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307
307화. 소림, 소림, 소림
사마종의 눈길이 먼 곳을 향했다.
성마의 마인들이 움직이는 것은 익히 알았지만, 그 움직임이 심상치 않음을 개방을 통해 듣고서, 그는 내내 산중에 은거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성마의 발호는 곧 그의 사명이나 다름없으니.
신검기를 허투루 사용하지 않을 작정이었지만, 시기가 온다면 사마종 또한 각오한 바였다. 그런데 막상 소림사에서 마주한 권야를 마주하니, 마음의 짐을 한층 덜어낼 수 있었다.
믿을 만한 후배가 아닌가.
문득 사마종이 뜻을 전했다.
―저들이 이제 움직이는구나.
“예.”
소명은 당황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햇빛 아래에서 한참 고요한 숭산의 풍광이었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서 드리운 산세, 곳곳에서는 하얀 산무가 흐리게 맴돌 따름이었다.
푸르름이 여전한 가운데, 서서히 색을 달리하고 있다. 진창이 몰려오는 듯하다.
검백은 보아서 알았고, 소명은 느껴서 알았다.
잠시 조용했던 마기가 부산스럽게 움직이면서 산중정적(山中靜寂)를 크게 흔들고 있었다. 때가 오고 있었다.
소명은 한숨을 삼켰다.
오늘의 이것이 악연의 고리를 끊어내는 때인지 모르겠다.
아무려나. 소명은 공력을 다잡고, 정신을 똑바로 일깨웠다. 이제부터는 아무런 사감(私感)도 없다.
그저 지키고, 부수어 나아갈 뿐이다.
소림사 용문제자이나, 그는 또한 서천의 전설, 권야이다.
일어나는 공전무융, 그것의 격렬한 진동이 전신에서 비롯하여 서서히 멀리까지 영향을 미쳤다.
검백은 소명을 다시 바라보았다.
자연스레 일어나는 기파, 그 아득함을 보았다. 또한,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로 다잡은 본래 기운을 감지했다.
검백은 낮은 탄성을 흘렸다.
―허어, 자네는 세상 근본에 가까이 다가가 있군.
소명은 검백의 탄성을 듣고는 잠시 멋쩍은 미소를 그렸다. 분명 소명이 공전무융이라는 신공을 통해서 품은 단은, 천지간에 가장 영통한 기운으로, 근원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기운이다.
“한참 부족하여서, 부끄러울 뿐입니다. 고작 한 조각에 불과한 것을 제대로 다루지도 못한답니다.”
―허허, 자네가 말하는 한 조각을 두고서 세상은 여러 이름으로 부르네만, 스승께서는 그를 신기라 하시었지.
“신기.”
분명 신인에 이르는 길이니.
―하하, 오늘 이 늙은이가 또 다른 신기를 목격하였으니. 덕분에 개안을 하였네.
검백은 어둑한 마기를 마주하는 와중에도 흐뭇함에 웃음을 지었다. 그 말은 소명이 검령신검기에 버금가는 경지라는 것을, 검백이 인정하는 셈이었다.
“부끄러울 뿐입니다.”
소명은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면서 살짝 고개를 숙였다.
문득 검백은 웃음을 거두고 새삼 진지하게 소명을 직시했다. 그의 뜻이 소명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무어라 하였는가.
소명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나 마주하는 눈빛에는 미동조차 없어, 검백의 눈길을 그대로 마주하였다.
소명은 말했다.
“후배, 때가 온다면, 절대 마다치 않겠습니다.”
* * *
새벽 어슴푸레함이 잦아들었다.
동산에는 햇빛 무리가 어려 있었다. 곧 하늘 위로 솟을 듯했다. 쪽빛 물드는 하늘이다. 그러나 소실봉 주변에는 검은 구름이 뚜렷하게 고여 있었다.
그리고 그곳으로 밀려드는 수많은 그림자는 진득한 마기를 전신에 두르고 있었다.
진창 같은 검은 기운이 그대로 유형화하여서 줄기줄기 흘려댄다. 그것이 허공에 얽혀서 흡사 구름을 이루는 듯하다. 저것은 마종무애라고 하는 현상.
