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69
69화. 불 밝은 남호동(南胡同)
아래에 사람 손 하나가 삐져나와 있었다. 미미하게 꿈틀거리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소명은 다급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황이 어려웠다. 무너진 벽을 치운다고 끝이 아니었다. 그러나 달리 빌릴 손이 없었다. 모두 도망하기에 바빴다.
“엉엉, 아저씨. 아저씨…… 엄마 살려주세요. 우리 엄마아…….”
“후우.”
소명은 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때에는 무식한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다.
그는 우는 아이를 가만히 달렸다.
“그만 울고, 물러나 있어라.”
“허흑, 허흑.”
머뭇거리며 물러난 아이를 두고 소명은 손을 썼다.
장삼의 소매가 일순 부풀어 오르는가 싶더니 일진의 경풍이 맹렬하게 일었다.
우릉!
잠깐의 떨림이 격하게 일었다. 순간, 무너진 담벼락의 벽돌들이 흩어지며 떠올랐다. 그리고 아래에 쓰러진 부인의 모습이 보였다.
급히 그녀를 끄집어내자, 떠올랐던 벽돌들이 후드득 떨어졌다.
소명은 부인의 상태를 살폈다.
기식이 엄엄한 것이 한눈에 봐도 위험한 상태였다. 이에 부인의 인중을 가만히 누르며 다른 손으로 움켜쥔 맥문으로 약간의 기운을 흘렸다.
“흐윽!”
부인은 급한 숨을 들이키며 눈을 치떴다. 그녀는 거세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두리번거렸다.
“괜찮으십니까? 부인?”
“아, 아니…… 대체?”
눈앞에 벌어진 기이한 일에 울던 아이는 놀라서 멍하니 입을 벌렸다.
땅이 흔들리는가 하더니, 어미를 덮치고 있던 담벼락이 저절로 부서지며 떠오르지 않았는가. 놀란 것은 잠시였다. 어미가 깨어난 모습에 까맣게 잊어버리고는 뛰어들었다.
“엄마!”
“아이구, 내 새끼.”
그녀는 어안이 벙벙해 있다가 아이가 품에 달려드니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녀도 울면서 아이를 끌어안았다.
한숨 돌린 소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을 피하세요. 위험합니다.”
“예? 아,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상황을 안 그녀는 울먹이며 계속 허리를 숙였다. 그에 답할 여유는 없었다. 급히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아이가 외쳤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신선 아저씨!”
“…….”
그 말에 소명은 잠시 멈칫했다.
아이는 검댕이 가득한 얼굴에 밝은 눈으로 소명을 빤히 바라보았다. 소명은 짧게 웃어보이고는 곧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이 있는 골목길 역시 불길에 휩싸였다. 검은 하늘을 태울 듯이 솟구치는 불길 속에서 소명은 거침이 없었다.
“정 부인! 정 부인!”
소명은 소리를 높였다. 그는 불붙은 문짝을 당장 걷어차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뜨거운 열기로 인해 걸친 옷자락이 서서히 타들어가기 시작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정 부인! 어디 계십니까! 정 부인!”
외치며 소명은 귀를 활짝 열었다. 약간의 미세한 소리라도 놓치지 않기 위함이었다. 수십 장 밖에서 불길에 이기지 못해 우직거리는 기둥 소리도 들릴 정도였다.
소명은 급한 걸음을 멈췄다. 뜨거운 불길 한복판에서 소명은 유심히 귀를 기울였다. 어느 한곳에서 미약한 기침 소리가 들렸다.
“정 부인!”
당장 그곳으로 달려갔다. 불붙은 문짝이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소명은 그런 문을 맨손으로 뜯어냈다. 불길을 덥석 움켜쥐었지만 화상을 입기는커녕 오히려 손이 닿은 곳이 열기를 잃고 피식하고 꺼져버렸다.
