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321
321화. 항마신장(降魔神將)
그는 힘겨운 숨을 다잡고 휘청거리는 몸을 세웠다.
합장하는 소명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무슨 짓을, 너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덜컥 좌현사는 가슴이 내려앉았다.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다. 다시 돌이키는 방법이란 있을 수가 없건만.
소명은 차분한 얼굴로 있지 않은가.
좌현사는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다고 스스로 되뇌면서도 불안을 지우지 못했다.
소명은 촌음 만에 호흡을 회복했다. 아무 힘도 쓰지 않은 사람처럼 호흡도, 눈빛도 고요했다.
“성소에 숨긴 신물을 끄집어내고, 거기에 신검기, 신화기, 양대 신기를 빌어서 성마를 다시 깨우시겠다? 그 하나를 위해서 무수한 목숨을 제물로 삼으시고?”
“서, 성마께서는 이미 깨어나셨다.”
“아아, 그래. 깨어나시겠네.”
좌현사는 이를 악물고, 이상할 정도로 차분한 소명을 노려보았다. 그는 서둘러 말했다.
소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좌현사 말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성마는 곧 깨어난다.
“…….”
“그럼, 다른 신기로써 억눌러버리면 될 일이지.”
소명은 짐짓 싸늘하게 내뱉었다. 그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여기서 신령함을 지닌 다른 신기가 어찌 튀어나올 수 있다는 것인가.
당황하는 그때에, 소명은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몸은 다 풀었다. 그는 하늘에 닿을 듯이 불빛을 밝히는 광원을 보면서 꾹 이를 악물었다.
사조께서 그에게 전한바, 여섯 줄의 경문은 그 자체로 요결이라 할 수 있었다.
한시도 놓은 적이 없었고, 대강남북을 가리지 않고 떠돌면서도 몸소 수행하기를 게을리 한 바가 없었다.
그중 첫째 문구를 차분하게 읊조렸다.
“권야!”
등벽은 눈을 치떴다. 눈앞에 아직 소명이 있건만, 그의 기척은 빠르게 흐려지더니 느낄 수가 없다.
한 박자 늦게, 소명의 모습이 홀연 사그라졌다.
“익! 이이익!”
이미 기력을 다한 몸이다. 그래도 등벽은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고자 안간힘을 다했다. 버둥거리는 그 모습은 저기 멀어라.
소명은 이미 그 자리에 있지 아니했다.
정극관통달(淨極光通達), 적조함허공(寂照含虛空)
정함이 극에 이르면 빛에 통달하니, 온 허공을 아우르며 고요히 비추어라.
심중에 맺은 정함은 저기에 있다. 육신은 빛으로 화하여서 심의가 이끄는 대로 자리를 옮겨갔다.
소명은 합장한 채, 허공을 밟고 섰다.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사방이 막막하여서 채운이 흐르는 듯하다. 고요한 가운데 창천이 드높다.
태양은 아직 머리 높은 곳에서 온후한 빛을 뿌렸다.
성마라는 지극한 신인이 깨어나는 때에, 태양은 여전히 하계를 비추고 있구나.
그리고 소명은 고개를 숙였다. 저 아래에 작은 태양이 이글거리는 듯했다. 까마득한 높이에 이르러 있지만, 아래의 모습은 손에 잡힐 듯이 선명하다.
“저것이 성마의 존체로구나.”
태에서 아이가 깨어나는 듯하다. 우윳빛으로 빛나는 광휘가 둥그렇게 감싸고 있는데, 그 안쪽에서는 한없이 불길한 기운이 맴돌았다.
신검기와 신화력을 받아들이면서 이제야 골수에 남은 성마성령이 움트기 시작하는 듯했다. 빠르게 자라서는 이내 육신의 형체를 갖춘다.
아직 태를 벗어나지는 않았으되, 시간문제라.
‘너는 무어냐?’
불현듯, 머리를 섬뜩하게 파고드는 심어가 있었다. 그것은 검백의 심어나 천룡의 전어와는 다른 성질로, 우선은 한없이 폭력적이었다.
능엄 속에서 심주를 세운 소명이라도 어깨를 들썩이게 할 정도였다.
이때에, 굳이 답할 게 무어 있겠나. 그저 불호를 나직이 읊조릴 따름이어라.
“아미타불.”
소명은 합장한 손을 풀었다.
각래관세간(却來觀世間), 유여몽중사(猶如夢中事).
