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 singer is one RAW novel - Chapter 100
95. 신곡 나오는 날 >
“석태야, 오늘은 예성이랑 밥 안 먹냐? 왜 기호랑 있어?”
“오늘 나오지 말라고 했어요. 오늘 그날이잖아요.”
“그날?”
“네. 필연 나오는 날이요.”
“아! 오늘이네. 오늘 또 용쓰겠구나. 그 성격에 가만히 있지는 못할 테고.”
장일형은 생각만 해도 웃긴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며칠 전 예성을 봤을 때 하던 말이 생각났다.
“제가 이번에는 꼭 1위로 올라가는 것은 제 눈으로 보고 말 거에요. ‘어머니에게’가 1위 할 때도 제 눈으로 보지 못한 게 한이라고요.”
이런 예성의 말을 들으면서 이해는 한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생각대로 흘러가면 얼마나 좋을까?
대표 형님이 항상 하는 말이 있지 않은가?
“우리 생각대로 회사가 돌아갔으면 나는 이미 포브스에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나왔어.”
그렇다. 누구나 생각은 밝은 미래를 상상하지만, 결과가 밝은 미래인 경우는 드물다.
예성의 노래가 좋기는 하지만 아이돌의 노래가 빽빽하게 버티는 차트를 뚫어낼지는 결과를 봐야 안다.
슈스케 때야 방송에 힘입어서 그 힘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힘보다는 인터넷에 화제가 된 예성의 이미지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그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믿고 듣는 신예성.
이 이미지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흥미를 줄 것인가?
‘잘 되면 좋으련만···.’
장일형이 그런 생각을 하는데 이기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기호의 이야기를 석태가 심각하게 듣고 있었다.
“석태야, 듣고 있어? 그러니까 예성이는 올해 빡빡하게 갈 거야. 내년이면 성인이 되어 해외진출을 하는 거야. 나도 최대한 알아보고 OST 자리를 만들어내야지. 그리고 드라마를 통해 해외로 인지도를 올려 내년에 누구도 얕볼 수 없는 예성의 자리를 만들어내는 거야. 그러려면 해외에 나가기 전에 국내에 자리를 완전히 굳혀야지. 어차피 본진은 한국이니까.”
“그런데 예성이가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지금도 충분히 잘 나가고 있잖아요?”
석태의 말이 맞다.
이기호, 이놈이 제대로 눈이 돌아간 것 같다. 이야기를 들으니 아예 소설을 쓰고 앉아 있었다.
1년 동안 예성이를 믹서기에 넣고 갈아 마실 생각이다.
‘쯧쯧, 아직 어린아이거늘······.’
일형은 그런 이기호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터치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저쪽 분야는 이기호 담당이었다.
“저도 본부장님의 말씀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예성이가 이걸 버틸 수 있을까요?”
“그야 물론이지. 그러니까 네가 잘 도와줘야 해. 네가 시간 관리만 잘하면 아무 문제 없어.”
장일형은 이기호의 말을 들으면서 어쩐지 기시감이 가시지를 않는다.
‘어쩐지 이놈이 이러는 게 처음이 아닌 거 같은데 말이지.’
그리고 그때 이기호의 말이 장일형의 뇌 속 깊은 곳의 기억을 일깨웠다.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안 돼.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 줄 알고? 상승세를 탔을 때 날아올라야 해.”
이기호의 말이 장일형의 귓속으로 들어오자 장일형의 머릿속에는 오래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20대의 풋풋한 이기호가 흥분한 얼굴로 말하고 있었다.
“누나, 지금이 기회야. 이시기를 놓치면 안 돼.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 줄 알고? 누나는 지금 흐름을 완전히 탔어. 이 흐름을 계속 이어서 날아오르는 거야.”
이 기억이 떠오르자 장일형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자식 빙의했군.’
장일형은 이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이미 알고 있었다.
경험했었기 때문이다. 비록 미성년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었지만, 이기호의 과한 열정은 한 사람을 막다른 길로 내모는 것을 눈으로 직접 봤었다.
한편으로 이러는 이기호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렇게 좋냐?’
애정이 넘치는 것이다.
그리고 하는 그것마다 잘되니 자꾸 뭔가 더 일을 벌이고 싶고 그 벌인 일의 결과를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확인하면 또 일을 벌이고, 자신의 계획에 스스로 빠져서 나올 생각을 못 한다.
‘하지만 위험하지. 대표님을 봐야겠네.’
