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 singer is one RAW novel - Chapter 105
100. 그건 다음번에 >
“안 가.”
동생이 시큰둥하게 말한다. 애초에 이 녀석에게서는 기대도 안 했다.
“흥, 너야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하지만 넌 강제 참가야.”
“아들, 엄마도 썩 내키지 않아. 거기 가면 기자들이 넘쳐날 것 아니니?”
“그렇긴 하지.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니고 상우야. 상우가 나오는 영화라고, 엄마가 밥 먹이고 키운 상우가 나오는 영화라고.”
“누······. 누가 들으면 꼭 상우가 내 아들인 줄 알겠구나. 상우가 세 번이나 언급됐어. 아들, 내가 상우를 키웠으면 상우 엄마는 너를 키운 게 되는 거니?”
“엄마, 그렇게 말할 만큼 상우가 우리 가족과 가깝다는 거지. 그런 상우가 처음으로 블록버스터영화에 나왔는데 가봐야 하지 않겠어? 거기다 상우 가족도 올 텐데 인사도 나누면 좋잖아?”
이 여사는 예성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상우는 아들의 단짝 친구인 만큼 그 가족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기도 했다. 그동안은 사는 게 바빠서 그냥 지냈지만, 여유가 생겼으니 인사를 나누는 것도 좋은 생각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건 그렇구나. 우리 아들을 많이 챙겨줬는데 인사는 해야지. 상우 아버님이야 병원에서 봐서 인사를 했지만 상우 어머니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성우와 예성은 친구지만 상우 부모님과 이 여사는 나이 차이가 컸다. 거기다 상우 엄마는 이 여사가 학교행사를 가지 못한 만큼 항상 자기 아들을 챙겨줘서 고마운 분이기도 했다.
“그래. 아들 가보자꾸나.”
“잘 생각했어. 어차피 극장에 따로 들어가면 별일 없을 거야. 처음으로 아들이랑 같이 앉아서 영화 한 편 보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이 여사는 아들의 말에 기억을 더듬었다.
‘극장이라······.’
자식이 태어나고는 한 번도 가본 기억이 없다.
“참 오랜만이네. 네 아빠가 있을 때도 비디오로 빌려 봤지. 극장은 비싸서 잘 안 갔었는데.”
“동생아, 비디오란다.”
“오빠, 나도 들었어. 이 기가 인터넷시대에 비디오가 웬 말이야?”
“이것들이! 엄마를 놀려? 하지만 그거 아니? 그 비디오가 없었으면 너희들은 태어나지도 않았어. 그때 네 아빠가 젖소 부인···.”
“엄마, 잠깐 거기까지. 자식들 앞에서 제목 언급만은, 방송이었으면 삐-삐-삐 처리 감이거든.”
“그래. 엄마, 그건 아니지. 오빠가 찾아본단 말이야.”
“찾아보는 건 너겠지. 컴퓨터 덕후 주제에. 네가 방학하고 나서 우리 집에 누진세 적용되는 건 알고 있니?”
“읔, 그건 엄마가 오빠 보약 만드느라 그런 거거든.”
“그럴까? 아니라도 그렇다고 치자. 그 대신 동생 너도 와야 해.”
“엄마랑 가면 됐지. 나는 왜? 그냥 좀 내버려 두면 안 되겠어?”
“가족이잖아. 우리도 남들처럼 뭔가 같이 공유하는 추억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더 지나봐라. 기회가 없어. 너 내년에 고3이고 그 후에 대학 가면 집에서 독립하게···.”
갑자기 동생의 눈이 동그래지면서 말을 자른다.
“뭔 소리야? 왜 독립을 해? 악착같이 붙어있을 거야. 집 나가면 고생인데 내가 왜 나가?”
“허, 엄마, 엄마가 너무 곱게 키워서 이런 거야. 애가 자립심이 없어.”
“역시 그렇지. 가만있어도 냉장고만 열면 밥이 준비되어 있고 용돈 주지. 온종일 뒹굴어도 뭐라 그러지 않지. 내가 자식을 키운 것인지 애완동물을 키우는 건지 모르겠다.”
“이익, 애완동물은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아니, 너 요즘 보면 정말 쳇바퀴도 굴리기 귀찮아하는 나태한 비만 햄스터처럼 보이거든. 햇볕은 받으면서 사냐?”
“이 추운 겨울날 집 밖은 위험한 거 몰라?”
“허, 그 추운 날 매일 집 밖을 나가는 엄마와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냐?”
내 말에 동생이 나를 노려본다. 하지만 노려 보면 어찌할 거냐? 넌 벗어날 수가 없어.
