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 singer is one RAW novel - Chapter 102
97. 준비 >
방송이 있는 날이 될 때까지 감춘호 교수님과 방주원 씨는 매일 한 시간씩 나와 어울려 연습을 했다. 연습하다 곡의 변화가 생겨났다.
그리고 곡의 변화를 줄 때 꼭 나의 의견을 물어왔다.
내가 마냥 좋다는 듯이 웃고 있어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잠시 짬을 내어 쉴 때, 내가 궁금해서 물으니 별걸 다 묻는다는 듯이 이야기를 했다.
“이건 네 곡이잖아? 그러니까 이건 검수받는 거나 다름이 없어. 넌 건축가야. 그리고 우리는 시공업자지. 노래를 만드는 것은 하나의 건물을 짓는 거나 마찬가지야. 넌 설계도를 그리고 다른 시공업자들이 시공하지. 넌 초보 건축가니까 숙련된 시공업자들이 보면 조금 더 나은 방법이 있겠지. 그리고 방법을 제안은 할 수 있어. 하지만 그걸 바꾸고 안 바꾸고는 네 몫인 거야.”
“그런가요?”
“그래. 가수가 작곡가에게 노래를 산다는 것은 건축가에게서 집을 사는 거랑 같아. 그래서 넌 네가 지은 집에 네가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어. 그리고 춘호 형이나 나는 너에게 초대를 받아서 놀러 온 주제에 리모델링을 제안하고 있는 거야. 당연히 집주인의 의견을 들어야 하지 않겠어?”
“헤에, 집주인이라···.”
우리의 대화를 듣던 교수님이 말을 덧붙이신다.
“음악은 정답이라는 게 없어. 네가 만든 것도 좋고 우리가 한 것도 좋아. 하지만 평가는 내려지지. 그리고 어느 게 옳은지는 모르는 거야. 어쩌면 네가 만든 잔잔하지만 감미로운 노래가 더 좋을지도 몰라.”
“에이, 설마요? 대가인 두 분의 음악보다 더 나을 리가 없잖아요?”
“글쎄, 그건 모르는 일이지. 음악이라는 건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라 조금씩 유행이 달라져. 그리고 그 유행을 끌어내는 것은 새로운 얼굴의 젊은이들이지. 솔직히 내가 젊을 때 활동하던 시절에는 설마 아이돌 음악들이 인기를 끌게 될 줄 아무도 상상을 못했을 거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포크, 발라드, 트로트 등이 주류를 이뤘거든. 그런데 특이한 그룹이 하나 튀어나오면서 지금의 세상이 되어버린 거지.”
“저도 알아요. 동태지와 소년들 말씀하시는 거죠? 드라마에서 봤어요.”
“그래. 그들이야. 완전히 음악판을 뒤집어 버린 사람들이지. 그 당시만 해도 돈을 가진 성인들이 음악을 구매하던 시기였는데 그들이 나타나면서 트로트와 발라드는 밀려나고 댄스음악이 주를 이루게 되고 10대들이 음악의 주도권을 쥐게 된 거지. 그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 아무도 그런 상황을 예측한 사람은 없었어. 모두 저것도 노래냐 이런 식의 반응이었는데 그들이 대세가 된 거야.”
서···. 설마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은 내가 그런 엄청난 인물이 될 거라고 보는 건가?
나의 기대 섞인 눈빛을 본 것일까?
주원 형이 나를 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지금의 세상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못하지. 그 당시에는 외국의 음악을 듣기가 힘들어서 문화 충격에 가까웠으니까 그렇게 되는 거지. 지금은 손가락 까딱하면 어떤 노래든 들을 수 있는데 가능할 리가 없지.”
“저···. 저도 알고 있거든요.”
그래. 그냥 김칫국 한 탁배기 한 것뿐이다.
“하지만 부흥기는 끌어낼지도 모르는 일이야. 아까도 말했다시피 유행은 돌고 도는 거다. 후크송이 이렇게 유행할 줄 누가 알았을까? 지금의 세상은 하나가 잘되면 누구나 그것을 따라 하는 세상이야. 그러니 예성이 네가 크게 성공하면 너를 예로 삼아 뒤를 따르는 이가 생길지도 모르지.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는 거지만.”