장일형은 숟가락을 내려놓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먼저 간다.”
“다 먹었어?”
“그래. 천천히 먹고 와.”
장일형은 식당을 나와 바로 대표실로 향했다.
대표실로 올라가니 비서가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노크하고 대표실의 문을 여니 장일형의 눈에 비서와 마주 앉아 초밥을 먹고 있는 이형식이 보였다.
“팔자 좋네요. 사무실에서 초밥이라니.”
“흠흠, 웬일이야. 연락도 없이.”
“조금 있다 다시 올까요?”
“아냐. 다 먹었어. 미연아, 이거 정리해라.”
“네. 대표님”
비서가 정리하고 나가자 이형식은 장일형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놈이 자신을 찾아오는 일은 1년에 몇 번 되지 않는다. 자기가 보러 가면 보러 갔지.
“무슨 일이야?”
“기호한테 브레이크 좀 거세요.”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브레이크라니.”
“기호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고 있어요.”
이형식은 장일형의 말에 피식 웃었다.
자신도 이기호를 잘 안다. 이기호는 겉으로는 실실거려도 속으로는 계산기를 품고 사는 놈이다.
“날뛸 만하니까 날뛰겠지. 예성이 이야기 아니야? 잘 풀리고 있잖아? 뭐가 문제야?”
“그게 문제에요. 형님 혹시 라미아 누나 기억해요?”
“라미아? 그게 누군데?”
“왜 있잖아요? 우리가 독립하기 전에 있었던 기획사요. 라미아 누나 기억 안 나세요?”
“라미아, 라미아라······. 헉, 설마 지금 기호가 그 상태란 말이야?”
이형식도 라미아가 누군지 떠오르자 헛바람을 들이켰다.
“네. 오히려 심해요. 예성이 스케줄 봤죠?”
“그래. 그래도 그거야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니냐?”
“문제는 기호 이놈이 1년 내내 노 저을 생각이라는 거죠. 예성이는 배제 한체 아예 미니 시리즈도 아니고 대하 드라마를 쓰고 앉았어요. 내년에 해외진출할 거라는데···.”
“그거야···.”
“들어보세요. 해외진출을 하는 거야 저도 뭐라고 안 해요. 하지만 그 가는 과정이 문제인 거죠. 이러다가는 라미아 누나 때랑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 겁니다. 예성이는 그렇게 망가져서는 안 돼요.”
장일형은 라미아 누나를 떠올렸다.
그 누나는 이기호가 처음 맡은 가수였다. 그리고 기호는 지금과 같았다. 언제나 결과는 좋았다.
거기다 기호는 희망 고문의 대가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야기하면서 라미아 누나를 끌고 나갔다. 항상 결과가 좋으니 그 누나도 기호를 의지해서 스타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하지만 빡빡한 스케줄은 라미아 누나를 예민하게 만들었고 급기야 자신에게 회의감을 들게 하여 그대로 잠적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돌아와서는 축 결혼이라는 청접장을 내밀었다. 그냥 모든 것을 손에서 놓아 버린 것이다.
“기호야. 이건 아마도 내가 원한 길이 아니었나 봐. 난 음악을 좋아해서 가수가 된 거지. 음악을 일처럼 하고 싶어서 가수가 된 게 아니야.”
청첩장을 받아 들면서 충격받은 기호의 표정이 잊히지 않았다.
“그럼 말을 하지 그랬어요?”
“내가 신호를 계속 줬는데도 무시한 건 너야. 그리고 나는 깨달았지. 네 눈에는 지금의 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너는 스스로 꿈을 꾸고 있는 것뿐이라고.”
그리고 그 후 기호는 한동안 방황을 했다. 시간이 흘러서야 냉철하게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다 늙은 지금에 다시 불타오르고 있다.
이형식은 일형의 말에 인터폰을 눌렀다.
“미연아, 기호 좀 오라고 해.”
“네. 대표님”
잠시 후, 이기호가 대표실로 들어왔다.
“기호야. 너 올해 신예성이 어떻게 할 거야?”
“네. 잘해야죠. 지금도 잘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계획은?”
이형식의 말이 떨어지자 이기호는 종이를 한 장 가져와서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계획을 신이 나서 적기 시작했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면서 정말 신이 나 있는 모습이다.
40대에 이러기도 쉽지 않을 텐데. 정말 나이를 잊은 모습이다.