세상일을 모두 둘러보면, 결국 꿈속의 일과 같도다. 실재하는 현상에 구애하여서는 본질을 마주할 수가 없으니.
지금은 불타오르는 마도의 태양이 아니라, 그 내부에서 꿈틀대는 성마의 본질을 대할 때이다.
소명은 탑림에서 검백과 마주한 순간을 떠올렸다. 검백은 말했다. 신기를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올 수 있다.
그것은 신에 이르는 길일 수도 있고, 영원한 소멸에 이르는 길일 수도 있다.
그때에 자네는 어찌하겠는가.
소명은 묻는 검백에게 이리 답했더랬다.
“후배, 때가 온다면, 마다치 않겠다 하였지요.”
이 순간에 소명은 자신이 품은 공전무융을 놓았다. 그리 단단한 단이 바로 흩어지고, 그 안에 품은 힘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소명은 손을 천천히 아래로 뻗었다.
단지 그것뿐이다.
공전무융을 놓았으니, 굳이 내공이 어쩌고, 공력이 어쩌고 할 것도 없었다. 허공에서 몸을 어찌 가누어야 하는지, 애쓰지도 않았다.
소명은 높은 곳에서 내리누르는 것처럼 그저 손을 아래로 뻗었을 따름이다.
두우우우웅!
위로 솟구치는 광선이 일거에 흩어졌다. 동시에 산 한 귀퉁이로 더없이 거대한 장형이 그 일 점을 짓눌렀다. 그것은 비등한 격을 지녔기에 가능한 일이다.
허공에서 돌연 나타난 거대한 장형, 그 손바닥이 성마의 광휘를 감싸 쥐는 순간, 사방으로 거침없이 뻗어가는 불빛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하늘을 가릴 듯하던 마운의 일부조차 그에 휩싸여 사라진 듯하다.
일시지간, 소림사를 중심으로 하는 모두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서 털썩털썩 주저앉았다. 거대한 힘의 공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 눈으로 보아도 깨닫는 이는 몇 되지 않았다.
“허어…….”
기운이 절로 빠졌다.
삽시간에 공허가 이곳 모두를 지배한다. 감당할 수 없는 탈력감 앞에서, 마인들은 고개 조아리고 그저 성마를 찬하는 문구를 읊어댈 뿐이었다.
그러나 좌현사는 달랐다.
성마의 광구가 사라진 것은 분명 권야가 무슨 수를 썼기 때문이었다.
“서, 성마시여. 성마……시여…….”
이 늙은 노복은 당신을 뵙고자, 백여 년 세월을 꼬박 바쳤나이다. 다만 당신 눈길을 한 번이라도 받고자.
등벽은 기력 일체를 다 잃은 채, 손을 휘저었다.
한참 앙상하여서 뼈만 남은 팔이었다. 조금만 더 뻗을 수만 있다면 성마가 온전히 육신을 갖추고 돌아오는 모습을 마주할 수 있으련만. 닿을 듯, 닿을 듯하려나.
등벽의 손은 결국 뚝 떨어졌다.
좌현사 등벽, 일평생을 오로지 성마를 숭앙했다.
전반의 생애에는 성마의 빈자리를 대신하여서 흩어진 마도를 다독이는 데에 여념이 없었고, 후반에는 쌓은 모든 것을 모아, 성마를 돌이키는 데에 전력을 다했다.
적어도 생의 마지막에서 성마의 광휘를 마주하였으니.
성마의 종복으로서, 등벽은 만족한 삶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 *
좌현사가 졸하였다.
성마의 광휘가 사그라진 그때에, 등벽은 모든 것을 다 불태웠기에 더는 버티어낼 수가 없었다.
그가 생을 다하자, 당장 소림사를 앞두고서 그렇게 어지럽게 펼쳐놓은 마도의 진세와 그 흐름은 바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격렬한 마공기력을 다잡는 자가 없으니. 있는 대로 쏟아붓고서는 그만 손을 놓아버린 꼴이었다.
땅이 갈라지고, 언덕이 무너진다.
쩌저적!
꽈르릉!
이미 치열함 속에 요동치던 소실봉의 푸르름이 삽시간에 엉망으로 흩어졌다.
거기에 가장 크게 휩쓸리는 것은 애달프게도 주축을 이루고 있던 마인들이다. 끝도 없이 밀려온 마인들이 되레 흐트러진 진세에 휩쓸려서 갈가리 찢기고, 폭주하는 마기에 터져나갔다.
