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7
7화. 망산(邙山)의 화(禍)
계절이 바뀌었다. 내리쬐는 햇볕이 쨍했다.
호가무관의 연무장에서 두 그림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소명과 호충인이 대타를 하는 중이었다. 둘은 손발을 빠르게 주고받았다. 그 모습을 아이들뿐만 아니라 무관의 다른 청년들도 유심히 지켜보았다.
이미 여러 권법을 수년 동안 연마해온 호충인과 일 년 동안 익힌 금강권이 고작인 소명이었다. 어떻게 봐도 상대가 될 리 없었지만 대타에 들어가면 얘기가 많이 달랐다.
권법을 펼쳐 보일 때면 항상 머뭇거리던 소명이 대타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 이 자식!’
호충인은 어금니를 꾹 깨물었다. 마주선 소명을 뚫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눈을 감아도 훤한 금강권이 분명한데 왜 주먹 한 방 제대로 먹이지를 못하는 것인지.
속이 답답해서 까맣게 타들어갈 정도였다.
“으합! 차합!”
버럭 기합을 내지르며 있는 힘껏 몰아붙였다. 하지만 금강권의 기본동작에 번번이 막히기 일쑤였다.
처음 소명과 대타할 때만 해도 나름 정정당당하게 한답시고 금강권만으로 달려들어도 충분했는데. 지금은 익힌 재간을 전부 동원해도 여간해서는 소명의 금강권을 뚫을 수가 없었다.
“에이이익!”
호충인은 더욱 빠르게 몰아쳤다. 추포삼련각(追捕三連脚)의 삼식연환이 당장이라도 소명을 쓰러뜨릴 것 같았다.
그러나 소명의 모습이 갑작스레 눈앞에서 사라졌다.
“억!”
호충인은 놀라 신음했다. 이런 동작이 금강권 중에 있었던가 싶은 순간, 바로 옆에서 소명이 벌떡 일어섰다. 소명은 당황할 틈도 주지 않고 벼락같은 외침과 함께 체중을 실은 일권을 뻗었다.
“금강포추(金剛砲墜)!”
“꾸엑!”
옆구리에 호되게 틀어박힌 주먹에 호충인은 괴성을 내지르며 풀썩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호 관주는 낮은 웃음을 흘렸다.
“허, 허허. 저놈 참.”
소명은 호충인의 추포삼련각을 냅다 바닥을 굴러 피하고는 그대로 금강포추를 내친 것이다. 금강권 십팔식 어디에도 없는 수법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잘못되었다고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잔머리가 좋다고 해야 할지.”
호 관주는 묘한 표정으로 소명을 바라보며 수염자락을 쓸어내렸다.
소명은 정말 신기한 녀석이었다. 여전히 금강권에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형은 형편없었지만 막상 대타에 들어가면 다른 아이들보다 월등했다. 특히 호충인과 겨루면 못해도 열에 서너 번은 꼭 이겼다.
십 년을 수련한 호충인이었다. 게다가 삼 년 전부터 입문한 일심공(一心功)도 제법 경지에 오른 터라. 힘이 부족하지 않으련만, 대타에만 들어가면 소명의 기발한 임기응변에 꼼짝 못하고 당하고는 했다.
이를테면 공방의 흐름을 볼 줄 안다고 봐야 할 터.
그러나 호 관주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곧 흩어졌다. 그는 안타까운 한숨을 꾹 삼켰다.
어느 정도 무재만 있었다면 진정 상승의 공부를 전할 수도 있으련만. 그는 소명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형의 이해 없이는 결국 주먹다짐 이상은 될 수 없는 것이니.
호 관주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이런. 나도 수양이 부족하군. 쯧쯧.’
다 내려놓았다 여긴 미련이 다시 고개 드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금강포추의 주먹질에 호충인은 숨이 막혀 컥컥거리다가 간신히 숨통을 틔우고는 퍼뜩 고개를 치켜들었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버럭 외쳤다.
“이, 이게 금강포추라고! 이게!”
정면으로 파고드는 금강포추에 언제부터 바닥을 구르는 동작이 있었단 말이냐.
소명은 어색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하, 하하. 이건 뭐랄까, 운용의 묘라고나 할까.”
“운용의 묘는 쥐뿔! 이 치사한 놈아!”
“아니, 치사하긴 뭐가 치사해?”