곤음수, 완성된 곤음수의 공능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문을 뜯어내고 안을 살피자 당장 매캐한 연기가 가득 차있었다. 그리고 구석진 곳에 쓰러져 있는 정 부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놀라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허둥지둥 달려가 그녀의 안위를 살폈다.
그녀는 어렵게 어렵게 호흡을 이어가고 있었다. 소명은 당장 그녀를 안아들었다.
불길이든 뭐든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웅크린 채 정신을 잃은 정 부인을 안아드는 순간, 끝까지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무엇이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부지불식간에 그것을 본 소명은 순간 움찔했다. 그것은 정 부인이 소명을 위해 지었던 바로 그 장삼자락이었다.
마지막으로 손만 보면 된다고 하시더니.
소명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 장삼자락을 움켜쥐었다. 손이 부르르 떨렸다.
귓가에서 들리는 소리는 계속해서 위험을 알려주고 있었다. 사방이 불길에 휩싸여서 당장이라도 지붕이 내려앉을 듯했다. 여기저기서 우직거리는 위태한 소리가 들렸다. 빠져나갈 곳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넘실대는 불길뿐이었다. 그러나 소명은 차분했다. 그는 곧 감정을 다스렸다. 집어든 장삼자락으로 정신을 잃은 정 부인을 감싸고 안아들었다. 그가 고개를 든 순간, 우지끈! 엄청난 소리와 함께 기어코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와르르 소리가 요란했다. 그러나 아래에 소명과 정 부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무너진 기왓장 위로 불길만이 높이 치솟았다.
두 사람의 머리 위에서 불타는 천장은 조만간 무너져 내릴 것처럼 우직, 우직거리며 불안한 소리를 냈다. 우지끈! 기어코 무너지는 천장. 그러나 그 아래에 있던 소명과 정 부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남호동의 폭발 소리는 정주 전체를 흔들 정도였다. 당연히 멀지 않은 송가의사에서도 그 폭음을 들을 수 있었다.
자리에 모여 있던 송 의원과 홍유선, 그리고 장인지는 당장 밖으로 뛰쳐나왔다. 어두운 밤하늘을 대낮같이 환히 밝히는 대화재의 불길에 세 사형매는 순간 굳어버렸다.
장인지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 엄, 엄마!”
그녀는 당장 의사의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그제야, 송 의원과 홍유선도 고개를 치켜들었다.
“제, 젠장!”
송 의원은 거칠게 외치고는 당장 안으로 뛰어 들어가 왕진 행낭을 챙겨들었다.
그들 사형매는 곧 남호동 어귀에 닿을 수 있었다. 그곳은 더욱 참담했다. 겨우 빠져나온 남호동 사람들이 망연한 얼굴로 주저앉아,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뭘 어찌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때에도 폭음과 불길은 계속해서 울렸다. 장인지는 당장 안으로 뛰어들려고 했다.
“엄마!”
“사매, 안 돼!”
“멈춰, 바보야!”
좌우에서 송 의원과 홍유선이 거칠게 그녀의 두 팔을 틀어잡았다.
“이거 놔요! 놓으라고요!”
장인지는 울부짖으며 붙잡은 팔을 떨쳐내려 몸을 뒤틀었지만, 두 사람의 손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무섭게 이글거리는 불길이 수십 걸음 바깥까지 날름거렸다.
죽을 것이 뻔한 불길 속으로 장인지를 보낼 수 없는 노릇이었다.
홍유선은 몸부림치는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장인지는 미친 듯이 악을 쓰며 떨쳐내려 했다. 홍유선은 그럴수록 끌어안은 두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질끈 물고 힘을 다해 장인지를 안았다.
“악! 아아악!”
장인지의 비명이 귀를 찔렀다. 문득, 급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사내들이 급히 달려왔다.
담아인이었다.
남호동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기가 무섭게 가능한 담가와 표국의 모든 인원들을 다 끌고 달려온 것이었다.
