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325
325화. 후일
천하가 그리 말하지만, 소명은 딱히 달갑지 않았다. 아무리 신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는 하지만, 소명은 사람이다.
신장 운운하는 소리는 그저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그런데 어디의 누구 덕분인지, 하늘이 내린 신장이 있다는 소문이 싹 퍼지지 않았는가.
무림에서만이 아니었다.
그를 직접 찾아서 참배하겠답시고 민초, 백성들이 몰려오니, 그게 더 문제였다.
소명은 다시 생각하니 열불이 솟는다. 번쩍하고 불똥이 튀는 눈초리로 탁연수를 흘겨보았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말을.”
소명은 결국 고개를 흔들었다. 그제야 탁연수는 어색하게라도 다시 웃었다. 히히, 저 웃는 낯은 여전했다. 문득 소명의 눈길이 높이 올라갔다.
“응, 왜 그러냐?”
가만히 모은 눈매, 그에 맺힌 안광이 심상치 않다.
탁연수는 본능적으로 뭔가 있음을 알고서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소명이 보는 방향을 따라서 살폈지만, 딱히 보이는 것은 없었다. 한껏 공력을 집중도 해봤지만, 그저 하얀 구름 흐르는 창천의 하늘일 뿐이었다.
탁연수가 소명에 비하면 손색이 있다고 하겠지만, 그래도 강시당의 당대 당주가 이 사람이다. 앉은 자리에서 능히 수십 리에 이르는 기척을 파악하고도 남는다.
그래도 이상한 점이 딱히 없는 상황이라서, 탁연수는 이맛살을 찌푸린 채, 눈매에 날이 선 소명에게 넌지시 물었다.
“뭐야? 뭐가 있어?”
“하늘.”
“응?”
“하늘에서 오고 있다. 하이고, 요란 부리기는 저 녀석도 못지 않는구만.”
소명은 곧 눈가에서 힘을 뺐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은 쓴웃음이다. 그는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뭔 뚱딴지같은 소리를?”
탁연수는 말하다 말고 홱 고개를 치켜들었다. 소명이 하는 말을 이제야 알았다.
저 먼 곳이 아니었다.
저 높은 곳이었다.
“으어, 으어어!”
탁연수는 저도 모르게 놀란 소리를 내고 말았다. 높은 하늘에 뭔가 일렁이더니, 불덩이 하나가 뚝 떨어지고 있었다.
불덩이는 소명과 탁연수가 앉아 있는 상화촌의 외딴 초막으로 수직으로 떨어지는데, 이대로면 일대가 내려앉을 모양이다.
그만큼이나 무시무시한 기세였고, 한참 아래에서 보고 있건만, 벌써 열기가 확 느껴질 참이었다.
괴변이라 할 일이지만, 탁연수는 이내 놀란 얼굴을 다잡았다. 그냥 한숨을 푹 내뱉었다. 그러고는 소명에게 넌지시 물었다.
“저거 괜찮은 거냐? 이대로 떨어지게 두어도?”
“괜찮아, 괜찮아. 이제는 경지가 훌쩍 올라서 말이지. 허구한 날 저러고 다닌다. 아주 재미 들렸어. 천산까지 일만 리가 진짜 하룻길이다.”
“천산까지가 하루?”
소명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탁연수는 감탄과 경악의 경계에서 입을 한껏 벌렸다.
이내 머리 위 십여 장의 거리를 두고서, 불길이 확 흩어졌다. 불씨는 이내 사그라지고, 그 자리에는 백금포군 차림을 한 여인이 옷자락을 흩날리면서 고혹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머리카락이 펄럭이는데, 남은 불꽃이 머리 장식처럼 휘감아 올렸다. 인세의 모습이 아니다. 불의 화신이 하늘에서 내리는 듯하다.
백옥처럼 하얀 얼굴에는 검은 눈썹, 칠흑을 품은 깊은 눈동자, 도도한 붉은 입술, 그렇게 나타난 여인은 딱 소명에게 떨어졌다.
“상공!”
흐업!
소명은 일단 떨어지는 그녀를 받아 안기는 했지만, 절로 신음이 튀어나왔다. 경중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신화경에 이른 보신경을 발휘했다고 하지만, 까마득한 곳에서 뚝 떨어지는 무게를 받아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나.
