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70
70화. 백마(白馬)의 칼
굉음이 귀를 멀게 했다. 확 치솟는 먼지구름 사이로 나무 파편이 무수하게 솟구쳤다. 문의 앞을 지키던 무사들은 일제히 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윙윙 울리는 이명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으아아아!’
자신이 내지른 비명조차 멀게 들렸다.
먼저 쓰러져 있던 한창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먼지구름을 헤치고 걸음을 옮기는 사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를 어찌해야한다는 생각은 더 이상 들지 않았다.
사내는 흘깃 그들을 일별하고는 무너진 정문을 넘어섰다.
곧 먼지구름이 걷혔다. 그리고 사내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던 무사들은 정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높이만도 삼장에 달하는 거대한 철목의 문이 완전히 박살이 나 있었다.
이것이 사람의 주먹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넋을 놓고 있던 무사들 중 하나가 이내 멍청히 중얼거렸다.
“고, 고수…….”
사방이 고요한 새벽이었다. 정문에서 들린 굉음은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백마보주 백주방은 침소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뭐냐? 무슨 소리야?”
외쳐 묻는 말에 바깥의 수하가 급히 답했다.
“지금 알아보러 갔습니다. 보주.”
백주방은 그 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침의 차림에 겉옷을 대충 걸치며 밖으로 나섰다. 그러자 멀리 환히 불이 밝힌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 왁자한 소란성이 들려왔다.
“적이냐?”
수하들은 섣불리 답하지 않았다. 백주방은 옷깃을 여매며 자신의 애병, 백마쌍도(白馬雙刀)를 허리에 찼다. 쌍도의 칼자루를 손에 쥐자, 그제야 어느 정도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일단 본청으로 가자.”
“허나, 보주.”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를 일이건만. 백주방은 돌아보지 않고 성큼 앞장 서 걸었다.
소명은 무심한 눈으로 악을 쓰며 달려드는 도객의 칼날을 바라보았다.
“죽엇!”
제법 위력적인 칼날이었다. 그러나 소명의 곤음수를 어찌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덥석 칼날을 잡고 다른 손으로 멱통을 움켜쥐었다.
헉하고 놀라는 상대의 얼굴을 무심히 보며 그대로 바닥에 메다꽂았다.
“컥!”
제대로 처박힌 그는 사지를 쭉 뻗은 채, 바들바들 떨었다. 그리고 축 늘어져버렸다. 소명은 몸을 바로 했다. 그가 지나온 길에는 백마보의 수많은 무사들이 바닥에 처박혀서는 끙끙 앓는 소리를 흘렸다.
대충 세어도 수십은 족히 되는 자들이었다. 그들을 일시에 상대했음에도 소명의 숨결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둘러본 소명은 곧 고개를 돌렸다.
백마보의 닦은 길 너머에서 날랜 발소리가 빠르게 들려왔다. 곧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백마의 문양을 가슴에 크게 새긴 도객들 약 오십여 명이었다. 지금까지 지나쳐온 자들과는 수준이 달랐다.
이들은 백마보 내전의 고수들로 실질적인 백마보의 칼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나섰다는 것은 외전을 돌파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정문을 뚫고 들어와 고작 삼사각 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그 사이 수십 명이나 되는 무사들을 때려눕힌 것이다. 아무리 경지가 낮은 외전 무사들이라 할지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소명의 앞을 막아선 그들은 그의 뒤에 쓰러진 외전 무사들의 모습에 싸늘하게 낯을 굳혔다.
“웬 놈이냐? 감히 본보에서 이런 행패라니.”
뿌득 악문 잇새로 험악한 목소리가 흘렀다. 소명은 담담한 기색으로 말했다.
“이곳의 이보주를 만나러 왔소.”
“뭐, 뭣? 이보주를?”
“이제부터 사정을 둘 생각은 없소만.”
말하는 것과 동시에 소명은 걸음을 내딛었다. 그가 움직이자, 새삼 내전 무사들이 움찔했다.
외전 무사들처럼 그저 앓는 것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새삼 모골이 송연해왔다. 미처 깨닫기 전에 파고든 기세에 짓눌린 것이다.
그것을 먼저 눈치 챈 것은 백마보 중진 중 한 사람, 마운당주 백정추였다. 퍼뜩 고개 돌린 그는 굳은 내전 무사들 모습에 크게 다그쳤다.
“정신 차려! 놈은 고작 하나다. 백마보의 정예가 고작 한 놈에게 움츠러드는 것이냐!”
백정추의 일갈에 무사들은 퍼뜩 눈을 치떴다. 그제야 자신들이 움츠러들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자각은 곧 부끄러움을 불러왔고, 그리고 이내 분노로 타올랐다.
