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 singer is one RAW novel - Chapter 135
130. 갈 때와는 다르다. >
고형중은 터덜터덜 입국장을 걸어나갔다.
‘이건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어.’
고형중은 베트남에서 콘서트를 마치고 오는 길이다. 자신의 콘서트가 아니다. 기획사 소속 아이돌 가수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하고 오는 길이다.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다. 무대가 거기밖에 없었다.
자신은 슈스케 우승자다. 그런데 무대가 없다. 우승자의 특전인 초호화 음반에, 데뷔무대는 아시아 어워드인 AMA에서 이루어졌다.
그런 자신이기에 앞으로의 인생은 이제 탄탄대로일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딱 그때까지였다. 자신의 앨범은 50위권 안에도 들지 못했다.
빛 좋은 개살구.
기획사에서 자신을 부르는 말이다. 시청률 대박 난 슈스케의 우승자지만, 가장 빛을 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오히려 준우승자인 호영이 빛을 보았다. 슈스케 무대 당시 기획사의 푸시를 받아 화려한 무대를 꾸미던 자신과 다르게 언제나 수수하게 무대를 꾸몄던 호영.
그런 호영은 윤종수의 기획사에 들어가더니 날개를 단 듯 훨훨 날아올랐다.
그래 봤자 아이돌에 치이고 음원 가수들에게 치여 20위권이지만 자신에 비하면 대단한 성과였다.
평가도 슈스케 때 보다 발전한 모습이라는 후한 평가를 받았다.
자신은 오히려 슈스케 때가 못하다는 평가였다.
생각하며 걸어나가니 카메라를 든 방송국과 기자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한 때, 자신의 귀국에 저 수 많은 기자가 달려들면서 플래시를 터뜨리는 상상을 했다. 현실은 자신의 모습을 알아보지도 못한다. 고작 선글라스 하나 꼈을 뿐인데.
“한류스타라도 귀국하는 건가?”
자신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런 관심을 받을 거라면 베트남까지 가서 게스트를 하고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의 곁으로 눈에 익은 남자가 지나간다. 그 남자가 자신을 스쳐 지나가자 카메라의 플래시가 눈이 멀 정도로 터져 나온다.
이 사람이 주인공인가 보다.
기자들 사이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이들이 나와 그 사람을 호위하듯 둘러싼다.
그런 그들에게 기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면서 서로 다투듯이 말을 쏟아 낸다.
“신예성 씨, 중국에서 일정은 어땠습니까?”
“신예성 씨, 중국에서 한 손에 꼽히는 양민과 듀엣을 녹음한 소감은요?”
“신예성 씨가 주인공인 게임의 사전등록 수가 400만을 넘어섰습니다. 기분이 어떤가요?”
“신예성 씨···.”
“신예성 씨···.”
‘헐, 이들이 기다린 이가 신예성이라니, 결승에도 오르지 못했던 신예성이잖아.’
슈스케 당시 신예성이 시청률을 끌어 올렸지만 그건 해프닝으로 인한 것이지 노래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지금 벌어지는 사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슈스케에서 자신을 빛내주기 위해, 자신이 날아오를 발판이 되어주기 위해 존재했다고 생각한 신예성은 손에 닿지 않는 곳까지 날아올랐다.
‘슈발, 친하게 지냈으면, 게스트로 콘서트에 세워달라고 말해볼 수 있을 텐데.’
****
‘허, 이게 무슨 일이야? 나갈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던 사람들이 들어올 때는 왜 이 난리람? 거기다 경호원이라니. 농담인 줄 알았는데.’
양옆에 나를 보호하듯 감싸고 손으로 사람들 틈을 익숙하게 헤집으면서 길을 트는 사람들이다.
사람들 사이를 지나는데 기자들의 질문들이 쏟아져 내렸다.
이미 입국할 때 석태 형에게 대답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들었다. 하나를 대답하면 수많은 질문에 대답해야 하므로 무시하라고 했다. 하지만 지나는데 무시할 수 없는 질문이 나에게 날아왔다.
“신예성 씨, 음악방송에서 ‘스카이 워커’가 1위를 했는데도 불참을 했습니다. 해외에 있었다고 하지만 먼 곳도 아니고 잠시 귀국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많은 팬이 신예성 씨 노래를 듣기 위해 기다린 거로 알고 있습니다. 이건 팬들에 대한 배신이 아닐까요?”
나는 그 질문에 옮기던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국내에서 안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스카이 워커가 1위를 하는데 내가 방송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에 대해 말이 많았다.
“그냥 무시하고 가. 피곤할 텐데, 쉬고 다음에 자리를 마련하면 돼.”
“아니요. 이건 그냥 넘어가서는 안 돼요. 석태 형, 비행기에서 기자 회견 자리 마련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죠?”
“그래.”
“해주세요.”
내 말에 석태 형이 나를 잠시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러다 한숨을 내쉬고는 기자들에게 외쳤다.
“음, 신예성 기자 회견을 열겠습니다.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자리를 이동해 주세요.”
그 말에 기자들이 순식간에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 공항 한구석에 철퍼덕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형, 설마 저기에요?”
“그래. 설마 TV에서 보는 것처럼 어디 룸이라도 빌리는 줄 알았어?”
“네.”
“그런 건 예약해야 해. 그런데 피곤한데 괜찮겠어?”
“피곤한 건 형 같은데요?”
“누구 덕분에.”
공항으로 오는 길에 석태 형이 엄마에게 들들 볶였다. 돈도 좋지만, 너무한 거 아니냐고, 짧은 비행시간이 아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엄마는 오는 내내 석태 형에게 징징거렸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우리 귀한 아들. 금쪽같은 아들, 아들, 아들···.