실제로 가능한 것인지, 두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마도의 검은 구름이 뒤엉켜서 밀려오고, 한발 늦게 마인들이 다가오고 있다. 그 모습을 마주하면서, 소림사의 제자들은 마른침을 겨우 삼켰다.
첫 번째 물결은 방장께서 그야말로 신공을 발휘한 덕분에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물결이 오고 있다.
성마를 따르는 자들, 마인이다. 저들은 이번에야말로 끝을 내려는 모양인지, 조금도 머뭇거림이 없었다.
소림사의 제자들은 무너진 외곽에 서서, 그 모습을 진지하게 지켜보았다. 비록 자신들이 소림사의 정예라고 자부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들 또한 소림사의 승려이고, 소림사의 제자이다. 그것에 자긍심을 지니고 있다.
깊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면서 나름대로 대비를 하였지 않은가.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을 수 있었다. 두렵지 않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에 주저앉을 자 또한 아무도 없다.
“후우, 아미타불. 아미타불.”
속절없이 읊조리는 불호가 두서없이 울린다. 당연한 일이겠지. 탓하는 사람은 없이, 아미타불에 한없이 집중하면서, 밀려오는 마도를 향해서 눈 돌리지 않았다.
천하의 해악이라 할 수 있는 천산 성마의 무리가 소림사를 도모하려는 이때이다. 그네들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중생에게 도움이 될 리는 없을 터였다. 그런즉.
“모두 두려워 마라. 그저 자리를 지키면 그뿐인 일이 아니겠느냐.”
“하, 어디 그런 말씀을.”
불현듯 나한 법덕이 목소리를 높였다. 승려들은 그만 헛웃음을 흘렸다.
자리를 지키면 그만이라니. 너머에 오는 자들이 한낱 무뢰배 따위도 아닌 바에야 어디 될 말인가. 그제야 법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웃어라. 긴장할 것 없다. 여기는 소림사이고, 우리는 소림사 제자가 아니더냐.”
“아미타불.”
“그래, 아미타불, 아미타불이다. 선인들께서 삼가 지켜보고 계신 바이니. 세존의 보광 앞에서 꿋꿋이 버티어내자고. 으하하하!”
법덕은 크게 웃었다. 그렇게 호탕한 모습을 보이지만, 실상 나한인 자신도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는 웃는 얼굴을 하면서 슬며시 어금니를 틀어 물었다.
지금 소림사는 빈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한당, 달마원이 모두 하산하였고, 백의전 무승들도 죄 따라 내려갔다. 하남 일대에 암약하고 있는 마도의 씨앗을 걷어내기 위한 행보였다.
등용문주와 소림파와 함께 크게 활동하고서도, 혹시 모를 후환을 대비하여서 각지에 흩어져 있는 것이 지금 상황이었고, 와중에 부상을 당한 제자들만 소림사로 돌아와 있었다. 지금 법덕 또한 그중 하나였다.
그는 속에서 은은하게 이는 통증을 무시하고, 가슴을 활짝 펼쳤다.
훅훅, 숨을 다잡는다. 여기 경험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자신을 비롯한 백의전의 몇이 전부였다. 그들도 자신 못지않은 부상자들이건만, 한 걸음이라도 뒤로 물러나 있는 이는 하나 없었다.
법덕은 이제 맨눈으로 선명하게 보이는 마구니들을 향해서 주먹을 쥐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맨 앞에 있는 그가 흔들려서야 여기 어린 제자들이 어찌 마음을 다잡을 수가 있겠는가.
‘흐, 차라리 여기에 이리 있는 게 더 낫기는 하지.’
법덕은 하남 어딘가에 있을 다른 나한들을 떠올리면서 쓰게 웃었다.
소림사가 위태할 때에, 소림사에 없다면 얼마나 가슴이 타겠는가. 자신은 오늘 여기서 입적할 게 뻔하려나, 법덕은 긴장과는 별개로 마음 한구석은 차라리 편했다.
그래도 동고동락한 동문들 걱정이 살짝 들었다.
다른 나한들, 백의전 무승들, 지금 어찌하고 있을는지.
바깥 상황은 조금도 알 수가 없다.
까맣게 모르고 있을지, 아니면 어찌어찌 난리를 치고 있을지.