“우와아아!”
반백에 이르는 일류 무사들이 내지르는 기합성은 높고 세찼다. 그러나 소명에게 어떤 감흥도 주지 못했다. 그저 나직이 중얼거렸다.
“겁 많은 개일수록 시끄러운 법.”
그는 잠시 지체했던 걸음을 다시 옮겼다. 느릿하나 보보에는 기이한 무게가 실려 있었다.
다가서는 소명을 향해 백정추는 버럭 소리쳤다.
“쳐라!”
그리고 가장 앞서 달려들었다. 백마보의 절예, 난파쌍도(亂波雙刀)가 거칠게 덮쳐왔다. 소명은 말없이 한쪽 손을 들어보였다.
카캉! 카카캉!
한 호흡의 진력으로 무려 열다섯 차례, 좌우 삼십여 차례에 달하는 참격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뻗은 소명의 손을 어찌하지는 못했다.
소맷자락마저 무얼 어찌할 수 없었다. 희롱하듯 움직이는 소명의 손놀림에 칼날이 제 힘을 잃고 제멋대로 휘둘러졌다.
백정추의 가슴은 심란함으로 크게 흔들렸다.
‘이런 젠장! 말도 안 된다! 내, 내 쌍도가!’
“끄아아악!”
카창!
쇳소리가 높이 울렸다. 그리고 백정추는 좌우 쌍도를 동시에 휘두른 모습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의 애도가 중동에서 깨어져 완전히 부서져 버린 것이다.
그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미간에 손가락 하나가 닿아 있었다. 자신의 쌍도가 맨손 하나를 어찌하지 못한 것이었다.
“……아아…….”
무겁게 짓누르는 압박에 못 이겨 백정추는 신음했다.
“다, 당주! 당주님!”
“당주님!”
그 모습에 내전 무사들은 당황했다.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백정추 역시 마찬가지였다. 머릿속은 이미 하얗게 변해버렸다.
미간에 닿은 손가락의 차가움만이 선명했다.
‘차갑다.’
“굳이 피를 봐야겠다면 사양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죽여라.”
백정추는 이를 악문 채 중얼거렸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이요, 최대한의 용기였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소명은 정말 다른 감정 없었다. 그러나 굳이 죽기를 바란다면. 손가락 끝에 힘이 들어갔다.
“멈춰라!”
벼락같은 외침이 소명을 향해 터져 나왔다. 흘깃 고개를 돌리자 높이 솟구친 인영 하나가 소명을 노리고 덮쳐왔다.
치켜든 그림자의 두 손에는 역시 쌍도의 칼날이 번쩍였다.
소명은 반보 신형을 비트는 것과 동시에 왼손을 그대로 올려쳤다.
쩌엉!
쇠붙이와 사람 손의 충돌일 진데, 흡사 낙석이 떨어지는 것처럼 우렁찬 소리가 울렸다.
소명은 쳐들었던 손을 거두며 두어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자신을 노렸던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으음…….”
백마보주 백주방은 침음했다. 고개를 치켜든 그의 두 눈은 잔뜩 붉었다.
‘어디서 이런 괴물이…….’
직도단천(直刀斷天)의 쌍도일식은 그야말로 회심의 일초였다. 그의 친동생인 백정추를 구하기 위해 가릴 것 없이 전력을 다한 참이었다.
‘고작 맨손으로 단천쌍도(斷天雙刀)를…….’
얼핏 보아도 아무런 손해도 없는 모습이다. 상대는 도격을 맞받은 한쪽 손을 가볍게 빙글 돌리며, 태연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오히려 공격을 가한 백주방 자신이 약간의 내상을 입은 듯했다.
백주방은 흔들리는 얼굴을 애써 굳혔다. 그는 이를 갈아붙이며 타오르는 눈으로 소명을 노려보았다. 백마보의 주인으로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디 잡종 놈이 감히 본보에서 패악을 부리는 게냐!”
외치는 목소리는 분노로 인해 떨려나왔다.
앞에선 소명은 고개를 기울인 채, 백주방의 일그러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위아래를 살피고는 물었다.
“당신은?”
담담한 모습에 백주방은 치를 떨었다. 그는 이를 악문 채 답했다.
“본인은 백마보주 백주방이다.”
소명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흘깃 도격을 받아냈던 왼손을 바라보았다. 곤음수, 그 끝을 이루어낸 두 손인데 아직 둔중한 충격이 남아 있었다.
소명은 마치 느낌을 털어버리려는 듯이 손목을 털었다.
‘과연 우두머리라 이건가.’
그러나 그뿐, 다른 감흥은 주지 못했다. 소명은 담담히 말했다.
