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52
52화. 그날의 일
“흐아압!”
기어코 거리를 빼앗은 장인지가 마지막 호흡을 토해내며 모든 힘을 실은 발차기를 퍼부었다.
터텅! 터터텅!
그러나 울리는 소리가 묵직했다. 피륙의 몸뚱이가 분명하건만 흡사 쇠붙이를 두들기는 듯한 소리였다.
공격을 당한 사내는 우두커니 버티고 섰다.
장인지의 철각이 멈췄다. 그녀는 지친 얼굴로 자신의 발끝을 바라보았다. 그녀 발은 상대의 명치를 정확하게 파고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얼굴에는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금……종조?”
그 모습에 장인지는 말을 더듬었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뒤로 다가선 다른 이가 그녀의 혼혈을 점해버렸다.
“하, 젠장…….”
정신을 잃는 순간까지 그녀는 욕지거리를 흘렸다. 바닥에 털썩 널브러진 그녀를 팽가의 세 사내는 묵묵히 내려다보았다.
“상당한 공력이군요. 제가 아니라, 아표였다면 큰일 났을 겁니다.”
“…….”
발길질에 전신을 난타당한 사내, 팽지강이 말했다. 그 말에 다른 두 사람은 부정하지 않았다. 아표, 팽지표의 외문기공의 화후는 팽지강에 미치지 못했다.
팽가의 무공 중 으뜸은 도법이나, 그와 함께 외문기공을 필히 수련했다.
강호에서 육신을 단련하는 외문기공의 경지를 분류하기를 철포삼(鐵布衫), 금종조(金鍾罩), 그리고 육신갑(肉身鉀)으로 구분하는 데, 팽지강은 그중에서 금종조를 거의 완성했다.
이는 어지간한 충격에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경지라.
그리고 팽지표는 철포삼을 겨우 이루었다. 무딘 칼날에는 베이지 않겠지만, 지금의 장인지처럼 힘을 다한 연이은 타격에는 무너질 수 있었다.
중년사내, 팽오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되었으니, 어서 움직이자꾸나. 다른 이들의 눈에 띄며 귀찮아진다.”
“예, 숙부.”
팽지강, 팽지표의 두 사내는 축 늘어진 장인지를 들쳐 엎었다. 그리고 구석에 처박힌 정주의 주먹패들을 흘깃 일별하더니 다른 말없이 자리를 떴다.
낙조도 이제 저물어 한바탕 소란이 인 자리에는 짙은 어둠만 내려앉았다.
* * *
팽오성은 착잡한 얼굴로 축 늘어져 있는 여인을 내려다보았다.
이곳은 담가의 여러 후원 중 하나였다. 그곳에 여인은 결박당한 채 엉망진창의 모습으로 흙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팽오성은 그녀의 이름도 내력도 몰랐다. 그러나 그녀를 제압해 이곳까지 끌고 온 것은 자신이나 다름없었다.
“당장 깨워!”
표독스러운 일갈이 귓전을 날카롭게 찔렀다. 팽오성의 눈길이 흘깃 그쪽으로 향했다.
그곳에 눈 아플 정도로 화려한 비단으로 온몸을 감싼 중년 부인이 서 있었다. 담가의 이부인, 팽씨였다. 그녀는 붉게 칠한 입술을 질끈 문 채 웅얼거렸다.
“저 건방진 년…….”
팽씨의 피를 타고난 그녀는 키가 여느 사내에 못지않게 장대했다. 용력 또한 상당해 큰 손이 움켜쥔 접선은 당장이라도 부서져 나갈 듯 움찔거렸다. 그것은 단단한 오죽으로 만든 것이었다.
노려보던 그녀는 홱 고개를 돌렸다. 독기 앉은 눈동자가 멀뚱히 있는 비복들에게 향했다.
“뭐하는 거냐! 당장 깨우지 않고!”
“……예, 부인.”
