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324
324화. 후일
검백은 한층 지친 얼굴로 각자 무너진 법당의 돌쩌귀에 걸터앉았다. 그러다가 문득 지친 고개를 들었다.
방장이 야윈 몸을 이끌고 가까이 왔다.
“아미타불. 노선배.”
―다행이군. 자네 명이 다하기 전에 일을 마무리하였어.
“하하하. 고생하셨습니다.”
―자네 또한.
사마종은 흐리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방장은 마른 웃음을 흘렸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여기저기서 이겨냈다는 것에, 그리고 살았다는 것에 들뜬 소리가 한참 요란하게 터졌다.
시끄러운 일이지만, 반가운 소리이기도 했다.
방장도, 검백도 말이 없었다.
비록 소림사가 크게 훼손되었고, 적지 않은 제자를 잃었지만, 그래도 소림사의 정신은 지켜냈다.
사마종 또한 신검기 일부가 크게 흩어지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방장과 사마종은 이제야 밝아진 창천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신검일맥의 숙원이 오늘에야 끝이 났구나.
사마종은 한층 안도한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소림사는 이제야말로 외원, 내원할 것 없이 초토화된 모습이었다. 우습게도 그 대부분은 정작 마기의 폭주 때문이라니.
소실봉의 한쪽이 무너졌고, 앞마당은 거대한 산사태가 쓸려와서는 온통 흙무더기 꼴이 되었으니. 그 아래에는 무수한 마인이 묻혀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소림사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세세년년(世世年年)을 이어오는 소림의 정신은 방장의 말마따나, 사람에게서 이어지는 것이니.
불현듯 사마종은 눈매를 모았다.
‘흠, 그러고 보니 이 사람 또한 후대를 생각해야…….’
신검기는 후대에 전하지 않을 것이고, 전할 수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신검일맥의 공부마저 맥이 단절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저기 정신 놓은 노장시도 듣기로 훌륭한 제자를 여럿 거두었다지 않았던가. 사마종은 사뭇 진지했다.
―흠…….
문득 종소리가 울렸다.
데에엥…….
데에엥…….
구석에 그래도 멀쩡하게 버티어낸 종루에서 종을 울리는 소리였다.
소림사를 크게 무너뜨리고, 심지어 소실봉 한 축을 내려 앉힌 일대의 격전이 끝났다. 그날은 아마도 마도 최후의 날이라고 기억하게 될 것이다.
마도의 구름을 갈라서, 걷어낸 날이다.
비록 일대는 초토화되었다고 하지만, 맑게 갠 하늘 아래에서 소림사의 범종 소리가 은은하게 울렸다. 장중한 울림이었지만, 어쩐지 슬픔과 흐느낌이 실린 듯했다.
데에엥…….
데에엥…….
* * *
마운벽일(魔雲辟日).
숭산 소실봉을 온통 뒤덮었던 마운을 걷어낸 날이라 하여서, 그리 불렀다.
하늘에 닿을 듯 솟구친 성마의 광휘는 하늘에서 내리는 신장의 일수에 뒤덮여 사그라졌으니.
그것은 곧 마도 일체의 일소를 뜻하는 바이기도 했다.
큰 뜻을 품었든, 사사로운 욕심이었든. 천산을 비롯한 천하 각지에서 마맥을 이었다고 하는 자들, 마도의 안배로 숨어 있던 이매망량 모두가 나섰고, 소림사에서 패퇴하였다.
뿐이랴, 하북, 산서, 강남. 그리고 곳곳에서 뜻있는 무림인 모두가 모여서 숭산 일대를 막아냈으니.
소림사에서 묻힌 이들 못지않은 마교인이 죽어나갔다.
이어, 천하를 경영한다는 천룡이 직접 세가의 정예를 이끌고 등장하면서, 마도의 태반이 그 자리에서 불귀의 몸이 되었다.
극히 몇만이 간신히 살아서 흩어졌다. 성마교의 체계를 다시 갖추기에는 턱도 없는 수준에 불과하였다. 뭐라 하여도 가깝게는 수년, 멀게는 백여 년을 바라보고 펼쳐둔 마도의 안배마저도 그 자리에서 박살 난 까닭이었다.