이기호의 모습을 보자 이형식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다. 계획은 이기호가 세우지만 행하는 것은 아직 어린 신예성이다.
이형식은 한 참 신이 나서 말을 하는 이기호를 쳐다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호야.”
“아직 남았는데요. 형님”
“그만하면 됐다. 너 예성이에게서 손 떼는 게 어떻겠냐?”
“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지금 예성이가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데?”
“그래. 그 시기인 것은 맞다 치자. 하지만 그 시기 놓친다고 큰일이라도 나냐?”
“그야 당연히 나죠. 다시 또 언제 이런 기회가···.”
“그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른다고? 그래. 하지만 그 기회가 또 없으라는 법이 있냐? 그저 조금 빠르고 늦고 그 차이만 있을 뿐이지. 너도 알고 나도 이제는 안다. 신예성이 재능이 넘치는 아이라는 거. 안 그러냐?”
“그렇죠.”
“그런데 그 아이를 이번 해에만 써먹을 거야? 어린아이를 이렇게 굴려서 내년에 어쩌려고? 네가 이 아이 데려올 때 뭐라고 했어? 아티스트 키우자며, 그런데 이게 아티스트를 키우는 거냐? 비싼 상품을 만들어내는 거냐?”
“그래. 대표님 말이 맞다. 너 지금 네가 만든 계획에 스스로 허우적대고 있어. 지금 예성이가 똥인지 된장인지 몰라서 네네 거리면서 따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내가 이러려고 가수가 되려고 한 건가 싶을 거다. 넌 또 예전의 잘못을 다시 반복하려는 거야?”
“예전이라니?”
“라미아 누나.”
장일형의 말에 이기호는 표정이 그대로 석상처럼 굳어졌다.
그 누나 이야기가 왜 지금 나온단 말인가?
하지만 그제야 자신의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허, 이런’
자신이 신나게 적은 계획이 보였다. 이 계획에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아마도 여기서 살이 더 늘어날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자신은 중요한 것을 잊은 모양이다.
계획은 이성적인 내가 세우지만 행하는 이는 감성적인 가수가 행하는 것이라는걸.
이제야 자신이 세운 계획의 결말이 보였다.
예성이 스타로 날아올라 만인의 사랑을 받는 모습이 아니라 음악이 싫어져 떠나게 되는 모습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와···. 와이프가 날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이기호가 갑자기 몸을 떨자 이제야 평소의 이기호로 돌아온 것 같아 이형식이 말문을 열었다.
“이제 정신이 좀 깨냐?”
“네. 번쩍 드네요. 이게 자식을 키우는 마음일까요? 애가 잘하니까 더 잘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나 봐요.”
“네 딸 놔두고 왜 남의 자식한테 그래?”
“제 딸은 아직 어리잖아요.”
이기호의 말에 장일형은 피식 웃었다.
“마누라 무서워서 딸에게도 큰 소리 못 치는 게 말은 잘해요.”
“이혼남에게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거든.”
“이···. 이 자식이?”
“애들도 아니고, 잘한다. 기호야.”
“네. 대표님”
“천천히 가자. 천천히. 내 기획사가 올해만 하고 망하지도 않고, 예성이도 올해만 가수생활하는 거 아니잖아?”
“네. 그렇죠. 그런데 말 나온 김에 예성이 재계약 하는 게 어때요?”
“하긴, 나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형식 대표도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비록 1년이지만 이놈이 벌어들이는 수익을 보면 지금의 계약이 너무 박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형식은 계약이라는 것은 빚을 지운다는 생각이 강한 사람이다.
그래야 기획사의 뜻대로 움직이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예성 같은 경우는 나는 할 만큼 했다고 뻗대도 기획사에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더구나 이놈은 화수분 같은 놈이다.
가수의 능력도 기대가 되지만 작곡가의 능력이 더 기대되는 이형식이었다.
‘이번에 레드엔젤이 제대로 포텐이 터지기만 하면….’
어쩌면 이놈이 자신의 기획사를 먹여 살리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형식은 굳은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20억.”
자신의 말이 떨어지자 이기호와 장일형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이형식은 기분이 상했다. 맥시멈을 불렀건만 왜 이런 표정들이란 말인가?
“왜 또? 적냐?”
“아뇨. 작년에 1억에 펄쩍 뛰던 모습이 생각나서 그만.”
“그래요. 오늘 집에 가서 잠은 어떻게 주무시려고 그렇게 막 질러요?”