지쳐서 헉헉 거리던 그들은 급히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리고 옆에 놓인 물통을 들어 여인에게 쏟아 부었다.
촤악!
“크흑…….”
얼굴을 때리는 물줄기에 그녀는 눈을 깜빡였다. 그녀의 눈동자는 반쯤 풀려 있었다. 핏물 섞인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그녀는 멍한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는 피식하고 웃었다.
“크, 크크크. 이게 다야? 담가도 별것 아닌데? 이 장 아가씨를 어떻게 해볼 작정이면 좀 더 분발해보라고.”
그녀, 장인지는 피투성이가 되도록 모진 매를 맞고도 여유를 보였다. 흘깃 고개를 든 그녀는 앞에 선 팽씨의 모습에 히죽 웃었다. 그것은 지독한 조소였다.
“지금까지 주먹들의 뒷배가 누군가 했더니…… 담가였나? 많이 썩었네…….”
“흥, 너희 같은 무지렁이가 무엇을 아느냐? 가치도 모르는 것들.”
장인지의 빈정거림에 팽씨는 싸늘하게 코웃음 쳤다.
남호동 빈민가를 철거하고 난 후, 그곳에 들어설 가게와 장원들은 막대한 이익을 가지고 올 것이었다. 또한, 앞으로 담가에서 그녀의 입지가 더욱 커질 것은 자명했다.
그런 이권을 모르고 그저 갈 곳 없어 떠나지 않는 남호동 주민들은 팽씨의 눈에는 무지렁이요, 하찮은 벌레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더 험한 꼴 당하기 싫으면 네년 패거리에 대해 순순히 부는 것이 좋을 것이야.”
“퉷!”
빙글거리며 웃는 그녀의 낯짝에 장인지는 피 섞인 침을 뱉어버렸다. 놀라 뒤로 물러섰다. 하얗게 분칠한 얼굴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헉! 이, 이년이…… 정말…….”
“크크, 내 발가락이라도 핥으면 말해 주지.”
“이, 이이! 쳐! 치란 말이다!”
물통을 든 채 엉거주춤하고 섰던 두 비복, 아금, 아태는 그녀의 독기 어린 채근에 다시 몽둥이를 치켜들었다. 그러나 둘의 얼굴에는 마뜩잖은 기색이 역력했다.
벌써 반 시진 가까이 몽둥이를 휘둘렀지만, 장인지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신음조차 없었다.
질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막상 몽둥이를 치켜들기는 했지만 차마 휘두를 수가 없었다. 주저주저하며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팽씨가 언성을 높였다.
“당장 치지 않고 뭐하는 것이야!”
“예, 예, 부인!”
두 사람은 급히 대꾸했다.
둘은 눈을 질끈 감고 냅다 몽둥이를 휘둘렀다.
퍽! 퍽!
묵직한 몽둥이가 웅크린 몸을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는 팽오성과 두 조카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마뜩치 않은 기색이 솔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장인지에 대한 감탄도 있었다.
‘저런 정신력이라니.’
장인지의 입에서는 잠깐의 신음조차 흐르지 않았다. 악문 이를 드러낸 채 독기 흐르는 눈으로 팽씨와 팽오성을 노려볼 뿐이었다.
팽가의 적손은 대대로 무골들이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저 여인과 같은 독기와 오기를 지닌 이는 없을 것이었다.
팽오성은 뭐라 말 못할 심정에 소리 없이 어금니를 짓씹었다.
그 와중에도 몽둥이는 계속해서 그녀를 내리쳤다. 그러나 그녀가 꺾이기보다 아금, 아태의 두 비복이 먼저 지쳐서 나가떨어졌다.
“헉, 헉…… 헉…….”
당장에라도 숨이 넘어갈 듯했다. 두 사람은 크게 헐떡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이 못난 것들…….”
담 둘째 부인은 험한 눈빛으로 지친 둘을 노려보았다. 그들은 움찔하고 어깨를 떨었다.