바락바락 외치는데 소명은 뚱한 표정으로 맞받았다. 호충인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약이 바짝 오른 것이다. 그렇지만 더는 뭐라 말을 잇지는 못했다.
어쨌든 진 건, 진 것이다.
“으으윽!”
호충인은 분에 못 이겨서 발을 쿵쿵 굴렀다. 이것으로 지난 전적은 30전 23승 7패. 문제는 어제에 이어 연패를 했다는 점이었다. 그것이 앙금으로 남았다.
소명과 호충인의 대타를 끝으로 이날의 수련은 끝났다. 아이들은 각자 마무리를 하며 지친 몸을 풀었다. 허리를 휘휘 돌리던 소명은 불퉁한 얼굴을 하고 있는 호충인에게 다가갔다.
“야, 뭘 그렇게 꽁해 있냐?”
“뭐? 꽁, 꽁하다니! 누가 꽁해! 이 호충인이 꽁해 있을 사람으로 보이냣!”
툭 던진 한마디에 발끈해서 핏대를 세웠다. 그 소리에 주변 친구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소명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크크, 꽁한 게 아니면 얼굴 좀 풀지 그러냐? 어쩌다 한번 진 것 갖고 계속 그런 얼굴을 하고 있으면 내가 뭐가 되냐?”
“맞아, 맞아.”
“거의 다 이겨놓고서는.”
탁연수와 당민이 당장 나서서 말을 거들었다. 소심하고 조용한 이청도 옆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아니, 그래도. 쳇.”
아이들 모습에 가슴 아래에서 부글거리던 것이 가만히 식어갔다. 호충인은 괜스레 무안해져서는 코끝만 긁적였다. 그 모습에 아이들은 왁작하게 웃었다.
호 관주는 한쪽에서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머물렀다.
호충인이 많이 달라졌다. 못난 마음에 언제나 뾰족하기만 하던 녀석이었다. 지금은 화를 다스리고 부끄러워할 줄 알았다.
“허, 허허.”
자신도 모르게 가만한 웃음이 새었다.
성숙해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상화촌의 아이들이요, 소명이었다.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웃는 호충인을 보며 마음을 굳혔다.
‘내일부터 호가권에 들어가도 괜찮겠구나.’
그는 아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깊은 눈동자에 빛을 품었다. 그것은 오래전에 잃었던 희망의 빛이다.
“내일은 절대 안 질 거야! 각오하라고!”
“그래그래. 그러셔야지. 아이고, 아무렴.”
“뭐야, 놀리냐!”
“하하하!”
불끈한 호충인의 외침 뒤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맑았다.
아이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소명은 텅 빈 집을 보고 한숨 쉬었다.
석 달이 다 되어가는 동안 대일에게서는 소식조차 없었다. 전에 없던 일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있지만 소명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침상에 앉아 창밖에 저물어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날이 제법 길어졌다.
하늘을 태울 듯 붉은 낙조를 보던 소명은 눈살을 찌푸렸다. 불길해 보이는 하늘 색 때문인지 어째 마음이 편치 않았다.
* * *
소명은 퍼뜩 눈을 떴다. 지쳐서 잠시 눈 붙인다는 것이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창밖이 캄캄했다. 고개를 내밀어 달 높이를 헤아리고는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구, 정신 차려야지. 아직 할 일을 다 하지도 않았는데.”
저녁 일과가 아직 남아 있었다. 늦었다고 해서 할 일을 미루지는 않았다. 소명은 불도 밝히지 않은 채, 방 한가운데에서 마보를 섰다.
마보를 서고 금강권을 연습하는 것은 소명에게는 이제 중요한 일과였다. 마보를 할 때에는 목편의 여러 내용들을 되새기고는 했다.
다른 무엇보다 여공이 남긴 마음 다스리는 법은 마보의 고통을 이겨내는 데에 큰 도움이었다. 아직까지 진의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문장과 문장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시간도, 고통도 잊었다. 그러다가 퍼뜩 깨어 보면 전에 없던 힘이 솟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둠에 파묻혀 마보에 집중하던 소명은 문득 눈을 깜빡였다. 평소 깨어날 때보다 이르다. 어렴풋이 느껴지는 기척이 소명을 깨운 것이다.
잠시 멍하게 있다가 마보 자세를 풀었다.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소명은 이상스러워서 고개를 갸웃했다.
“응? 이상하네.”
소명의 집은 상화촌에서도 외딴 곳에 자리하고 있어, 이 밤에 굳이 찾아올 만한 사람이 없었다.
