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94
94화. 자객에 대처하는 자세
낙양은 당대 이후로 쇠락하였다고 하나 하남의 손꼽히는 고도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많은 물자가 오가며 하남의 부가 흐르는 곳이 낙양이었다.
낙양성의 서문, 여경문(麗景門)으로 들어서면 서대로가 뻗어 있는데, 이곳이 낙양에서 제일 번화한 곳이기도 했다. 큰 시장이 형성되어 온갖 문물과 사람들이 오갔다.
수많은 주가, 객사들이 늘어져 있었다. 그 가운데에 낙양제일루(洛陽第一樓)가 있었다. 무려 삼백여 년의 역사를 지닌 객사로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당민은 그곳에 방을 잡았다. 본래 남궁유가 마련했던 처소가 따로 있었지만, 그 당사자가 뻗어 있는 상태이니.
남궁유의 방은 낙양제일루의 최상층이었다. 그는 침상에 축 늘어져 있었다. 당민과 소명이 바로 손을 쓴 덕에 생명에 지장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하루, 이틀에 깨어날 정도로 가벼운 상세는 아니었다.
소명은 조심스레 그의 맥박을 확인했다. 공전무융의 여력은 남김없이 거두어들여 다른 걱정은 없었다. 흔들린 기혈과 내상은 당민이 침과 약을 써서 다스린 상태였다. 어렵게 몰아쉬는 숨소리가 괴로운 듯했지만 그래도 크게 화는 없을 듯했다.
“후우.”
확인한 소명은 그제야 안도하며 한숨을 흘렸다. 어쨌든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 이 지경이 되었으니. 그는 문득 씁쓸한 웃음을 머금은 채 중얼거렸다.
“설마하니, 다시 무가련 사람과 엮일 줄은 몰랐는데.”
소명은 방을 나섰다. 그는 아래로 내려갔다. 총 여섯 층으로 이루어진 낙양제일루는 이 층까지는 술과 음식을 팔았고, 그 위로 객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소명은 화려하게 칠한 계단을 따라서 내려갔다.
아직 날이 밝건만 낙양제일루라는 이름 때문인지 곳곳에서 색등이 환한 빛을 밝히고 있었다. 내려갈수록 왁자하게 떠드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소명은 별실이라 구분된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위지백과 당민이 진즉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문 앞에서 서자, 과하게 들뜬 웃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으헤헤헤!”
“이히히히!”
기괴한 웃음소리였다. 문고리를 잡아가던 소명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 불길함이 뇌리를 관통했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렸다.
‘뭐, 뭐지?’
소명은 왔던 걸음대로 돌아설까 싶었다. 그는 뻗은 손을 거두며 슬쩍 물러섰다. 한걸음, 두 걸음.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호통이 터졌다.
“안 들어오고 어딜 가!”
“허억!”
벼락같은 일갈에 소명은 화들짝 놀랐다. 불쑥 내민 얼굴은 당민이었다. 가면 벗은 그녀의 얼굴은 홍시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는 오만상을 쓴 채 소명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그도 잠시 이내 방긋거리며 웃었다.
“헤, 헤헤헤.”
취한 것이다. 그것도 아주 단단히. 그녀는 막무가내로 소명을 끌고 별실로 들어갔다. 소명은 일그러지는 얼굴 근육을 붙잡고 애써 웃어 보였다.
“하, 하하.”
억지 웃음소리를 쥐어짜며 눈동자를 굴렸다. 방 안 꼴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그녀 뒤로 위지백이 멋쩍은 듯한 얼굴로 앉아 있었고 주변으로는 빈 술병이 마구잡이로 뒹굴었고 술독 여남은 개가 다 비워져 있었다.
소명은 발치에 누워 있는 술병 하나를 들어 슬쩍 냄새를 맡았다.
“윽!”
소리가 절로 나왔다. 독하디독한 주향이었다. 이게 뭐라는 술인지는 몰랐지만 여느 평범한 술이 아님은 분명했다. 언제 이런 술을 찾아서, 또 이만큼 마셔댔단 말인가.
이들이 대작(對酌)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참이었다. 채 한 시진이나 되었을까. 당민이 시침하고 탕약을 처방하여 복용하게 한 직후이니, 그보다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벌써 이런 몰골들이라니.
“대체 뭘 처마신 거냐?”
술 냄새와 그 양에 질린 소명이 물었다. 당민이 히끅거리며 말했다.
“응, 몰라. 그냥 센 술이라던데? 히윽!”
“아이쿠, 이런.”
“히윽! 으히히히! 히윽!”
취해 딸꾹질을 하면서도 실실거리는 당민의 모습에 소명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저 모습을 보고 누가 서찬의 녹면옥수를 생각할 것인가.
소명은 새삼 골이 아파 왔다.