일을 도모한 좌현사에게 나중이란 아무런 의미도 없었으니.
그래도, 살아남은 자들, 그리고 천산 비처에서 내려온 종가 일부는 그대로 돌아가기보다는 사람 없는 감숙, 청해 지방으로 숨어들기는 하였다.
그들까지 쫓을 여력은 무림에는 없었다.
당장 소림사가 그러하듯이, 다른 구파와 더불어 무림을 지탱하던 무가련 곳곳도 큰 혼란에 휩싸인 탓이었다.
강호의 여러 무부가 남아서 기운을 떨친다고 하지만, 감숙, 청해로 쫓는 것은 또 다른 부류의 일이다.
그런 고로.
성마교는 흩어졌지만, 마도의 명맥마저 끊어진 것은 아니라는 뜻이겠다. 그래도 백여 년, 아니 수백 년은 조용할 것이 분명했다.
소림사에서는 방장께서 입적(入寂)하고 말았다.
제자를 지키고자 스스로 공력을 잃는 것을 감수하면서 산사를 지켜낸 방장이었다. 마운벽일 이후, 보름을 넘기지 못했다.
그리고 마도 술수에 크게 당한 삼대 고수.
월부대도, 철판관, 증장천왕.
세 사람은 한참 만에야 겨우 정신을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진원이 크게 상하여서 오랜 요양에 들 수밖에 없었다.
검백이 그들과 함께 소림사에 남았다.
무가련 또한 크고 작은 일이 벌어지는 통에 그 자리가 많이 뒤바뀌기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실상 무가련이라는 체계가 유명무실하게 되기도 하였다.
천하를 크게 뒤흔든 마도. 그것에 대해서 속수무책에 가까울 정도로 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몇이 당하였느냐, 어디를 잃었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대부분이 내부의 문제였다.
결국, 외부로 세를 키우는 데에 집중하였다가 내부에 큰 병을 키운 셈이다.
훌륭하게 수습한 남궁세가를 제외하고 다른 가문은 화를 면치 못했다.
주축이라 할 수 있는 다섯 가문이 그런 상황이라. 따르는 중소 무가 또한 봉문까지는 아니더라도 내실을 기한다고 문을 닫는 곳이 속출하였으니.
무가련이 그렇게 위축되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강호는 족히 십여 년은 조용할 듯했다.
오래도록 침묵하던 천룡세가가 무가련을 대신해 나서면서 일체의 소란이 없었고, 소림사를 비롯한 소림파는 등용문의 선두 앞에 전에 없는 위용을 드러냈다.
또한, 북방에서는 산서 강시당이 신비를 거두고 세상에 나섰고, 사천의 당가는 사천의 변란을 솔선하여 수습하면서, 무림중의 명성을 뛰어넘었다.
하북에서는 정주 담가가 그 명성을 높였다.
세로는 아직 하북 맹주, 팽가에 미치지는 못하나. 하북 무림의 명사, 담일선이 하북 무림을 이끌어서 마교 한 축을 무너뜨리지 않았는가.
대의, 협행, 명성으로 정주 담가는 감히 팽가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할 수 있었다.
남궁세가에서는 젊은 검왕이 세상에 나왔다고 명성을 알렸다.
과거 관중검, 그러나 이제는 남천소검왕(南天少劍王)이라 하는 남궁유였다. 그는 진정 소수 정예를 이끌어서 강남 무림을 욕보인 마교인을 모조리 전멸시켰으니.
작게는 가문의 명성을 지킨 셈이고, 보다 크게는 강남 무림의 자존심을 세웠다고 할 수 있었다.
그뿐이랴, 그 뒤에는 검백 이후로 당세제일인으로 손꼽는 권야, 곧 소림사의 용문제자가 있는 까닭이었다. 이제는 그를 칭하는 다른 이름이 있는 바인데.
마운벽일, 그 지독한 날로부터 날이 얼마나 지났을까.
소명은 잠시 날짜를 헤아렸다. 햇수로는 삼 년 정도였다. 그 세월이 새삼스럽다.
참 여러 일이 있었다.
소림사에서는 몸을 추스른 법능이 그간 비어 있던 방장 자리에 올랐다.
공력을 크게 소실하였다지만, 소림사 방장이 어디 무공으로 정하는 자리이던가.
