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 singer is one RAW novel - Chapter 129
124. 황사가 밀려온다. >
“제 장롱에 고이 모셔놓은 튼튼한 노 어떻게 할까요?”
“으···. 응? 글쎄···.”
본부장님이 세계로, 바다로 나갈 거야. 튼튼한 노를 준비해둬. 이런 발언에 오~ 하면서 마음가짐을 다잡은 게 실수다.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는 말처럼 내가 딱 그 꼴이 났다. 초동 판매량 18만 장, 거기서 앨범 수가 증가하질 않았다.
물론 대박이다. 하지만 이 앞의 허세만 그득하신 본부장님이 한껏 바람을 불어 넣는 바람에 그 대박이 대박처럼 느껴지지 않게 만들었다. 기대치가 그 정도는 밑으로 깔고 갈 정도로 상승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순식간에 바람 빠진 풍선이 되고 만 것이다.
실망하긴 이기호가 더 했다. 순풍이 불어 쭉쭉 나가나 했더니 무풍지대에 들어서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느낌이었다.
“이게 다 본부장님 때문이에요. 주식으로 치면 18배가 넘는 폭등을 했는데도 기쁨보다는 아쉬움이 크게 느껴지다니. 주식을 마치 파생상품인 양 200배 300배를 이야기하신 본부장님 탓이에요.”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는 거지. 그래도 나쁘지 않아.”
“네. 분명 고무적인 성과인데 왜 기쁘지 않을까요?”
이게 다 설레발 때문이다. 기사마저 선주문 15만 장 와아~ 이랬다가 뚜껑을 열어보니 그게 다라는 것이 문제였다.
본부장님도 힘 빠지긴 마찬가지다. 해외 오퍼를 기대하신 모양인데 기대한 성과가 나지 않은 모양이다.
역시 아시아의 벽은 높았다.
“본부장님, 그래도 싱글 7천 장에 비하면 엄청난 성과에요. 우리는 더 기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성 학생, 그때는 앨범 그냥 만들기만 했지. 이번에는 아니야. 돈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알아?”
“허, 예술가인 제 앞에서 돈 이야기를 하시는 건가요? 그것도 ‘예술은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 아니야.’라고 입에 달고 사시는 분이.”
“아티스트 주제에 돈에 연연해 하는 예성 학생이 할 말은 아니지.”
“아티스트도 빚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소시민이죠.”
“이정도면 나쁘지 않아. 내가 너무 큰 걸 바랬나 봐. 해외에 등록된 음원도 꾸준히 다운로드가 되고 있고, 국내에서도 20위 권내에 4곡이나 들어가 있잖아. 큰 거 한방도 좋지만, 꾸준한 것도 나쁜 게 아니야.”
“네.”
그렇게 결론이 나는 듯했다. 하지만 저녁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많은 것을 바꾸어버렸다.
“어이쿠, 이게 누구신가? 주지육림에 빠져 친구도 잊어버린 김 사장이 아니신가?”
“헐, 음악에 빠져 친구를 잊어버린 신 사장이 할 말은 아니지.”
오랜만에 걸려온 상우의 전화다.
애초에 학교를 관두고 드라마에 올인을 한 상황이라 쉽게 전화 걸기가 어려웠다. 그저 잘 지내는지 안부 문자를 주고받는 정도다.
내가 가수로 데뷔하자 상우도 전화하지 않았다.
그때 한 말이 방해될까 조심스러웠단다. 한창 집중하고 열심히 하는데 별것 아닌 일로 전화를 해서 방해를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 당시에 나는 친구끼리 전화하면서 무슨 방해냐고 말했지만, 막상 상우가 중국에서 일을 시작하자 상우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거기다 연기라는 것이 밤낮을 가리지 않기에 더 그랬다. 그래서 문자를 보내고 시간을 맞춰서 연락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인가 하면서 한참을 웃었다.
그런 상우가 뜬금없이 연락을 해왔다.
“무슨 일 있어? 뜬금없이 웬 전화야?”
