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71
71화. 백마(白馬)의 칼
타탕!
백마보의 절기 난파쌍도. 그의 화후는 동생인 백정추를 훨씬 뛰어넘어 있었다. 발하는 경력에 도신이 위잉위잉하며 울었다.
소명은 신중한 눈으로 쏟아져 오는 도경의 세참을 하나하나 맞받았다. 일도마다 양단의 거력이 실려 있었다.
난파쌍도. 본래 환영도(幻影刀)에서 출발한 도법이나, 지금 백주방은 환영의 한계를 넘어 난전도(亂戰刀)에 이르렀다. 베어오는 일도, 일도가 모두 실초인 것이다. 그러나 소명은 단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백주방은 거세게 몰아붙였다. 난전도의 도격이 헛되이 흘러가도 더 이상 놀라 당황하지 않았다. 소명을 적수로 인정한 것이었다.
소명은 숨을 가다듬었다. 전면을 뒤덮은 쌍도의 그림자는 흡사 그물처럼 소명을 몰아쳐왔다. 그림자 너머로 언뜻언뜻 백주방의 안광이 드러났다.
‘뛰어난 무인.’
내외의 공력이 모두 조화롭게 상승에 이르렀다. 이른 바 절정을 넘어선 고수인 것이다.
환영의 도법을 바탕으로 난전도라는 실전적 무경을 이룩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분명 하북일보의 주인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무위였다. 그러나 그의 불운은 상대가 소명이라는 점이었다.
“흐압!”
난전도의 도경이 노도처럼 몰아쳐오나, 소명은 빈손을 앞으로 한 채, 난전도의 어지러운 칼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그 순간, 백주방의 눈에 소명의 신형은 순식간에 여럿으로 분화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나, 하나를 쫓아서 도경을 발하지만, 결코 잡을 수가 없었다.
“끄, 끄아아악!”
백주방은 악을 다해 울부짖었다. 그리고 백마쌍도가 순간 하얀 빛을 뿜었다.
꽝! 꽈광!
전력을 다한 도경이 땅을 뒤흔들었다. 먼지구름이 맹렬하게 솟구쳤다. 그 여파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흡사 폭풍처럼 몰아쳤다.
가까이 무사들도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할 정도였다. 불어 닥치는 경풍에 물러서기 급급했다.
“으윽! 혀, 형님!”
“보주!”
“대보주!”
외치는 소리가 다급했다. 치솟은 먼지구름은 이내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풍에 당장이라도 꺼질 듯 위태했던 불길들도 다시 기세를 회복하고 타올라 장내를 다시 비추었다. 그리고 그들 눈에 백주방의 모습이 들어왔다.
백주방은 복판에 쌍도를 교차한 채, 두 다리로 버티고 서 있었다.
“와아! 보주가 이겼다!”
“백마불패(白馬不敗)! 백마불패!”
백마보 무사들은 들떠 외쳤다.
그러나 백주방은 그들에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는 교차한 칼 끝 너머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식솔들의 환호성은 그에게 닿지 않았다.
그제야 이상한 것을 깨달은 무사들은 우뚝 하고 굳어버렸다.
먼지구름 다 사라지고 소명이 멀쩡한 모습으로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어깨에 앉은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그리고 흔들림 없는 눈으로 백주방을 직시했다.
백주방은 감히 대꾸할 수가 없었다. 그는 지금 버티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한계였다.
두 무릎이 후들거리며 떨렸다.
떨림은 이내 전신으로 퍼져갔다. 백주방은 더 버티지 못했다. 그는 검붉은 핏물을 게워내며 자리에 무너졌다.
“우웨엑!”
“보, 보주를 지켜라!”
“보주!”
상황을 깨달은 백정추가 버럭 외쳤다. 백마보의 무사들이 당장 칼을 치켜들고 달려 나와 무릎 꿇은 백주방의 앞을 막아섰다.
호들갑스레 뽑아든 여러 자루의 칼날이 소명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제대로 겨눈 칼은 없었다. 칼끝이 부들부들 떨렸다.
소명의 눈이 백주방에게서 그들에게로 옮겨갔다. 그러면서 두 손목을 가볍게 풀었다.
“정히 하시겠다면야.”
그들을 향한 소명의 눈빛이 스산하게 가라앉았다.
“그, 그만…… 그만…….”
소명이 다시 한걸음 나서려는 순간, 백주방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붉은 핏물이 다시 주룩하고 흘러내렸다.
“형님!”
백정추가 급히 부축하려 들자 백주방은 손을 들어 만류했다. 그는 움푹 들어간 눈으로 우뚝 선 소명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손발이 부들부들 떨렸다.
완패(完敗).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변명할 수도 없었다.
그의 탁한 눈이 높이 세운 백마기에 닿았다. 이는 바람에 깃발이 펄럭이며 마치 백마가 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제 백마는 달리지 못한다.
백주방은 펄럭이는 백마기를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그대 말대로 백마보는 오늘로 폐하겠소.”
