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 singer is one RAW novel - Chapter 117
118. 그를 만나다 >
“다코야키 좋아해요?”
처음 만나게 된 그가 나에게 한 말이다.
오늘 그를 만나게 되는 마음에 걱정, 기대, 설렘을 안고 스튜디오를 찾았다.
그런데 기다림을 안고 만난 가운데 첫 마디가 다코야키라니.
내가 그의 말에 황당한 마음이 들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처음 말을 건넬 때보다 당황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흠, 안 좋아해요? 그럼 조금만 기다려 줄래요? 허기가 져서 노래 부르기가 힘들어요.”
“네.”
내가 친한 한 사람은 한국을 떠나고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그런데 만난 사람은 내가 생각한 모습이랑은 아주 다르다.
어쩐지 소심해 보이는 모습이다. 그가 벌인 사건으로 인해서 그에 대한 인상이 나에게는 상당히 뻔뻔하고 당당한 성격이라고 들게 하였다.
기본적으로 죗값은 치렀다고 생각을 하지만 여행을 다니고 결혼을 한 모습을 보면서 잘살고 있구나!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만난 그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가면을 쓰고 있어 내가 누군지 몰라서 이런 모습인가? 아니면 그냥 성격이 이런 건지 모르겠다.
그는 한 보따리 사 온 다코야키를 세션들에 나누어 주고는 자신도 폭풍 흡입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나도 먹는다고 할 걸 그랬나?’
혼자 멀뚱히 있으려니 참 못 할 짓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흔히 세상에서 제일 추잡한 사람으로 불리는 사람 중 하나가 남 먹는 거 쳐다보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가?
지금 상황은 내가 바로 그 추잡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미안해요. 식사는 오기 전에 해결해야 했는데. 일이 있어서. 그런 와중에 또 같이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 아! 이건 말할 필요가 없구나.”
정말 이 사람이 그 김나박요의 요수가 맞는 걸까? 그냥 가면을 쓰고 나오니 연습은 대충 다른 사람을 보내서 때우고 본선에만 자신이 나오려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허술한 모습이다.
여기 오기 전에 본부장님과 장 프로듀서님이 하신 말이 생각이 난다.
내가 이 분과 듀엣을 하게 됨으로써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는 것을 걱정하자 본부장님이 말씀하셨다.
“예성 학생, 이 연예계에서 깨끗한 사람과 방송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 연예계는 지뢰밭이야. 흠집 없는 사람이 없어. 성매매, 그거 큰일이긴 해. 하지만 살인보다 큰일이냐고 하면 나는 아니라고 봐. 이 연예계에 살인 미수범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음주운전, 뺑소니, 마약 이거 다 살인 미수범들이야. 그냥 사람만 안 죽었을 뿐이야. 그런데 여전히 방송에 나와서 잘 먹고 잘살고 있어.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예성 학생이 만나지 않을 거라는 장담이 없어. 말했듯이 이 동네는 온통 지뢰밭이니까.”
“기호 말이 맞아. 언제나 피할 수만은 없어. 이번에 좋은 경험 한다고 생각을 해. 어차피 이 바닥에 들어왔으니 언젠가는 논란에 중심에 서게 될 거야.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고 생각해. 거기다 얻을 것이 확실히 있잖아. 너에게는 좋은 경험이 될 거야. 어린 너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이 바닥은 이런 일이 보기 드문 일이 아니야. 어린 애가 먼저 덤벼들기도 하고 어른들이 나서기도 하고, 그런 동네지.”
“그래. 일형이 말대로야. 예성 학생은 생각해 본 적 있어?”
“뭘요?”
“왜 자신이 인기가 있는 것인지 말이야.”
“아뇨. 저도 그게 의문이긴 해요.”
“간단해. 예성 학생은 깨끗하기 때문이야. 거기다 가족적이기도 하고 말이야. 온통 출세하기 위해 안 좋은 일을 하게 된다고 하는 게 이 연예계야. 그런데 예성 학생은 방송에서 그런 일을 단호하게 거부함으로써 이미지가 만들어진 거지. 참 요즘 보기 드문 학생이라는 이미지가. 그래서 우리가 행사를 뺑뺑이 돌릴 때도 돈독이 올랐다는 이야기가 크게 나오지 않고, 그저 참 열심히 한다. 열심히 사네. 이런 이야기가 나올 뿐이야. 거기다 어머니가 홀로 식당을 해서 예성 학생을 키웠잖아. 그러니 열심히 해도 좋게 봐주는 거야.”
