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309
309화. 소림, 소림, 소림
그는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한층 음산하게 웃었다.
“천하 만민이 마땅히 숭배해야 하는 신인을 현현(顯現)코자 하는 일이다. 그것이 어찌 천하의 대업이 아닐 수 있겠느냐. 그에 비하자면…….”
등벽은 잠시 말꼬리를 흐렸다. 그는 비릿한 조소를 머금고서 건너를 노려보았다. 저곳은 또 다른 마인들이 대기하는 곳이었다.
아군일진대, 노려보는 눈초리는 섬뜩하다.
“하! 천하 경영? 신교 천하? 다 우스운 소리이지. 다 우스운 소리야!”
“…….”
소명은 아군을 향한 그의 적의를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하를 크게 흔들었고, 지금에는 소림사를 불태우겠다고 달려온 자가 할 소리는 아니지 않은가.
“등벽, 당신.”
“단순히 천하를 손에 넣고자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이렇게 피를 흘릴 것도 없지. 보아라, 과연 몇이나 알았느냐. 본교의 교도들은 이미 천하 곳곳에 스며든 마당이다. 명목은 다를지라도, 한번 떨치면 마땅히 천하를 뒤집고도 남는다! 으하, 으하하!”
소명은 입을 다물었다.
마주한 등벽은 미친 듯이 웃어젖혔다. 광기 어린 웃음이다. 폭증하는 마기가 지독하니, 감히 가까이에서 웃음을 맞이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소명은 고요했다.
가라앉은 눈으로 등벽의 광기를 지켜볼 뿐이다.
“하아, 하하. 하…….”
“다 웃었나?”
“망할 놈. 대적자. 본교의 진정한 숙원을 네놈……네놈이 다 망쳐놓았어. 네놈이.”
웃음 끝에, 등벽은 힘겨운 숨을 내뱉으면서 소명을 원망했다. 소명은 그런 등벽을 보면서 주먹을 들었다.
등벽의 좌우로 솟구쳐오른 마인이 검은 물결처럼 덮쳐들기 때문이었다.
“권야는 목을 내놓아라!”
“마도제일적! 성마의 원수여!”
“죽어엇!”
위엄 넘치는 일성을 터뜨리는 자도 있었고, 진심으로 원망하는 자도 있었다. 다른 말 할 것도 없이, 오로지 살심으로 똘똘 뭉친 자도 여럿이었다.
등벽은 광기를 감추지 않으면서도, 먼저 나서지 않았다. 차가운 광기로 온몸을 에워싼 채, 그는 소명을 지켜보았다.
“후, 후, 후우…….”
호흡은 짧게, 동작은 간결하게.
이와 같은 때에는 금강권이나, 소림오권과 같은 절학보다는 스승 장우상의 무형결이다.
만상일여, 무정만형의 권법.
소명은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고, 밀물처럼 밀려드는 마인을 향해 마주 나섰다.
그리고 소명은 격류를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터져 나오는 기합이 피를 토하는 비명으로 돌변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소명과 등벽이 충돌하는 그때에, 소림사 앞에서도 난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마인들의 수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다.
소명이 기세를 꺾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마인들이 갖춘 대진을 아예 박살 내었기 망정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버틸 수나 있었겠는가.
분명 충돌하자마자 절반은 죽어나갔을 것이고, 채 촌각을 버티지도 못한 채 소림사 끝까지 밀려나기 급급했을 터였다.
막막하기 이를 데가 없었는데, 지금 소림 제자들은 적어도 희망이 보였고, 전의가 타올랐다.
“와라! 이 무도한 것들아!”
버럭 다그치는 일성이 크게 터졌다. 맹호라는 이름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호충인은 가전인 호가권뿐만이 아니라, 호권을 장기로 삼았는데, 그 또한 소림오권의 범주를 훌쩍 뛰어넘어서, 주먹 하나로 마공을 거침없이 박살 냈다.
기기묘묘한 마공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청동으로 감싼 것처럼 견고하다고 하지만, 호충인의 날랜 두 주먹에 우그러지고, 급기야 살거죽이 갈가리 찢겨서 피를 쏟았다.
커헉!
한 호흡에 수십의 주먹이 여지없이 꽂혀 들었다. 막을 수도 없었고, 설사 막아낸다고 해서 타격이 없는 게 아니었다.