법덕은 곧 떠오른 잡념을 차곡차곡 거두어서 한구석으로 밀어두었다.
두두두두두! 구구구구구!
마구니들이 이제 코앞이었다. 그들이 발하는 마공기력의 안개가, 그리고 질주하는 발소리가 선명하여서 지금 서 있는 자리가 들썩였다.
법덕은 불끈 턱에 힘을 잔뜩 주었다.
지금 이때에는 그저 있는 역량을 모조리 끌어내어서 맞이할 뿐이었다.
내상이 어떻든, 부상이 어떻든, 무슨 상관이겠나.
공력을 끌어올리기가 무섭게 왈칵 핏물이 일었지만, 법덕은 꿀꺽 삼켰다.
‘오늘이 열반에 이르는 날이로다. 아미타불!’
각오를 다지고서, 법덕은 벼락같은 일성을 터뜨렸다.
“자아, 와라! 마구니들아! 네놈들은 단 한 걸음도!”
꽈릉!
덮쳐오는 마인의 검은 그림자를 향해 양권을 막 내지르려는 찰나였다. 그에 앞서서 벼락이 떨어졌다. 아니, 벼락같은 권경이다.
바로 등 뒤에서 번쩍하더니, 법덕을 스치고서 달려드는 마인들을 죄 날려버렸다. 놀란 소리 하나 내뱉을 새가 없었다. 법덕은 주먹을 쥔 채, 내밀지도 못하고, 거두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모습 그대로 굳었다.
일순 정적이 고였다.
닥쳐오는 마인은 물론이고, 겨우 용기를 내었던 소림 제자들도 아연하여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인세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어……어?”
한참 죽기를 단단히 각오했던 터였다. 그런데 갑자기 눈앞이 확 밝아지는 이 일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드리운 마공의 안개가 뻥 뚫리면서, 검은 물결이 확 밀려나 버렸으니.
법덕은 아연한 채, 상황 심각한 것을 잊고는 고개를 돌렸다. 저기 뒤에서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잿빛 승복을 걸쳤지만, 승인은 아니다.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질끈 묶고서, 그는 심각한 얼굴로 나섰다. 여기 모두가 그를 알고 있었다.
“권야!”
“요, 용문제자!”
그래, 그는 천하육절 권야이고, 당대 용문제자이다.
소명이 손을 휘휘 흔들면서 걸어 나왔고, 좌우로 호충인과 탁연수가 있었다.
둘도 눈 앞에 펼쳐진 일권의 결과를 보면서 어이가 없는 듯, 호충인은 고개를 내저었고, 탁연수는 잘생긴 얼굴을 괴상하게 구겼다.
“으아, 이게 백보신권이구나. 신권, 신권 할 만하다.”
“뭐, 밀어내는 데에만 집중해서.”
소명은 쓴웃음을 그리며 말했다. 그러고는 곧 법덕을 비롯한 무승들을 둘러보았다.
넋 나간 얼굴들이, 소명의 눈길이 스치자 부랴부랴 정신을 다잡았다.
“허, 헛흠. 흐흠. 소명 사형.”
소명은 그들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이 사람은 이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본산 사형제들께서는 본사를 지키도록 하시지요.”
“저, 저곳으로 혼자서 말입니까? 소명 사형.”
“괜찮습니다. 그리고 걱정 마십시오.”
“예?”
“곧 도착할 겁니다. 소림의 제자들이, 그리고 천하의 협사들이.”
소명이 십 할의 확신으로 말했다.
입가에는 흐린 미소가 맺혀 있어서, 도무지 마도의 무리를 앞에 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법덕과 눈길을 마주하고, 곧 다른 승려들과도 눈을 마주했다.
법덕은 마른침을 삼켰다. 다른 이가 그런 말을 한다면 크게 울림이 일지 않을 터이다. 지금 상황은 누가 보아도 고립무원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나선 이는 용문제자이고, 천하의 권야이다. 그와 같이 있는 사람들은 또한 하남 등용문주이고, 산서 강시당주가 아닌가.
두 사람도 확신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흐읍!
법덕은 덥석 숨을 집어삼켰다. 그는 두 손을 모아, 굳게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