“역시 이미지가 중요하긴 한가 보네요.”
“그래. 예성 학생의 팬 중에 왜 어머니들이 많을 것 같아? 다 그런 이유야. 나중에 자신들의 아이도 예성 학생같이 바르게 자랐으면 하니까 말이야.”
“호···. 혹시 그 말은 제가 엄친아란 말일까요?”
“응?”
본부장님의 얼굴에 당황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 그래. 엄친아라면 엄친아지. 공부 못하는 엄친아.”
“공부 못하는 엄친아가 의미가 있긴 있나?”
“장 프로듀서님, 확인 사살 안 해주셔도 저도 알거든요.”
“예성 학생, 요점은 이거야. 너무 예민하게 신경 세울 필요 없어. 인터넷의 반응은 모두 익명이야. 그런 이들에 말에 휘둘릴 필요는 없단 말이지. 성매매가 심각한 문제긴 하지만 이 바닥에서는 그만큼 흔한 일도 없어. 우리가 접대하면 어디 갈 것 같아? 호프집? 포장마차? 아니야. 다 그렇고 그런 곳으로 가게 된단 말이지.”
“그것만이 아니지. 우리도 한창때는 서로 각출해서···.”
“일형아, 거기까지. 미성년자다.”
“흠, 그렇군.”
“아무튼, 다른 데는 신경 쓰지 말고 노래만 잘해. 모든 건 능력이 말해주는 거야. 노래만 잘해봐. 요수의 논란보다 예성 학생의 가창력이 돋보여서 세대교체 이야기가 나오게 될 테니까.”
*****
“그럼 시작해 볼까요? 목은 풀었어요?”
“네. 오는 와중에 해뒀어요.”
“그럼 시작할까요? 세션 분들 오늘 하루 잘 부탁합니다.”
그의 말에 다코야키를 얻어먹은 그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사회생활에는 적당한 기름칠이 필수인가?
나도 다음에 저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는 먹는 거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개뿔.
“꺼~억! 미안해요. 이제 소화가 되다 보니···.”
역시 그는 성격이 그냥 이 모양인가 보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일단 한번 맞춰보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해요.”
“네.”
그리고 처음 노래를 부르고 서로 놀랐다. 아니 나는 소름이 돋았다. 왜 사람들이 활동이 뜸한데도 김나박요, 김나박요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내가 USB로 들었던 목소리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더 굉장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처절함과 강렬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런 목소리를 들으니 마치 공포영화를 볼 때 겁에 질리듯 솜털이 올올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거기다 그런 그의 목소리는 나의 잠자던 흑염룡을 깨우기에 이르렀다. 결국, 처음부터 나는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쏟아부었다.
이건 연습이라고 시작했지만, 나에게는 연습이 아니었다. 그냥 온 힘을 쏟아붓게 하였다.
“모나리~자”
노래가 끝나자 나는 숨을 몰아쉬고 요수 씨는 허탈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노래를 연주했던 세션 아저씨들은 우리의 노래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손뼉을 쳤다.
“헐, 죽인다. 내가 연주했지만 죽여.”
“나도 오랜만에 소름이 돋는다. 요수 씨는 그렇다고 치고, 쟤는 누구야? 목소리가 앳되던데. 이건 무대에 올라가면 완전 역대 최고급이겠는데.”
“신예성 같은데.”
“뭐라고. 신예성? 걔가 이렇게···. 아!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긴 하네. 암튼 대박이다. 첫 리허설하는데 이런 퀄리티로 나오다니. 명불허전이야.”
세션 아저씨들의 말이 아니더라도 나 자신도 굉장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레전드가 왜 레전드인지 알게 되는 리허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수 씨가 선창하면 그 뒤로 따라가는 내가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길이 보였다. 그건 그냥 동화되는 느낌이다. 그의 능력에 내가 먹혀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해야 그에게 대응할 수 있을지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저절로 알게 되었다고 할까?
그렇게 되니 내가 준비해왔던 음정과. 박자. 높낮이와는 다르게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부른 후의 생각은 지금이 더 낫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래를 마치고 서로 시선을 마주했다. 불사조의 가면을 쓴 그와 큐피드의 가면을 쓴 나.