장인지는 히죽거리며 웃었다. 아니, 웃으려 했다. 그녀 얼굴에 부들부들 경련이 일었다.
“흐, 흐흐. 고, 고작 이것밖에 안 돼?”
“이년이 정말 입은 살았구나.”
팽씨는 이를 갈아붙였다. 화장 짙은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빠드득…….
움켜쥔 접선이 당장 부서질 듯했다. 이를 악물어, 각진 턱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나 그도 잠시 그녀는 이내 입 꼬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네년이 그리 나온다면야. 아금, 아태.”
그녀는 애써 침착한 척 표정을 가장했다. 그리고 두 비복들을 불렀다. 지쳐서 몸을 겨우 가누던 둘은 그녀의 부름에 바짝 긴장했다.
“예, 예, 부인.”
“너희들, 남호동으로 가봐야겠다.”
“예?”
뜻 모를 말이었다. 팽씨는 어리둥절한 그들에게 요사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이년 집에 얹혀사는 사내가 있다고 들었어. 그놈을 끌고 오너라. 여기, 이것이 이리 고집을 부리니 그놈이라도 치도곤을 내야겠지.”
들으라는 듯이 내뱉은 말에 장인지는 퍼뜩 고개를 치켜들었다.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에 팽씨는 더욱 코웃음 쳤다.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저년 어미라도 끌고 와야지.”
마지막 말에 장인지는 폭발했다.
“이, 익! 크아아악!”
“허억!”
두 눈에서 귀화가 번쩍였다. 그녀는 크게 몸부림치더니, 묶인 채 팽씨를 향해 온몸을 던졌다. 손발이 못 움직여도 그녀를 물어뜯을 작정이었다.
팽씨는 흉포한 그녀의 안광에 놀라 굳어버렸다. 너무도 갑작스런 일이었다. 다들 어찌할 바 몰라 하는데, 팽오성이 움직였다. 그는 대번에 달려드는 장인지의 어깨를 붙들었다.
“크으…… 크아아!”
그러나 장인지는 더욱 몸을 비틀어가며 팽씨를 향해 달려들려 했다. 격한 몸부림이었다. 내력을 제압당하고, 모진 고초를 겪었음에도 이 정도나 되는 여력이라니. 예상 밖의 일이었다.
“이런!”
보다 못한 팽오성은 급히 장인지의 혼혈을 점해버렸다.
“흐윽!”
장인지는 눈을 하얗게 뒤집으며 혼절해버렸다. 축 늘어지며 산발한 그녀의 머리카락이 흩어졌다. 그제야 팽오성은 한숨을 돌렸다. 문득 그의 눈에 바닥에 떨어진 머리끈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생각 없이 머리끈을 주워들었다.
겨우 상황이 수습되자 팽씨는 온몸으로 분노했다. 잠깐이지만 자신이 위협당했다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온몸을 떨었다. 그리고 발악하듯이 악을 썼다.
“당장! 당장! 그놈을 끌고 와! 내 저년 눈앞에서 쳐 죽이고 말 테다!”
어둑해진 하늘 위로 그녀의 찢어지는 노성이 높이도 울렸다.
* * *
팽오성은 굳은 얼굴을 한 채 남호동 거리를 다시 찾았다.
‘쯧, 이 무슨 시정잡배만도 못한 짓인지.’
스스로 처지가 서글퍼서 공연히 딴청을 부렸다. 저기 높이 뜬 달빛은 구름 뒤에 숨어, 그의 심정과 다르지 않았다.
“저어, 저어 나리. 놈이 오고 있습니다.”
목표한 사내의 얼굴을 알아본 비복 아금이 조심히 알려 왔다.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심사가 불편함을 알기에 더 말하지 않고 숨어 있던 골목길에서 나섰다. 조용히 있던 두 조카가 문득 다가섰다.
