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302
302화. 삼우여신룡(三友與神龍)
장신 사내가 하얗게 솟은 산 바위 위에 간단히 올라섰다.
까마득한 산정이었다.
이는 바람이 세찼고, 한 치 앞은 족히 수백 장 높이의 까마득한 절벽이다. 하얀 장삼이 세찬 산바람을 받아 뒤로 펄럭였다.
올라선 사내는 무엇을 찾는지 황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으아아악!”
급기야, 성질에 복받쳐서 울부짖는 소리가 한없이 크게 울려 퍼졌다.
“대, 공, 자!”
원망마저 섞인 울부짖음이다.
쩌렁쩌렁 터져 나오며 산세를 뒤흔들었다.
그는 산봉 끄트머리에 올라서는 어딘지 모를 곳을 향해서 끊임없이 울어 젖혔다.
“어찌 이러실 수 있습니까! 대, 공, 자!”
신룡대주 마도옥이다.
무산일대를 아우르는 제일검객으로 이름 높기도 한 무곡검군이, 지금 끝도 없이 울어 젖히고 있으니. 그 원망이 누구를 향해 있는지 모를 사람은 없었다.
신룡대가 대공자라고 할 사람은 하늘 아래 한 사람 뿐이니.
권야 소명을 말한다.
산봉 뒤에서 신룡대 부대주, 마량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숨차서 핼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이고, 저런. 우리 대주는 힘도 좋으시지. 그렇게 뛰고도 숨이 남아서, 저렇게까지 난리를 치시나. 하여튼.”
마량은 쯧, 혀를 찼다. 대주 심정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내 울부짖을 건 또 뭐란 말인지.
후우, 후우.
숨 몰아쉬는 마량은 마도옥에 비하자면, 한참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부대주, 남의 일처럼 말씀하십니다.”
“뭐, 어쩌겠나. 대공자께서는 대공자라 부르지도 말라 하시고. 기다릴 바에야 나아가겠다고 하시는 분인데.”
마량은 입술을 삐죽이면서 말했다.
부대주 말이 맞기도 하니, 신룡대원들은 고소만 머금었다. 그들은 찡그린 얼굴로 숨을 가다듬었다.
전력을 다해서 가파른 산길을 관통한 탓이었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여기서 소명과 마주하기로 되어 있었다.
천룡 본가에 보고는 물론, 홍천 유민을 은신처로 이끄는 조원과 합류도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사천에서 숭산 사이에 길목으로, 여기서 숭산까지는 서두르면 하루 거리 남짓이었다.
그러나 소명은 조금도 기다리지 않고, 그냥 내달렸으니. 길이 어긋난 정도가 아니었다.
실상 소명은 신룡대와 함께 움직인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마량은 일이 이리되지 않겠나 예상했던 바이다.
일군이라 할 수 있는 마교 무리가 숭산에 오른다.
그 한 줄에 소명이 보인 반응을 직접 마주하지 않았던가. 분노한다든가, 동요한다든가,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차라리 분기탱천하여서 기세를 폭발하였다면 이해라도 하겠다.
그때, 소명은 고요했다. 한없이 고요하여서 마주하고 있는 마량이 숨을 잊을 정도였다.
“그만큼이나 급한 일이지 않겠나. 소림사를 노리다니 말이야.”
“성마교, 아주 작정을 한 모양입니다.”
“그렇지, 그렇지. 본가에서 파악한 상황을 보니.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어.”
마량은 고개를 흔들었다. 찡그린 얼굴에는 다른 무엇보다 곤혹스러움이 짙었다.
저기서 난리 치고 있는 대주는 그에게 별일이 아니었다. 마량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눈동자를 굴렸다.
“위지 선생께서도 바로 소림사로 향하였다지.”
“예, 그리 보고가 왔습니다.”
“흠, 그럼. 홍천 유민들은 오조가 끝까지 맡는 것으로 하고.”
“발 빠르게 움직이면, 어찌 대공자 끄트머리라도 잡을 수 있겠습니다만.”
“그도 그렇지만, 지금은 오히려 위지 선생과 함께 움직이는 편이 더욱 유리할 듯하네.”