서로 가면을 쓰고 있지만, 누군지는···. 아니 나만 알고 있나?
이런 생각을 할 때 불사조 가면 속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신예성 후배 맞나요?”
노래 부를 때는 그렇게 전투적이던 목소리가 다시 평소의 소심한듯한 목소리로 변했다.
“네. 요수 선배님. 그런데 촬영 중인데 이래도 되나요?”
“어차피 편집될 거에요. 그리고 이 시점에서 모른척하기가 더 힘들죠. 세션들도 다 알아챈 걸요.”
“그렇긴 하네요. 헤헤”
말을 하며 촬영팀을 보자 그들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방송에 나갈 때까지는 알아도 모르는 척해야 했기에 편집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아! 기대 이상의 무대가 만들어지겠어요. 정말 다행, 다행이에요.”
“저도 부르면서 내가 부른 노래에 스스로 놀라기는 처음인 것 같아요. 왜 선배님이 레전드로 불리는지 알겠어요.”
“과찬이에요. 나야말로 정말 좋았어요. 이거 가면 가왕 피디님에게 제가 감사해야겠어요. 설마 신예성 후배를 데리고 올 줄이야. 아니 신예성 후배에게도 감사해야겠네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아닙니다. 레전드인 선배님과 부르게 되는데 당연한 결정이죠.”
“그래요? 아무튼, 나에게는 다행 중 다행이에요. 혹시 너무 준비가 안 된 사람이 오면 어쩌나 싶었어요. 그래서 오늘 아예 시간을 풀로 비워놓았거든요.”
“네?”
내가 반문하자, 그는 웃음소리를 냈다.
“그게 어떻게든 가르쳐서 기본은 하게 만들어서 무대에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져서요. 물론 말을 안 들으면 어쩌나 걱정도 많이 했어요.”
“아! 하긴 그렇죠. 선배님이 나오시는데 너무 실망스러운 무대면 곤란하죠.”
“음, 그런 것도 있지만 말하면 부담되려나?, 하지만 지금 무대면 저도 만족이니 말할게요. 이건 나에게 한국에서 마지막 무대라고 할 수 있어요.”
“네? 마지막이요?”
“그래요. 전 이 무대를 마지막으로 중국으로 가게 됐어요. 알다시피 나는 한국에서 활동이 완전히 마비된 상태나 마찬가지라서요.”
“네.”
할 말이 없었다. 내가 그의 상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중국으로 간다니.
“완전히 가시는 건가요?”
“방송 쪽으로는 전부가 맞겠죠. 가정이 여기 있으니 기본적으로 왔다 갔다는 하겠지만.”
“그런데 오퍼는 온 건가요?”
“네. 중국에 나 가수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거기에 나가게 됐어요. 1년 정도 출연한 후에 중국에 자리를 잡게 되겠죠.”
“저도 알아요. 가수 선배님 중에 몇 분이 이미 갔다 오셨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저도 그 대열에 끼게 되겠네요. 아마 다시 오지는 않겠지만 말이죠.”
“큰 결심 하셨네요.”
나 가수라는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가창력을 보는 프로그램이다. 그렇기에 중국이라는 타국에서 노래를 부르다 보면 텃세도 있을 것이고, 말도 안 통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큰 결심이라기보다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죠. 후배도 알다시피 내 상황이 방송을 전혀 하지 못하니 잊히고 있죠. 하지만 배우고 할 줄 아는 게 노래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어요. 그런 나에게 이번 무대는 아주 중요하다고 할 수 있어요. 이건 고별무대나 마찬가지죠. 후배도 알다시피 지금 내가 방송에 나가면 어마어마한 파문이 일어나요. 예전에 그래서 불발이 된 적도 있어요.”
“네. 죄송한 말이지만 저도 들어서 알고 있어요.”
“죄송할 것까지야 없죠.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이번에 다시 제의가 왔기에 고심을 하다 선택을 했어요. 저를 욕하는 사람도 많지만, 아직 저를 응원해주는 팬들도 많아요.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좋은 무대를 보이고 싶다는 생각에 출연을 결심하게 됐어요. 하지만 출연 결심을 하며 걱정도 됐어요. 무대를 혼자 꾸미는 게 아니라 같이 꾸미는 거니까요. 거기다 노래는 락으로 편곡이 되어 목소리에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이가 나와줄지요. 다행히 걱정한 게 아무 소용 없게 되었네요. 정말 고마워요.”
