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 singer is one RAW novel - Chapter 125
120. Dream come True! >
“아들, 생일 축하해.”
아침부터 거하게 한 상 차려졌다. 내 생일이다. 회사에서 곡 작업과 콘서트를 대비해서 노래 연습을 하느라 집에 늦게 들어오지만, 오늘 같은 날은 피곤함을 내색하면 안 된다. 이 집에서 제사 빼고는 가장 큰 행사가 내 생일이다.
“응, 엄마 고마워. 이 나이까지 키워줘서 고마워.”
내 말에 엄마가 내 등을 두드린다.
“아이고 우리 아들, 말하는 것도 이쁘지.
“오빠, 생일 축하해. 그런데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또 뭐가 불만이니? 넌 어떻게 하루도 투덜거리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거니? 어떻게 하루도 쉬지를 않아?”
“엄마가 그렇게 만들고 있잖아. 이게 고깃국이야, 미역국이야? 고기가 미역보다 더 많아.”
“흠, 동생아, 너처럼 고민했던 사람들이 이렇게 이름을 지었단다. 쇠고기미역국이라고.”
“누가 몰라? 작년 내 생일이랑 너무 다르잖아. 그때는 오빠 국그릇에 고기를 담고는 우리는 그냥 미역만 먹었거든.”
“그래서 이번에 많이 넣었잖아. 그러니까 많이 먹어.”
“그런 말이 아니잖아. 왜 이렇게 차별하냐는 말이지. 우물우물. 이씨~ 고기는 왜 이렇게 맛있는 거야?”
“딸, 먹던지, 투덜거리든지 하나만 하자. 하나만.”
항상 같은 식사풍경이다. 하지만 나의 폭탄선언으로 그 분위기는 박살이 났다.
땡그랑.
엄마가 미역국을 숟가락으로 먹다 놓치는 소리.
턱.
예린이 갈비찜을 열심히 뜯다가 식탁에 흘리는 소리.
그러고는 입을 벌린 채, 시간이 정지한 듯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아···. 아들 미쳤니? 딸, 아들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거니?”
“어···. 엄마, 어쩌면 미역국에 소고기가 상한 건지도 몰라. 오빠가 그거 먹고 광우병 걸린 건지도.”
“딸, 같이 미쳤니? 어디 오빠에게 광우병이라니.”
“아니면 오빠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해? 세상에 세상에나, 40억을 건물 사는 데 쓰겠다고 하는데, 그것도 서류는 다 준비됐고, 오늘만을 기다렸다니. 이게 말이야 방귀야. 아무리 오빠가 번 돈이라지만 사전에 상의는 해야 하지 않겠어? 거기다 뭐? 빚이 10억이라고, 이 오빠가 감당하지 못하는 돈을 벌더니, 개념이 없어졌어. 오빠가 망하면 그 돈 누가 갚아? 엄마 10억이래.”
동생의 지랄발광을 한 귀로 흘리고는 차분하게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가 놀란 것은 이해하지만, 정말 나쁠 거로 생각해?”
엄마의 고함에도 나는 차분했다. 그런 나의 모습이 엄마에게 안정감을 가져다주는지 엄마의 목소리도 평소와 같아졌다.
“엄마는 걱정돼서 그래. 아들이 건물주가 되는 게 꿈이라고 하지만, 그건 먼 시기의 일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오늘이 그날이라니. 엄마가 안 놀라겠니? 거기다 40억이야. 아들 덕에 엄마도 이제 억 하는 소리에 놀라지 않게 되었다지만 빚을 10억 깔고 간다는 소리에는 걱정이 앞선단다. 어째 엄마가 식당으로 대출을 받을까? 담보 잡아도 얼마 안 나올 텐데.”
“엄마, 말을 끝까지 들어야지. 그 돈을 회사에서 빌린 건 맞지만, 빚이라고 할 수는 없어. 내 것을 지키기 위해서 빚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가만히 듣던 동생이 눈을 번뜩였다.
“오빠 저작권이 담보야?”
동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10억이나 잡아 준다고 해? 그럼 나쁘지 않은데? 이자는?”