파악한 것보다 더 빠르면 빨랐지, 늦지는 않을 터였다. 여기서 허겁지겁 움직인다고 해도, 뒤꽁무니를 잡기는커녕 눈에 두지도 못할 게 뻔했다.
“헌데, 부대주.”
“응?”
한층 조심하여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 기색에 마량은 고개를 들었다. 다가선 일조장은 어딘지 불편한 모양인지, 얼굴이 편치 않았다.
주저하면서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다른 조장, 조원들 표정도 비슷했다.
“왜 그런 낯짝인가?”
“부대주, 대공자께서는 기어코 천룡을 마다하시는 걸까요? 이번 일만 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본대라면 분명 마교를 상대할 때에 상당한 전력일 텐데요.”
“흠, 그건 모르겠군. 천룡이라는 이름을 마다하시는 건지, 부정하시는 건지. 하지만 이번 일은 아무래도 얘기가 다르지 않겠나?”
“다르다니요? 무엇이 다르단 말입니까?”
일조장과 같이 선 대원들도 의문 품은 눈으로 마량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마량은 당연한 일을 어찌 묻느냐는 듯이 대꾸했다.
“그야 우리가 너무 느려터진 거지. 대공자와 그 친우 분은 그만 다급한 상황이었던 것이고.”
“헙!”
천룡세가 중에서도 정예를 자부하는 신룡대. 그런 자신들이 느려터졌다니.
당황한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러다가 몇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몇은 후우, 더운 숨을 높이 뿜어 올렸다.
마냥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이, 신룡대는 여기까지 정말 전력으로 달려왔건만, 소명을 따르기는커녕, 그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다.
그리 큰 시차를 두었던 것도 아니건만.
심지어 같이 내달리는 두 사람, 등용문주와 강시당주조차 신룡대가 감히 따라잡지 못한 셈이다.
마량은 적잖은 충격에 말을 잃은 대원들을 대충 둘러보았다.
‘뭐, 충격은 충격이겠지만. 어쩌겠어, 그게 사실인데.’
그러고는 한쪽 구석을 향해서 보았다.
땅을 밟고 솟구친 흔적이 한참 뚜렷했다. 심지어 저것은 소명이 남긴 것도 아니었다.
두 발을 모아, 지기와 충돌한 반발력으로 솟구치는 강시당 특유의 보신경이 남긴 흔적이다. 그리고 옆에는 같이 박찬 흔적이 역력했다.
바로 소명과 함께 길 나선 강시당주와 등용문주의 족적이다. 여기서 소명이 남긴 흔적은 딱히 없었지만, 그 세 사람이 같이 움직였음은 굳이 의심할 바가 아니었다.
“흐음.”
마량은 자기도 모르게 낮게 침음했다.
분명히 이들은 어디 다른 길로 소림사를 향하지 않았다.
사천에서 숭산까지, 말 그대로 직진 돌파한 셈이었다.
험한 산과 아득한 산정을 죄 박차면서 무섭게 질주했으니. 여기도 그런 길목 중 하나이다.
다만 신룡대가 따르고 있음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 뿐이다. 하기야, 누구를 기다릴 만큼이나 여유 있는 상황도 아닐 터이고.
마량은 불현듯 머리 구석을 스치는 섬뜩한 생각에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미간에 팬 골이 깊었다.
그래도 잠깐에 불과했다.
마량은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가 뒤따른다는 건 알고 계시겠지. 설마.”
섬뜩한 생각이란, 소명 머릿속에 신룡대가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바로 고개를 흔들고서, 마량은 생각을 정리했다.
우선 모두가 숨을 회복했다.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위지백과 함께 이곳으로 이동하는 두 개 조가 있었다.
그들과는 숭산 초입에서 합류할 수 있다. 시기와 장소를 헤아렸다. 답은 바로 나왔다. 그럼, 이제는 움직일 때였다.
마량은 고개를 돌렸다. 마도옥이 저 위에서 여전히 우는소리만 하고 있었다.
“으허허허!”
“거, 대주! 작작 좀 하시구려! 내내 그리 있을 셈이시오!”
“으! 아아. 아흠. 흐흠.”
