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97
97화. 낙양에 저무는 달
“남궁 공자, 저들은 온전히 저희 둘을 노리고 오는 자들입니다. 그대까지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허나.”
“이곳 또한 사지입니다.”
“예?”
“이제부터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자들은 참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노인이든, 여인이든, 아이이든, 설령 식솔이라 하여도 베어야 합니다.”
참담한 말이었다. 일체의 구분 없이 들어오는 모든 자들을 참하라. 그러나 말하는 소명의 모습은 담담하여 마치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듯했다. 남궁유는 입안이 바짝 말라붙는 것을 느꼈다.
이곳 또한 사지.
소명의 말이 귓전에 울렸다. 남궁유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이곳은 제가 맡지요.”
더 따르겠다 말하지 않았다. 안과 밖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남궁유는 고개 숙인 채 숨을 가다듬었다. 철딱서니 없게도 가슴이 쿵쿵 뛰고 있었다. 소명은 모호한 눈으로 남궁유의 모습을 보다가 흘깃 당민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자리에 앉은 채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그녀는 가면을 쓰지 않았다.
“조심해.”
당민이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영 성의 없어 보이는 투였지만 소명은 가볍게 웃어 보였다.
소명과 위지백은 정원을 나와서 장원의 전정 앞에 우뚝 버티고 섰다. 특이하게도 백운장은 전정이 어느 곳보다 넓고 규모가 컸다. 흔히 볼 수 없는 청석으로 방대한 전정 바닥을 포장해 놓고 있었다. 그리고 둘의 앞에 백운장의 정문이 좌우로 활짝 열려 있었다. 그리고 하얗게 회칠한 장원의 담이 높이 서 있었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던 위지백이 휘파람을 길게 불었다.
“휘유, 아주 개떼처럼 몰려왔는데. 이 정도 여력이 있는 자객단이란 말인가?”
“사람만이 아니고 돈까지 박박 긁어모은 모양인데.”
“재물까지라, 어찌 되었든 혼자 주저앉지는 않겠다는 거구만.”
소명은 그저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부나방 같은 인생살이지, 뭐.”
위지백은 혀를 차며 칼자루를 쥐었다. 느릿하게 도신이 드러났다. 무광도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강렬한 반사광을 번쩍였다. 소명은 소맷자락을 차분하게 걷어 올렸다.
머리 위 하늘에 노을은 이제 자취를 감추었다. 사방이 어둑해져 갔다.
꽤나 긴 사투가 벌어질 터였다. 겉보기로는 그저 해가 저문 것뿐, 다른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다가서는 자객들의 기척이 손에 잡힐 듯이 선명했다.
차라리 처음의 자객이 더욱 위험했다. 그는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조차 살의가 없었다. 지금의 이들은 뚜렷한 살의를 발하고 있기에 감지하기가 훨씬 용이했다.
소명과 위지백은 어두운 전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햇빛이 저물어 어둠이 몰려오듯이 삼엄한 살기가 점차 차오르고 있었다. 지켜보는 둘의 눈에는 어떤 감정도 없었다. 빠르든 늦든 살기는 둘을 향해 닥쳐올 터였다.
두 사람은 그저 편안한 모습으로 자리했다. 위지백은 땅에 박아 세운 칼자루에 턱을 기댄 채 물끄러미 담 너머를 바라보았다. 소명은 팔짱을 낀 채 문가에 등을 기대고 섰다.
어둠이 짙어가고 높이 뜬 달빛은 밝았다. 주변에 이는 달무리로 보건대 날이 밝으면 비가 내릴 듯했다.
문득 소명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위지백도 굽히고 있던 허리를 세웠다.
“오, 움직이는군.”
위지백은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활짝 열어젖힌 문가로 한 인영이 걸어 들어왔다. 그는 하얀 삼베옷을 걸친 약관의 사내였다. 얼굴은 지분이라도 칠한 듯 창백했고 머리에는 삼베의 끈을 둘렀다. 딱 상복이었다. 문지방을 넘어선 그는 전정 복판까지와 멈춰 섰다. 그는 소명과 위지백을 향해 공손히 두 손을 맞잡았다.
“두 분 고인을 뵙습니다. 이 필부는 낙수부의 주인을 맡은 자입니다. 강호동도들은 궁 서생이라 칭하지요.”