막상 높이 붙타 오르는 남호동의 모습에 순간 굳고 말았다.
“이, 이게…….”
망연히 있던 그는 곧 불길 가까이에서 발악하는 장인지와 그녀를 붙잡고 있는 홍유선의 모습을 발견했다.
“자, 장 소저!”
담아인은 당장 그녀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의 외침에 장인지는 퍼뜩 발악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멍한 눈동자. 그녀의 눈에 담아인의 일그러진 얼굴이 비춰졌다.
그녀는 부들부들 몸을 떨다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담아인은 놀라 그녀를 붙들었다.
“장 소저!”
애타게 그녀를 불렀다.
“어, 어어어……어어……어으으.”
멍하니 벌린 입에서는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긁어내는 듯한 신음만이 흘렀다.
담아인도 송 의원도 홍유선도. 누구 하나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담아인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는 고개 돌려 가솔들에게 소리쳤다.
“서둘러라! 건물을 무너뜨려! 불길이 더 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사람들은 모두 물러서게 해!”
“예, 예 공자!”
우르릉!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느 가옥이 무너져 내렸다. 검은 연기가 더욱 솟구쳤다. 담아인은 불바다가 되어 있는 남호동을 바라보며 뿌득 이를 악물었다.
“대체, 어쩌자고!”
절로 분기가 일었다. 누가 무엇을 위해 이런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그때였다.
“엇, 누가 나온다!”
“사람이다!”
외치는 목소리에 담아인은 눈을 치떴다. 크게 남실대는 불길 아래에 한 인영이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십방 가득한 불길에도 전혀 영향이 없는 듯했다. 담아인은 당장 그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은공!”
담아인에게서 은공이라는 소리를 들을 사람은 하나 밖에 없었다. 그의 외침에 장인지는 멍한 눈을 들었다.
소명은 쓰러진 정 부인을 안고 불타는 거리를 가로질러 걸었다. 와르르 기왓장이 무너지고 담이 쓰러졌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불똥이 튀어도 소명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가 밖으로 나오자 담아인이 급히 달려왔다.
“은공, 괜찮으십니까? 대체!”
놀라 외치던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소명은 멈칫한 그를 지나쳤다.
그는 주저앉은 장인지의 앞에까지 다가갔다.
장인지의 멍한 눈동자에 뿌연 습막이 급하게 차올랐다. 그런 그녀 앞에 정 부인을 뉘였다.
“무사하십니다. 연기를 쐬어 잠시 혼절하셨을 뿐입니다.”
“…….”
장인지는 고개 숙인 채 아무런 말도 못했다. 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눈 감은 정 부인의 얼굴만 쓰다듬었다.
소명은 그 모습을 잠시 보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옆에 있는 송 의원과 홍유선에게 말했다.
“이곳을 부탁드립니다.”
“그, 그러시오.”
소명은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의 얼굴에 표정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철로 만든 가면을 뒤집어쓴 듯했다. 그 모습에 서둘러 다가오던 담아인이 멈칫했다.
“으, 은공.”
소명의 서늘한 눈이 그에게로 향했다.
“따라오지 마시오. 담 공자.”
“그, 그런.”
담아인은 주춤했다. 장인지를 구하였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소명이 품은 어떠한 기세는 그때와 비할 것이 아니었다. 아니, 전혀 달랐다.
두려웠다.
어째서인지 이유는 몰랐지만, 그의 눈초리를 마주하는 것과 동시에 발이 멈췄다. 그 사이, 소명은 멀리 사라졌다. 담아인은 그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었다.
차라리 그가 분노하고 살기를 발하기라도 했다면 죽기를 각오하고 만류했을 것이다. 그러나 소명의 두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엿볼 수 없었다.
담아인은 문득 발치를 내려다보았다. 발끝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뭐, 뭐지…… 내가 지금…….’
움켜쥔 손바닥에는 땀이 흥건했다. 담아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두, 둘째 공자님. 이제부터 어찌하면.”
