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305
305화. 삼우여신룡(三友與神龍)
“소림사를 에워싼 천라지망을 다시 갖추어야겠습니다.”
“아니, 그럴 것 없네.”
등벽은 고개를 저었다. 분노는 그대로, 그러나 낯빛은 하염없이 차디차다.
이것이 좌현사의 본래 모습이라 하겠다.
냉정한 분노, 그는 차갑게 말을 이었다.
“상황을 오래 끌 것도 아니니……. 에워싸고 있는 것으로 무슨 의미가 있겠나. 오히려 괜한 피해만 이어질 뿐이니. 그리고 천하 각지에서도 형제들이 달려오고 있지 않은가. 뒤는 그들에게 맡기는 것으로 하고. 이제는 다음 패를 꺼내야겠네.”
“허면…….”
좌현사는 불끈 힘주어 주먹을 그러쥐었다. 그러면서도 입가에 맺힌 조소는 한참 차갑다.
“그래, 그 패를 쓸 때가 된 것이지.”
지금 말하는 마지막 패, 아직은 설익었다. 완전하게 써먹기에는 마땅치가 않다.
하지만 완전하지 않아도, 이보다 더 뛰어난 패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것만은 분명했다.
이 패를 준비하고자 들인 공과 희생을 생각하면, 심지어 좌현사조차 절로 숨이 막혀왔다.
패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여기 수뇌들은 크게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러나 이책을 준비한 당사자로, 마령사자는 담담했다.
“예, 좌현사. 대강의 준비는 해놓았습니다. 봉인을 풀기만 하면 바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소림사가 먼저였다.
마령사자를 비롯한 여기 몇이 좌현사가 구상한 그림의 대강을 알고 있는 전부였다. 그들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패라는 것은 쓸 때에 써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허허, 그때에 들어간 공이 헛되지 않으니. 오히려 좋은 시기라 하겠습니다”
마른 웃음을 흘리면서 한마디씩 꺼냈다. 등벽이 말하고, 마령사자가 준비한 패를 쓸 때는 곧 전력전이었다.
가능한 모든 것을 투사할 때이다.
“그럼, 부족한 이 늙은 노비도 준비해야겠습니다.”
“모든 것은 성마의 광영을 위해서.”
“성마께 받은 것, 성마를 위해 바치리다.”
그들은 손을 모아, 성마의 수인을 맺고서, 짧은 축문을 읊었다. 마지막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곧 돌아서서 흩어졌다.
다만 한 사람이 남아 있었다.
마령사자, 그는 남아서 등벽 옆에 섰다.
“결국, 여기까지 왔군요.”
“그래, 여기까지 왔네. 성사 여부는 여기서 판가름이 나는 바이지.”
“손해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고, 감수해야 마땅한 일이기는 합니다.”
“어차피 나중이란 없네. 알겠지?”
“……예, 좌현사.”
마령사자는 허리 숙인 채, 물러섰다.
나중이란 없다. 참으로 여러 가지를 품은 말이었다. 마령사자는 속뜻을 헤아렸기에 더욱 숙인 허리가 무거웠다.
등벽, 개인에게도 나중은 없었고, 성마교에게도 나중은 없었다.
오늘, 이때가 성마교 최후의 날이라 해도 아마 과언이 아닐 터였다. 마령사자는 감히 다른 말은 할 수가 없었다.
무운(武運)이든, 천운(天運)이든, 그 무엇도 좌현사 등벽에게는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혼자 남은 등벽은 입술을 질끈 물었다. 감정의 편린은 아직 남아서, 그를 괴롭게 하고 있었다. 굳이 말로 할 것도 없었다.
여기에는 성마교 백여 년의 전력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저쪽에는 이름만으로 저주스러운 권야를 비롯해 천하제일고수로 부족함이 없는 검백이 있다. 그리고 소림사였다.
성사 여부를 떠나서, 그 피해는 막대할 것이다. 그럼에도, 등벽은 지금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없어. 시간이…….”