자객들의 수장이 직접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소명과 위지백의 얼굴에는 딱히 놀라는 기색도 없었다. 흘깃 서로 눈을 마주했을 뿐이었다.
“저는 두 분께 용서를 구하고자 왔습니다.”
“용서라?”
“예.”
낙수부주 궁 서생은 어디까지나 의뢰를 받았을 뿐으로 사적인 감정이 없다는 것을 강하게 강조했다. 그는 언변이 좋았다. 듣다 보면 도리어 아무 잘못도 없는 자들마저 자객으로 몰아 죽인 게 아닐까 여기게 할 정도였다.
말없이 궁 서생의 말을 듣고 있던 소명이 문득 고개를 끄덕였다.
“낙수부주, 당신은 정말 똑똑한 사람이군요.”
그 말에 낙수부주의 눈가에 얼핏 흐릿한 안광이 번뜩였다. 그러나 이어진 소명의 말에 그는 눈을 크게 치떴다.
“하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자객의 말은 듣지도, 믿지도 않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명은 한쪽으로 일권을 떨쳤다.
쾅!
소리가 크게 울렸다. 권경이 폭발한 것이다. 정원에 높이 자란 큰 나무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리고 나무 그림자에 은신해 있던 한 자객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소명과 위지백, 두 사람은 질릴 정도로 자객들과 상대해온 자들이었다. 세 치 혀에 그렇군 하고 넘어갈 만큼 어수룩하지 않았다.
흠칫한 궁 서생을 놓아두고 소명과 위지백은 성큼 앞으로 나섰다.
위지백이 나서며 크게 일도를 휘둘렀다.
탕!
청석과 충돌하며 불빛이 번쩍했다. 튀어 오른 불똥은 순식간에 불길이 되어 전정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바닥에 미리 기름을 준비해 놓은 것이었다. 바닥에서 높이 일렁이는 불길이 백운장 전정을 환히 밝혔다. 그러자 땅거죽이 들썩이더니 청석을 뚫고 일단의 자객들이 몰아쳤다.
위지백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중얼거렸다.
“하여튼 자객이라는 것들이 이렇게 독창성이 없어서야 어디.”
그리고 칼을 느긋하게 들어 올렸다. 무광도의 넓은 도면이 현란한 빛을 뿌렸다.
움찔 굳어 버린 궁 서생을 놓아두고 소명과 위지백은 좌우로 자객들을 몰아쳤다. 은신하고 있던 자객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땅바닥에서 불길 속에서 검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기도 했다. 그들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며 암습을 가해 왔다.
온갖 암기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둘의 방비는 철옹성과 같았다. 무수한 독비, 독수가 평범한 손을 어찌하지 못했다. 불빛이 어지러운 칼날이 큰 궤적을 그릴 때마다 어김없이 자객들의 그림자가 무참히 갈라졌다.
“끄아아악!”
괴성이 폭발했다. 고통에 찬 울부짖음이 아니었다. 무력하게 스러져가는 동료들에 대한 분노였다. 소명의 서늘한 눈빛에 얼었던 궁 서생은 돌연 쥐어짠 괴성이 퍼뜩 몸을 떨었다. 그는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기름칠을 하지 않은 쇳덩이처럼 느릿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수하들이, 동업자들이 전부 죽어 나가고 있었다. 보고로 듣던 것과 직접 보는 것에는 크나큰 차이가 있었다. 두 사람은 그야말로 무인지경으로 자객들을 휩쓸었다. 멍청하니 벌린 입에서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낙수부는 완전히 멸문이었다. 저들은 자객들의 천적이라는 말이 정확할 듯했다. 어떤 수도 그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마치 자객들의 뱃속에 들어앉은 듯했다. 암습을 가하는 박자를 일부러 유도하기까지 했다.
권을 쓰는 사내는 두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얼핏 건들거리는 듯한 모습이나 순간적으로 떨치는 일권, 일각에 어김없이 자객들이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도통 예측을 할 수가 없었다.
“크억!”