“무이자야. 회사에서 신경 써주더라.”
“그렇지. 오빠는 행사가 주 업무가 아니지만, 노래는 그럴싸하잖아. 그 노래의 유통에서 나오는 이윤이 있으니까. 이자까지 받기에는 너무 심하지.”
“그런 거냐?”
“그래. 하지만 오빠로서도 나쁘지 않지.”
“그런데 딸, 그런 거면 아들이 혼자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엄마가 이윤이라는 말에 동생이 고개를 흔들었다.
“1인 기획사를 말하는 거 같은데 그건 아니지. 오빠는 어중간해서 힘들어. 혼자서 하면 신경 쓸 게 얼마나 많아지는데, 거기다 음원사이트 뚫기도 힘들어져. 음원사이트에 등록이야 쉽지만, 그 사이트 내에서 노출을 얼마나 시켜주느냐에 따라서 성적이 갈리니까. 그런데 오빠 건물이 어디야? 이미 확인은 했겠지?”
“응, 너도 알걸? 목동사거리 근처 1층에 커피숍 있는 건물.”
“뭐? 그거 대로변에 있는 건물이잖아?”
예린은 이야기를 듣고 펄쩍 뛰었다. 자신도 아는 건물이다. 자주 지나다니기도 했고. 건물이야 낡았지만, 대로변에 있어서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은 그곳에 있었다.
“그래. 그 건물 맞아.”
“그게 40억밖에 안 해? 자리가 그렇게 좋은데. 오빠 사기당하는 거 아니야?”
“그래. 아들, 엄마도 그 건물 아는데 그 가격이면 너무 싸다고 생각해.”
나도 조 사장님을 만나기 전에 어렸을 때는 건물이 100억 200억 하는 줄 알았다. 그런 건물도 있지만, 오히려 내가 사는 건물보다 저렴한 건물도 많다.
“응.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노화도 되고, 5층 건물이라서 가격이 다른 건물보다 저렴하다고 했어. 그래서 건물주인이 되면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
“누가?”
“조 사장님.”
“어머, 저번에 오신 그 후덕하신 분 말하는 거니? 네가 중학교 때부터 드나들었던 그 노래방 주인.”
“응. 그분 맞아. 그분이 빌딩을 여러 채 가지고 있는 분이거든. 그래서 의논을 드렸는데 마침 조 사장님이 사려던 건물이 그 건물이었어. 그걸 나에게 넘겨 주신 거지.”
“그래도 큰돈인데 선뜻 믿을 수는···.”
“물론 그렇지. 조 사장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어. 확인하라고, 그래서 엄마, 그분만이 아니라 기획사에 있는 변호사님도 확인을 해줬어. 문제가 없는 건물이래.”
“그래?”
“응.”
“그런데 오빠. 왜 오늘에서야 말하는 건데?”
“그게 말이야. 내 이름으로 올라가야 하니까.”
“응? 오빠 이름으로 산다고, 엄마 이름으로 건물 산다고 노래를 불렀으면서.”
“그랬는데. 상속세와 증여세가 장난이 아니래.”
“그건 그렇지. 그래도 오빠 이름이면 나중에 나에게 오는 게 없는데.”
동생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 순간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그거냐?
“하여간에. 너는 참. 농담해도 참 기분 나쁘게 말하는 데는 도가 텄어.”
“뭐가? 이건 중요한 문제거든. 본래 나중에 형제 사이가 벌어지는 것도 다 돈 때문이야.”
동생의 말에 내가 혹시 꿈속에서 머리 쥐어뜯긴 이유가 어쩌면 엄마 식당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재산 싸움인가?’
그렇지는 않을 거로 생각한다. 이 녀석이 엄마를 좋아하는 것은 나도 알고 있으니까.
“오빠 그럼, 엄마 식당은 내가 가진다. 콜? 아! 학교를 요리 학교로 전학을 생각해야 하나? 아니지. 띠용 씨를 지배인으로 두고 나는 여가 생활을···.”
“딸, 엄마, 아직 안 죽었다. 이래서 딸자식은 키워봐야 소용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지.”
“이 씨. 꿈도 못 꿔?”
