기서 제일 마음이 급하기에는 역시 소명이겠다.
탁연수가 걱정을 담아서 물었다. 다른 상황을 묻는 게 아니었다. 그는 소명이 느끼고 있을 불안이 걱정이었다.
소명은 고개 돌리지 않고, 저기 코앞에 있는 숭산을 지켜보며 말했다.
“무작정 들이닥쳐서, 숨도 못 쉬면 무슨 도움이 되겠냐.”
“후우, 그도 그렇지.”
탁연수도, 호충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정말 정신없이 달려왔다. 숨은 몰아쉬고, 땀으로 푹 젖었지만, 눈빛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여기 모두 일당천은 능히 가능하다고 자부하지 않는가. 그러나 상대는 마도에 속한 자들. 상리로서 말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닌지라.
아무리 기운이 남았다고 해도, 무작정 뛰어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흡, 흡! 좋아. 일단 주변 먼저 살피자고.”
탁연수가 깊이, 깊이 숨을 다잡고서, 냉큼 앞으로 나섰다. 그는 소명 옆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는 아득한 산세를 향해서 바짝 고개를 들이밀었다.
사방의 산세는 고요하다. 보는 것으로 도통 모를 일이다.
그러나 탁연수의 검은 눈동자가 일변하여, 백색으로 잔뜩 물들자, 주변의 풍경이 달리 보였다.
가슴 앞에 열 손가락을 기기묘묘하게 모으면서 입술을 빠르게 달싹거렸다.
강시당이 단순한 무림일문이 아닌 까닭이다.
본래에 시해선에 이르는 수행을 통해서 등선에 이르고자 하는 도가일맥이 아니었던가. 시체를 부리듯이, 그만한 도가술법도 적지 않게 전해지고 있었다.
물론 탁연수가 지닌 법술은 몇 되지 않았지만, 마침 지금 같은 때에 쓸만한 술법이 하나 있었다.
심사백안주(尋死白眼呪).
사기를 찾아내는 하얀 눈이라, 지금 탁연수가 하얗게 뜬 백안은 다른 게 아니라 사기와 같은 삿된 기운이었다.
주술에 집중하여서 눈을 뜨기가 무섭게, 탁연수가 보는 세상은 그만 색을 잃었다.
산천초목이 푸름을 잊고, 온통 흑백만이 남은 듯하다. 그런데 산중에서 한눈에도 불길한 자색과 적색, 또는 탁한 오수처럼 시커멓게 물들인 색이 곳곳에 웅크리고 있었다.
탁연수는 그리 숨은 자들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이는 술법이라, 저기 있는 자들이 지닌 마공기력의 무공고하와는 관계가 없었다.
목측(目測)으로 헤아릴 수 있는 곳까지 전부 살피고서 탁연수는 대뜸 혀를 찼다.
“히야, 많이도 몰려왔다. 대충 세어도, 일이백 정도가 아닌데. 성마교 것들이 아주 작정을 했어. 작정을.”
탁연수는 강시
당의 비술로 속속들이 파악하고서 하는 말이었다.
나무 밑이라면 어디랄 것 없이 수십이 모여서는 오로지 한 곳, 소림사를 향해서 살기를 던지는 상황이었다. 그런 식으로 몇 겹이나 되는 포위망을 구축하였으니.
천라지망을 이들이 끌어다가 펼쳐놓은 셈이었다.
안에서는 나갈 수 없고, 밖에서는 들어갈 수 없다.
쉽지 않은 일로, 소림사까지 향하는 것부터가 상당한 험로임을 굳이 비술을 발휘하여 파악하지 않더라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탁연수는 제 색을 찾은 검은 눈을 연신 깜빡거렸다.
“틀렸어. 어디 한 곳도 거치지 않고는 안으로 들 방법이 없네. 아주 숭산이 자기들 안방인 꼴이야.”
“그리고 한 곳이라도 거치면, 죽자고 달려들겠지?”
“앞뒤 정도가 아니고, 아주 사방팔방에서 달려들 판국이다. 저거.”
“히야, 그럼…… 어쩌냐? 응, 소명아.”
“뭐, 대도무문(大道無門)이지.”
큰길에 다른 문은 없다. 그저 곧은 길을 밟아 나아갈 뿐.
조금의 지름길이나, 계책 따위는 생각지도 않겠다.
셋은 입을 굳게 다문 채, 각자 방식으로 빠르게 몸을 돌보았다. 숨은 바로 다잡았으나, 굳은 몸을 풀고, 공력도 최대한 회복해야 했다.
열심히 살폈지만, 막상 산으로 진입하였을 때에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아무리 천하 고수라 하여도, 대비는 필요한 법이다.
한참 집중하던 차, 탁연수가 퍼뜩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라, 라? 야, 우리 뭔가 깜빡한 것 같지 않냐?”
“깜빡? 뭘 깜빡해?”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
탁연수가 던진 물음에, 소명과 호충인은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는 듯이 돌아보았다. 천천히 몸을 푸는 중이었다.
팔다리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탁연수를 보았다. 탁연수는 미간을 바짝 모았다.
“아니, 뭐가, 뭐가 있는데? 사천에 뭘 두고 왔나?”
“딱히 챙길 게 없는데, 두고 올 게 뭐가 있겠어?”
“그런가?”
소명도, 호충인도 걸리는 바가 없었다.
탁연수는 그래도 여전히 찝찝한 모양인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있었던 것 같은데.”
주저하면서 계속 중얼거리자, 호충인이 피식 헛웃음을 흘리면서 돌아보았다.
“그럼 있었나 보지 뭐. 잊어버려. 여기까지 온 마당에 무슨 소용이 있겠냐.”
“충인 말이 맞다. 잊어버려. 지금은 저기를 돌파할 생각만 하자고.”
“쩝, 그야 그렇지.”
정말로 잊은 게 있다 한들 숭산이 저기였다. 여기서 무얼 따지고 있겠나.
소명도 거들면서, 그만 잊으라고 하니. 탁연수는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구긴 얼굴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분명 뭔가 당부를 잊어버리기는 했는데.
탁연수는 에효, 한숨을 흘리고서 두 눈을 다시 떴다. 눈가에서 푸른 빛이 한차례 번쩍이고, 낯빛이 새파랗게 물들었다.
자칫 병색이 짙은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지만, 이는 강시당 고루천강 십성 공력이 일어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호충인은 손목, 발목을 툭툭 털고서는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소명이 물었다.
“준비들 됐냐?”
“음!”
“아무렴.”
그렇다면. 소명은 굳이 가자는 말 할 것 없이 성큼 앞으로 나섰다. 호충인과 탁연수는 그 좌우에서 바로 움직였다.
셋이 향하는 길목에는 죽음과 살기가 짙게 고여 있건만, 주저할 것 없이 나아갔다.
막으면 막는 대로 부수면서 나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