“정주 남호동에서 왔소. 이보주를 만나고자 하오.”
“남호동에서? 마제(馬弟)를? 무슨 용건으로?”
“모르시오?”
“무엇을 말이야!”
백주방은 참지 못하고 버럭 외쳤다. 그러자 소명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당신네 이보주가 남호동에 불을 질렀소. 대규모의 방화요. 많은 이들이 상했고 많은 집이 불탔소.”
“뭐, 뭣?”
백주방은 눈을 치떴다. 그로서는 전혀 들은 바가 없는 일이었다. 백마보 이보주, 마영보가 어찌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발뺌하려 들지 마시오. 불을 지르던 백마보 무사들을 잡아 확인하고 온 참이오.”
“발뺌이 아니다! 본보는 하북의 남보라 불리는 곳. 어찌 그런 무도한 짓을 벌인단 말이냐!”
백주방은 노해 부르짖었다. 그리고 당장 고개를 돌렸다.
“뭣들 하느냐, 당장 마제를 찾아와! 어서!”
그리고는 홱 고개를 돌렸다. 소명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말했다.
“네 말이 거짓이라면, 내 너를…….”
“내말이 거짓이길 바라는 편이 좋을 거요.”
“뭐, 뭣?”
태연히 말을 자르는 소명의 말에 백주방은 흉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러나 더 뭐라 할 수 없었다. 소명이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아버렸기 때문이다.
오래지 않아, 마영보를 찾으라 보냈던 무사들이 돌아왔다. 그런데 그들의 얼굴이 창백했다. 어디에도 마영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찌된 게야? 왜 네놈들만 와?”
“그, 그것이. 이보주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뭣? 그, 그럴 리가.”
“휘하의 마가단 무사들도 보이지를 않습니다.”
백주방은 당황했다. 그때,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 그렇군.”
홱 고개를 돌리자, 소명이 눈을 뜨고 팔짱을 풀었다. 늘어뜨린 두 손, 아무것도 들지 않은 손인데 백주방은 그것이 더욱 불길하게 보였다. 참다못해 버럭 외쳤다.
“뭐, 뭘 어찌할 참이냐!”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 오늘부로 백마보를 폐하겠소.”
순간, 정적이 앉았다. 무슨 말을 한 것인지 모두 귀로 들었으되 이해하지를 못한 것이었다. 잠시 후 백주방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 이 건방진…….”
뒤늦게 백정추와 백마보 고수들이 일제히 발끈했다.
“너 따위가 뭐라고!”
참다못한 무사 하나가 버럭 외쳤다. 순간, 퍽! 둔중한 소리가 울렸다. 그의 고개가 홱 뒤로 꺾이는 가 싶더니 그대로 자리에 허물어졌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소명의 일거수일투족을 노려보고 있던 백주방 조차 눈치 채지 못했다. 치뜬 눈이 혼란으로 크게 흔들렸다.
‘뭐, 뭐냐!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마주하고 있는 소명의 스산한 눈길을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기 죽어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백마보의 주인이었다. 애도를 힘주어 움켜쥐며 소리쳤다.
“흐, 흥! 본보를 폐하겠다라! 네깟 놈 혼자 가능할 성 싶으냐!”
백주방의 두 눈에서 새삼스레 불길이 타올랐다.
“피를 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이제 사정 둘 생각은 없소.”
“무인의 웅지(雄志)가 꺾일 성 싶으냐? 피가 두려워 칼을 버릴 것이었으면 애초에 백마보를 열지도 않았다.”
백주방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소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인의 웅지라. 그러나.
“무고한 인명이 화마에 휩쓸렸소. 무고한 그들이 하루아침에 집을 잃었소. 지금 그들을 앞에서 무인의 웅지를 운운할 수 있단 말인가?”
“그, 그것은…….”
“몰랐다는 말은 마시오.”
백주방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래 몰랐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마영보가 무엇을 꾸미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자신에게 해 될 일이 아니라 여겼기에 무심히 넘겼을 뿐이었다.
그것이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은 백주방은 참담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쌍도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혀, 형님!”
“보주!”
백정추와 무사들이 일제히 백주방을 바라보며 외쳤다. 순간, 백주방은 한 손을 치켜들었다. 수평으로 세운 칼날이 밝힌 불빛을 받아서 붉었다.
백주방은 고개를 들었다. 그는 한없이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본보에 잘못이 없다고는 못하겠지. 허나, 그렇다고 해서 닫으라 마라하는 말은 용납할 수 없다.”
“…….”
소명은 두 손을 천천히 그러쥐었다. 이때에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할까.
“흐압!”
백주방은 기합을 발하며 당장 몸을 날렸다. 쌍도가 어지럽게 빛을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