“아니,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일은 너에게 있을 것 같다.”
“응? 나? 별일 없는데?”
“아니, 있을 것 같다고.”
“나에게? 무슨 일?”
“내가 같이 촬영하는 사람 중에 양민이라는 여배우가 있어.”
“그런데?”
“네가 처음으로 하는 콘서트인데 내가 안 볼 수가 있겠어? 쉬는 시간마다 Y 앱으로 시청했지. 그런데 그게 다른 배우들이 관심을 끌었나 봐. 그래서 주위에 쉴 때마다 옹기종기 모여서 봤어. 그랬더니 누구냐, 어떤 사이냐? 묻더라.”
“임마, 이야기 중에 중요한 게 많이 생략됐잖아.”
“응?”
“잘생겼다. 몇 살이냐? 여자친구 있냐? 노래 잘한다. 등등 찬사가 쏟아졌을 텐데.”
“그랬을 거 같아?”
냉정한 상우의 반문이 들려왔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너를 앞에 두고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상우의 미모는 역시 중국에서도 먹어주나 보다.
주위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보면, 아무리 열심히 했다고 해도 상우가 중국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하지는 않을 텐데.
“그래도 가수 하는 친구가 한국에 있다고 해서 그런지 놀라더라. 너나 나나 아직 어리잖아.”
“그건 그렇지. 거기다 너는 한국 활동을 전혀 않았다고 할 수 있잖아.”
“그렇지.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런데 좋다. 예성아”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이렇게 이야기가 딴 데로 새는 느낌 그립네. 너랑 있을 때는 이렇게 ‘아’로 시작해서 ‘어’로 끝나는 대화가 일상이었는데.”
“그랬지. 그런데 얼마 지났다고 몇 년 전 이야기라는 말투야? 몇 개월 안 됐어. 임마. 그럼 이제 중요하다는 거나 이야기해 봐.”
“그렇지. 그 양민 누나가 네가 마지막에 부른 노래를 우리 드라마 OST로 부르고 싶은가 봐.”
“뭐? 너 무협 드라마 찍고 있지 않아?”
“맞아. 그래도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하면서 감독에게 말하더라. 곧 연락 갈 거야. 어떻게 자막 넣을 생각을 했어? 그것 때문에 된 거야. 만남과 이별을 이야기하는 노래라서 마음에 든다고 하더라.”
“기획사 아이디어야. 난 그냥 부르기만 했지.”
피아노를 치면서 부른 솔로 곡인데 마음에 든다고, 그것도 무협 드라마 주인공이? 하지만 안 어울린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긴 한가? 주인공이 중국대륙을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인연을 뿌리기에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된다. 그런 드라마의 OST니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양민이라니.’
나도 양민이 누군지는 안다.
상우가 사진을 보내 왔기 때문이다. 상우가 포스터가 나왔다면서 그것을 찍어 나에게 보내왔다.
머리로 아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은 확실히 달랐다.
커다란 침상 위에 상우를 중심으로 나란히 누워있는 7명의 아름다운 여인들. 그걸 보니 나도 연기자로 겸업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이 되었다. 여러 장의 포스터가 죄다 그런 포스터다. 언제나 상우가 중심에 있고 전후좌우 할 것 없이 여자들이 달라붙는 형상.
마치 부러워하고 찬양하라는 뉘앙스로 보내준 느낌이다. 아무리 무협 드라마지만 이런 포스터만 만들었을 리가 없다. 고로 이건 상우가 자신을 약 올리기 위해 보낸 포스터였다.
순간 오기가 치밀었다. 질 수 없었다.
뭔가 해야 했다. 마침 나에게는 7명의 아리따운 여인은 아니지만, 나름 미모를 뽐내는 동네 백수 7명이 있었다.
먹을 걸 사 먹이고, 상우가 보낸 포스터를 패러디했다. 화려한 비단 금침 대신 바닥에 요가 매트를 다닥다닥 깔고 그대로 찍어서 보내줬다. 같은 장면인데 느낌은 완전 달랐다.