호충인의 소림권은 상대의 안과 밖을 동시에 박살 낸다. 설사 마인이 아니라, 청동으로 빗어냈다고 한들 버티어낼 재간이 없었다.
무너진 마인의 육신을 짓밟고서, 호충인은 또 다른 마인을 향해 비호처럼 덮쳐들었다. 이쯤이면 누가 습격한 이들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호충인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공세일변으로만 나서는 것은 아니었다.
호충인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또 다른 하얀 손이 있었다.
백설이 어렸는가. 하얗다 못해 파리한 두 손이었다. 그 손이 움직이면 어김없이 사지가 굳었다. 관절에 얼음조각이 가득 맺히는 듯했다.
그럼 새파란 안광이 번뜩였고, 벼락이 연이어 몰아쳤다.
얼음과 벼락이라니.
고루천강공의 최고절초, 천강태음벽력수(天罡太陰霹靂手)가 거침없이 펼쳐졌다. 탁연수는 사지가 뻣뻣하게 굳은 듯한 모습이지만, 여기 누구보다 빠르고 위력적이었다.
주변에 맺힌 전광이 연이어 반짝거렸다.
파리한 얼굴에서 전광의 푸른 빛이 번쩍이면서,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와중에도 눈을 끌게 하는 외모인 것만은 분명했다.
두 문주가 저렇게 활약하면서, 여기 소림 제자들 전의를 북돋을 뿐만 아니라, 이끌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부상이라고 하지만, 법덕을 비롯한 나한 몇들, 그리고 남은 소림 제자들이 어찌 손을 놓을 수가 있겠는가.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경험이지, 의기가 아니다.
“아미! 타불!”
“소림 제자들은 나가자!”
“아미타불!”
뒤를 지키다가, 소림 제자들은 분연히 떨치고서 뛰쳐나갔다. 그렇다고 대책 없이 뛰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전황을 두루 살피다가 법덕이 벼락같이 소리쳤다.
“법인, 법경, 호 문주의 좌측으로, 호학쌍형이다! 무자배는 나를 따라라, 나한소원진!”
법덕은 틈바구니를 능숙하게 메웠다. 여기 있는 제자들의 성취와 장단점을 모조리 파악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가 앞장서서 이끄니, 전황은 한층 단단했다.
그래도 법덕은 알았다.
‘언제까지 승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
한계는 그리 멀지 않았다. 그것은 앞서 나선 소명은 물론이고, 바로 앞에서 분투하는 두 문주도 알고 있을 것이다.
법덕은 이 또한 심마라,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날 시퍼런 계도를 들어서 호탕한 일도를 먼저 휘둘러 떨쳤다. 시퍼런 도기가 장중하게 밀려가 탁연수의 뒤를 노리던 마인 하나가 그대로 두 쪽으로 흩어졌다.
법덕은 목청껏 소리쳤다.
“에라이, 아미타불이다!”
호충인은 그 소리를 듣고 따라서 같이 웃었다.
“으하하하! 옳은 말씀 하셨소. 아미타불, 아미타불이다! 이 마구니들아!”
본래와는 아주 다른 뜻인 듯하나, 세찬 ‘아미타불’ 소리는 아주 빠르게 번져가서, 이내 한 목소리로 아미타불을 외쳤다.
겨우겨우 세를 다잡은 성마의 마인들은 막 몰아붙이던 차였다. 그들은 한 목소리로 외치는 ‘아미타불’에 그만 손발이 어지러워지고 말았다.
“이거, 이것들이 전부 미쳤나?”
* * *
소명 한 사람을 노리고 전력으로 달려든 마인들. 그들의 일파를 때려누이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고작해야 서넉 각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소명은 조금도 숨찬 기색이 없었다.
아직도 때려눕힌 자들보다, 때려눕힐 자들이 배 이상으로 많았다. 그들 앞에는 등벽이 있었다.
소명은 등벽과 대치했다. 아니, 등벽이 소명을 붙잡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등벽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소명을 보고 있었지만, 막상 그의 불길이 향하는 것은 전혀 다른 쪽이었다.
소명은 흔들림 없는 얼굴로, 짧은 숨을 한 번 뱉어냈다. 그것이 마인들의 첫 번째 물결을 감당해낸 감상 모두인 셈이었다.