등벽은 낮게 중얼거렸다.
소명과 호충인, 그리고 탁연수가 들어선 소림사는 한참 고요하고 차분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마구니에게 포위당하고, 한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난 다음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외원에는 담이고, 불사고 할 것 없이 엉망이었지만, 산사의 고즈넉함을 지켰다. 다만, 슬프고 슬펐다.
소명은 참사가 벌어진 외원 한복판에서 잠시 멈췄다.
헙,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채 한 시진도 지나지 않은 듯하다. 할퀴고 지나간 흔적은 물론이거니와, 이곳에 남아 있는 거력의 잔재가 선명했다.
“무상……대능력.”
소명은 낮게 속삭였다.
수십, 수백에 이르는 마인이 요란을 부렸지만, 그 전부를 압도한 것은 무상대능력의 보력이다. 그러나 막상 소명의 낯빛은 좋지 않았다.
이만한 규모로 방신기를 뛰어넘어, 무상대능력을 가득 펼쳐냈고, 거기에 끝없는 마인들이 마공기력을 쏟아낼 터이다.
그 광경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듯했다.
사찰은 무사하니, 버티어낸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무상대능력을 버티어낸 이는 과연 어떤 상태이겠는가.
“읍!”
소명은 덥석 입술을 깨물었다. 생각하기조차 싫은 일이었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당금 무림에서 무상대능력을 이 경지까지 이루어낸 이는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야, 괜찮냐?”
“소명.”
소명의 얼굴이 일변하는 모습에, 주변 살피던 호충인, 탁연수가 급히 다가섰다. 흔들리는 어깨를 움켜쥐었지만, 소명은 반응하지 못했다.
바닥을 보는 눈동자가 급하게 요동쳤다.
“소명 사형.”
차분한 목소리에 소명은 문득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에는 법자배의 젊은 승인, 법인이 있었다.
그는 흐린 미소를 그린 채, 합장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아미타불, 위험한 이때에 와주셨군요. 호 문주께서도.”
“조금 늦은 듯합니다. 법인 스님.”
호충인 또한 주변을 어두운 눈으로 돌아보면서 말했다. 본산의 앞마당이 이러한 모습이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법인은 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바깥에 얼마나 많은 마인들이 진을 치고 있는지 보아 알고 있습니다. 그 험로를 뚫고 오신 분들이 어찌 그런 말씀을 다 하십니까.”
그는 곧 옆으로 물러서면서 길을 청했다.
“안으로 드시지요. 어른들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방장께서도.”
“예, 많이 지치셨습니다만…….”
법인은 말끝을 흐렸다.
소명과 호충인, 그리고 내내 말없이 주변만 살피던 탁연수는 법인의 안내를 받아서, 내원으로 들어섰다. 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그래도 외원과는 달리 온전한 모습이었다.
걷는 중에, 법인은 지금 본사의 상황을 대략적으로나마 설명해주었다.
사람이 없다는 것. 그것이 제일로 문제인 셈이었다.
셋 다 그 연유를 알기에, 덧붙일 말도 없이 입술을 꼭 다물었다. 어깨가 한참 묵직했다.
“이곳입니다.”
“고맙소. 법인 스님.”
“아미타불.”
법인은 깊이 허리를 접었다. 낡은 담 앞에서 그는 돌아섰다. 그곳은 다른 장소가 아니었다.
불과 얼마 전이었다. 소명이 소림 제자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바탕을 직접 가르침 받은 내원 심처, 일심정이었다.
그 안으로 들고 보니, 병색으로 초췌하려나, 그래도 꼿꼿한 모습으로 자리 지키고 있는 방장이 있었다.
방장은 흐린 미소를 머금고서 들어서는 소명을 반겼다.
“왔구나, 용문제자.”
그러고는 좌우에서 몇몇 공자 배 노승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오오, 왔구먼.”
“허허, 몸 성한 모습으로 이리 보는구나.”
“참으로 반가운 일이야. 참으로.”