“멀쩡히 살아 있는 엄마를 두고 그런 꿈이라니, 엄마 천년만년 살 거다.”
“엄마 그거 좋은 생각이야. 아들은 이제 시작일 뿐이야.”
가볍게 말하는 이 여사지만 아들의 행동에 걱정이 앞선다.
1억의 계약금을 받으면서 이거 받아도 되는지 벌벌 떨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10억을 빌렸다니.
정말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는 건 한순간이다.
‘10억이나 빌리고도 허허허 엄마 나 건물 사요. 이러고 있으니.’
철이 없다고 해야 하나, 돈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해야 하나?
‘그러고 보면 이런 건 아빠를 닮았네. 아니 그래도 아빠보다는 낫지.’
남편과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시댁에서 살다 보니 별꼴을 다 봤다. 어린 나이에 결혼하다 보니 남편도 철이 없었다.
어느 날 소를 팔고 나서 그 돈으로 아무 상의도 없이 집안 가전제품을 바꾸고 한 푼도 남기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자기는 집안을 위해 그랬다지만 그 돈이 어떤 돈인데 그렇게 무책임하게 쓰냐면서 어머니에게 빗자루로 맞던 기억이 떠오른다.
‘여보, 당신 아들은 당신보다 스케일이 훨씬 크네요. 전세 살고 있는데, 건물이라니. 제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 여사는 심사가 복잡했다.
나무라자니 많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자신이 바쁜 와중에 알아서 동생을 돌보며 잘 커 온 아들이다.
거기다 자기가 번 돈이고, 더구나 엄한데 쓴 것도 아니다. 빚이 10억이라지만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보니 사기당한 것도 아니다.
나름 꼼꼼하게 한다고 생각해서 자신도 본 적 있는 변호사에게도 조언을 받았다고 하지 않는가?
오늘의 아들은 자신에게 참 낯설게 다가온다.
언제나 엄마, 엄마, 거리면서 오늘은 어땠고 내일은 이걸 할 거야. 이러면서 따라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이런 엄청난 일도 혼자 결정하고 자신에게 이런 일을 했다고 뒤늦게 말한다.
‘이제 품 안에서 끼고돌 시기는 지났다는 건가?’
아들이 가수가 되고부터는 고민의 나날이 계속된다.
아들이 돈을 버니 생활에 여유가 생겼지만, 정작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려고 마음먹어도 이제 자식들은 다 커서 스스로 알아서 생활한다. 자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이제 자식들이 바쁘다.
‘이래서 다 때가 있다고 하는 거지.’
“엄마, 엄마!”
“응? 그래. 왜?”
“왜는? 내가 조 사장님이랑 변호사님 만나러 가야 하는데, 언제가 좋겠냐고 물었잖아? 충격받은 건 알겠는데.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화투패는 쳤으니 낙장불입이야.”
“하여간에, 그냥 이미 저질렀으니 무를 수 없다는 것을 꼭 꼬아서 말을 해요.”
“넌 좀 가만히 있어.”
“음 오빠, 리모델링 하면 1층에 버거퀸, 2층에 피자, 3층에는 음 생과일주스, 4층에는 중국집. 아! 한 층에 하나만 들어가라는 법은 없지. 또 뭐가 있지?”
“미친년, 살을 뺄 생각은 안 하고 네 먹고 싶은 거로 건물을 도배할 생각이냐?”
“아! 오빠, 생각해보니까 내가 열심히 대입 공부를 할 게 아니라 마케팅을 공부해야겠어. 나도 사업을 해야 할까 봐.”
“뭐? 임마.”
이게 제대로 미쳐가는가 보다.
“오빠, 내가 대학에, 유학에, 대학원까지 10년 가까이 공부해서 용의 꼬리가 되느니 차라리 가게 사장이라는 뱀의 머리가 되는 게 나을 것 같아.”
동생은 말을 하면서 점점 꿈이 구체화 되는지 눈에 힘이 들어간다.
“그···. 그 가게는?”
“에이~ 알면서, 물론 오빠 건물이지. 형제가 더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뿐인 동생에게 그것도 못 해줘?”