소명이 아니라면 그대로 허리가 내려앉고, 폐부가 짜그라들면서 피 토할 판이다.
그런 것을 주춤하는 정도로 받아낸 소명도 어지간한 괴물이라고 하겠다.
탁연수는 그냥 웃어버렸다. 여기서 뭘 어쩌겠나.
“아이고, 산주께서는 여전하시구만.”
“탁 당주. 하하하.”
아함은 소명의 목에 팔을 걸치고서 태연하게 웃었다.
화염산주, 그리고 삼신으로 불리는 여인으로는 도무지 볼 수 없는 맑은 모습이다.
저것도 소명이 옆에 있어 그런 것이다.
신인 화염산주에게 저런 웃음이 다 무언가. 번뜩이는 눈빛 한 번에 사람이 불타버리기도 하는데.
아함은 소명 옆에서 전혀 떨어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소명도 더는 떼어낼 생각도 않고 있었다. 그냥 에효, 한숨을 흘리고서 먼 산이나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소명은 문득 불평하듯 중얼거렸다.
“그냥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건만.”
“상공도 참. 추억하는 자리는 왁자할수록 좋은 일이지요. 아무렴요.”
한숨 섞인 채 한 말에 곁에서 아함이 딴죽을 걸었다. 소명은 그런 아함을 흘깃 내려다보았다. 눈길 받은 아함은 배시시 웃었다.
딴에는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 네 말도 영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
내일이면, 상화촌의 오인방이 모이기로 한 날이면서, 양부 대웅을 기리는 날이기도 했다. 이때에 맞추어서 소명은 상화촌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그것이 올해에는 참으로 번잡한 하루가 되겠다.
다 누구 덕분에.
“에효, 이미 벌어진 건 어쩔 수 없지만, 그 녀석들 올 때에는 조금이라도 조용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소명은 한탄이나 다름없이 중얼거렸다. 이미 마을 주변에 장사진을 친 자들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제부터 올 사람이라도 차분했으면 하는 바였다.
하늘 밖 유성이 떨어지듯이 뚝 내려서는 아함이야 그렇다고 하겠다. 이제 체념한 마당이라. 그가 걱정하는 것은 다른 누구보다 서군현왕이었다.
이청 녀석도 조용하게 다니고 싶어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그리 녹록하지 않으니.
소명은 그러다가 어딘가 어색한 탁연수의 낯을 보고서 재차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 그래, 알았어. 이번에도 글렀다. 이거지.”
“이번에는 더욱 소란할걸.”
“더? 또 왜?”
“왜기는 왜야, 몰라서 물어.”
“음…….”
소명은 잠깐 입을 닫았다가, 이내 한숨을 푹 흘렸다. 바로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그는 손을 들어 얼굴을 덮어버렸다.
“자식 자랑하러 오는 거로구만. 결국, 자식 자랑이야.”
말 끝나기가 무섭다. 저기 먼 곳에서 힘찬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현왕의 행차를 알리는 소리이니. 소명은 그만 맥 빠진 얼굴로 탁연수를 흘겨보았다.
탁연수는 배시시 웃기만 웃는다. 어색할 따름이다. 일을 이리 벌여놓은 것이 자신이라는 건 딱히 부인할 도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다가 딱 요때다 싶어서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이다.
소명은 그런 탁연수를 한번 흘겨보았지만, 더 붙잡지는 않았다.
“헤, 헤헤. 호매가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말이지.”
“그래, 가라, 가. 어련하겠냐.”
“헤헤헤.”
탁연수는 사뭇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러나 아무래도 좀 늦은 듯했다. 탁연수가 머뭇거리고 있을 새에 불쑥 검은 그림자가 솟구쳤다.
방금 말한 호매, 호충연이었다.
“으어억!”
호충연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냥 탁연수의 귀를 붙잡아서는 거침없이 비틀었다. 손끝이 하얗게 물들었다. 놀란 비명에도 호충연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흥, 연기하기는!”
호충연은 버럭 소리쳤다.
강시공을 완벽하게 이룬 탁연수였다. 어디 아낙의 손짓 하나에 아파할까. 그건 탁연수에게 아쉬운 소리였다. 호충연이 어디 보통 아낙이겠는가.
