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96
96화. 자객에 대처하는 자세
방 안의 풍경은 가관이었다.
당민은 침상에 널브러진 채였다. 그리고 방 안 곳곳에 은침이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수 명의 자객들과 함께. 방 안에 발을 딛기가 무섭게 당민의 은침이 빛을 발한 모양이었다.
소명은 복면 뒤에 치뜬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죽어가는 순간까지 무슨 일을 당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눈초리였다.
“쯧쯧.”
소명은 혀를 찼다. 그는 침상에 다가갔다. 역한 술 냄새가 훅 풍겨왔다.
“하, 이것 참. 녹면옥수답다고 해야 하나?”
그는 당민을 바르게 눕히고 이불을 다시 끌어 올려주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열린 창문 앞에는 기척 없이 등장한 그림자가 우뚝 버티고 서 있었다. 그의 눈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들의 우두머리인가?”
“…….”
그림자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일그러진 눈매로 소명을 노려볼 뿐이었다. 술 취한 상대라는 것을 파악한 참이라 굳이 다른 수단을 강구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천추의 한이 될 줄이야. 그는 빠득 이를 갈아붙였다. 그런 한편으로는 다른 손이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미안하군.”
소명은 대뜸 사과했다. 그림자의 눈매가 흠칫했다. 그는 허겁지겁 꿈틀거리던 손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그보다 소명이 더욱 빨랐다. 그는 당민의 은침을 탄지신통의 식으로 튕겨 냈다. 은광백우보다 더욱 빠르고 위력적이었다.
그림자는 손을 채 치켜들기도 전에 멈췄다. 은침이 한쪽 눈을 통해 머리까지 관통해 버렸다. 그림자는 서서히 뒤로 넘어갔다. 그는 층의 비탈진 처마를 데굴데굴 굴렀다. 그리고 곧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앙!
객잔이 들썩였다. 꽤나 우렁찬 소리였다. 그렇지만 당민은 깨어날 줄 몰랐다.
폭발성에 깨어난 것은 남궁유였다. 그는 화들짝 놀라며 자리를 박찼다. 자객이 들었다는 것에 나름 긴장하고 있던 참이라 애검, 창운검을 끌어안은 채였다. 그러자 그를 반기는 것은 위지백의 환한 얼굴이었다.
“여, 일어났소?”
“위, 위지 대협? 왜, 이곳에? 헉!”
찰나 멍했던 남궁유는 곧 상황을 파악했다. 눈앞에 선 위지백의 뒤로 몇몇 그림자들이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서둘러 검을 뽑으려 했다. 즉각 검을 잡았을 뿐만 아니라, 중심을 낮추면서 한껏 경계했다. 그 모습은 남궁유가 그저 허울만 멀쩡한 명문가의 (花劍)이 아니라는 걸 똑똑히 드러냈다. 그렇지만, 남궁유가 나설 일은 아니었다.
위지백이 웃으며 말했다.
“에헤, 넣어 두쇼, 넣어 둬. 이미 다 끝났으니.”
그는 키득거리며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림자들은 앞뒤로 넘어갔다. 촤악! 갈라지며 피 냄새가 강하게 후각을 자극했다.
남궁유는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이, 이런 불찰이!’
제 옆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건만 생각 없이 잠들어 있었다는 것은 결코 인정할 수가 없었다. 지독한 모멸감이 일었다. 이래서야 명문가의 애송이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지 않은가. 그 기색에 위지백은 껄껄 웃었다.
“남궁 공자는 그리 자책할 필요 없소. 꽤나 독한 몽연향을 썼으니, 옆에서 벼락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에야 도리 없소이다.”
말하며 허공을 가리켰다. 남궁유는 그제야 피비린내 뒤에 남은 흐릿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그보다, 앞으로 계속 자객들의 습격이 이어질 것이 분명하외다.”
“그, 그렇군요.”
“계속 객잔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으니. 몸이 좀 불편하더라도 처소를 옮깁시다.”
남궁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낙양제일루가 아닌 마련한 처소는 달리 있었으니. 그는 어두운 얼굴로 방안을 바라보았다. 칼을 거둔 위지백은 그런 남궁유의 눈치에 묘한 웃음을 머금었다.
‘뭐, 다 한때지. 한때.’
소명이나, 위지백이나 처음부터 이러했을까. 경험이란, 세월이란 그래서 무서운 것이었다. 이를 이겨내면 남궁유 또한 성장할 터였다.
방문을 열던 위지백은 문득 삐죽한 턱수염을 긁적였다.
“흐음, 그리되면 검도 제법 무거워지겠는데?”
그의 중얼거림에는 묘한 기대감이 어렸다.
* * *
허름한 사당이 있었다. 낙하가 가까이에 있어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본래 낙신을 모시는 사당이었는데, 수백 년 동안 관리하는 이가 없어 퇴락한 지가 오래였다. 찾는 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볼품없는 사당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찾는 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찾는 이가 없도록 만든 것이었다.