마치 재벌과 졸부의 느낌이었다.
상우가 아주 재미있어했다. 그러라고 보낸 것이 아닌데.
욱해서 저지르고 밤에 이불킥을 하게 만든 날이었다. 그리고 오래전(?) 그 추억을 상우가 다시 들이민다.
“네 이야기를 하면서 사진을 보여주니 누나가 아주 좋아하더라. 재밌는 친구라고.”
“고······. 고맙다. 친구야.”
국제적 망신을 시켜줘서.
다음날 회사로 아니나 다를까?
본부장님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성 학생, 늦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어.”
“네. 중국에서요. 뿌연 황사가 불어오고 있죠.”
내 말에 본부장님이 흠칫 놀라신다.
“어? 어떻게 알았어?”
“OST 제안 들어왔죠?”
심각한 표정으로 본부장님에게 말했다.
“헉! 혹시 꿈에서 미래라도 본 거야?”
“네. 봤습니다. 잠시만 있어 보세요. 꿈으로 본 거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나는 머리를 누르면서 고민하는 척하다 말했다.
“야······. 양민이라는 배우 겸 가수!!”
“허허헉!”
본부장님은 놀라더니 지갑을 허겁지겁 꺼내시고는 종이를 한 장 내민다.
“이거 이번 주 로또야. 어때? 당첨된 거 같아?”
“하아,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럼 이건 어떻게 알았어?”
“상우가 전화했어요. 기억 안 나요? 그 사람 상우 나오는 드라마 여주인공이잖아요. 예전에 그렇게 부러워했으면서.”
“아! 그런 일이 있었지. 그래. 예전에 책 봤던 기억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상우가 나오는 드라마였던 거야.”
“이거 해야겠죠?”
“당연하지. 무조건 해야 해.”
“그런데 들어보니 목소리가 제 노래 부를 목소리가 아니던데.”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예성 학생, 중국 젊은 여배우 중에 한 손에 꼽히는 배우야. 10억의 사람 중에 한 손에 꼽힌다고. 이 배우가 OST를 부르면 어떨지 상상이 가? 이건 그냥 돈방석이야. 예성 학생. 18만 장? 다 필요 없어. 그냥 이거 하나로 끝나는 거야.”
또 설레발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말하면서 점점 자신의 이야기에 취하는 모습이 보이는 본부장님이다.
“헐, 18만 장을 무시할 정도인가요?”
“그래. 예성 학생. 중국이 왜 무시무시한 줄 알아? 거기다 왜 한국 연예인이 중국에만 가면 함흥차사처럼 올 생각을 안 하는지 알아?”
“그거야 돈이 되니까 그렇죠.”
“그래. 왜 돈이 되는지 알아야 해. 중국은 말이야. 사골 끓여내기 좋은 곳이야.”
“웬 사골?”
“중국은 땅이 엄청 커. 알지?”
“네”
“그 땅덩이만큼 방송국도 정말 많아. 거기다 그 방송국 하나하나가 우리나라 지상파보다 커.”
“그렇겠죠. 땅 넓이를 생각하면 당연한 거죠.”
“그래. 그런 중국이라 방송이 전 지방에 방송이 되려면 1년으로도 부족해. 우리가 흔히 뒷북친다고 하잖아?”
“네.”
“그 뒷북이 일상인 곳이 중국방송이야. 하나의 드라마가 만들어지면 그걸 가지고 몇 번의 재생산이 되는 곳이지. 알다시피 그래서 더빙이 생활화되어 있는 것이고. 지역이 하도 크다 보니 언어도 다양해. 그래서 자기 나라에서 만든 방송인데도 자막처리나 더빙을 해. 그런 드라마에 OST가 들어가면 어떻게 될 것 같아? 거기다 한 손에 꼽히는 여배우가 그 OST를 부른다면?”
“노···. 노다지인가요?”
“그래. 그것도 매장량이 얼마가 될지 짐작도 못 하는 거야.”
“그렇군요.”