스치듯이 지나치며 가볍게 꽂아 넣은 주먹에 괴로운 신음이 터졌다. 그림자가 풀썩 무릎을 꿇었다. 궁 서생은 그를 알아보았다. 낙수부의 자객은 아니었다. 하남 남부에서 백인암살에 한 치의 실수도 없다하여 무결살객(無缺殺客)라 불리던 인물이었다. 듣기로는 자객으로서는 드물게도 절정경에 가깝다던 그가 채 일초도 넘기지 못했다. 아니 발목조차 잡지 못했다.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던 궁 서생은 불현듯 어느 문구 하나를 떠올렸다.
“자객…… 불, 원?”
천하 자객들 사이에서 결단코 적으로 삼아서는 아니 되는 자가 있었다. 이른바 자객불원(刺客不怨). 원망조차 하지 말라 하였다.
그 이름은 서장 땅에서 비롯했다. 서장일대를 암중 지배하던 자객집단, 붉은 밤(赤夜). 그곳은 일류자객들만도 기천을 달했다. 자객들의 신화였다.
붉은 밤의 주인은 자객의 왕이었다.
그들은 이름 그대로 서장의 밤을 핏빛에 물들이며 백여 년의 세월 동안 공포로써 군림했다. 붉은 밤이 지목하여 죽이지 못한 자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 붉은 밤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두 사람의 무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불과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붉은 밤을 거두어 냈고, 서장일대에서 자객이라는 이름을 아예 지워 버렸다. 그것이 미명일년(未明一年)이라 불리는 사건이었고, 자객불원 그 신화의 시작이었다 .
붉은 밤의 빈자리를 대신하려 했던 자객들은 모두 두 사람의 손에 몰살당했다. 그들을 상대할 바에야 차라리 자결을 하거나 천하의 고수를 노리라 하였던가. 그들은 그야말로 자객들의 천적이었다.
자객불원, 권야와 염마도(閻魔刀). 지금은 서장제일도라 불리는 두 전설.
“그,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궁 서생의 마른 몸이 사시나무 떨듯이 떨렸다. 지금 이 순간에 왜 그 이름이 떠오른다는 말인가. 멀리 서장 땅의 전설이 왜 지금 중원 하남 땅에 나타난다는 말인가.
퍼뜩 고개를 든 순간 휘두르는 칼날의 궤적에 산란하는 빛줄기가 눈을 찔렀다. 춤추는 칼날에 핏물은 솟구쳤고, 이어 도광이 현란한 빛을 뿌렸다.
빛이 춤을 춘다.
무광도, 자객들 사이에서는 염마도라 불리던 괴물의 칼이 분명했다.
궁 서생은 더 버티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넋을 놓은 순간에도 수하들과 고용한 뭇 자객들은 죽어 나가고 있었다.
사자의 호령에 마지못해 달려든 곳이 호랑이 굴이 아니라 염라전(閻羅殿)이었던 셈이다.
권을 쓰는 자는 권야가 분명했다.
무형식 중에 쏟아지는 위력적인 권각은 자객들에게는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허점을 파악할 수도 암습의 시기를 짐작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흘깃 몸을 기울이며 가볍게 주먹을 내질렀다. 스치는 순간 자객 하나가 또 힘없이 널브러졌다. 그는 왈칵 피를 토하더니 그대로 축 늘어졌다.
멍청히 있던 궁 서생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상대가 자객불원이라면 무엇을 하든 헛짓거리에 불과했다.
“머, 멈춰, 멈추시오!”
그는 비명처럼 소리를 높였다. 불길이 타오르는 소리를 뚫고 궁 서생의 외침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는 마치 피를 토하듯 외쳤다.
“항복, 항복하겠습니다! 손속에 사정을! 자객들은 물러서라! 그만, 그만둬!”
그러나 아무도 궁 서생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 들을 수 없었다.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궁 서생은 발작하듯이 몸부림치며 울부짖었다.
“안 돼!”
소명은 냅다 내지르는 궁 서생의 외침을 들었다. 그의 외침은 간절하기 그지없었다. 처절했다. 그러나 소명은 씁쓸한 미소만 보였다.