이 년이 진짜? 뭔가 해줄 때마다 돈 뜯어가는 것도 모자라 이제 그냥 달라는 거냐? 이게 정말 아침부터 생각나는 대로 막 던지는구나.
“그래. 못 해준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는 한 그 꼴은 못 본다.”
“놀이터 가서 흙 퍼와 눈에 뿌려버린다.”
“이 가스나야? 집에 여유가 생겼으면 더 열심히 공부해서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생각을 해야지. 어디서 오빠 등골에 붙어서 기생하려는 거야?”
“그게 그렇잖아. 의욕이 없어진다고 할까? 오빠가 망하면 내가 먹여 살릴 작정으로 열심히 공부했는데 망해도 건물이 남잖아? 이제 좀 편하게 살고 싶어.”
“이런 미친년, 여기서 더 편하게 살아서 나중에 뭐 될래?”
“음, 가게 사장님?”
“엄마, 엄마도 뭐라고 좀 해. 애가 미쳤나 봐.”
“딸 말도 일리가 있어, 계집애가 공부 많이 해서 어디다 써? 하기 싫으면 하지 마. 그냥 고등학교 졸업하고 시집가면 되지. 엄마도 그랬어.”
엄마의 말에 동생이 안생이 급격히 굳어졌다.
“오빠. 공부해야겠어. 이 집에서 내보낼 생각밖에 없는 엄마에게 내가 얼마나 거머리인지 보여주겠어.”
“그래서 아들 조 사장님 언제 만나러 갈까?”
“아무 때나 가도 돼. 조 사장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신 분이니까.”
**
“에~취!”
“날이 풀리는데 감기세요? 사장님”
“아니, 그냥 누가 내 욕을 하나 봐. 재채기가 나는 걸 보니.”
“매일 소파에 누워계시는 분을 누가 알고 욕을 할까요?”
“음, 예성이?”
“풋, 아니라고 못하겠네요.”
“은지야, 이제 곧 오겠다. 그지?”
“네. 그 코찔찔이가 건물을 산다니, 참.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에요. 어디서 희한한 이야기를 듣고 와서는 노래방에 죽치고 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래. 그놈 보면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나 싶어.”
“잘 돼서 다행이에요. 저게 나중에 뭐 되려고 저라나 싶었는데.”
“예성이도 그러더라. 저 누나 나중에 시집이나 갈 수 있을까?”
“뭐라고욧?”
“장 팀장에게 연락은 왔어?”
“네. 준비 다 됐다고 해요.”
“은지야”
“네. 사장님”
“막상 주려니 아깝다. 그냥 내가 할까?”
“어린애랑 싸우시게요?”
“역시 그건 아니지? 대신에 대금은 꼼꼼하게 다 받아야지. 요놈 돈 잘 버는가 보던데.”
“예성이가 섭섭하게 생각하겠네요.”
“아니. 이해할 거야. 그 애와 난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니까.”
이런 황당한 경우를 봤나?
생일이 지나고 며칠이 흘렀다.
그리고 약속을 잡고 엄마와 함께 조 사장님을 만나러 왔다.
“조 사장님, 말하지 않아도 아는 우리 사이에 이건 너무 하신 거 아닌가요? 어떻게 이렇게 다 받으실 생각을 하세요?”
말을 하는데 은지 누나가 웃음을 터뜨린다.
“사장님, 정말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는 맞네요. 이해하는 방향이 전혀 다르긴 해도 말이죠.”
“흠흠, 예성아,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말이다. 친한 사람과의 금전 관계는 정확해야 해. 그래야 만날 때 섭섭한 점이 없는 거야.”
“조 사장님, 세상에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디 있어요?”
“그 에누리 적용된 계산이다. 너 설마 건물을 가지면 돈을 버는 것만 생각하고 나가는 건 없다고 생각했던 거냐?”
“그런 거 아닌가요? 내 것이잖아요.”
“허, 내 것이 내 것이기 위해서는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있는 법이다. 건물유지를 위해서 관리회사 꼭 필요해.”
“네. 알지만 이거 조 사장님 회사잖아요. 에누리 좀······.”