마도옥은 마지막 소리를 쥐어짜려다가, 버럭 하는 소리에 그만 고함을 삼켰다. 그는 콧물 한번 훌쩍이고서 주춤 돌아섰다.
꼭 마량 잔소리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요동친 마음을 다잡을 때였다.
마도옥은 후우, 길게 한숨을 밀어냈다. 여기서 바람을 맞았다지만, 그렇다고 대공자 따르는 일을 접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천룡대야께서 직접 그들을 앉혀놓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잡고 부탁하지 않았던가. 그저 명령을 내린 게 아니었다.
천룡께서 직접 한 부탁이었다. 어찌 소홀할 수가 있겠는가.
물론, 그렇게 마주한 대공자란 사람이 설마 천룡이라는 이름을 귀찮아할 줄은 추호도 몰랐지만.
마도옥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에 뭐라고 불만을 느낄 수도 없는 것이, 그럴 만한 자격이 충분하지 않은가.
천하 육대 고수 중 한 사람이다.
소림사의 용문제자로, 소림제일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설의 천룡이라지만, 그에 못지않은 이름이다.
‘거참, 대공자가 그리 대단한 분이라니.’
마도옥은 퍼뜩 고개를 흔들었다. 아래에서 마량과 대원들이 자신만 보고 있었다.
마음을 다잡고서, 마도옥은 훌쩍 내려섰다. 이제야 평소 모습이다.
“그래, 다들 숨은 돌렸나? 체력은 충분하고?”
“예, 대주. 만전입니다.”
마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공자께서는 분명 소림사로 바로 향하셨을 터.”
“예, 적잖이 서둘러야겠습니다. 대공자 뒤를 따르는 건 글렀지만, 그래도 때를 맞춰야 한칼이라도 거들지 않겠습니까. 이대로면 위지 선생과 복귀하는 조와 숭산 초입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음, 음.”
마도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백운 문양이 뚜렷한 장삼을 뒤로 펄럭이고서, 잠깐 숨돌린 대원들을 둘러보았다.
그가 저기서 악을 써대는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원 모두가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이글이글, 열의에 타오르는 눈빛이었다. 얼굴이 한층 붉게 달아올랐다. 결코, 숨이 차서가 아니었다.
“음, 너희 눈빛이 좋구나.”
“예, 대주!”
신룡대는 이를 악물고 외쳤다. 대공자가 끝내 마다할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어떻게든 인상을 남기겠다고 작정했다.
마도옥은 이런 와중에도 대원들 사기가 자못 만족스럽다.
“좋아, 가자! 가서, 대공자에게 신룡대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주자!”
“명!”
뜨거운 호응이다.
신룡대주가 그대로 산정을 박찼다. 그 뒤로, 신룡대 또한 거침없이 내달렸다.
파라라락! 파라라락!
그들이 걸친 백운신룡포가 거칠게 펄럭였다.
* * *
촌각의 휴식 끝에, 소명은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그가 나서는 뒤로 호충인과 탁연수가 걸었다. 걷는 중에, 호충인은 가볍게 손목을 흔들었고, 탁연수는 점점 얼굴빛이 파리하게 질려갔다.
딱히 말 꺼낸 사람도 없지만, 세 사람은 품자(品字) 형태로 서서 그대로 걸어갔다.
셋이 소림사로 드는 숭산 어귀에 나타나기가 무섭게, 녹음 짙은 수풀이 한층 어수선하게 술렁거렸다.
누구인지를 파악하였기 때문이 아니다.
저리 보무도 당당하게 나타나는 이가 누가 있단 말인가.
이미 주변 수십 리를 물샐 틈 없이 에워싼 마당이건만. 그것을 무시하고 들어섰다는 것이니.
둘 중 하나였다.
정말로 아무 상관 없는 민초이거나, 아니면 마도의 포위망을 무시할 정도의 강자라는 뜻이다.
민초라 볼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호충인의 모습은 하남 무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무림이고, 아니고를 구분할 것도 없었다. 탁연수의 파리한 몰골 또한 일반 민초의 꼴로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산에 오르는 길목에 소리 없이 네 인영이 조용히 일어섰다. 잿빛 장포를 휘감고, 야윈 얼굴에는 사기 가득한 눈빛을 빛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