자객의 말은 설사 진실이라도 믿지 않는다. 그것이 자객들을 상대할 때에 제일원칙이었다. 소명은 궁서생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믿을 수는 없었다. 미안한 일이나 칼을 들이댄 자객들을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후환을 생각해서라도. 그리고 그것이 그들에 대한 마땅한 예의라 생각했다. 자객불원이라는 경구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소명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흔한 돌멩이에 불과했지만 그의 손가락을 떠나는 순간 어느 강궁보다 위력적인 암기가 되었다.
퍽!
둔탁한 소리가 울부짖던 궁 서생의 몸을 흔들었다. 그는 눈을 크게 치떴다. 천천히 눈을 내렸다. 그는 힘없는 손길로 겨우 가슴팍 옷자락을 끌어내렸다. 빈철로 만들어 번쩍거리는 호심경이 움푹 파여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핏물이 뭉클거리며 샘솟았다.
호심경 따위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제 피가 빠져 나가는 것을 보던 그는 고개를 들었다. 멀리 있는 소명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뭐라 입술을 뻐금거렸다.
‘도, 도망, 도망…… 도망을…….’
그러나 목구멍에서 맴돌던 그 말은 결국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했다. 그는 이내 앞으로 고꾸라졌다. 남은 자객들은 두려움 속에서도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등 돌린 자는 가장 먼저 죽었다. 장내의 일대소란은 오래지 않아 모두 끝이 났다.
소명과 위지백은 담담한 눈으로 장원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충 헤아려도 거의 반백에 달하는 자들이 있었다. 지닌 무공은 일천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이들은 자객들이었다.
“얼추 정리했나?”
위지백은 칼을 휘둘러 핏물을 털어냈다. 그리고 두 어깨에 척 하니 걸친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기 주인에게는 꽤나 미안한 짓을 했는데?”
“어차피 남궁가의 사업장인데, 미안할 게 뭐야.”
소명의 중얼거림에 위지백이 호탕하게 말했다. 둘은 나란히 고개를 돌렸다. 별채의 높은 담이 눈에 들어왔다.
“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
“천천히 가지.”
소명은 느긋했다. 당민이라면 어느 암습에라도 너끈히 감당할 만했다. 불안 요소가 있다면 남궁유 정도이나, 소명이나 위지백이나 그리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하니 별채로 향하는 걸음도 자연 느긋하다. 두 사람이 만들어 놓은 참상 위로 스산한 바람이 일었다. 북망산이 멀지 않다 하나 이만한 시체가 널브러져 있으니 또 어디가 북망산이련가.
“으, 으으…….”
꿈틀거리며 나직한 신음이 흘렀다. 거친 삼베옷을 입은 사람, 궁 서생였다. 그는 헐떡였다. 가슴 한쪽에 구멍이 난 사람치고는 꽤나 혈색 좋다할 얼굴이었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용하지 않은가.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호심경을 뜯어냈다. 그러하니 안쪽에는 또 몇이나 되는 호심경이 있었다. 그 사이에는 작은 주머니가 있었는데 피는 그곳에서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름의 기책이라.
궁 서생은 떨리는 눈으로 제 호심경, 낙신호찬(洛神護纘)을 살폈다. 낙수부의 신물인 동시에 보신책이었다. 빈철과 흑철을 번갈아 써서 무려 열다섯 겹으로 이루어진 호심경이었다. 근거리에서 쏘는 대노라 할지라도 온전히 꿰뚫을 수 없을 정도였다.
강호 인사들의 솜씨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채 서너 겹이나 꿰뚫을 수 있을까. 그러나 지금의 돌멩이는 열다섯 겹의 낙신호찬을 전부 꿰뚫고, 혹시나 하여 착용한 마지막 호심경에 깊이 틀어박혀 있었다.
절로 진저리가 일었다. 아무리 죽음과 한이불 덮고 사는 자객이라 할지라도 죽음 문턱에서 겨우 돌아온 참이니. 궁 서생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는 씁쓸한 얼굴로 드러누운 뭇 자객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미안하네, 나만 살아 미안해. 그러나 알지 않는가, 자객이란 목숨만큼 세상에 값싼 것이 어디 있는가.”
그는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돼지 피에 젖은 가슴팍을 부여잡은 채 비척비척 걸음을 옮겼다. 이 자리에서 살았으니 돌아가 죽을 자리를 다시 준비할 따름이었다.
그나마 궁 서생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상대가 자객불원, 권야와 염마도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