“알았어, 가면 되는 거지?”
“그래. 그냥 간다고 하면 될 걸 꼭 튕기냐? 너도 여자라고 티 내는 거야?”
“오빠처럼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몰라.”
“그런가? 하지만 이 오빠의 동생으로 태어난 이상 네가 감내해야 하지 않겠어? 지금이야 신경 쓰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그런데 아들”
엄마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응?”
“이번에 삼촌이 오신다고 하네.”
“뭐? 삼촌이?”
“그래. 어제 연락 왔어.”
“별일이네. 명절에 오신다니. 서울 올라오고 처음 아니야?”
“맞아. 오빠. 정말 오빠가 잘되니까 이제야 생각이 나는가 보지. ‘아! 이런 조카가 있었지.’라는 느낌!”
동생은 말을 하면서 한껏 인상을 찡그렸다. 뒷말은 안 해도 알 것 같았다. 그래 도움 좀 받을 수 있겠어.
“딸, 너무 그러지 마라.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어렵게 살지도 않잖아. 애초에 자기 어머니, 아버지 제사 때도 안 오는 사람이라니 말이 되는 거야?”
“교인이잖아?”
“아니, 교회 다니면 부모님도 나 몰라라 해도 돼?”
뭐 동생이 화내는 기분도 이해는 하지만 이것에는 동생이 모르는 다른 문제가 있었다. 아니 문제가 생기기 전에도 안 왔으니까 그건 아닌가?
아버지가 살아 계실 적에는 내려와서 절은 않았지만 자리를 채워주던 삼촌이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는 그다음 해까지는 왔던 거로 기억이 된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쭉 오신 적이 없다. 그래도 그때는 못 오신다고 엄마랑 연락도 하고 그랬는데 결정적으로 틀어지게 된 계기는 바로 엄마가 서울로 올라온 후 묘를 파서 봉안당에 올리면서였다.
서울에 올라온 후 엄마는 힘들게 살게 되면서 고향의 묘를 돌볼 수 없었다. 우리가 어리기도 했고 바쁘게 사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묘를 파서 봉안당으로 올리기로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기독교 추모공원이냐? 절이냐? 엄마와 삼촌이 대판 싸움이 붙은 것이다. 참고로 삼촌 집안 빼고는 애초에 우리 집안은 다 불교는 아니더라도 유교의 제사를 모시는 불교에 가까운 무교 집안이다.
그러니 엄마로서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절에서 불경 소리를 들으면서 편히 쉬셨으면 했던 거고, 예수를 믿는 삼촌과 숙모로서는 그게 또 탐탁지 않으셨다.
그 싸움의 결론은 엄마의 승리로 끝이 났다. 삼촌이 하고 싶은 대로 하려거든 제사를 가져가라고 말을 했다. 거기다 중요한 돈 문제, 그 비용을 엄마가 부담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리지만, 그때의 나는 더 어렸다. 그리고 제사의 모든 준비는 엄마가 다 하신 것이다. 나는 그냥 시키는 대로 제사만 지냈을 뿐. 그래서 아마 그 시기에 엄마의 섭섭함이 폭발했던 시기라고 생각한다.
맏며느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지만, 무관심한 삼촌에게 섭섭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무촌의 남이 아닌가? 그런데 정작 피가 이어진 아들은 나 몰라라 하니 속상했을 것이다. 거기다 학교도 같이 다닌 후배가 그러니 더 짜증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 뒤로 계속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나도 엄마에게 삼촌 안 오시냐는 물음을 던지지 않았다. 으레 우리 가족만의 행사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지금의 나도 엄마가 봉안당을 선택한 것은 옳다고 생각한다. 고향에 이제 집도 없는데 명절을 어떻게 보낼 것이며 제사야 서울에서 지내더라도 고향 방문은 어떻게 할 것이란 말인가?
지금에야 내가 이렇게 가수 생활을 하니 형편이 바뀌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빠듯했던 엄마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고민거리였을 거라 생각한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제사 때 오지 않는 삼촌을 위해 변명을 하듯 하는 엄마의 말이.
“아들 삼촌 안 온다고 너무 섭섭해지마. 가족이라고 하지만 어차피 내리사랑이야. 지금 자신의 가족이 더 중요한 거지. 엄마도 너랑 예린이 때문에 이렇게 이 악물고 살고 있잖아.”
그런 삼촌이 온다는 소리에 감흥이 묘했다.
동생의 말대로 내가 잘되니까 오는 것인가? 그냥 잊고 지내다가 소식이 들리니 자신의 무심함이 떠오른 것인가? 아니면 자식을 키우다 보니 그냥 부모님이 생각나신 걸까?
