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43
43화. 여량산(呂梁山)의 호랑이
타탁! 타타타탁!
연이어 내쳐오는 단타였다.
우박이 끝없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다급히 대도 자루로 막아보지만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양권의 단타를 전부 막아낼 수는 없었다. 노장시는 정신이 없었다. 급기야 허점이 드러났다.
“큽!”
턱에 일타가 들어갔다. 묵직한 주먹이었다. 신형이 휘청하는 순간, 소명은 더욱 안쪽으로 파고들며 주먹이 들어간 턱의 일점을 향해 연신 단타를 날렸다.
터터턱!
“크읍! 흐압!”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무너질지도 모른다. 위기감에 노장시는 전신의 공력을 일시에 발했다.
부왁!
옷자락이 한순간에 부풀었다. 전신에서 발하는 기파가 신나게 몰아붙이던 소명을 뒤로 밀어냈다.
‘우엇!’
후다닥 자세를 바로잡은 소명은 노장시의 전신을 둘러싼 반구형의 투명한 기막(氣膜)을 볼 수 있었다.
방신기(防身氣).
극에 닿으면 손가락 까딱 않고, 오직 반탄력만으로 상대를 격살할 수 있다는 경지.
‘우아아…… 정말 괴물이구나…….’
소명은 새삼 장우상의 말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노장시는 얼얼한 턱을 문질렀다. 찌푸린 눈가에서 서슬 퍼런 안광이 흘렀다. 그는 어금니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흐…… 흐흐.”
이때의 노장시는 더 이상 천하고수로서 월부대도가 아니었다. 노고수가 보이는 풍모를 벗어던진 것이었다. 흡사 맹수가 흉성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실체를 지닌 압박이 소명을 짓눌렀다.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그 한 걸음.
노장시는 히죽하고 웃었다. 정말로 재밌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네놈, 네놈 정말 재밌고나.”
우연인지 필연인지, 노리고 발한 무형기를 피해낸 것이다. 이는 상대하기 부족함이 없다는 뜻이었다.
“네놈 정말 재밌고나.”
“하, 하하.”
소명은 어색하게 굳은 얼굴에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화가 났다는 뜻이겠지?’
후우…….
애써 깊은 숨을 세게 불어내며 몸을 털었다. 이럴 때일수록 몸을 가볍게, 마음은 자유롭게. 그것이 무형결이다. 그런 소명의 모습에 노장시는 낮은 웃음을 흘렸다.
‘흥겹구먼. 이런 것이 대체 얼마만이냐.’
당장이라도 회춘할 것만 같았다. 힘이 불끈 샘솟았다.
그는 몸에 두른 방신기를 일시에 거두었다. 여직 도첨에 매달려 있던 도기마저 깨끗이 지웠다. 그리고 새삼 도신을 바로 세웠다. 예기를 담뿍 품은 칼날에 햇빛이 부서졌다.
“자, 어디 다시 한번 어울려 보자! 흐하하!”
‘아, 정말…… 더럽게 꼬였네.’
더 구시렁거릴 틈은 없었다. 한껏 달아오른 노장시가 버럭 외쳤다.
“안 올 테냐? 그럼 내가 가마! 으하하하!”
“흡!”
외침과 동시에 노장시의 거구가 무섭게 덮쳐왔다. 소명은 냅다 땅을 박찼다. 신형을 비틀기가 무섭게 섰던 자리가 대도의 칼날에 무참히 베였다.
좀 전 까지는 마치 몸 풀기였다는 듯, 덮쳐오는 도광이 사방에서 번쩍였다.
쩡! 쩌정!
칼날이 덮쳐오는 것을 상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손목을 뒤집는 것만으로 수십의 변화를 보였다. 도신이 발하는 광채는 현란하여 순식간에 소명의 전면을 뒤덮었다.
어디에도 물러날 곳이 보이지 않았다. 그 위력은 또 어떤가. 대기를 가르는 경풍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살이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도광경풍(刀光勁風)이 흡사 그물을 죄여오듯이 소명을 압박했다. 욕지거리가 절로 입안에서 맴돌았다.
순간 소명이 눈을 치떴다. 이쯤 되면 이판사판이었다.
“흐아압!”
혼신의 기합을 쥐어짰다.
오갈 수 없다면 뚫을 뿐이다.
짧은 동작으로 떨쳐낸 권경이 연속해서 폭발했다. 그물처럼 엄밀하던 도광의 한쪽 귀퉁이가 겨우 무너졌다. 가볍지만 중첩한 권경에 노장시의 손끝이 무뎌진 것이다.
소명은 냅다 그곳으로 뛰어들었다. 데굴데굴 바닥을 구르는 소명을 쫓아 노장시는 신형을 비틀었다.
다시 단악(斷岳)의 기세를 품은 도격이 떨어지려 했다. 그러나 대도는 떨어지는 대신 노장시의 전면을 막았다.