“네. 아마도 그렇겠죠.”
“자, 그럼 다시 해볼까?”
“네.”
오랜 시간을 같이 연습하지는 않지만, 매일매일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는 시간이다.
기타는 악기다.
연주하면 연주하는 대로 소리가 나는 악기, 하지만 그런 악기지만 이들의 연주는 나에게 이게 내가 즐겨 치던 기타 소리와 같은가 의문이 들게 한다.
마치 사람의 기분에 따라 목소리가 달라지듯이 그들은 기타로 감정을 연주하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야 하는 내가 위축될 정도다. 그러다 보니 나도 안간힘을 쓰며 최선을 다해 노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교수님과 주원 형이 웃음을 띠었다. 마치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것처럼.
****
“예성아, 5분이다.”
연습을 마치고 쉬고 있는데 느닷없이 나타나 던지는 말이다.
하지만 1년을 호흡한 사이. 척하면 착이다.
“공연시간인가요?”
“그래. 충분하지?”
“네. 그런데 용케 시간을 얻어냈네요.”
“예성 학생이 처음으로 음악방송에 나가는데 그 정도는 당연히 해줘야지.”
“어련하시겠어요?”
“사실 기사 득을 크게 봤지.”
본부장님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 기사는 매일 나왔다. 내 이력이 독특했기 때문이다. 이번 앨범의 곡은 필연이 버전이 다르게 두 곡이 들어 있다. 그런데 이 두 곡이 모두 10위 권 안에 들어갔다. 거기다 어쿠스틱 버전은 1위에 올랐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차트 점령”차트 석권”차트 올킬’ 이런 이야기가 기사로 계속 나왔다.
거기다 한국의 유명 기타리스트 두 명이랑 무대를 준비한다는 이야기도 기사로 나와 기대된다는 반응도 컸다.
인맥이 작용한 결과지만 이름 높은 두 분이 나와 함께하는 것은 나도 항상 놀라고 있는 일이다.
“예성 학생, 올해도 우주의 기운이 예성 학생에게로 흐르고 있어. 분명해.”
“그럼 본부장님은 우주를 움직이는 사나이인가요? 앨범 발매 날짜를 본부장님이 정하셨으니.”
“어? 그렇게 되나? 미리 알았으면 로또 살 때 썼을 텐데.”
“물론 그러시겠죠. 그런데 본부장님, 무대 말인데요.”
“그래. 뭐 더 필요한 거 있어?”
“아뇨. 무용수를 뺐으면 하는데요.”
“인제 와서 왜? 무대는 꽉꽉 채워야 있어 보이는 거야.”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오히려 산만해 보일 것 같아요. 그냥 무대 세팅만 하죠.”
온전히 음악으로 무대를 채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냥 두 분과 함께 연습을 하다 보니 생각은 저절로 이대로도 넘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지나치면 안 좋다. 오히려 무용수들이 음악의 집중에 방해가 될 것 같았다.
말하는 나를 유심히 살피더니 본부장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예성 학생이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면야. 그렇게 해줄게.”
“고맙습니다.”
“뭐가? 음악에 관해서는 예성 학생이 무조건 옳은 거야. 결과가 말해주잖아. 내일 가서 잘해.”
“네. 최선을 다할게요.”
다음날이 되어 아침부터 석태 형이 왔다. 그런데 오늘은 손님도 한 명 있었다.
“어, 누나도 왔네요.”
심영 누나가 차에 앉아 있었다.
“그래. 안녕! 오늘은 녹화 끝날 때까지 같이 있어야겠다.”
“그래요?”
“그래 얼른 타.”
“네.”
차에 오르자 누나가 고데기를 꺼내 차에 연결하면서 말한다.
“내가 있으니까 이렇게 여유로운 거야. 다른 이들 같았으면 새벽부터 미용실 가느라 바빴을걸.”
“네. 언제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흥, 말로만?”
말하면서 내 머리를 집고는 세게 쫙쫙 당기는 심영 누나다.
“아파요. 그럼 뭘? 아아~, 알았어요. 아직 아침이라 안 되는데?”
“뭐가?”
“아! 아! 크흠! 시작할게요. 줄 수 있는 게 이 노래밖에···. 악! 누나 살살~”
“예성아, 조심하자. 누나 지금 흉기(?) 들고 있다.”