‘뭐, 와보면 알겠지.’
****
회사에 출근한 난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혹시 심영 누나 봤어요?”
“아까 카페테리아에 있던데?”
“그래요? 이런 망했다.”
왜냐하면, 내 손에는 커피가 손에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탁할 것이 있는 이상 찾아가야 했다.
카페테리아로 가니 심영 누나가 커피를 한 잔 시켜놓고 멍하니 밖을 보고 있었다. 오늘도 여전히 부스스한 모습이다. 누나의 샤샤샤 능력이면 멋진 여자로 탈바꿈이 가능할 텐데, 자신에게는 정말 의욕이 솟지 않는 모양이다.
“여기 있었네요.”
“응? 예성이네. 왜? 누가 나 찾아?”
“네. 제가요?”
“뭐? 네가 왜? 오늘 일정이 비었잖아?”
“다른 게 아니라 부탁 좀 할까 해서요.”
“부탁? 뭔데? 일단 말해두는데 누나 돈 없고, 보증도 안 서. 거기다 메이크업은 가르쳐 주지 않아.”
심영 누나는 마치 무언가 중요한 것을 말하는 듯이 손가락을 꼽아 가면서 말했다.
“그런 거 전혀 아닌데요.”
“그······ 그러니?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 대부분의 부탁이라는 게 그런 거거든? 내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다니다 보니 전혀 돈을 쓰지 않고 쟁여놓고 사는 거로 보이나 봐.”
“제가 봐도 그렇네요. 여자란 자고로 자신에게 투자를 많이 하잖아요? 열심히 일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닭살 돋는 말도 있죠.”
“여자가 다 그런 건 아니지. 그런데 무슨 일인데?”
“다른 게 아니라 저희 엄마랑 동생이랑 이번 시사회에 가려고 하는데 코디 좀 부탁드리려고요.”
“협찬?”
“아뇨. 저도 아니고 엄마랑 동생이 협찬이 되나요? 그냥 사주세요.”
“가격은?”
“제가 여자 옷 가격을 알 거로 생각하세요? 그냥 미디움이나 레어로 부탁해요.”
“스테이크 시키냐? 그러니까 중간이란 말이지.”
“네. 명품은 입었다가는 또 구설수가 나올지 모르니까요. 그런 쪽으로 예민하세요. 그리고 치수는···.”
“아! 치수는 알아. 뒤풀이 하던 날 이야기 하다 보니 듣게 됐어.”
“그래요?”
“그래. 특히 네 동생이 하도 꼬치꼬치 물어서 곤란할 정도였어. 어려서 그런지 화장이나 옷에 관심이 많더라.”
“그래요? 그래 봤자 집안에서 꼼짝도 안 하는 녀석인데요. 뭐.“
뒤풀이 때도 아무도 집에 안 와서 가게로 찾아온 것이다.
“그래. 그런데 예성아, 여자 옷은 비싸. 알지?”
“네. 가···. 각오하고 있습니다.”
내 표정이 웃겼는지 심영 누나가 피식 웃었다.
“그래?”
“네. 엄마 옷은 외출할 때도 입을 수 있는 그런 옷으로 해주세요.”
“그래. 이 누나만 믿어. 내가 얻어먹은 것도 있으니 신경 써서 해줄게. 그러지 말고 시사회 가기 전에 어머니랑 동생도 회사로 데리고 와. 누나가 메이크업도 해줄게.”
“그래도 돼요?”
“그래.”
*****
심영 누나의 샤샤샤로 인해 시사회로 가는 차 안에서 여자들의 감탄사가 끊이지 않는다.
“어머, 어머, 어쩜”
“엄마, 헤에, 히히히, 엄마, 오늘은 10년은 젊어 보여.”
“딸! 딸도 내 배로 낳았지만 이렇게 예쁠 줄 몰랐어.”
나는 가만히 앉아서 엄마와 동생을 봤다. 이럴 때 끼어 들어봐야 본전도 못 찾는다. 가만히 쥐 죽은 듯이 있는 것이 불로장생의 지름길이다.
‘역시, 전문가의 손길이란’
심영 누나가 건네주는 영수증에 살짝 충격을 받았지만, 엄마와 동생이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통장은 숫자 놀음이기에 나에게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
“엄마, 나 심각하게 진로를 메이크업 쪽으로 고민할까 봐.”
“어머, 딸 그럼 엄마 매일 이런 얼굴로 살 수 있는 거니?”
“그런데 이쪽 일이 박봉이라고 해서 고민이야.”
“괜찮아. 딸, 어차피 돈은 오빠가 벌고 있잖니? 넌 하고 싶은 것을 하렴.”