“이···. 이것들이, 나도 쓸 때는 쓰거든. 대신 비율은 그대로 간다.”
“비율도 조정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니, 그럼 내년에 할 게 없잖아. 올해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 내년에 다시 조정해야지.”
“아니, 무슨 아르바이트 계약협상도 아니고 매년 해요? 그냥 한 번에 하지.”
“매년 계약에 신경 쓰는 것도 나쁘지 않아. 우리는 이만큼 너를 챙기고 있다는 뉘앙스를 계속 풍겨야지.”
“다른 애들이 박탈감을 느끼지 않겠어요?”
“그럼 걔들도 잘하라고 해. 능력이 되는 만큼 대접을 받는 게 이 바닥 아니냐?”
“그렇죠.”
“그럼 그렇게 김미영한테 계약서 만들라고 하고 그만들 나가라. 밥 먹고 말 많이 했더니 또 배고프다.”
“네.”
“갑니다.”
이기호는 대표실을 나와 일형과 헤어졌다.
‘라미아라···.’
그리운 이름을 들었다.
“연락해볼까?”
만나지는 않지만 간간이 안부 전화는 하는 사이였다. 전화를 거니 하이톤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이게 누구야? 잘 살아 있는 모양이다.”
“네. 누나도 여전히 씩씩하네요. 잘 지내죠?”
“설마 안부 전화? 해가 서쪽에서 떴나? 네 안부 전화를 받다니. 나야 잘 지내지. 주부가 무슨 일이 있겠어? 남편 월급 제때 들어오지. 딸내미 잘 크지. 잘살고 있지.”
“누나 딸이 이제 중학생인가? 누나 닮았으면 예쁘겠네요.”
“엉, 무슨 소리야? 우리 딸 이번에 고등학교 들어간다. 그런데 너 내 딸 본적 없어?”
“꼬맹이 때 보고는 못 봤죠. 같은 양천에 사는데 사는 게 바빠 시간이 없네요.”
“그래? 우리 딸이 언젠가 네 와이프 만나고 와서 좋아서 방방 뛰던데.”
“네? 와이프요?”
“그래. 우리 딸 성악을 배우고 있는데 네 와이프 보고 와서는 나중에 자신도 저런 성악가가 되고 싶다고 그러더라.”
“하긴 우리 와이프가 포스가 넘치기는 하죠. 그런데 딸이 음악 한다는데 안 말리셨나 봐요.”
“그래. 말릴 이유가 없지. 좋다고 하는데. 사람이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야지. 얼마나 긴 시간을 산다고 참으면서 살아?”
“그렇긴 하죠. 누나, 누나는 지금 행복해요?”
“갑자기 왜 그래? 어울리지 않게”
“그냥 문득 오늘 누나 생각이 나는 일이 생겼네요. 그때 내가 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케케묵은 이야기는 왜 꺼내? 이 누나 지금 행복하다. 오히려 지금은 다행이다 싶어. 너와 계속 함께했다면 이런 행복이 있는 줄 몰랐을 테니까. 그런데 내 생각이 났다고 하면 또 누구 잡고 있겠구나. 신예성이냐?”
“여전히 그래도 관심은 두고 사시나 보네요. 신예성을 아는 것 보니.”
“그렇다기보다는 딸이 워낙 좋아해서 그렇지. 우리 딸이 아마 신예성 팬 1호일걸. 적당히 해라. 너도 이제 적은 나이 아니잖아?”
“제 나이가 어때서요? 저 아직 짱짱한 나이에요. 그런데 딸이 신예성 팬이라고요?”
“그래. 신예성이 데뷔하기 전에도 같이 노래도 부르고 해서 얼마나 좋아한다고?”
“어? 노래요?”
이기호는 그제야 이 누나의 딸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신예성과 노래를 부른 이는 레드엔젤 말고 한 명밖에 없었다. 거기다 고등학생이 된다니.
“딸이 조승아에요?”
“그래. 몰랐나 보네. 예전에 이름을 듣고 예쁘다고 해놓고는.”
“그때가 언젠데 기억해요? 허, 그런데 조승아라니, 이렇게 인연이 닿네요.”
“아니 안 닿았거든? 그리고 닿지 않기를 바란다. 네게 시달린 건 나 하나로 족하니까.”
“아! 누나, 예전이랑 지금의 전 완전 다르다니까요.”