“아닙니다. 저야말로 같이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 많은 걸 배우게 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해요.”
“네.”
말하는 뉘앙스가 꼭 이분도 자신이 위로 올라갈 일은 없다고 확신하는 분위기다.
“선배님, 혹시 출연하면 승리하신다는 생각이 없으세요?”
“아! 이걸 말 안 했네요. 저는 승리를 못 해요. 혹시 한다고 해도 사퇴할 거고요.”
“네? 왜요?”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심한 후폭풍이 밀려올 거라서요. 물론 후배가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결정은 어차피 관객들이 하는 거죠. 하지만 후배가 이겨서 올라가면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고, 혹시 내 사퇴로 올라가도 부담을 가지지 말라고 말하는 거예요. 나는 그저 힘든 시절에도 나를 지지해준 팬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가 이거라고 생각해서 나가는 거니까요.”
“그런 생각을 하셨네요. 하지만 콘서트가 낫지 않은가요?”
“후배가 생각한 걸 저라고 안 했겠어요? 하지만 이 세상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돈을 쓰면서 남을 욕하기 위해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요. 콘서트도 난장판이 되었죠.”
“허, 그런 일이.”
“그래서 택한 마지막 방법이에요. 아무래도 그냥 가면 저에게는 항상 마음의 짐이 되니까요. 어떻게 생각해도 도망가는 모양새지만, 허송세월만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알다시피 가수에게 목소리란 끊임없이 나오는 화수분 같은 게 아니니까요. 시간이 지날수록 노쇠해져 가고 닳아 없어지는 기계와 같죠. 심지어 부품을 갈아 끼울 수도 없는 기계. 그러니 더 쓸모없어지기 전에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요수 선배의 말에 많은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선배는 도망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건 도망이 아니라 가수라는 꿈을 여전히 버리지 못한 선배님의 마지막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본진을 버리고 멀티에 새로운 본진을 만들겠다니···.’
얼마나 힘들지 눈에 보인다. 아무도 모르는 사람과 부대끼며 말도 안 통하는 세계에서 살아남기가 얼마나 힘들겠는가?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그냥 라이브 카페를 차려 조용히 지내고 있지 않을까?’
꿈속의 나라면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훌쩍 떠나지 못할 것 같다. 그보다는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 더 행복하기 때문이다. 아닌가? 가족에게 피해를 주니 떠나는 건가?
선배님도 그런 건가? 자신으로 인해 가족이 힘들어해서 떠나는 걸까?
“선배님,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네. 편하게 말해요.”
“개인적으로 선배님의 결정은 잘하신 거로 생각해요. 어린 제가 말하기에는 뭐하지만, 선배님이 지금 한국에서 재기하기란 힘드니까요. 어차피 여기에 있어도 욕먹고, 외국으로 나가도 욕먹는다면 나가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해요. 선배님이 말씀하셨듯 가수란 직업이 생명이 영원한 직업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가셔서 후배들을 위해 길을 확 터놓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후배도 나중에 가게요. 헤헤”
“고마워요. 그럼 제가 나중에 도움을 줄지 안 줄지는 이번 무대를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말해야겠죠. 아! 이건 너무 잘난 체하는 건가?”
이분을 보니, 아! 보는 건 아닌가? 가면을 쓰고 있으니.
아무튼, 결혼을 어떻게 하게 됐는지 눈에 보이는 것 같다. 보통 사귈 때 엄청 안 좋은 사람이 결혼하고는 좋다고 하지 않는가?
사귈 때는 넌 친구도 없냐? 돈 좀 써라? 문화생활 안 해? 이런 게 단점으로 보이지만, 결혼하면 친구가 없어 매일 일찍 집에 오고, 돈 안 쓰니 돈 나갈 일 없고, 문화생활을 안하니 같이 하는 시간이 많아서 행복한 것이다.
그리고 이분이 아마 그런 과지 싶었다.
“아닙니다. 선배님 이번에는 경연이라기보다는 좋은 무대의 완성이 중요하죠. 선배님도 전설이지만, 저도 하태핫태 한 상황이거든요.”