따다다당!
묵직한 경력이 도신을 두들겼다.
소명이 바닥을 구르는 것과 동시에 챙긴 돌멩이를 쏘아낸 것이었다.
노장시는 퍼뜩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는 거리를 벌린 채 숨을 몰아쉬는 소명을 빤히 보았다. 그의 눈길이 흘깃 도신에 향했다.
돌먼지가 하얗게 묻어 있었다.
“흐, 흐흐흐.”
그는 이를 드러낸 채 스산한 웃음을 흘렸다. 비록 삼성에도 미치지 않는 공력이라지만 그가 고심하여 창안한 일초 만광천라(滿光天羅)가 이제 스물 중반의 애송이한테 깨진 것이다. 그러나 분한 것은 없었다. 오히려 흥에 겨워 어쩔 줄을 몰랐다.
“흐하하! 뭘 주저앉아 있는 게냐. 자, 자. 계속하자꾸나!”
그는 크게 웃으며 재촉하는 모습에 소명은 고개를 흔들었다. 울상을 진 채 억울하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방신기를 거리낌 없이 펼치는 분께 제가 무슨 수를 쓸 수 있단 말입니까?”
“응?”
그 말에 노장시는 멈칫했다. 듣고 보니 그도 그렇다.
“허, 그럼 이러면 어떠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도가 움직였다. 그것은 마치 채찍처럼 움직이며 노장시의 거구를 한순간에 뒤덮었다. 방신기와는 또 다른 신기였다.
“…….”
그러나 소명은 침묵했다.
아니, 아예 두 손을 놓아버린 채 물끄러미 노장시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응? 왜 가만히 있는 게냐?”
“노야도 사람이시니, 언젠가는 지치시겠죠. 그때까지 기다리렵니다.”
“뭐, 뭐이? 이 자식, 재미없게 그러기냐?”
“노야께서야 재미있으시겠지만, 전 목이 달아날지도 모르는 상황인 것을요.”
“하, 젊은 놈이 이리 패기가 없어서야.”
기가 차다는 듯이 면박을 주었다. 그러자 소명은 두 어깨를 으쓱했다.
“패기가 항상 좋은 건 아니지요.”
“쯧! 모처럼 달아올랐건만.”
노장시의 대도가 뒤로 숨었다. 흉흉한 도광이 일시에 사라지고 이곳에 가득하던 무거운 기세가 흩어졌다. 칼날을 감추는 것만으로도 주변 상황이 일변하는 것이다. 새삼 불어든 바람결에 소명은 움찔했다.
‘이것이…… 천하의 고수…….’
초반에 그가 득수(得手)할 수 있었던 것은 실로 운이 따른 결과였다. 소름 돋은 목덜미를 문질렀다. 여차했으면 이 목이 뚝 떨어졌을 것이다.
“너, 술은 좀 하더냐?”
“별로 안 좋아하는데요.”
“에잉, 점점 못마땅해지는군.”
노장시는 혀를 차고는 곧 모옥으로 가 큼직한 호리병을 꺼내들었다. 웬만한 장정의 얼굴만큼이나 큰 호리병이었다. 마개를 따자 지독한 주향이 사방으로 퍼져갔다.
“크흐흐흐. 이놈의 산 구석은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지만, 이 술만큼은 정말 좋단 말이야.”
한 차례 가득 들이킨 노장시는 호리병째 소명에게 던졌다. 급히 받아들었다. 코끝에 닿은 것만으로도 어찔한 술 냄새였다.
“…….”
어찌해야 하나 싶어 고개를 들자 노장시는 턱 끝으로 호리병을 가리켰다. 한 모금 마시라는 뜻이다. 주저하던 소명은 한숨을 푹 내뱉고는 마지못해 한 모금 들이켰다.
“큽! 크헥…… 크으…….”
혀가 마비될 것만 같은 지독한 주향이었다. 그렇지만 당장 입 안 가득 꽃향기가 차오르다 못해 콧구멍을 통해 흘러넘쳤다. 술기운에 머리가 어찔할 정도의 독주였지만 그 향은 굉장했다.
“흐흐, 그것이 이곳의 명물인 백화주(百花酒)다. 천하에 손꼽힐 만한 약주지. 아마 아랫도리가 불끈할 것이야. 흐하하하.”
껄껄 웃고는 짐을 어깨 위에 척 올렸다. 그리고 시뻘게진 얼굴로 멍해 있는 소명에게 외쳤다.
“가자! 여기서 밤샐 생각이 아니면.”
“예? 아, 예!”
소명은 퍼뜩 정신 차리고, 찰랑거리는 호리병을 든 채 노장시의 뒤를 쫓았다.
모옥 안에 다 녹은 황촉이 조용히 타올랐다. 달리 안주거리도 없이 술병만 여럿 놓여 있었다. 주로 따르는 손은 소명이고, 마시는 입은 노장시였다.