무사들 모두가 놀란 눈으로 백주방을 돌아보았다.
“보, 보주!”
“형님!”
당황한 외침이 크게 울렸다.
이십여 년의 세월을 바쳐 일궈온 터전을 버리겠다니. 어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러나 수하들의 울부짖음에도 백주방의 공허한 눈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등 돌린 소명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백마보를 나서던 소명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높이 현판이 걸려 있었다. 백마천리(白馬千里)라. 천리를 도모하겠다는 백마보의 웅지를 뜻하는 현판이었다.
소명은 손을 들어 현판이 걸린 문설주를 강하게 쳤다. 터엉! 하는 울림이 높이 퍼졌다. 백마보 무사들이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손을 거둔 소명은 돌아보지 않고 멀어졌다.
“무엇을 한…….”
의아해 중얼거리는 순간이었다.
빠드득!
소명의 손이 닿았던 곳을 중심으로 거센 균열이 회오리치더니 곧 사방으로 퍼져가 내외원을 구분하는 백마보의 토벽을 완전히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백마천리의 현판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깨어졌다.
백마보 무사들은 망연자실한 채 무너져 가는 토벽을 바라만 보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날, 하북의 일보라 불리며 십여 년 동안 성세를 누렸던 백마보가 문을 닫았다.
* * *
마영보는 지금의 처지를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오만상을 찌푸린 채, 말을 달렸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스스로에 묻지만 도통 답을 낼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고 가능한 모든 경우를 검토했다. 아니, 그리했다고 장담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쉬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래 기르던 휘하의 마가단 무사들 반백을 전부 투입했다. 자신의 전부를 건 셈이었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돌아오지 않았다.
뭐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었다.
위험을 느끼는 순간, 마영보는 바로 몸을 피했다.
방화의 뒷배로 발각이 되면 단순히 목이 날아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돌이켜 검토를 해보아도 잘못될 리가 없는 일이었다.
마영보는 머리를 쥐어짜다 못해 한숨을 토했다.
“하, 십여 년간 이룬 기반을 모두 잃어버렸단 말인가.”
천하의 마영보가 야반도주를 하고 있다니.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를 따르는 직속의 무사 다섯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마영보는 곧 고개를 들었다. 어찌 마음을 다잡은 모양이었다. 십년의 수고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고 해서 계속 화를 내고 한탄이나 하고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뒤를 따르던 직속 무사 중 하나가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이제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
묻는 말에 마영보는 흘깃 고개를 들었다.
교토삼굴(狡免三窟)이라.
마영보에게도 다른 굴은 하나, 둘 정도는 있었다. 잠시 침묵하던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북쪽으로 가자. 우선 그곳에서 나중을 기약해야겠다.”
“예.”
“……정주, 내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는 뿌득 이를 갈아붙였다. 그 순간이었다.
퍽!
둔중한 울림이 크게 울렸다.
“헛! 어, 어엇!”
마영보는 크게 당황했다. 그가 앉은 말이 크게 고개를 비틀더니 이내 휘청거리다가 옆으로 쿵 하고 넘어가버린 것이었다. 그는 말이 무너지기 직전에 날랜 동작으로 땅을 굴렀다.
퍼뜩 신형을 세운 그는 홱 고개를 돌렸다.
“뭐, 뭐냐!”
“…….”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사방이 캄캄한 어둠 속에 잠겨 있을 뿐이었다. 불길도 없는 와중이었다.
불안한 듯 사방을 둘러보았다. 마영보는 본능적으로 손을 뒤로 돌렸다. 익숙한 도파가 손끝에 닿자, 잠시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연이어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퍽! 퍽! 퍽!
소리와 함께 말들이 높이 울며 고꾸라졌다. 올라 있던 무사들도 급히 잔등에서 뛰어내렸다. 달리 어찌할 틈이 없었다. 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말들은 괴로운 듯 사지를 꿈틀거렸다.
차차창!
무사들은 두 발이 땅에 닿기가 무섭게 칼을 뽑아들었다.
밤하늘에 달도 별도 없건만 여러 자루의 칼날에서는 시퍼런 빛이 흘렀다. 칼을 든 무사들의 눈에서도 안광이 쏟아졌다.
다들 못해도 일류 이상의 수준에 이른 무사들이었다. 하나, 하나가 백전연마의 도객들인 것이었다. 그들은 빠르게 마영보를 보호하며 사방을 경계했다. 신속한 동작이었다. 그러나 먼 어둠 속, 어딘가에 있을 의문의 상대에 대해서 긴장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어디냐…… 어디야?’
시퍼런 안광을 발하면서도 그 깊은 동공은 불안함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둘러싼 무사들을 밀치고 마영보는 성큼 앞으로 나섰다.
그는 멀리 노려보며 소리를 쥐어짰다.
“어느 방면의 고인이시오!”
그러나 어둠은 고요했다. 마영보의 굳은 얼굴이 꿈틀거렸다.