본래 낙신의 상이 있어야 할 단에는 먼지와 거미줄로 뒤엉킨 좌대만 있었다. 상의 일부였을 석재는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깨진 들창 안으로 달빛이 흐릿하게 스며들었다. 어느 순간, 기척도 없이 그림자가 하나둘씩 나타났다. 그들은 각자 석재 위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좌대 앞에도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낙척서생처럼 닳아빠진 잿빛 유삼을 걸친 사내였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니 석재에 앉았던 그림자들이 몸을 일으켰다.
“오셨소이까, 부주.”
“이번에도 실패를 했다지요?”
“좋지 않소, 부주.”
주고받는 목소리는 힘겨웠다.
이곳은 하남에서 제일 오래된 자객집단인 낙수부(洛水府)의 총타였다.
오백여 년의 세월 동안 강호를 암약했다. 그 사이에 온갖 실패와 역경이 있었지만 이번 일 같은 경우는 없었다. 목표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든 자객들을 꿰뚫어 보았다.
배후를 찾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어떻게 알았는지 언제나 기다렸다는 듯이 자객들을 참살했다. 손속에 사정 따위는 전혀 없었다.
이쯤 되면 물러서는 것이 옳은 일이었다. 아무리 상대에게 큰돈을 받는다고 해도 지금의 피해를 돌이킬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낙수부주는 그리할 수 없었다. 할 수 없다고 해서 순순히 이해할 의뢰인이 아니었다. 차라리 목표물에 전력을 다하고 그대로 무너져 버리는 편이 더 좋았다.
낙수부주는 암울한 얼굴로 물었다.
“목표들은 아직도 그곳에?”
“객잔에서 자리를 옮긴 이후로는 밖으로 걸음하지 않는다고 합디다.”
“큭, 자객을 상대할 줄 아는 자들이군요.”
낙수부주는 쓴웃음을 흘렸다. 그는 이내 눈을 치떴다. 새파란 안광이 일었다.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직도 밝혀진 것이 없단 말이오?”
“…….”
추궁하는 일갈에 입을 여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푹 고개를 숙였다. 낙수부주의 눈빛은 당장에라도 눈앞의 사람들을 베어 버릴 듯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정작 목표 대상에게는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한 채 거듭 실패하였으니.
지금까지 죽어나간 자객들만 하여도 부지기수였다. 이곳이 낙수부였기에 그나마 지금까지 버텼지, 다른 자객집단이었다면 진즉 거덜났을 터였다.
낙수부주의 전신에서는 소름 끼치는 살기가 일었다. 보기에는 볼품없는 낙척서생의 모습이나, 그 역시 하남 최고의 살수 중 하나로 손꼽히는 몸이었다. 그는 노해 부르짖었다.
“하남의 오대살막이 이런 수치를 당하다니!”
“…….”
낙수부주는 바로 살기를 거두었다. 잔뜩 움츠려 있던 수하들이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그는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하긴, 이제 와 누구인지가 무어 중요하겠소.”
“부, 부주!”
“본부의 남은 전력은 어느 정도요?”
“그것이…….”
부주의 묻는 말에 수하는 쉽사리 답하지 못했다. 파악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입 밖으로 꺼내기에 너무도 참담한 것이었다.
“갑종은 모두 전멸했고, 을종 열다섯, 그리고 병종 스물일곱이 남았을 뿐이오.”
“하, 하하.”
낙수부주의 입에서 어이없는 웃음이 흘렀다. 누대 동안 낙수부가 이뤄 왔던 전력의 절반이 완전히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이제 낙수부라는 이름은 의미가 없었다.
그는 뿌득 이를 악물었다.
“부주.”
“모두 모으시오.”
낙수부주는 정색한 채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수하들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 말씀은.”
“모두라고 했소. 인력이든 재물이든 이제 다 의미가 없으니, 모두 모으시오. 그자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아니, 이제는 의미가 없지요.”
“후,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말 그대로 동귀어진을 각오하는 낙수부주의 모습에 보다 못한 한 이가 애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낙수부주의 칼날 같은 시선이 그를 노려보았다.
“후일? 우리에게 후일이라는 것이 가당키나 하오?”
“…….”
입을 꼭 다물었다.
“어차피 우리는 수많은 칼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칼이 무뎌지면 날을 갈거나, 다른 칼로 바꿀 뿐이지요.”
낙수부주는 더 말하지 않았다. 자리한 모든 낙수부의 자객들 역시 입을 다물었다. 마지막 결전이었다. 무인에게는 무인의 도가 있듯 자객들에게도 자객의 도가 있었다. 그리고 낙수부주는 이미 마지막을 각오했다. 죽어도 죽고, 살아도 죽는다. 그렇다면.
“마지막 꽃은 화려하게 피워 봐야지요. 그것이 자객의 도.”
“…….”
낙수부의 중요 자객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다. 아울러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하는 것, 그 또한 자객의 도였다. 그날, 낙양 아니, 하남 일대의 모든 자객들이 움직였다. 전에 없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낙수부주는 누대에 이르도록 쌓아온 낙수부의 재물을 모두 동원했다.