생각하면 상화촌의 동무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술에 눈을 떴던 당민이었다. 아홉 나이에 이미 술맛을 알아버렸다. 대장간에서 일꾼들이 화기를 달래고자 마시는 화주(火酒)로 시작을 했으니. 취해 히죽거리는 당민을 어떻게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는 마주 앉은 위지백에게 한바탕 쏟아 부었다.
“인간아! 적당히라는 말도 모르냐! 적당히!”
“아니, 잘 마시길래.”
위지백은 난감한 얼굴이었다. 얼굴색 한 번 안 변하고 줄줄 잘도 마시더니 갑자기 몇 잔 새에 확 취해 버려서는 이 모양이었다.
“소명아, 소명아!”
당장에라도 주저앉을 듯하던 당민이 소명의 옷자락을 꼭 부여잡고는 아이가 칭얼거리듯이 이름을 불러댔다.
“어디 갔었어, 많이 찾았단 말이야. 연수랑, 청이랑, 충인이랑…… 많이 찾았단 말이야아…….”
난감해하던 소명의 얼굴이 얼핏 굳었다.
당민은 오랜 세월 품었던 속내를 줄줄 풀어냈다. 우는 듯한 목소리로, 떨리는 목소리로. 소명의 가슴을 때렸다. 상화촌에서 마구잡이로 때렸던 것보다 더욱 아팠다. 뭐라 변명이라도 할까, 입을 벌려 보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목구멍이 콱 하고 틀어막힌 듯했다. 소명은 결국 어금니를 꾹 깨물었다. 그는 괴로움을 참아내며 휘청거리는 당민을 안았다.
울음 속에서 당민은 하소연했다.
온갖 나쁜 놈은 다 자신이었다. 소식 한 줄 남기고 떠날 것을, 친구라 하여 배려치 않은 것은 소명이었다. 변명할 말이 무어 있을까. 엉엉 우는 당민의 투정과 주정을 그저 받아낼 뿐이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위지백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는 소맷자락으로 눈가를 콕콕 찍었다. 눈시울이 벌겋게 달아 있었다. 소명은 찡그린 눈으로 품에 안긴 당민을 내려다보았다. 그저 나오는 것은 젖은 한숨뿐이었다.
그때였다.
“우윽, 우읍, 으으으.”
당민이 갑자기 어깨를 들썩이며 기괴한 소리를 내었다. 감상에 젖어 있던 소명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 순간.
“오에에에엑!”
시원한 소리가 크게 울렸다. 소명은 고개를 들었다. 머리 위에 어둑한 천장이 왜 이렇게 처량하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그 와중에도 당민의 손은 소명의 옷자락을 단단히 틀어쥐고 있었다. 그리고 거듭해서 소리를 내었다.
“우에에엑!”
“그래, 그래.”
소명은 힘없이 중얼거렸다. 가슴팍이 뜨뜻했다. 고개를 돌리니 옆에 있던 위지백은 제 몫의 술병을 챙겨 든 채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질린 얼굴이었다. 그는 소명의 감정 없는 눈길에 그저 웃어 보였다.
“하, 하하하. 아니, 난 그냥.”
소명은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토했다. 말해 뭘 어쩔까.
그는 축 늘어진 당민을 수습하여 방에 뉘었다. 아등바등하던 그녀는 곧 새근거리며 곱게 잠들었다. 화려한 객방에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소명은 잠시 쓸쓸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곧 옷자락을 들쳤다.
“참 제대로 토해놨네.”
소명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 * *
남궁유는 깊은숨을 토하며 눈을 떴다. 사방이 어둑했다. 잠시 적응이 되지 않았다. 잠시 눈동자를 굴리던 그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헛, 당 소저!”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다가 끽 소리를 내며 침상 위를 굴렀다. 삭신이 미친 듯이 쑤셔왔다. 정신을 놓은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한참을 뒤치락거린 끝에 남궁유는 침상에서 기어 내려올 수 있었다. 버티고 서기까지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숨을 몰아쉰 끝에 남궁유는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여기는?”
화려한 객방이었다. 그는 비척거리며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그러자 환한 불빛이 밀려들어 왔다. 여러 층의 층계참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제야 남궁유는 이곳이 낙양제일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이곳으로 들어오게 된 것인지 고민할 사이에 뒤에서 남궁유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나셨습니까, 남궁 공자.”
“누구? 헛, 당신은.”
소명이었다. 그가 어색한 얼굴로 다가왔다. 남궁유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지경임에도 다가오는 소명을 극히 경계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버, 버틸 만합니다.”
“다행이군요. 아민이 꽤나 애를 썼답니다.”
“…….”
남궁유의 짙은 눈썹이 잠시 일그러졌다. 소명이 당민을 편히 부르는 것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러나 마냥 얼굴을 찌푸리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는 표정을 다스리며 소명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영문입니까?”
“그것이.”