긴장 속에서 누구 하나 허투루 움직일 수가 없었다. 칼 쥔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갔다.
마영보는 흘깃 곁눈질로 드러누운 애마의 상태를 살폈다.
네 다리를 쭉 뻗은 채 꿈틀거리는 것까지 보면 결코 가벼운 충격이 아닌 것이었다.
무엇에 당하였는지 두터운 목덜미에 움푹 들어간 자국이 보였다. 그리고 바닥을 구르는 작은 돌멩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설마…… 절정 이상의 고수란 말인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애써 지워버렸다. 설사 상대가 절정 이상이라 하여도, 자신 역시 절정의 도객이었다. 호락호락 당해줄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마영보는 마른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애써 어둠을 꿰뚫어 보려 애썼다. 상대는 저 어딘가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주인, 물러나시지요.”
무사들을 이끄는 수장, 대운도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그의 눈은 여전히 어둠 어딘가를 헤아리고는 있는 중이었다. 주인인 마영보를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마영보는 노려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등을 보이면 공격은 가차 없이 날아들 것이다. 섣불리 물러선다고 될 일이 아니야.”
“그러나…….”
의외로 강건한 태도에 대운도는 당황했다. 그는 더 권하지 못했다. 마른 침을 삼키고 사방의 경계에 다시 집중했다. 너무 집중한 탓인가, 정작 가까이 다가오는 발소리를 한참 뒤늦게 깨달았다.
저벅, 저벅.
발소리가 묵직했다. 사방으로 흩어진 도객들의 시선이 순간 소리가 들려오는 한 방향에 모였다.
“누, 누구시오!”
대운도가 언성을 높였다. 사방이 트인 평원에 그의 외침이 여기저기서 울렸다. 빨갛게 굳은 얼굴은 어둠 속에서 확연할 정도였다. 그러나 멈춰선 그림자는 대운도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는 일행의 뒤에 숨다시피 서 있는 마영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백마보 이보주, 마영보. 맞나?”
고저 없어 담담한 어조였다. 흡사 별 뜻 없이 지나가다 마주한 사이라고 착각할 듯했다. 당황해 답을 못하는 데, 그림자는 한걸음, 두 걸음 걸어 나왔다.
드러난 모습에 긴장해 있던 사내들은 순간 당황했다. 어느 고인의 등장이라 여겼건만, 나타난 것은 허름한 장포를 걸치고 머리는 산발한 젊은 사내의 모습이지 않은가. 고수의 풍모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무턱대고 마음을 놓지는 않았다.
대운도는 몇 걸음 앞에 선 사내에게 조심히 물었다.
“귀하께서 우리의 앞길을 막으시는 연유가 무엇이오?”
“책임을 묻기 위해서.”
사내, 소명은 나직이 대꾸했다.
말의 뜻을 이해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영보가 순간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책임? 그렇군, 네놈이냐! 네놈이 남호동의 일을 방해한 게야!”
그는 소리를 높였다. 소명의 눈길이 대운도에서 마영보로 향했다. 그는 당장 수하들을 물리치고 소명의 목을 베려는 듯이 도병을 틀어쥐었다.
“주인. 참으십시오!”
황급히 수하들이 좌우에서 그를 만류했다.
“참으라니! 참으라니!”
마영보는 더욱 성을 내었다. 소명은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실로 가당찮았다. 누가 피해자인 척 하는 것인가.
대운도는 그런 소명의 눈앞을 막아섰다. 그는 찌푸린 눈으로 소명의 위아래를 살폈다. 눈을 씻고 다시 보아도 어떤 위세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자에게 긴장을 하다니.’
잠깐의 착각에 불과할지라도 무인된 입장에서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짧게 혀를 찬 그는 곧 묵직한 기세를 발하며 나직이 말했다.
“지금 괜한 소란을 일으킬 생각은 없다. 그만 물러서라.”
겁박하듯 살기를 일으키면서도 대운도는 말로 처리하려 들었다. 그러나 소명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에 대운도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슬쩍 이맛살을 찌푸린 채, 가만히 다그쳤다.
“이봐!”
대운도로서는 괜한 힘을 쓸 필요가 무언가 싶었다.
소명이 말했다.
“생사는 스스로 챙기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게 무…… 헙!”
대운도는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급히 칼날을 세웠다.
쩡!
높은 소리와 함께 대운도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뭔가를 느끼기가 무섭게 도면을 세웠건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어느 순간에 내친 주먹이 그의 콧등을 작살 내어놓은 후였다.
대운도의 묵직한 신형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모습에 여직 수하들에게 붙잡혀 성을 내던 마영보의 입이 딱 다물어졌다. 다른 네 수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멍한 눈으로 소명을 그리고 무릎 꿇고 주저앉은 대운도에게 향했다.
“대, 대형.”
“이, 이봐. 운도. 자네…… 뭐, 뭐하고 있는 건가?”
대운도는 몸을 흐느적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풀린 눈동자가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