“흐, 여전하군. 네놈의 무형결. 허점투성이지만, 전혀 허점이 없어. 보아하니. 그 막무가내가 더욱 경지를 올린 모양이구나.”
“딱히 감상 따위를 듣고 싶지는 않은데. 등벽. 이 정도로 하고 물러나지 그러나. 정말 마도를 당신 대에서 끝장내겠다는 건가?”
“하! 끝장? 끝장이라?”
소명은 차분하게 말했다. 그의 한마디가 등벽의 속내를 깊이 찌른 모양이었다. 이내 고개를 치켜들고 껄껄 웃어젖혔다. 웃지만, 웃음이 아니다.
소명은 기괴한 저 모습에 그만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등벽을 새삼 다시 보았다.
‘아니, 이 작자가…….’
껄껄, 길게 웃기도 웃었다.
등벽은 불현듯 한숨을 내뱉으면서 소명을 마주 보았다. 얼굴에는 음영이 짙었고, 파리한 기운이 맺혔다.
“마도는 이미 끝장났네. 권야.”
“뭐라?”
“하아, 알아버렸어. 나는 알아버렸다네. 교도라고 하지만, 어느 한 놈. 성마께서 현신하심을 믿지 않아. 그놈들은 그저, 그저…… 성마의 이름 아래에서 욕심만 부리고 있었지.”
어떻게든 성마를 다시 현세로 부활시키고자 하였던 등벽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성마가 실재함을 믿지 않는다. 그저 성마의 남은 은총을, 마공기력을 탐하기나 할 뿐이다.
그런 속된 자들이 천산 종맥 중에도 있다는 것을 알아버린 그때에, 등벽은 절망했다.
준비한 대업이 소명 한 사람에게 무너진 것은 그렇게 놀랄 것도 당황할 일도 아니겠다. 한쪽 눈을 잃고, 십 년 적공이 와르르 무너지고서도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다시금 일구어내면 그만이다.
제자는 길러 내면 되는 것이고, 소모한 자원은 갖추면 되는 것이다.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당장 죽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좌절한 것은 실상 천산의 마교도들 때문이었다.
성마의 존위는 나중 문제.
그들이 바라는 것은 허울 좋은 천하 패업 따위였다.
“성마가 아니 계신 성마교로 무슨 천하 패업을 운운하느냐. 성마께서 계시기에, 본교가 있는 것이다!”
등벽은 한껏 부르짖었다. 원망이 짙으나, 그 원망은 다른 곳을 향해 있지 않았다.
소명은 입을 꾹 다물었다.
실성했다고 단순하게 치부할 수가 있을까. 오히려 등벽은 어느 때보다 냉정하고, 단호했다. 감정에 휩싸인 것은 그저 표면에 지나지 않는다.
믿었던 자들이, 자신과 다른 곳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에 엄습하는 좌절과 절망.
아무리 대단한 경지에 이른 마도의 고수라고 하지만, 마음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오는 것을 어찌 손 쓸 수가 있겠나.
등벽은 그 모두를 쳐내기로 작정한 것이다.
자신이 바라는 대업, 그 자체를 이루기 위해서.
저것을 두고서 잘잘못을 누가 판단해서 말할 수가 있겠나. 다만, 그저 등벽이 말하는 대업에 휩쓸려버린 자들이 문제 아니겠는가.
소명은 등벽의 울분 섞인 일성을 대강 흘려넘기고서 주먹을 다잡았다. 착잡한 것은 착잡한 대로. 그러나 등벽이 무슨 대업을 말하고, 성마교의 마인을 성토하더라도 그로 인해서 천하 만민 중 못해도 삼할은 영문도 모른 채, 변고를 당했다고 할 수 있었다.
사특한 온갖 계책으로 희생당한 자들, 천산에서, 사천, 강남, 강북을 일일이 헤아릴 것도 없다. 그들 모습이 아직도 선명한데.
지이잉……. 지이잉…….
기이한 울음이 돌연 시작했다. 다잡은 소명의 두 손에서부터였다.
울분에 차올랐던 등벽이었지만, 그 소리에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전날에 듣고서 가슴을 뜯은 그 소리. 잊지 못할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