엄마가 동생에게 이런 말을 하다니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다. 역시 여자의 미모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는 거란 말인가?
“엄마, 아무나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야. 그리고 예린아, 돈을 벌어서 남이 해주는 메이크업을 받을 생각을 해야지.”
“흥, 직접 하는 게 뭐가 나빠? 내 얼굴 내가 화장하겠다는데?”
“그래. 딸이 메이크업 배워서 아들이랑 같이 다니면 되겠네. 아들 곧 스타일리스트 구한다면서?”
“엄마 그건 아니지.”
“그래. 엄마 오빠랑은 아니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시사회장에 도착했다.
나는 모르고 있었는데 시사회장에는 포토존이 설치된다고 한다. 그래서 초대받은 지인들은 다 포토존을 통해서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석태 형, 그럼 엄마랑 동생 부탁해요.”
“그래.”
차에서 내려 포토존으로 걸음을 옮겼다.
포토존에 서기 전부터 나를 향해 플래시가 쏟아졌다. 이미 포토존에는 다른 연예인이 촬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 하는 것이기에 걸음을 옮기며 유심히 보았다. 포토존 근처로 가자 기자들이 나를 알아보고 셔터를 눌러댔다. 아직 포토존으로 올라갈 차례도 되지 않았는데 플래시가 터지자 당황스러웠다.
“신예성이다.”
“어쩐 일이지?”
“조연이랑 같은 학교 친구잖아.”
“아니 그것보다 OST를 불렀으니 당연히 초대받았겠지.”
기자들은 끊임없이 나를 향해 셔터를 눌러댔다. 나 같은 경우는 인터뷰도 안 하고 방송에도 많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기자들에게는 두고두고 써먹을 수 있는 사진을 마련할 목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신예성씨 올라가세요.”
“네.”
포토존으로 올라가서 환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누가 마이크를 주기 전까지 이러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참 어색한 상황이다.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도 아니고 마냥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으라니.
여러 각도로 사진이 찍히게 몸을 이리저리 틀면서 손을 흔들며 시간을 보내니 드디어 마이크가 나에게 전해졌다.
“이번에 상영하는 ‘무신 척준경’은 저에게 아주 특별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의 가장 절친한 친구가 출연했고, 또 제가 부른 OST가 엔딩으로 나오는 영화입니다. 저에게 특별한 영화인만큼 대박 나길 기원합니다. 무신 척준경 화이팅!”
화이팅 포즈를 마지막으로 포토존에서 내려와 시사회장으로 들어섰다. 들어가니 상우가 엄마와 동생 곁에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상우의 가족도 같이 서 있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그래. 오랜만이다. 이제 어른이구나.”
“그런가요? 이야 아줌마, 외국에 오래 계시더니 미모에 물이 오르셨네요. 지나가다 만나면 데이트 신청하겠어요.”
“어머, 얘 말하는 것 좀 봐. 예성이도 멋진 남자가 됐어. 이제 예성이라 못 부르겠는걸.”
“하하, 제가 좀 잘생겼지요.”
“으이그. 상우 오빠 앞에서 잘생겼다는 말이 나와?”
“상우는 규격 외지. 인간이 아니야. 잘 지내고 있냐? 밥은 먹고 다니고?”
내가 상우의 가슴을 툭 치며 말하자 상우도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너 정말 장난 아니구나. 인터넷으로 봤지만 노래 줄 세우기라니···.”
“그렇지. 이 형이 좀 잘나간다. 그런데 너 키 자란 거냐?”
말을 하다 보니 전보다 키가 더 자란 느낌이 든다.
“그건 아니고 액션 촬영하면서 자세가 교정되다 보니 3㎝ 정도 자란 것처럼 보여.”
“자세 교정만으로 그렇게 자란다고?”
내가 부러움을 담아 말하자 이놈이 멋쩍게 웃음을 짓는다.
“그러게 나도 지나고 나니까 알아채서.”
“그런데 어때? 잘 될 것 같아? 뮤직비디오는 정말 멋지던데?”
“글쎄다. 나로서는 최고라고 말하고 싶지만 모르겠다.”
“안 봤어?”
“봤어.”
“그런데···.”
말을 이으려고 하는데 사회자의 말이 들려 왔다.
“아! 아! 곧 ‘무신 척준경’의 시사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이야기하자.”
“그래. 수고해.”
시사회가 시작되었다.
배우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 자신들의 촬영 소감 등을 말하고 재밌게 봐달라는 인사를 남겼다.
행사가 끝나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느낌은 엄청나게 재밌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는 심정이다.