“그 에누리 된 거라니까. 아!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너에게 해야 하는지 참.”
김미영 변호사님이 우리를 지켜보다가 슬며시 조 사장님의 말에 동의했다.
“예성아, 조 사장님 말씀이 맞아. 내가 의뢰했던 견적서들보다 10% 정도 싸.”
“그···. 그래요?”
“그래. 그러게 내가 오면서 좀 살펴보라고 했잖아. 볼 필요 없다고 하고서는 이 난리니?”
“흠, 이건 그냥 커뮤니케이션이죠. 조 사장님, 전 언제나 조 사장님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아시죠?”
“그래. 그 얄팍한 존경심, 오늘 제대로 확인하는구나.”
“아들, 너무 버릇없이 구는구나. 죄송해요. 조 사장님, 우리 아들이 아직 철이 덜 들어서.”
“허허, 괜찮습니다. 남자가 철들면 죽어야죠. 예성이가 이러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런데 건물은 살펴보셨습니까? 제가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그냥 리모델링만 해서 되팔아도 모든 것을 제하고 1억은 남을 겁니다.”
“네. 저도 주위에 알아보니 가격이 그 가격이 아니라고 들었어요.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고마워하실 건 없습니다. 이건 예성이가 운이 맞아 떨어진 거죠. 하필이면 그때 연락이 와서는, 쯧, 하지만 애초에 바람 넣은 게 저라고 하는데 별수 있나요?”
“네?”
“예성이가 이야기 안 하던가요? 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예성이 자신에게 건물주가 좋다는 인식을 심어준 게 저라고 하더군요. 그러니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거기다 그 생각을 잊지 않은 채, 돈을 벌어 다른 생각을 안 하고 건물을 산다는 게 얼마나 기특합니까?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에 말입니다.”
“조 사장님, 이제 저는 인기가 떨어져도 이것만 있으면 평생 가수를 할 수 있겠죠?”
“어떤 가수를 하느냐에 대한 문제지만, 그냥 놀고먹을 수는 있겠구나. 그런데 왜 그런 걱정이냐? 더 열심히 해서 지금보다 잘돼야지.”
“그거야 그렇지만, 앞날은 모르잖아요. 생각해보면 다행이에요. 사장님이 관리회사도 가지고 계셔서요.”
“왜? 손 놓으려고?”
“그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제가 직접 관리는 어렵잖아요. 엄마도 잘 모르시고요.”
“예성아,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사람 쉽게 믿지 말라고, 너도 이제는 그냥 학생이 아니다. 거기다 돈도 많이 벌었지. 너 같은 사람에게는 항상 벌레가 꼬이기 마련이다.
투자해라. 동업을 해보자. 너도 알다시피 연예계에서 사기당한 사람을 모으면 종사하는 사람의 절반은 모일 거다.
걱정이다. 너처럼 남의 말을 잘 믿는 아이가 잘 헤쳐나갈 수 있을지. 가수라고 해서 노래만 잘한다고 연예계에서 잘 헤쳐나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너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아야 한다.”
“네. 조 사장님, 하지만 이제 저는 더 욕심을 부릴 게 없는걸요.”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해도 배부르겠지. 하지만 전에도 말했듯이, 사람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 남들과 비교되며 산다. 형편이 나아지면 더 나은 사람과 비교하게 되지. 특히 네가 활동하는 연예계는 허영이 소용돌이치는 곳이 아니냐? 장담하지는 마라.”
“네.”
시간이 흘러 건물주분이 오셨다.
그리고 건물을 사는 사람이 나라는 걸 알자 미묘한 표정을 지으셨다. 나라도 그럴 것이다. 이 분은 아마 나를 모르는 것 같았다. 가수인 나를 모르면 당연히 어디서 코흘리개가 건물을 산다고 와서 턱 하니 앉아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가 않는다. 거기다 엄마도 그리 부티나는 옷차림은 아니다.
하지만 미래를 대비한다는 말에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하신다.
“우리 아들도 그래야 하는데, 왜 사업을 한다고 설쳐서는 가진 것 다 까먹고 앉았어. 그놈의 꿈이라는 게 뭔지. 쯧”
도대체 무슨 사업을 하기에 40억을 까먹는단 말인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역시 사업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란 말이지. 안전하기는 건물주가 짱이야.’