“그건 맞아요. 내가 영광인건가요? 나와준 게 고마워요. 내 상황을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아닙니다. 어린 제가 무대를 골라가며 설까요? 배울 수 있는 무대면 어디든 가야 하지 않겠어요?”
오기 전까지만 해도 본부장님과 장 프로듀서님에게 한소리 들었지만 그걸 꼭 밝힐 필요는 없다. 언제나 보이는 진실이 중요하다는 것을 세뇌하다시피 들으며 살고 있지 않은가?
내 말에 불사조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후배, 보아하니 대성하겠어요. 어쩜 그렇게 좋은 말만 하죠? 나는 그걸 잘 못 해서 이렇게 된 거죠. 내가 한마디 해도 될까요?”
“네.”
“연예계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맥이라고 해요. 알죠?”
“네. 기획사에서도 항상 듣는 이야깁니다.”
“그래요. 하지만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빠져 있어요.”
“그게 뭔가요?”
“바로 ‘좋은’이라는 단어가 빠져 있어요.”
“‘좋은’이라는 단어요?”
“그래요. 이 바닥은 모두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어요. 연예인과 관계자들 모두 그래요. 나는 그저 보이는 모습만을 보면서 얕은 관계를 맺어 왔어요. 그러다가 상황이 나빠지고 정작 힘들 때 도와줄 사람이 없었어요. 후배는 사람을 깊게 사귀세요. 그리고 사람을 사귈 때 두 번째 얼굴을 꼭 확인하고 사귀세요. 친해지고 난 다음에는 헤어지기가 정말 힘든 게 이 연예인 세계에요.”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다시 연습 시작할까요?
“네. 그런데 그전에 조율 좀 하죠. 선배님. 그 샤우팅 끌어낼 때 말이죠. 제가 저음부터 하는 것보다 선배님이 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 그건 내가 자신 없어서 넘긴 건데?”
“선배님, 레전드잖아요.”
“그렇게 불리긴 하는데 모든 부분에서 레전드라 불리진 않죠. 자기가 못하는 건 과감하게 넘겨야죠. 지금처럼”
“저도 자신 없는데.”
“그건 아니에요. 후배, 아주 잘했어요.”
“왠지 그냥 떠넘기는 것 같은데요.”
가면을 쓰고 있어 표정을 보지 못하니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냥 기분일 거예요. 네. 맞아요. 기분 탓이죠. 그리고 세션 분들도 의논 좀 하죠. 먼저 드럼 연주자분, ‘정녕 그대는···.’ 이 부분 말이죠.”
그 날 노래는 고작 세 번을 불렀다. 하지만 곡에 대해 논의한 시간은 아주 길었다.
나도 그렇고 요수 선배도 그랬다.
심지어 세션 분들도 할 말이 무척 많았다. 어린 나를 제외하고도 이들은 이 바닥에서 구르고 구른 이들이라 그런지 의견을 내어보자고 이야기를 꺼내니 서로 말을 못 해 죽은 귀신이라도 붙은 것인지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 내가 처음 들었고 부르기까지 한 노래는 뼈대만 남은 채 낱낱이 해체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요수 선배는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노래는 여러 명의 생각을 모아봐야 해요. 사람의 생각은 제각각이라 많은 것을 알게 되거든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하는데, 아닌가요?”
“하지만 산을 건너 바다, 우주로 가죠. 다른 분야는 모르지만, 노래는 그런 생각이 중요해요. 생각지도 못한 길을 찾으니까요. 혼자 생각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요. 하지만 그 혼자가 여러 명이 되면 새로운 길이 보이기도 하죠. 지금처럼요.”
“그렇네요. 저는 이런 쪽으로는 생각을 잘 안 해서.”
“후배, 작곡하는 것도 그렇지만, 가수도 마찬가지예요. 여러 경험과 생각의 폭을 넓혀야 해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아는 만큼 부르는 게 가수에요. 모르는 감정과 생각을 노래로 표현하면 듣는 사람도 막연할 수밖에 없어요.”
“네. 선배님”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 본방 리허설 때 보겠네요.”
“네. 선배님”
“기대가 커지네요. 준비 잘해서 만나요.”
“네. 저도 그렇습니다. 열심히 준비할게요.”
“그럼, 본방에서”
“네. 선배인 본방에서. 이만 가볼게요.”
“네. 수고했어요.”
“선배님도요.”
끝
ⓒ 꿈속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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