* * *
노을이 붉었다. 들불처럼 일어나 하늘을 전부 집어삼켰다. 꽤나 불길한 핏빛의 노을이었다.
꽃망울이 맺히고, 잎이 파란 정원, 팔각의 정자가 하나 있었다. 그 처마 아래에서 소명이 불쑥 고개를 내밀어 핏빛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야, 야, 잔 받아라.”
취기 어린 목소리가 안쪽에 흘러나왔다. 위지백이었다. 그들은 한 장원의 후원에 앉아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그 사이에는 당민도 끼어 있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절대 그녀에게 술은 내어주지 않았다.
당민도 그때의 추태를 기억하는지 딱히 술 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이곳은 낙양 외곽에 위치한 남궁가의 장원 중 한 곳으로, 하남 일대 남궁가의 사업을 관리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곳이 본래 남궁유가 준비했던 처소였다. 백운장(白雲莊)이라는 이름으로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고풍스러운 장원이었다.
“흠, 역시 명문세가라 다르구먼.”
위지백이 히죽거리며 웃었다. 실로 기꺼운 모습이었다. 그의 앞에 놓인 하나의 술병 때문이었다. 간만에 마시는 서장의 술이었다. 투박하고 독하기 이를 데 없는 그 맛, 그러나 서장에서 나고 자란 위지백에게는 어느 명주보다 훌륭했다.
중원에서는 여간해서 구하기 어려운 것을 남궁유가 신경 써서 구해온 것이었다. 그러하니 위지백은 어울리지 않게 야금야금, 그야말로 가뭄에 갈라진 밭뙈기에 물을 주듯 조심스레 마셨다. 소명과 당민은 그 조심스러운 모습에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하하하.”
남궁유가 정원의 담을 돌아서 들어섰다. 그는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멈칫했다. 고개 든 그의 얼굴은 수일 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얼굴은 창백하여 핼쑥했고, 눈가는 거뭇하였으며 두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토끼 눈을 하고 있었다. 여유 있는 소명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남궁유는 정원 앞에 멍청히 서서는 빨간 눈으로 웃는 셋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상식으로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객들의 습격은 열흘째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근 며칠간은 소식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저런 여유라니.
‘하, 내가 우물 안의 개구리였구나.’
남궁유가 스스로 부족함을 절감하고 있을 무렵에 소명과 위지백은 뭔가를 상의하고 있었다.
“얼마나 됐지?”
“글쎄, 한…… 서른여섯? 그쯤 되지 않나?”
“뭐가 서른여섯이라는 거야?”
당민이 이해 못하고 물었다. 그러자 위지백이 답했다.
“자객 놈들이 덤벼든 횟수를 말하는 겁니다, 당 소저.”
“엇? 그 정도나 되었어요?”
당민은 흠칫했다. 가만히 기억을 돌이켜 봤지만 열 번 정도의 소란이 일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몇 배가 훌쩍 넘는 횟수로 암살 시도가 있었다고 하니.
그때, 소명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한 사나흘 조용했으니, 이제 슬슬 개떼처럼 달려들겠는데.”
위지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한쪽 입매를 끌어 올리며 모호한 미소를 머금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낙조가 슬그머니 몰려오고 있었다.
소명은 고개를 들었다. 아직도 문가에 멍청히 서 있는 남궁유의 모습이 보였다.
“아니, 남궁 공자.”
“예, 예!”
남궁유는 흠칫하더니 급히 소명에게 다가왔다. 이제는 소명을 경계하는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경외하는 듯했다. 그는 조심스레 말했다.
“말씀하신대로 고용인들을 모두 물리고, 준비를 해두었습니다.”
“그렇군요.”
소명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모습에 위지백이 움찔하더니 남은 술을 서둘러 후르륵 들이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궁유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길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잔뜩 긴장하는 찰나 소명이 말했다.
“남궁 공자께서는 아민과 함께 이곳을 맡아주시오.”
“예?”
“저는 이놈과 함께 손님을 맞이하지요.”
“…….”
남궁유는 위지백을 돌아보았다. 위지백은 도갑을 어깨에 걸친 채 히죽거리며 웃었다. 그 웃음에 남궁유는 순간 소름이 일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지난 열흘간 위지백이 저리 웃을 때마다 살벌한 살풀이가 벌어졌으니. 남궁유는 낯을 굳혔다. 그는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들이 또 오는 것입니까?”
“이번에는 꽤나 많이 올 것입니다. 저들도 막바지에 닿았지요.”
“그렇다면 저도 따르겠습니다. 아니, 따르게 해주십시오.”
“…….”
남궁유는 눈빛을 번뜩였다. 각오를 단단히 한 참이었다. 그는 소명을 직시했다. 소명은 의아한 눈으로 그의 굳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따르게 해달라니 남궁의 적자로서 쉬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닐 터였다.
소명은 싱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