“네. 죄송해요. 아침이라 제가 무리수를 두고 말았네요.”
“잘하자.”
“네. 그런데 누나 머리 타는 냄새가 나는데 착각이겠죠?”
“그래. 누나 프로야. 믿어.”
“네.”
하지만 그날 믿음의 대가로 나는 생전 처음 해보는 머리 모양을 하게 되었다.
머리와 메이크업을 받는 동안 차량은 방송국 정문에 도착했다.
“여기서 내려.”
“안 들어가요?”
“출근길 인사하고 들어가야지. 내려서 들어가다 중간쯤에 서서 인사 크게 하고 들어와.”
“그렇게 해야 해요?”
“맞다. 너 처음이지. 심영 누나, 같이 들어가 줘.”
석태 형의 말에 누나가 싫은 내색을 팍팍 냈다.
“아, 나 부스스한데.”
“누나, 아무도 누나 신경 안 쓰거든요.”
“맞을래? 가자.”
“네.”
차에서 내리니 청문 안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방송은 오후 4시 아닌가요?”
“그냥 출근하는 연예인들 보러 온 거야. 보고 갈 거야.”
“이···. 이 많은 사람이 그냥 지나가는 연예인을 보러 모였다는 건가요?”
“그래. 뭐가 놀랍다고 그래? 한 명이 지나가는 것도 아니고 출연하는 이들 다 지나갈 텐데 눈요기 제대로 하는 거라 저들은 즐겁게 기다리고 있는데.”
“그런가요?”
“그래. 가자.”
“네.”
내가 걸음을 옮겨 정문으로 들어서자 많은 사람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공연장에서 느끼던 시선들이랑은 또 다르다. 마치 신기한 동물을 보듯이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다.
“어 신예성이네.”
“아침부터 힘 빡 줬네. 잘생겼어.”
“그러게. 하지만 우리 총탄소년단 오빠들에게는 안되지.”
“그래도 잘 생겼다.”
“이거, 어디서 잡덕의 향기가 풍기는 것 같은데.”
“아니야. 그냥 말도 못하니?”
사람들의 말이 내 귓가에 와서 꽂힌다. 역시 급식 이들에게는 나의 매력이 통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때 내 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신예성, 화이팅!!”
큰 목소리가 나오고 다시 그보다 더 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쳐다보니 방학이라 얼굴도 보지 못했던 친구 규석이가 나를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설마 기사를 보고 응원을 와준 걸까? 그런데 익숙한 이가 한 명 더 보였다. 어라? 저 실루엣은 승아인데? 왜 같이 있는 거지? 거기다 바짝 붙어있어. 이런 미친.
서······. 설마 이 자식 승아랑 사귀···. 그럴 리가 없지. 암, 미녀와 야수도 정도껏 하지. 어디 승아 같은 천사에게 저런 오크 같은 놈이······.
공부도 못해. 십덕에, 집이 잘살지도···. 아니 잘사나? 카메라 비싼 거 샀다고 자랑하던데.
생각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심영 누나가 나를 바다에서 건져냈다.
“뭐해? 인사 크게 하고 들어가자.”
“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안녕하세요. 신예성입니다. 오늘 음악방송 첫 출연이라 긴장이 많이 되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를 하고 열심히 손을 흔드는 규석과 승아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머릿속으로는 방금 본 미스터리에 대해서 생각하기 바빴다.
‘그래.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물어보자.’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보내고 답신을 기다렸다. 하지만 내 이름이 붙은 대기실에 들어갈 때까지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대기실을 보니 규석에 대한 생각은 머리에서 날아가 버렸다.
“누···. 누나, 본래 이렇게 넓은 곳 줘요? 다른 사람이랑 같이 쓰는 건가? 하지만 내 이름만 붙었던데?”
내 물음에 누나도 생각에 잠긴 표정이다. 그리고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하나밖에 없어. 너 오늘 1위 후보인가보다. 아니면 너 같은 신인에게 이런 대기실을 줄 리가 없어.”
“설마요? 그럼 미리 알려주지 않아요?”
“알려줬겠지. 그리고 누가 중간에서 잘라먹었겠지.”