“여기에 찍으면 되나요?”
“그래.”
인감을 꺼내어 찍었다.
“축하한다. 이제 너도 어엿한 건물주구나.”
“감사합니다. 조 사장님은 저의 롤모델이세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더 뭘 원하기에 알랑방귀냐?”
“무슨 말씀을, 이제 조 사장님과 같은 반열에 오른 접니다. 원하기보다는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같이 잘 먹고 잘살자는 이야기죠.”
“허, 이놈 봐라. 맞먹자는 거네. 이거 건물 하나 더 사면 ‘어이 조사장’ 할 기세야.”
“어이, 조사장.”
“뭐 임마?”
“님. 헤헤”
“이놈을 어찌해야 할까? 그런데 며칠 전에 군보 왔다 갔다. 들었어?”
“아뇨. 돌아오고 싶다고 징징대지 않아요? 형 요즘 죽으려고 할 텐데.”
내가 군보 형에게 많은 것을 바라고 있지는 않다.
그저 군보 형이 일을 찾아서 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무엇이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한다.
군보 형과 곡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지만, 이제 그건 기본이 되었다. 형도 점점 욕심이 생기는 것이다.
내가 이야기한 부분에서 한 걸음 더 나가기 위해서 고민을 많이 한다. 그리고 들어보면 더 좋은 때도 있고, 아닌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형은 고민한다.
그 고민이 깊어지는지 요즘은 아예 수면실에 짐을 갖다 놓고 회사에서 사는 모양이다.
“힘들어 보이긴 하는데 그런 말은 없더구나. 그저 좋아하는 거로 밥을 먹고 사니 행복하다고 하더라. 그러니 잘 챙겨줘라.”
“제가 챙기긴요? 형이 절 챙기죠.”
“그래. 군보는 이제 자리를 잡았다고 봐도 되는 거냐?”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죠.”
“그럼 됐다.”
내가 조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 엄마는 은지 누나에게 설명을 듣고 있었다. 기본적인 것은 알아야 하기에 그 설명을 하는 것 같았다.
“은지 누나, 쉽게 설명해주세요.”
“말은 잘하네. 일은 네가 저지르고 뒷수습은 어머니가 떠맡는 거니?”
“어쩔 수가 없어요. 저는 무지~하게 바쁘거든요.”
“하여간에 너는, 밉다고 하면 더 미운 짓을 하지.”
하지만 거짓말이 아니다.
“예성아, 이제 끝났으면 가자.”
변호사님이 나를 부른다.
“봐요. 전 바쁘다니까요. 저희 엄마 잘 부탁해요. 엄마도 고생해.”
일을 떠넘기는 식이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매달려 할 일은 이게 아니니까. 나는 빚을 까는 게 중요하다. 수시로 조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일이 어떻게 진행될 거라는 것은 안다.
조 사장님은 오랫동안 건물주로 계셨기에 그 분야에 필요한 이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엄마가 할 일은 솔직히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내 일을 남에게만 맡겨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하셔서 열심히 설명을 듣고 있다.
조 사장님이 말씀했듯 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조 사장님, 그럼 전 가볼게요.”
“그래. 열심히 해라.”
건물을 나서면서 감회가 새롭다. 이제 내 인생의 가장 큰 걱정 하나를 덜어낸 느낌이다.
‘작은 방에 틀어박혀서 음악 만들 일은 이제 없어. 가족들에게 손을 벌리면서 음악 하는 일은 더더욱 없고. 잘한 결정이야. 가족이나 다른 이들이 나에게 빚을 지면서 건물을 살 만큼 급하냐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급해.’
암울한 기억을 지우고 싶었다. 돈은 유동적인 재산이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 하지만 건물은 고정적인 재산.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시세야 변하더라도 값어치의 변화는 크지 않다.
‘그래. 평생 연금이야. 저작권료와 이 건물이면 나는 이제 돈 때문에 불행하지는 않을 거야.’
끝
ⓒ 꿈속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