“정말로 소림 제자가 아니라고?”
“예.”
“으음, 그런 놈이 탄지신통의 재간을 부려?”
“무슨 탄지신통씩이나 됩니까. 그저 탄지술에 불과하지요.”
“호오, 네가 안 했다는 말은 안 하는 구나.”
노장시는 놀리듯 말했다.
소명은 그에 대거리하기보다는 쓰게 웃으며 그의 빈 잔을 채웠다. 그러자 노장시는 일순에 잔을 비우고는 탁하고 내려놓았다.
노장시는 취기라고는 조금도 없는 눈으로 소명을 빤히 바라보았다.
“너, 탄지신통이 어떤 것인지 아느냐?”
“예?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자칭 무종본산(武宗本山)이라는 소림이다. 그중에서도 절예라고 손꼽히는 것 중 하나가 탄지신통. 그것이 그리 쉽게 이루어지는 경지라고 생각하느냐?”
“저는…….”
“내 소림의 사람은 아니나, 대략적으로 이치를 더듬어볼 수는 있다.”
탄지로 신통을 이룬다 하여 탄지신통이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금강지를 대성하여야 하며, 경력을 체외로 발출하는 절정지경에 이르러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쏘아낸 탄지신통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관음심안을 얻어야 하니.
삼불통(三不通)이면 불통(不通)이라 하는 것이 탄지신통의 묘리인 것이다.
“그런데, 네가 한 것이 그냥 탄지술이라고 한다면, 너는 소림의 무학을 너무 무시하는 셈이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딱히 탄지신통이라 생각하고 펼친 적은 없었다. 그저 하였으니 되었을 뿐.
헌데, 이제 와서 노장시의 말을 듣고 보니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진정 소림과 작은 연이 있을 뿐이더냐?”
“제가 익힌 것은 금강권과 일심기공이 전부입니다.”
“…….”
고민 없이 답한 말에 노장시는 입을 닫고 눈을 끔뻑였다. 그리고는 다시 소명을 빤히 바라보았다.
“금강권? 일심기공?”
“예, 노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소명은 움찔했다. 물끄러미 보는 노장시의 눈길이 영 껄끄러웠다. 얼큰히 오른 술기운 탓인지 부리부리한 두 눈이 붉었다.
“노야?”
주춤하는 순간 노장시는 버럭 소리치며 상을 엎어버렸다.
“에라이!”
와장창 하며 귀하다는 백화주가 사방으로 튀었다.
“우, 우왓!”
“이놈의 자식! 보자 보자 하니까, 어른을 놀려!”
탄지신통에 대해서 입 아프게 설명을 했더니만, 한다는 소리가 금강권과 일심기공이 전부라니. 어디 말 같지 않은 소리란 말인가.
발끈한 노장시는 벽에 세운 새 대도를 치켜들었다.
“왜, 왜 이러십니까?”
“뭐가 왜 이래야! 어쭈, 도망쳐? 너 이리 안 와!”
“으아아!”
그날, 소명은 노장시의 술기운이 진정될 때까지 내내 도망 다녔다.
* * *
모옥 안은 희끄무레한 연기로 가득했다.
흡사 새벽안개가 안으로 밀려들어온 것 같았다. 그 가운데에 노장시가 자리하고 있었다.
반개한 눈꺼풀 아래의 두 눈은 시공을 초월한 다른 어딘가를 헤아리고 있는 듯했다. 그는 오래도록 미동조차 없었다. 어느 순간, 눈가에서 자색 광채가 피어오르더니 곧 번갯불처럼 강렬하게 번쩍 빛을 발했다.
내실에 가득한 연기가 노장시를 중심으로 휘돌기 시작했다. 부는 바람도 없건만, 연기는 살아 있는 듯 크게 맴돌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노장시의 전신으로 남김없이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길고 긴 숨을 토했다.
“후우우…….”
노장시는 눈을 떴다. 두 눈에 어려 있던 자광이 담담하게 갈무리되어 사라졌다.
“음.”
운공을 마친 노장시는 밖으로 나섰다. 문을 열자 여량산의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풍경이었다. 그리고 여느 때와는 다른 무엇이 그곳에 있었다.
노장시는 잠시 멈칫하더니 미간을 가만히 찌푸렸다. 햇살 아래 소명이 기이한 모습으로 취하고 있었다. 한쪽 다리를 들고 엉거주춤한 모양새였다. 두 손은 한쪽 허리춤에 모여 있었다.
“저놈이 저게 지금 뭐하는 건가?”
멀뚱히 서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분명 움직임이 있었다. 다만 거북이걸음보다 더 할 정도로 느릿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일 촌을 나아갈 뿐이었다.
지켜본 끝에 노장시는 ‘허헛’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그는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정말…… 금강권이군. 금강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