참담한 광경 속에서, 소림과 강호의 제자들은 급히 물러났다.
상황을 먼저 파악하고서, 발 빠르게 물러나게 한 것은 역시 마인을 상대한 경험이 쌓여 있는 등용문과 소림 나한들이었다.
호충인이 쌍장으로 마주한 마인들을 거칠게 밀어내고서는 크게 외쳤다.
“모두 뒤로! 휩쓸리지 마라! 어서!”
사자후에 버금갈 듯, 공력을 집중한 외침은 힘있게 울렸다. 이것을 전원이 받아서 같이 외쳤다.
“물러난다! 물러나!”
“휩쓸리지 마라!”
이제는 마인들을 베어낼 것이 아니라, 몸을 뺄 때였다. 신룡대 또한 바로 반응했다. 심상치 않은 변화는 감지한 참이었으니.
“부상자를 수습해! 뒤로, 뒤로!”
전장이 원체 드넓었고, 한참 뒤섞인 혼전이었던 탓에 다들 정신이 없었다. 마인이 아니라면, 아무나 목덜미를 붙들 듯, 옷깃을 움켜쥐든, 다급하게 끌고 물러났다.
와중에 마인들은 기괴한 비명을 터뜨리면서, 제 힘을 가누지 못하고 터져나가거나, 사지가 뒤틀려서는 짓눌려 비명을 질렀다.
무참한 광경이 연속이었다.
“이것은 대체……. 허어…….”
이것은 신화의 후예라는 화염산 산인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와 같은 지옥도가 빠르게 펼쳐질 줄이야. 모든 이들의 눈동자가 한순간이나마 같은 곳으로 모였다.
“소명!”
“용문제자!”
그래, 그가 뭔가를 해낸 것이 분명했다.
“역시 대공자께서! 과연 비범하신 분이다!”
마도옥은 바로 반색했다. 그는 검을 거두고서 돌변하는 천색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처음에는 흑운이 휘돌아서 소실봉 위를 한껏 뒤덮더니, 곧 광휘가 솟구쳐서는 일렁거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전조임이 분명하겠다만. 그래도 소명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감당해낼 터이다.
이때에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출신 내력을 떠나서, 한 목소리로 용문제자와 권야를 힘주어 외쳤다.
와중에 신룡대는 약간은 소심하게 천룡대공자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외치는 소리에는 기운이 다시 차올랐지만, 막상 당사자인 소명은 그렇게 속 편한 처지가 아니었다.
성마 광휘가 소림사 높이서 빛날 때에, 검백과 아함, 두 사람의 신인은 셋이나 되는 천하고수를 마저 제압할 수 있었다.
그것은 상당한 운이 따랐다.
연유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셋을 조종하는 수법이 흐트러진 모양이었다. 손발이 흐트러진 틈을 놓칠 수야 없는 일이다. 다만, 제압하는 수법이 참으로 무식하여서, 신검기니, 신화력이니 따질 게 아니었다.
붙들고 냅다 후려치고는 바닥에 파묻어버리다시피 해놓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최소가 무혈지체에 이른 절대고수들이니, 아무리 이지를 제압당했다고 한들, 그 경지가 무너진 것은 아니라서, 함부로 혈도, 기맥을 제압할 수가 없었다.
더한 힘으로 발목을 잡고, 어깨를 짓눌러서 후려쳐서는 정신을 잃게 하는 게 간신히 할 수 있는 방책이었다.
셋의 기운은 차고도 넘쳤지만, 그만큼이나 두 신인도 만만치 않은 기운을 발휘했다.
땅속으로 힘껏 짓눌러서는 목만 겨우 내놓은 꼴이다.
지친 숨을 다스릴 틈도 없이, 두 사람은 퍼뜩 고개를 치켜들었다.
“저것이 성마.”
―아니, 아직은 아닐세. 하지만 거의 깨어나기는 하였군.
검백은 한층 어두운 눈으로 중얼거렸다. 일대를 은은하게 에워싸는 보광이 뚜렷한 경계를 만들었고, 안에는 성마의 천극마종지가, 밖에서는 수백의 마인들로 인해서 폭주하는 마공기력이.
참으로 난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저것을 깨우는 데에 결국 신검기가 역할을 말았으니.
기력은 남았지만, 신검기를 다시 발휘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한마디로 지금은 검백이 나서도 의미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