심영 누나가 입을 삐쭉 내밀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 잘라 먹은 사람은 어제 나에게 우주의 기운이 나에게 흐른다는 헛소리를 한 장본인일 것이다.
“이런 걸 말도 안 해주다니 도대체 왜 그런데요?”
“나름 써프라이즈 아닐까?”
“도대체 무슨 생각하면서 사시는 분인지 모르겠네요. 장난칠 게 따로 있지.”
“아마 본부장님도 너 보면 그런 생각할걸?”
“그런데 인사 다녀야 하지 않을까요? 본래 그런다고 들었는데.”
“기다려봐. 석태가 스케줄표 받아 올 거니까.”
“네.”
그리고 석태 형이 기쁜 얼굴로 들어왔다.
“예성아 축하한다. 너···.”
“1위 후보라고요?”
“그···. 그래. 그런데 표정이 별로네.”
석태 형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누구 때문에 기뻐해야 할 타이밍을 놓쳐버려서 그런가 봐요. 그게 스케줄 표인가요?”
1위 후보라. 대단하기는 하다. 솔직히 그것보다는 오히려 오늘의 공연이 더 신경 쓰인다고 하면 내가 미친놈인가? 나 혼자 꾸미는 무대라고 하면 그냥 실수해도 다음에 잘하면 되지 이러겠지만, 같이 연습해온 분들에게 손해를 끼치게 될까 그게 걱정이다.
“그래. 확인해.”
“네.”
내용은 별거 없었다. 오전에 드라이 리허설 하고, 오후에 총리허설, 그리고 녹화였다.
“그럼 이제 인사하러 가면 될까요?”
“아니 기다려. 어차피 아직 다 오지도 않았을 거야.”
“네.“
어차피 기다리면서 할 일도 있었다. 규석의 답장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답장이 안 온다.
하는 수 없이 승아에게 문자를 보냈다. 승아도 답이 없다. 궁금하다. 궁금해. 전화할까?
그러다 서로 썸 타는 관계인데 내가 물어서 분위기가 깨지면?
그럼 규석이 놈이 나를 죽이려고 할 텐데.
그냥 있기에는 궁금하고, 나서기에는 훼방꾼 같고. 아! 미치겠다.
혼자서 놀다 보니 시간은 잘 갔다.
시간이 흘러 인사를 하러 돌아다녔다.
어차피 나보다 어린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인사를 다니면서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있다고 해도 그룹이라 한 명씩 섞여 있을까? 솔로 가수도 있었는데 난 솔직히 그가 누군지 몰랐다. 하지만 인사를 하러 가니 반갑게 맞아줘서 나도 기분 좋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인사를 하고 돌아오니 교수님과 주원 형이 와 있었다.
“일찍 오셨네요.”
“그래. 리허설 맞춰봐야지. 그나저나 첫 방송에 1위 후보라니.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기왕이면 1위 해. 이런 무주공산이 자주 있는 게 아니야.”
“에이 그게 되겠어요? 상대가 총탄소년단인데.”
“보니까 3주째 1위더라. 밀어낼 수 있어.”
“그러면 정말 행복하겠네요. 제 생애 첫 트로피니까요. 개근상 말고는 받아본 적도 없는데. 헤헤”
“그런데 리허설은 몇 시야?”
“11시랑 2시입니다.”
“좀 기다려야겠네. 그래도 대기실이 넓어서 다행이야.”
“네. 정말 그렇네요.”
이분들을 좁은 대기실에서 기다리게 했다면 내 마음이 얼마나 불편했을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오늘 1위 후보라는 것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였다. 이 넓은 대기실이 북적대기 시작했다. 가수들이 모두 내가 있는 대기실로 인사를 하러 왔다. 교수님 때문이다.
교수님과 안면이 있는 가수도 있고 안면을 익히려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거기다 주원이 형도 인기가 많았다.
나는 구석으로 피해서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았다. 꼭 내 미래의 모습을 보는 느낌이라고 나 할까?
‘그래. 나도 저렇게 나이가 들어가야지.’
그런 결심을 하는데 머리에 스치는 것은 골방에서 컴퓨터로 작곡하는 꿈속의 나였다.
‘아니, 지금 네 차례 아니거든. 지금 나오지 마.’
끝
ⓒ 꿈속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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