“아빤가?”
대일을 생각하자 얼굴이 환해졌다. 그때, 다가온 발소리의 주인이 문을 두드렸다.
쿵, 쿵, 쿵.
“안에 있니?”
낯익은 목소리였다.
“소명아. 깨어 있으면 문 열어 보거라. 나 양씨야.”
양씨라는 말에 소명은 곧 마음을 놓고 문 앞으로 갔다. 문고리를 향해 뻗어가던 손이 순간 멈췄다.
대일을 두고 양씨만 따로 집으로 찾아올 리가 없었다.
좋지 않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뻗은 손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소, 소명아? 안 열고 뭐하니?”
“…….”
답하지 않고 있으니 양씨가 급하게 문을 두드렸다. 소명은 그것이 더 수상스러웠다. 덜컹거리는 문을 보는 눈이 흔들렸다. 뭔가 안 좋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위험하다.’
하나의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렇지만 벗어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머뭇할 때, 쾅 하며 문짝이 부서졌다. 그리고 문밖에 낯선 사내가 한 손을 내민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검은 옷을 걸친 키 큰 사내였다. 깊이 눌러쓴 두건 아래로 눈빛이 번뜩였다. 제멋대로 자란 수염 아래로 비틀린 입매가 보였다.
“흐, 꼬맹이 주제에 눈치가 제법이야.”
“…….”
웃음 섞인 말에 소명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를 올려다보다가 흘깃 눈을 돌렸다. 문가에 거뭇한 양씨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소명과 눈을 마주치자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소명은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양씨 아저씨.”
“으, 응. 그, 그래.”
“아빠는 무사해요?”
“하, 그, 그게.”
이상할 정도로 담담한 목소리에 양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소명은 양씨의 모습에서 눈치를 챌 수 있었다.
회피한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고 있으며, 축 늘어뜨린 손끝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대일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다.
소명은 불끈 움켜쥔 손에서 힘을 풀었다. 그리고 앞에 선 검은 옷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아저씨는 저를 데리러 오신 건가요?”
“그렇기는 한데.”
“따라갈게요.”
그리고 소명은 침상으로 가 보따리에 옷가지 몇을 챙겨서 품에 안았다.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사내가 물었다.
“뭐하는 거냐?”
“아빠 옷 챙기는 거예요. 옷 한 벌 못 갈아입었을 것 같아서요.”
“하, 하하.”
대꾸하며 보따리 싸는 모습에 사내는 고개를 흔들며 나직이 웃었다. 그는 입가를 끌어올린 채 새삼스런 눈으로 소명을 바라보았다.
‘맹랑한 꼬맹일세.’
열 두엇에 불과한 녀석이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태연한 모습을 보이다니. 놀랍기는 했지만 그뿐, 그에게 소명은 그저 가지고 가야 하는 짐에 불과했다. 오래 관심 가질 이유가 없었다.
소명은 작은 보따리를 품에 안은 채 밖으로 나섰다.
사내는 말없이 제 앞을 지나가는 소명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리고 집안을 돌아보았다. 구석에 높이 쌓인 나뭇조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흔적을 남기지 말라고 했었지.”
중얼거린 그는 양씨가 들고 있던 등불을 빼앗듯이 가로챘다. 나뭇조각을 향해 등불을 집어던졌다. 등불의 불씨는 순식간에 등갓을 사르고 나뭇조각으로 옮겨붙었다. 그렇지 않아도 세월이 오래어 바싹 말라 있던 목편이었다. 바람마저 솔찬히 불고 있었다.
불길이 솟구치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소명은 불길이 이는 모습에 흠칫했지만 다른 행동을 보이지는 않았다. 보따리를 더욱 힘주어 끌어안을 뿐이었다.
사내는 손을 탁탁 털며 밖으로 나왔다.
“서두르자고. 해 뜨기 전에는 도착해야 되니까.”
“예예, 나으리.”
그의 무감한 어조에 양씨는 급히 발길을 재촉했다.
소명은 양씨에게 등 떠밀려 가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불길은 순식간에 집을 집어삼켰다. 그러나 어떤 기색도 드러내지 않았다. 슬플 일도, 울 일도 아니었다.
‘괘, 괜찮아. 괜찮아. 당황하지 말자.’
소명은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다. 집보다는 대일의 안위가 더 걱정이었다.
그래도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를 꼭 물고 양씨가 이끄는 대로 타박타박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