그는 부르는 목소리에 상념에서 벗어났다.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담가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남호동의 난민들까지 그 하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일단은…… 모두 본가로 이동하지요. 여러분들도 따라주십시오.”
“아이고, 감사합니다. 공자님.”
“감사합니다.”
남호동 사람들은 분분히 고개 숙였다. 감사를 표하는 그들 앞에서 담아인은 그저 어색한 웃음만 보였다.
가슴 한쪽이 한없이 무거웠다. 지금 답답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었다.
등 뒤에서 불길은 맹렬하게 타올랐다. 여간해서는 가라앉지 않을 듯했다.
* * *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백마보 무사 한창은 보의 정문 앞에 기댄 채, 멀리 별빛만 헤아렸다.
“하아암…….”
문득 나오는 하품이 길었다. 그는 오지 않는 다음 번초를 기다리며 찌뿌듯한 몸을 풀었다. 좌우에 다른 번초들은 벽에 기대 끄떡, 끄떡 졸고 있었다.
멀뚱히 어둠 너머를 보고 있자니, 불 밝은 정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무슨 불놀이라도 하나? 이 시간에 왜 저렇게 환해?”
그는 별 생각 없이 중얼거렸다. 한참 멀리 보던 한창은 곧 고개를 돌렸다. 닫은 길 위로 한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한창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이 시간에 무슨.”
그는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새삼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방만하게 있던 자세를 바로 세웠다.
접근하는 그림자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던 한창은 곧 고개를 갸웃했다. 가까이 드러난 모습을 보자니, 기억에 있는 얼굴이었다.
홍화철방의 심부름꾼으로 왔던 사내가 아닌가. 알아본 한창은 긴장을 풀었다. 움켜쥐었던 칼자루를 놓고 그에게 다가갔다.
“자네, 홍화철방 사람 맞지? 이 시간에 무슨 일인가?”
이 늦은 시간에 철방 사람이 찾아올 마땅한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의아해 묻는 말에 그는 가만히 입을 열었다.
“이보주를 만나러 왔소.”
“뭐? 이 시간에? 혹시 부름이 있으셨는가?”
“아니오.”
“뭐야?”
바로 나온 말에 한창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곧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럼 어서 물러나게. 볼 일이 있다면 낮에 찾아와 절차를 밟게나.”
더 상대하기 싫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새벽의 번이라 피곤한 참이었다. 더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못 박은 듯이 자리를 지켰다.
한창은 험악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이봐, 좋게 말로 하면 알아들을 일이지.”
한마디 하며 손을 뻗었다. 그를 밀쳐내려는 듯 힘이 들어간 손짓이었다. 그 순간.
“어?”
한창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당황한 소리를 튀어나왔다.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듯하더니,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쿵!
소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그 모습에 졸던 다른 무사들이 화들짝 놀랐다. 그들은 허겁지겁 병장기를 꼬나들었다.
“뭐, 뭐냐! 네놈 무슨 짓이야!”
악을 쓰듯 외치는 무사들 모습을 그는 스윽 둘러보았다. 이들에게는 어떤 적의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눈을 돌려 닫힌 정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손을 들어보였다.
그 모습에 무사들은 움찔했다. 그들은 혼란한 눈으로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손가락을 하나, 둘 천천히 접어 주먹을 쥐었다.
느릿한 그 모습이 앞을 막아선 무사들의 가슴을 더욱 짓눌렀다.
“아니, 이, 이 자식이!”
무사들 중 하나가 더 참지 못하고 당장 달려들려 했다. 그가 칼을 치켜든 순간, 온전히 쥔 주먹을 앞으로 내질렀다.
뛰쳐나오려던 사내의 귓가에 보이지 않는 일진경풍이 스치고 지나쳤다. 그리고.
꽈앙!
흡사 코앞에서 뇌락이 떨어진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