“그래서 무조건 해야 해. 이건 하늘이 주신 기회야. 다만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지금 제작하는 드라마라는 게 걸리기는 하는데 말이지.”
“그게 문제가 되나요?”
“그래. 큰 문제지. 중국의 드라마는 우리와는 전혀 다르게 제작이 돼. 우리나라는 제작과 방송이 동시에 이루어지지만, 중국은 아니야. 완성된 후에 방영이 돼. 거기다 심의가 까다롭지. 공산국가잖아. 우리나라는 방송이 된 후에 심의에 걸려서 문제가 제기되지만, 중국은 심의에 걸려서 다 만든 드라마가 방영해보지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드라마도 많아.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문제가 크지는 않지. 이미 여러 번 만들어진 무협 드라마니까. 방영은 될 거야. 그게 언제인지 몰라서 그러지. 그러니까 이런 단점도 있지만, 장점이 크다는 이야기야. 무조건 해야 해.”
“그런데 제가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곡을 허락해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아니야. 네가 와줬으면 좋겠다고 하고 있어. 듀엣을 하고 싶다고 하네.”
“네에? 저요? 어디를? 중국이요?”
“그래. 뭘 그리 횡설수설해?”
“중국이라잖아요. 공산국가잖아요.”
“그래서 무서워? 그렇게 우리는 언제 전쟁 날지 모르는 분단국가야. 무서워서 어떻게 살아?”
듣고 보니 그렇다.
“그건 그래요. 그분이랑 듀엣이 될까요?”
“그걸 나에게 물어보면 어떡해? 가수인 예성 학생이 알지.”
“저도 제 노래를 그분이 부른다고 해서 찾아봤는데 언어가 달라서 그런지 좀 마뜩잖다고 해야 할까?”
“하이톤이지?”
“들어보셨어요?”
“그래. 누군지는 알지만, 노래를 부르나 싶어서 찾아봤어. 하지만 난 그냥저냥이던데.”
“그런가요?”
“그래. 그리고 배우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지 마. 목소리도 신경 쓰지 마. 예성 학생 노래를 노래방에서 불러대는 음치들도 많을 텐데. 그거 하나하나 다 신경 쓸 거야? 저 머나먼 중국에서 예성 학생 노래가 마음에 든다고 말하는 그 말이 더 고마운 거야.”
“그런가요?”
“그래. 제대로 부르는 건 예성 학생이 하면 되는 거지. 거기다 듀엣으로 하면 예성 학생이 보완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럴까요?”
“그래.”
어쩌면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이건 내가 부르는 곡이다. 그런 곡을 번안해서 자기네 나라에서 부르겠다는 것인데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분으로 인해 내 노래가 더욱 많은 사람에 들려진다는 것이 장점이 아닐까?
“예성 학생, 할 거지?”
“네. 해보죠. 그런데 그쪽에서는 용케 듀엣을 허락했네요. 제 이름도 모를 텐데.”
“그거야 당연하지. 그 여자가 기획사 실세니까.”
“1인 기획사에요?”
“그건 아닌 것 같고, 자기가 차리고 후배들을 받아들였나 봐.”
“그럼 저작권 같은 문제는?”
“쉽게 이야기됐어. 별로 욕심내지 않던데. 그런 게 욕심났으면 예성 학생의 곡을 고르지도 않았겠지. 자기 나라에 불러주기만을 바라는 작곡가가 얼마나 많겠어?”
“그건 그렇네요. 그런데 본부장님, 언제 가요?”
“다음 주. 예성 학생 여권 있다고 했지?”
“네. 저번에 가족이 가서 다 함께 만들었죠.”
가족의 여행에 대해 생각했을 때 다 같이 가서 만들었다. 그리고 생각난 김에 사진관에 들려 가족사진도 찍었다. 덕분에 집안에 커다란 가족사진이 걸려있다. 동생은 볼 때마다 구시렁거리지만, 나는 볼 때마다 흐뭇했다.
“저기, 엄마도 같이 가도 될까요?”