노승들은 덕담처럼 한마디씩 했다.
다들 입가에는 흐린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 미소가 차라리 괴로우려나.
소명 역시 애써 미소를 그리고서, 어른들 앞에 합장하고서 공손하게 허리를 접었다.
호충인과 탁연수가 한 호흡 늦게 고개를 숙였다.
“제자 소명, 막 돌아왔습니다.”
“제자 호충인, 인사 올립니다.”
“강시당 탁연수가 소림 선승들을 뵙습니다.”
탁연수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강시당 이름에 노승들은 퍼뜩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호 신비 중 한 곳이 아닌가. 근자에 활발하다고 해도, 관심은 자연스럽게 가기 마련이었다.
“오호, 강시당이라. 그 이름은 실로 반백여 년 만에 마주하는구나. 본사와 강시당이 분명 교류가 있는 편은 아니었지.”
“혹여, 전대 당주인 탁 노선사와는 어인 관계인고?”
“조부 되십니다.”
“호오, 과연, 과연. 그럼 자네가 당대의 당주이신 겐고?”
“부족할 따름입니다만.”
“부족하다? 그리 말하는 것은 과하지 않겠나. 내 지금 보기에 자네 성취가 당년 노선사를 넘어서는 구먼. 십성? 아니군, 자네 십일성은 확실히 넘어섰어.”
“이제 약간의 성취를 이루었을 뿐입니다. 여러 고승분들 앞에서 부끄럽습니다.”
탁연수는 겸양을 내비치면서 다시금 허리를 깊이 접었다. 여기 노승들 앞에서는 어디 어디 당주입네, 문주입네 하면서 고개를 뻣뻣하게 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흘깃 보는 것으로 자신의 성취를 대강 짐작해내다니. 역시나 소림이다.
탁연수는 내심 감탄했다.
“아아, 지금이 계속 붙잡고 있을 때인가. 자리라도 앉히고 얘기를 해야지.”
“그래, 그래, 그만두고 자리에 앉게나.”
“그렇지. 아직 일이 많이 있네.”
무겁고 착잡한 얘기는 나중에 나눌 것이고, 당장은 소림사를 살피고 볼 일이었다. 노승들의 손짓에, 세 사람은 바로 자세를 고쳐서는 자리에 무릎 꿇고 앉았다.
그런데 노승들 사이에 낯선 이가 있었다. 서너 자리 뒤에 홀로 앉아 있는데. 모습은 보이지만, 그 모습은 마치 환영과도 같아라.
숨소리는커녕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존재는 감지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과연 사람이기는 한 것인가.
소명은 눈으로 그를 보는 순간에, 덜커덕 가슴이 내려앉았다.
말이 좋아 비인의 경지라고 하는데. 저기 있는 자는 말 그대로 비인이라 할 수 있다.
단순한 경지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소명은 그를 보는 순간, 고요한 검 한 자루를 바로 떠올렸다. 비록 검초 안에 들어 있어서, 날과 빛을 감추었지만, 한번 뽑혀 나오면, 하늘을 가르고 산을 쪼갤 수 있는 검이다.
소명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신……검…….”
“응? 아하하하. 과연 용문제자로구먼. 과연, 과연.”
방장은 이 소명의 중얼거림을 듣고는 그만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바로 몸을 돌렸다.
“선배, 이게 바로 자랑스러운 소림사의 용문제자이지.”
기척도 없이 조용히 있던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빛없는 눈으로 소명의 놀란 눈을 마주하고서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충인과 탁연수는 그제야 노인이 있음을 알았다.
노승들 모습에 가려져 있기도 하였으니. 하고 크게 생각지 않았는데. 바로 옆에 있는 소명의 얼굴이 원체 심각했다.
“야, 왜 그래.”
“…….”
소명은 아무 소리도 할 수가 없었다. 빛없는 눈동자와 마주하는 순간, 소명은 수십, 아니다. 수백, 수천에 이르는 검자루가 자신을 겨누는 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위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