오히려 불성은 한층 깊어졌으니.
마운벽일로 큰 피해를 보았던 천산파 또한 이번에 상처를 털어내고서, 중원으로 비무행을 나선다고 한다.
서장 백금장에서는 중원에서 들인 제자 하나가 다음 서장제일도랍시고 명성을 알린다고 하고.
둘이 같이 움직이는 데, 서천쌍기(西天雙麒)라고 한다나.
천룡세가에서도 소천룡을 하나로 정했다고 하는데, 소명은 굳이 관심 두지 않았다.
예의상 묻기만 물어도 냉큼 들러붙을 게 하도 뻔한 탓이었다.
천룡대야도 그렇지만 마운벽일, 그날에 신룡대주를 비롯한 신룡대 전원이 얼마나 들러붙었는지. 세월 지난 지금 생각해도 진땀 빼는 일이었다.
끝끝내 대공자 운운하면서 떨어지지 않다가, 아함이 내리는 불벼락에 보기 좋게 그을리기까지 했다.
참 어지간한 자들이다.
“그놈의 대공자.”
이제는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소천룡도 한 사람으로 정해졌다고 하는 판국인데.
소명은 고개를 흔들었다. 당장 상화촌 안에는 없었지만, 일대에 신룡대 무리가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딴에는 기척을 감추고 있다지만, 어찌 모르겠나.
보필인지, 감시인지 모를 일이다.
소명은 그래도 상화촌까지는 들지 않는다는 것으로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소명은 에효, 한숨을 탁하고 밀어냈다.
상화촌, 그 한적한 마을 주변이 어째서인지 왁자하고 시끄러워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소란을 만든 당사자가 바로 옆에 있었다.
소명은 이내 이를 드러내면서 홱 고개를 돌렸다.
흘겨보는 눈초리가 사납다.
“아니, 왜? 뭐? 뭐? 내가 뭐!”
탁연수, 그는 당당했다. 보란 듯이 가슴을 활짝 펴고서, 턱 끝을 뾰족하게 세웠다. 그래도 상황과 상대는 봐가면서 당당해야 할 일이다.
“그걸 몰라서 물어? 알게 해줘?”
이를 악물고, 치켜든 손을 천천히 그러쥐었다. 주먹을 쥐는 순간, 우드드득, 울리는 소리가 하이고 험악도 하여라.
저것이 어떤 주먹이던가. 저 주먹에는 아무리 강시당의 절기를 모조리 완성한 자신이라도 몸 성하기는 글렀다.
탁연수는 당장 수그러들었다.
“하하, 친구. 진정하게. 나도 설마 이렇게까지 몰려올 줄은 몰랐지 뭐야, 하하하.”
“그래, 웃음이 나온다는 말이지. 너.”
“뭐 어쩌냐. 소문은 났고. 혼자 막는다고 될 일도 아닌데.”
“누가 막으라 하디! 부채질은 말아야 할 것 아니냐. 이 인간아!”
“아하하하.”
정말 거기까지 알았구나.
상화촌에 소명이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탁연수의 입방정 때문이다.
저 녀석이 떠든 게 아니었으면, 애초에 일이 이렇게까지 크게 벌어질 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림중의 일만이라면 소명이 이렇게까지 울컥할 일도 없었다.
직접 나서서 물러나라 하면 될 일이니까.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
항마신장(降魔神將).
“거 이름 한번…….”
소명은 혀를 찼다.
참으로 거창한 이름이다. 그 유래를 따지자면 역시나 마운벽일 때였다.
성마 보정이 드높이 솟구치면서 하늘을 불태울 듯이 이글거렸다. 그때에 천하 무림인들이 홀연 나타나 성마를 제압한 거대한 손을 목도하지 않았던가.
이를 두고 불문공부의 전설이라는 여래신장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소림 무공의 최고봉인 무상대능력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별별 이름도 다 튀어나왔다. 대승반야선공이니, 달마역근공이라느니, 등등.
펼친 무공 이름이야 어떻든, 그 신위를 누가 드러냈는지는 세상이 다 아는 바이다.
이제는 그를 두고서 권야라는 무명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를 굴복시킨 신장의 위엄, 항마신장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