여권을 생각하니 저절로 엄마가 생각났다. 때가 된 것이다.
“그래. 어머니도 너 혼자 보내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으실 거야.”
다 자란 고등학교 3학년의 아들이지만 지방 여행도 아니고 해외니, 마음이 편치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이기호였다. 얼마나 애지중지하는 아들인가?
“그럼 그렇게 말할게요.”
“그래. 준비는 우리가 다 할 테니. 여권만 챙기시라고 말씀드려.”
“네.”
집으로 돌아와 중국에 가자고 말하니, 동생이 떼를 썼다.
“나도 가.”
“네가 뭐하러?”
“가족 여행이잖아.”
“오빠 일하러 가는 거다.”
“무슨 소리야? 그럼 엄마는?”
“엄마야 보호자로서 동행하는 거지.”
“그 보호자 내가 할게.”
“나보다 어린 게 무슨 헛소리야? 넌 학교 가야지.”
“결석신고서 내면 되지.”
“그게 되냐? 꾀병이라도 부리게.”
“쯧쯧, 이렇게 학교에 대해서 아는 게 없으니. 오빠, 학교에는 말이야. 가족체험 동반학습이라는 게 있어. 그걸 신청하면 그냥 출석 처리가 된다는 말씀.”
“네가 뭘 체험하는데?”
“중국을 체험하는 거지.”
“그래. 중국에서 뭘?”
“중국체험 한다니까. 그냥 가서 말만 들어도 중국어 체험이고 땅만 밟아도 중국을 느끼는 거지. 뭘 따져?”
“어휴, 맘대로 해라. 나는 모르겠다. 학교에서 허락하지 않으면 그냥 안 가는 거다. 집을 지키는 사람이 있어야지.”
“지금 이 가녀린 여동생을 빈집에 홀로 두겠다는 거야?”
“그 이야긴 살 빼고 다시 하자.”
“오빠!!”
다음날이 되어 엄마는 학교로 오셨다. 이 가족동반체험 학습이라는 것은 부모가 학교에 와서 교장 선생님에게 허락을 받아야 인정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부랴부랴 엄마는 바쁘게 움직이셨다.
엄마는 빈손으로 학교에 오시지 않았다.
“아이구, 어머니 뭘 이런 걸다···.”
그러면서 냉큼 받아드시는 담임선생님 되시겠다.
“어머, 예성이 어머님 아니세요? 여긴 어쩐 일이세요?”
“어머님, 저번에는 잘 먹었습니다. 이건 그건 가요?”
엄마는 바리바리 싸 온 황금색 물(?)을 선생님들에게 나눠 드렸다.
역시 엄마다웠다. 주면 다 주고 안 주면 다 안 주는 거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듯이 작은 병을 한 분 한 분 다 나눠 주었다.
500㎖의 작은 병들이지만 이정도의 양이면 무거우셨을 텐데 억척스럽게 그걸 다 들고 오셨다.
거기다 그게 보통 물인가? 학교에 술을 반입하다니. 큰일 낼 우리 엄마다.
선물 증정식이 끝나고 담임선생님과 교장실로 갔다.
“허허, 내가 이걸 보는 날이 올 줄이야.”
내가 내미는 종이를 받으시며 말씀하신다. 이 분도 가만히 보면 은근히 개그 욕심이 있으신 것 같다.
“중국이라···. 가족 여행인가요?”
“네. 그런 셈입니다. 저는 스케줄 때문이고, 엄마는 보호자, 동생은 세상 공부라고 합니다.”
“허허, 공부. 그렇죠. 이 좁은 한국을 벗어나서 다른 나라를 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맞아요. 많이 배우고들 오세요.”
그러면서 시원하게 도장을 찍어주시는 교장 선생님이시다.
서류를 담임선생님에게 넘기고 나오는 나의 눈에 엄마가 선물한 물병을 아련한 눈으로 보는 교장 선생님이 보이셨다.
‘설마 지금 따진 않으시겠지?’
모를 일이다.
끝
ⓒ 꿈속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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