“숙부,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괜찮아. 다만, 너희 보기가 부끄럽구나.”
그는 한탄하며 중얼거렸다. 그 모습에 두 조카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가문의 영달을 위해서라지만, 무가의 가인으로 태어나 칼을 잡아온 무인에게 이런 일이라니.
그때였다.
돌연 골목에서 들려온 비명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으억!”
“아윽!”
급히 고개를 내밀자 형편없이 처박혀 있는 두 비복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팽오성은 입술을 짓씹었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일만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앞으로 나섰다.
“네놈 제법 재간이 있는 모양이구나.”
그러자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사내는 팽오성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는 뭔가 짐을 한 아름 안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보기에는 평범하여 무공을 익힌 듯 보이지는 않았다.
‘어떤 체술(體術)이라도 익힌 것인가.’
그러나 깊이 생각하기에 지금 팽오성은 짜증스러운 상태였다.
“길게 시간 끌고 싶지 않아.”
말하며 아까 주웠던 장인지의 머리끈을 내보였다. 갈색의 머리끈이 실타래처럼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리고 말했다.
“계집이 무사한 모습을 보고 싶다면 따라나서도록.”
그러자 사내는 안고 있던 짐을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멍하고 당황하여 굳어버린 것이리라. 팽오성은 그 심정을 이해할 법했다. 그때, 처박혔던 담가의 비복 둘이 욕설과 함께 벌떡 일어났다.
그들 모습에 팽오성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한심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이제, 그만…….”
한걸음 나서며 말을 꺼내려는 순간,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언뜻 드러난 달빛에 그의 눈을 볼 수 있었다.
아무런 감정도 없는 눈동자. 마주하기가 무섭게 팽오성은 오싹함을 느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부르짖었다.
“무, 물러!”
그러나 손은 말보다 빠르다.
* * *
해는 저물었지만 부는 바람은 아직 후덥지근했다. 그 바람에 갈색의 머리끈이 흔들거렸다.
소명은 다른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장인지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새벽부터 정 부인을 모시고 올 생각에 들떠서 집안 이곳저곳을 청소하고 난리를 치던 모습이었다. 그런데…….
소명은 떠오르는 상념을 차곡차곡 접어 넣고 다시 눈을 떴다. 캄캄한 골목길, 머리 위에서는 흐릿한 달빛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북방 먼지바람이 아직 가시지 않아서인지 달이 붉었다.
그의 앞에 수염을 짧게 기른 낯선 중년사내가 장인지의 머리끈을 들고 서 있었다. 그는 소명에게 동행을 재촉하고 있었다. 무력이라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머리는 차갑게 식었고, 가슴의 놀람은 멈췄다. 그리고 소명의 눈가에 스산함이 떠올랐다.
‘친다.’
생각과 동시에 소명은 주저함 없이 손을 썼다.
마주한 중년 사내가 뭐라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보기에는 장난처럼 가볍게 뻗은 듯한 주먹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퍽!
어디선가 들려온 둔탁한 소리가 순간의 정적을 갈랐다.
뒤편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젊은 사내 하나가 고개를 확 뒤로 젖혔다. 그는 소명과 족히 열 걸음 이상의 거리가 있었지만,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아, 아표!”
당황한 중년사내가 급히 외쳤다.
아표라 불린 사내는 대꾸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깨닫지 못한 것 같았다. 멍한 눈으로 있던 그는 곧 입과 코에서 왈칵 피를 쏟으며 허물어졌다.
털썩.
바닥에 널브러지는 소리가 다른 두 사내에게는 천둥보다 더욱 크게 울렸다. 마치 자신들의 가슴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그들은 멍하게 쓰러진 사내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비좁은 골목, 남호동의 입구에 전에 없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소명의 뒤에서 기세등등하게 거친 말을 떠들어대던 두 덩치들도 바짝 얼어붙어버렸다. 소명은 침묵 속에서 뻗었던 주먹을 천천히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