“다르긴, 내 생각 났다는 거 보니 그대로구만. 아무튼, 우리 딸은 연예계에 발 디딜 생각 없어. 고등학교 졸업하면 유학 보낼 거야. 어쩌면 중간에 가게 될지도 모르고, 아 참, 네 와이프에게 고맙다고 전해 줘라. 소개장 써준다고 하더라.”
“네.”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내게 미안한 감정 같은 거 있다면 털어버려. 난 지금이 좋고 행복하니까.”
“네. 그럴게요.”
“그래. 자주 좀 연락하고 살자. 우리가 원수도 아니고 그래도 불타는 청춘의 시기를 함께 보냈던 사이잖아. 안 그래?”
“어허, 이 누나 큰일 날 소리 하시네. 같이 일한 게 어떻게 그렇게 해석할 수 있어요? 남이 들으면 오해해요.”
“오해는 무슨?”
“아무튼, 밝은 목소리 들으니 좋네요. 종종 연락할게요.”
“그래. 바쁜 네가 연락해라.”
“네. 끊어요. 누나”
“그래.”
전화를 끊고 이기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 누나는 참 아쉽다. 진짜 대단한 누나였는데.
아마 그때의 자신이 조금 더 자제했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가만 그러면 와이프와 은혜도 없었던 일이 되잖아. 그건 안되지. 암. 생각해보면 잘한 일인지도 몰라. 누나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고 서로 윈윈한거라 치자.’
“자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까? 예성아”
**
“오빠, 어떡할 거야?”
“무···. 뭘?”
“지금 이 부엌 꼬락서니를 보고도 왜라는 말이 나와? 왜 갑자기 탕수육은 해 먹자고 해서 이런 난장판을 만든 건데?”
동생의 말대로였다. 부엌은 난장판 그 자체다. 여기저기 흩날려 있는 튀김가루와 사방으로 튄 기름.
“오···. 오빠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그리고 너도 좋다고 해놓고 왜 이래?”
“그거야 탕수육이잖아. 당연히 탕수육은 맛있잖아? 그래 모름지기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다 용서가 되지. 그런데 결과가 이 모양이잖아?”
동생이 나의 작품을 가리키며 삿대질을 해댔다. 그것도 두 번이나.
동생이 화내는 것도 이해는 한다. 이건 뭔가 아니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아야 하건만, 노릇노릇 잘 익은 탕수육이 왜 안은 생고기란 말인가? 해동이 덜된 것을 무시한 것이 이런 결과를 초래할 줄이야.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기분이 다르다는 것은 알지만, 옆에서 오빠 파이팅! 그러다가 결과를 보고는 바로 안면을 바꾸다니. 현대사회의 기회주의적인 사회의 단면을 확인한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
이놈의 동생은 마치 날을 잡았다는 듯이 또 나를 깐다. 엄마가 또 너에게 뭐라고 한 거냐? 동생아.
이놈의 집안은 어떻게 된 게 군대도 아닌 것이 내리갈굼이란 말인가?
“이게 뭐니? 이게.”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나를 빤히 쳐다본다. 동생이 원하는 말은 뻔했다. 자기의 입에서 탕슉, 탕슉 노래를 부르게 한 책임을 지라는 뜻이 분명했다.
“알았다. 눌러라.”
내 말에 떨어지지 바로 날아오는 동생의 추가 주문.
“오빠, 깐풍기 추가 콜?”
“그래 먹고 뒈져라. 시켜”
확실히 이 녀석이 먹을 줄 안다.
매운 것과 단것의 조합의 어마 무시함은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아! 달아. 그러면서 깐풍기를 먹으면 아! 매워 다시 탕수육을 먹고 아! 달아 이런 식으로 무한 루프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동생은 전화하고는 부엌을 치우기 시작한다.
“웬일이냐? 내가 치우는 걸 돕고?”
“오빠는? 언제는 내가 아무것도 안 한 것처럼 말하네?”
“그야.”
“어쩌다 한 번쯤 안 했어도 너무 그런 것만 마음에 담아두는 거 아니야.”
동생은 치우면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고 있었다.
그 한 번쯤이 여러 번보다 더 자주면 해도 되지 않겠냐?
“그리고 깐풍기 시킨 것도 오빠를 위한 거야. 오빠가 오늘 밤에 얼마나 용을 쓰게 될지 뻔한데 잘 먹어야 하지 않겠어?”
“그래 고맙다. 너는 그럼 내가 먹는 걸 보기만 하겠구나.”