호가무관의 당대 관주가 여기 이 여인인데.
“아함, 오늘은 일찍 돌아왔네.”
“네.”
아함은 방글방글 웃었다. 호충연도 아함을 전혀 어려워하지 않았고, 아함도 호충연은 친언니처럼 친근하게 여긴다.
둘은 잠시 몇 마디를 나누었다.
“그럼, 이만 내려가 볼게요. 오라버니 내외도 곧 도착한다더군요.”
“충인 녀석도 제법 부지런을 떤 모양이군.”
“그렇다기보다는 더 소란할까 봐 그런 게지요. 벌써 이 지경이니, 한 며칠은 내내 소란하겠어요. 여기에 현왕까지 행차하시면. 하이고…….”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러니 저 녀석 혼 좀 내주지 않으련.”
“아무렴요. 조용한 마을이 정말.”
“아니, 난 그게.”
“시끄러워요.”
“으으음.”
탁연수는 변명 한마디라도 하려고 했지만, 쏘아보는 눈초리에 그냥 입을 말아 물었다. 여전히 귓불은 단단히 붙잡힌 채였다. 그렇게 호충연의 손짓에 끌려서, 탁연수는 볼품없이 끌려 내려갔다.
“아니, 아니, 호매. 그래도 내가 강호에서 명성이란 게 좀 있는데. 사람 앞에서는. 으어억, 아니, 그게……으어어…….”
소리가 언덕 아래로 넘어가자, 새삼 주변이 조용하다.
지금의 소란, 그리고 이내 몰려올 난리를 생각하면.
참으로 번잡하고, 요란하니, 소명 성미에는 정말 맞지 않는 일이다. 그래도 친우들이 찾아오는 것이니 어찌 마다하겠는가만.
싫은 기색은 잠깐이었다.
소명은 한층 고요한 기색으로 바윗돌에 걸터앉았다. 그러자 아함은 자세를 바꾸어서 그의 어깨에 머리를 살짝 기대었다.
“그래, 화염산에 별일은 없느냐?”
“성마가 사라졌기 때문일까, 산세의 열화기가 많이 수그러들었어요. 이대로면 몇 대가 흐른 뒤에는 그래도 밖에서 살 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요?”
“흠, 그래도 까마득한 세월이 필요할 게다.”
“예, 상공. 참 백금장주가 한번 들려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던걸요.”
“위지 녀석이? 또 무슨 일이 생겼군. 아니면 무슨 일을 저질렀던지.”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아함에게 부탁까지 하면서 자신을 찾을 리가 없다. 하기야 마운벽일이 끝나기가 무섭게, 위지백은 부인 손에 붙들려서 끌려가지 않았던가. 그러고는 삼 년은 보지 못했으니.
소명은 막 끌려간 탁연수처럼 뒷덜미 붙들린 채, 끌려가는 위지백의 볼품없는 모습이 아직도 선명했다. 키득, 실소가 절로 나온다.
소명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앉은 자리는 상화촌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자리로, 너머로는 드는 길목 또한 훤히 볼 수 있었다.
아직 사람 흔적은 보이지 않는데, 바람을 타고서 행차를 알리는 풍악 소리가 흐리게 밀려왔다. 현왕이 가까이 온 모양이었다.
어디서 비롯하는지 몰라도, 바람은 동서남북으로 흩어지고, 다시 휘돌아서 모이고 그렇게 흘러, 흐른다.
강호의 은원(恩怨)도, 정리(情理)도 이와 같아라.
소명은 바로 보이는 어수선한 것은 잠시 마음 구석으로 미루어두고서, 품에 기댄 아함의 온기를 느끼며 흐르는 구름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魔道神話 至終千年.
마도의 오랜 신화가 천년 세월에 끝에 이르렀다.
魔道至炎 燒天裂地
마도의 지극한 불길이 하늘을 사르고, 땅을 찢는데.
拳爺神拳 神將出現
권야의 신권으로 신장이 나타났다.
魔道卷雲 世道太平
마도의 구름을 걷어내니, 온 세상이 고요하여라.
天下崇仰 降魔神將.
천하가 공경하여, 항마신장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