‘애매한데.’
나는 시나리오를 본 적이 있기에 내가 상상하던 화면과 차이가 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척준경이라는 인물이 역사서에서 무협지를 쓰던 인물이라는 평을 듣는 장수라서 좀 더 화려한 액션을 선보일 거라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뭔가 인간적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시나리오상에서는 적이 없는 강력한 주인공에 코믹한 조연으로 여겨졌지만 실제로 만들어진 영화는 그리 강해 보이지가 않았다.
‘필마단기의 돌파를 기대하면서 영화를 보는 사람은 실망하겠어. 거기다 생략된 장면들도 많아.’
영화는 편집이 전부라고 하는 장르다.
어차피 촬영하는 장면도 순서가 뒤죽박죽이기에 편집에서 어떻게 스토리를 만드느냐가 중요하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건 장면이 전환되면서 뭔가 이해가 잘 안 되는 장면이 등장했다.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어차피 영화야 짧은 시간에 많은 내용을 담는 것이기에 개연성은 무시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그만큼의 흡입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부족해 보였다.
‘신 감독님, 전작은 그렇게 멋지게 만들고 이번 것은 왜 이렇게 만드신 거지? 뭔가 사정이 있는 건가?’
영화를 다 보자 상우가 나에게 물었다.
“어땠어?”
“솔직하게 말해주길 바라지?”
“그래.”
“대박이라고는 못하겠다.”
“역시 그렇지?”
“솔직히 말하면 뮤직비디오가 영화 한 편을 담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어.”
“역시 그렇구나.”
“그래도 넌 멋지게 잘 나왔어. 웃기기도 했고, 척준경 동생이랑 만담하는 것도 재밌었어. 흔히 흥행은 실패해도 스타는 남는다고 하잖아. 넌 잘 될 거 같다.”
“그래?”
“그리고 말이야. 이건 내 의견이야. 내가 영화에 대해서 뭘 알겠냐?”
“정작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다 일반인이지.”
“하지만 내 의견이 전부는 아니지. 나는 시나리오를 봤기에 그럴지도 몰라.”
“그건 아닌 것 같다.”
상우의 얼굴에 촬영이 그리 매끄럽게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내가 고작 4분의 노래를 부르는데도 여러 가지 일이 생기는 데 오랜 영화촬영을 하는데 아무 일이 없을 수는 없지.’
“김상우 씨.”
“저기 너 부른다. 가봐.”
“그래. 다음에 보자.”
상우와 헤어져 집으로 올 때 동생과 엄마에게 감상을 물으니 엄마는 재밌게 봤다고 하고 동생은 그냥저냥이란다.
“오빠, 뮤직비디오가 더 재밌었던 것 같아. 오빠 뮤직비디오가 핵심을 다 보여줬어. 그래서 기대하고 봤는데 내용을 풀어내는 게 어색해.”
“그런가?”
“그래.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이지.”
“엄마는 재밌었어. 상우 참 재밌게 나오더라. 그 척준경 동생이 ‘너 내시라며?’ 물으니까 ‘아니거든, 보여줘?’라고 하며 바지춤을 푸는 장면 정말 웃겼어.”
“엄마라도 재밌었으니 다행이네. 상우가 잘 됐으면 좋겠는데.”
“오빠, 영화는 망해도 상우 오빠는 뜰 거야. 얼굴이 잘생겼잖아.”
“연기로 떠야지.”
“연기도 나쁘지 않아. 얼굴이 되니까 절로 마음이 너그러워져.”
“영화는 여자만 보는 게 아니거든?”
“흥, 남자의 질투는 꼴사납지.”
“흠, 그러냐? 그래도 동생아, 오늘 다 같이 나오니까 나쁘지 않다. 그렇지?”
“응. 이렇게 옷을 사주면서 데리고 나오니까 행복해. 다음에도 이런 가족행사면 항상 좋아야. 오빠 묻지도 따지지도 않을 거야. 불러만 줘,”
“하여간에 그놈의 주둥이만 아니면 점수를 딸 텐데. 넌 꼭 주둥이를 나불거려서 점수를 까먹네.”
“아들, 엄마는 좋았어. 역시 큰 화면이 좋구나. 우리 TV도 큰 거로 바꿀까?”
“하아, 어떻게 오붓해서 좋았다. 함께해서 더 행복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거든?”
“그건 다음번에.”
“그래. 다음번에.”
엄마와 동생이 말을 하고는 마주 웃는다.
그리고 보이지는 않지만 나도 웃는 표정일 것 같다.
‘그래. 다음에 같이 또 하자.’
끝
ⓒ 꿈속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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