“에휴, 또 어떻게 그래? 처량하게 혼자 먹는 걸 어떻게 보고만 있어? 하는 수 없이 내가 마주 앉아만 있어 줄게.”
“그래. 그거 고맙다.”
배달이 왔다.
음식을 앞에 펼치자 동생은 약속대로 맞은 편에 앉았다. 그리고 나의 상상이 현실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어, 이건 왜 이렇게 달아? 이러면 안 되지. 장사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할 수 없지 깐풍기를 먹어야지. 아니, 이건 또 왜 이렇게 매워? 후와, 후와! 하는 수 없지. 다시 탕수육으로….”
쉬지 않고 쫑알거리면서 먹는 동생이다. 이놈이 방학 동안 집에 혼자 틀어박혀 있더니 혼자서도 이렇게 잘 놀 줄이야.
예전에 동생이 스쳐지나 듯이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오빠 때문에 나가지도 못한다고. 정말 그럴까 걱정이다.
예린은 워낙 내 동생이라는걸 신경 쓰고 사는 아이니.
거기다 간혹 동생이 신경질적으로 문자를 하는 경우를 보면 친구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내 이야기를 확인하려고 문자를 보내는 모양이다.
무시할 수도 없고, 누구만 답해주고 누구는 안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시달리긴 시달리는 모양이다.
“오빠, 안 먹어? 자꾸 안 먹으니까 내가 자꾸 먹잖아.”
“헐, 그러냐? 그래 먹자.”
잠시 후.
“우리 정말 대단하지 않냐?”
“오빠 동감이야. 우린 정말 대단해. 둘이서 이걸 다 먹다니. 일어나질 못하겠어.”
“하지만, 동생아, 둘 중에 누구는 이것을 밖에 내놓아야 하지 않겠니?”
“몰라. 오빠가 알아서 해.”
“그럴 수는 없지. 오빠가 샀으니 마무리는 네가 해야지.”
“오빠, 사주고서 욕먹는 경우가 어떤 경우인지 알아? 바로 지금처럼 내가 샀다고 생색을 내는 순간이야.”
“오빠가 네게서 점수 따서 뭐할까? 그냥 네가 치워라. 난 할 만큼 했어.”
“나도 할 만큼 했거든. 음식 남을까 봐 억지로 먹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러고는 동생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도 동생을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뜻이 통했다.
“가위, 바위 보!”
그리고 나는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동생아, 요즘 오빠가 대운을 몰고 다닌다는 걸 몰랐구나.
동생이 낑낑거리며 일어나려고 바둥거린다.
“오빠···. 손 좀 잡아줘.”
“참 가지가지 한다. 진짜”
동생을 일으켜 세워줬다.
이제 밥을 먹었으니 학생의 본분을 해야 할 차례다. 숙제를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유는 안다. 그래 때가 머지않았다.
“오빠, 시계 좀 그만 봐. 그런다고 시간이 빨리 흐르지는 않아.”
“예린아, 오빠 이번에 1등 할 수 있겠지?”
“글쎄, 어렵지 않을까?”
“그렇겠지?”
“뭐야, 반응이 왜 이래? 여기서는 긍정하면 안 되지? 캐릭터가 흔들리고 있잖아. 여기서는 폭발하는 리액션을 보여야지.”
“예린아, 오빠도 이제 1년이 다 되어간다. 세상의 이치쯤은 깨닫고도 남는 시간이지. 시간이 지나면 모를까 시작부터 1위를 찍기는 틀렸지. 1위를 하기 위해서는 조직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단다.”
“철 들었네. 하는 수 없지. 내가 오빠를 위해 희생해 줄게.”
“뭐?”
“만 원 빵 내기 한판 해. 내가 오빠를 위해 오빠가 1위 한다는데 걸어줄게. 오빠는 1위 못해도 돈 따서 기분 좋고, 나는 음식값 품빠이 한 셈 치면 되는 거니까.”
“오빠가 고마워해야 하는 상황이냐?”
“그럼 당연하지. 내 생돈 나가는 거야.”
“왠지 만 원 받고 오만 원 뜯기는 미래가 보이는 건 내 착각일까?”
“당연하지. 오빠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미래보다 현재에 충실해.”
“알았다. 하자. 네 마음 씀씀이가 참 고맙다.”
“그래.”
그리고 시간이 흘러 운명의 시간이 도래했다. 그리고 나와 동생은 서로를 마주 봤다.
“동생아!”
“오빠!”
“그래.”
“돈 내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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