소명은 간략하게 설명했다. 당민의 위험을 알고 도우러 달려왔다는 것 정도였다. 백보권의 이야기나, 실수로 남궁유를 날려 버린 이야기는 물론 하지 않았다.
차분한 소명의 말에 남궁유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얼굴만 화끈거렸다.
‘크, 한심한.’
관중검이라는 이름에 오만을 떨었구나 싶었다. 소명에게 자초지종을 캐묻기보다는 부족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는 얼굴이었다.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소명은 남궁유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도 솔직한 내심으로는 안도하고 있었다.
‘다행이네, 자세하게 캐물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이 정도로 둘러댄 데에서 끝났으니 다행이었다. 그때, 남궁유가 물었다.
“헌데, 당 소저께서는 어떠신지요.”
“아, 아민이라면.”
가볍게 대꾸하려던 소명은 멈칫했다. 머리가 급하게 돌아갔다. 차마 남궁유에게 낮술 먹고 취해서 주정부리다 쓰러졌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상화촌에서 꽤나 화급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녹면옥수라 하여 도도한 자태를 보이지 않았던가. 소명의 눈동자가 한 바퀴 굴렀다. 머뭇머뭇하는 모습에 남궁유가 눈을 크게 떴다.
“무,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소명은 애써 웃었다.
“하, 하하. 아닙니다. 안 좋은 일이라니요. 다만…… 그래요, 심력을 과하게 소모하여서 지금 잠들어 있답니다.”
“그, 그렇습니까. 그렇군요.”
남궁유는 그제야 진정한 듯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는 곧 떨리는 손을 뻗어서 벽을 짚었다. 불안하게 걷는 그를 소명이 만류했다.
“아니, 남궁 공자. 그런 몸으로 어디를 가시려고요.”
“당 소저를 뵈어야겠습니다.”
소명은 남궁유의 뒤에서 뜨악 하는 얼굴이 되었다. 지금 당민의 방에 가봤자, 그를 맞이하는 것은 진동하는 술 냄새뿐이었다. 그는 후다닥 남궁유를 막아섰다.
“아니, 그러지 마십시오. 남궁 공자.”
“하지만.”
“아민은 술사를 상대하고 난 후에 남궁 공자의 상세를 살피느라 심력을 소모한 것입니다. 지금은 푹 쉬게 해주는 편이 더 좋을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남궁유는 더 고집할 수 없었다. 그는 흠칫했다가 이내 고개를 떨어뜨렸다.
“공의 말씀을 따르지요.”
맥없는 모습에 소명은 괜스레 마음이 찔렸다.
남궁유는 자신의 방에서 운공요상에 들어갔다. 당민의 신속한 조치 덕에 내상은 심각하지 않았다. 다만 기력이 고갈되었을 분이었다. 소명은 운공중인 남궁유의 호법을 서며, 방 한쪽에서 자리를 지켰다.
등불 빛이 방안을 밝혔다. 어느 틈에 날이 깊이 저물었다. 낙조가 일 무렵에 들어간 남궁유의 운공은 이제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침상에 드리운 휘장의 그림자가 흔들렸다. 아래에 남궁유가 가부좌를 취하고 있었다. 소명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호흡은 골랐다. 들숨과 날숨이 교차하는 순간 남궁유의 주변으로 파란 번뜩임이 간헐적으로 일었다.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튀어 오르는 불꽃은 밝힌 등잔불보다 밝았다. 소명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것이 뇌정공(雷霆功).’
창천검법과 함께 안휘남궁이 자랑하는 뇌정공이었다. 음양기를 교차시켜 뇌기를 일으키는 공부로 그 위명은 천하에 널리 알려져 있다. 남궁유의 운공이 끝으로 향해갈수록 그 번뜩임은 부쩍 자주 일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앉은 몸이 들썩였다.
스팟!
보이지 않는 기파가 방 안을 휩쓸었다. 방 안의 기물들이 부르르 떨렸다. 남궁유가 숨을 길게 뱉었다. 운공이 끝난 것이었다. 기파에 휩쓸려 꺼질 듯한 등잔불이 흔들리며 다시 피어올랐다.
두 눈을 뜬 남궁유의 눈에서는 번갯불과 흡사한 푸른 기운이 번쩍였다가 사라졌다. 그는 가뿐한 모습으로 몸을 일으켰다.
“호법에 감사드립니다, 소명 공.”
“천만의 말씀입니다.”
포권하는 남궁유에게 소명은 합장하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공력을 회복하셨다고 해도 몸은 지치셨으니, 푹 쉬시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지요.”
남궁유는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낙양성에 하루 머무르게 되었으니 굳이 조급해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방을 나서는 소명을 더 붙잡지 않았다.
소명이 나가며 문이 닫혔다. 닫히는 소리와 동시에 남궁유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그는 한참 동안이나 소명이 나간 자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 대체.”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숨이 절로 튀어나왔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