‘역시 난 엄마를 많이 닮았어. 내 징징거림은 엄마에게 물려받은 게 틀림없어.’
나는 엄마의 말을 들으면서도 말리지 않았다. 속옷을 이야기하지 않은 나의 소심하고도 소심한 복수였다.
이런 상황이 있어서 피곤한 건 내가 아니라 석태 형이라고 생각한다.
“괜찮아요. 그냥 가려고 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질문이 나왔잖아요?”
“그건 그렇다. 나도 의외였으니까.”
“네. 저도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다 고심 끝에 거절한 거니까요.”
“그래. 네가 선택했던 만큼 알아서 잘 말하리라 생각한다.”
“네.”
공항 직원분들이 탁자와 의자를 갖다 주었다. 그러자 내 앞에는 방송국과 신문사의 로고가 들어간 마이크가 놓였다.
‘이런 날이 오게 될 줄이야. 이런 건 스캔들이 나야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석태 형이 기자들을 향해 말한다.
“그럼 신예성의 기자 회견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럼 질문이 있으신 분은 손을 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질문은 시간 관계상 한 분당 한 개씩만 받겠습니다.”
질문은 아까 들었던 질문의 계속이었다. 질문을 받으며 하나하나 대답해 주었다. 이제 나도 Y 앱과 콘서트 진행을 홀로 해봐서 그런지 입에서 말이 술술 나왔다.
질문들이 지나가고 드디어 내가 기다리던 질문이 나왔다.
음악방송에 대한 질문이었다.
“음악방송에 출연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신예성 씨가 출연을 거부하는 바람에 다시 음악방송의 팬덤 문화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예전에 게스트와 많은 준비를 하고 방송에 출연했다가 관객석의 반응에 실망해서 돌아간 이야기는 그때 기사로도 크게 다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방송을 거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질문을 받고 혀로 입술에 침을 듬뿍 발랐다. 거짓말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긴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제가 음악방송을 거부한 것은 사실입니다.”
내 말에 기자들 틈에서 웅성거림이 들린다.
“어떻게 보면 정말 건방진 행동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음악방송의 권위를 신인이 무시하냐는 이야기도 나왔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거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도 출연요청이 오면 거부할 생각입니다.”
“역시 실망해서인가요?”
“솔직히 전혀 실망을 안 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더 큰 실망은 저에게 실망한 것입니다. 솔직히 저번에 나갔을 때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저만 아니라 누구나 그럴 거로 생각합니다. 준비를 많이 했는데 준비한 음악이 관객을 만족하게 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거부하신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저도 솔직히 나가고 싶었습니다. 1등입니다. 2등도 아니고 1등. 그것도 학생인 제 처지로 말하면 전국 1등이죠. 제 평생에 1등 해본 역사가 없습니다. 기자분들이시니 제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실 겁니다.”
기자들 얼굴에 웃음이 감돌았다. 아! 내가 또 자폭하는 꼴이 되고 마는구나.
“그럼 다른 이유가 있다는 말인가요?”
“네. ‘스카이 워커’를 부를 자신이 없어서 거부했습니다.”
“네~에?”
기자는 황당한 말을 들었다는 듯이 놀랐다.
“스카이 워커, 신예성 씨가 작사, 작곡한 거로 나와 있는데 아닌가요?”
“맞습니다. 작년 슈스케 나가기 전에 곡을 만들었습니다.”
“부른 것도 신예성 씨가 맞죠?”
“네. 맞습니다. 음원으로 나온 것을 들으니 슈스케가 끝나고 녹음했던 곡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럼 오래되어서 부르는 법을 잊었다는 겁니까?”
기자의 말에 잠시 고민을 했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음, 어차피 기자분들도 알다시피 저는 감추는 걸 잘 못 하기에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자분 말씀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허, 가수가 자기 곡을 그렇게 말해도 되나요?”
“여기에 관해 이야기가 좀 있습니다. 들려드려도 될까요?”
“네. 듣고 싶군요.”
기자들이 눈을 반짝인다. 하지만 그리 재밌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단 이 곡의 발표과정에서부터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이 곡을 만들었지만, 발표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기획사가 제 동의를 얻지 않고 발표를 했습니다.”
다시 웅성거림이 시작되었다.
“그거 계약 위반 아닌가요?”
“아마 맞을 겁니다. 하지만 걸고 넘어질 생각은 없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이 곡은 음원 유출이 되어 발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거기다 유출한 범인은 저고요. 아시겠지만 이 곡은 제가 메이킹 필름에서 이 곡을 듣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기서 유출이 된 거죠. 그러니 제가 할 말이 없습니다. 애초에 제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일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테니까요. 거기다 음원 유출한 대상들이 어린 중학생들이라 기획사에서도 당황했다고 생각합니다.
수습하는 방법은 음원 발표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군요. 음원 유출은 그렇다 치고 방송을 거부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일단 이 곡은 만들기는 했지만, 앨범에 실기는 거녕 남 앞에서 부를 생각조차 없었던 곡입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랬을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악방송 1위 하는 곡인데···.”
“네. 그건 결과입니다. 제가 이 곡을 만들고 제 음악스승님인 음악 선생님에게 들려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손발이 오그라든다.’ 이러셨습니다. 그리고 기획사에 곡을 넘기니 기획사에서도 가사가 너무 만화주제가 같다. 가사를 갈아엎자고 했습니다. 기자님, 혹시 스카이 워커 들어보셨습니까?”
“네. 물론 들어봤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 무슨 생각하셨습니까? 솔직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기자는 내 말에 용기를 얻었는지 내가 원하는 말을 했다.
“유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네. 바로 그겁니다. 그래서 저도 이 곡이 이런 반응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도 못 했습니다. 저희 기획사에 대해서 아신다면 쉬울 거로 생각합니다.
저희 기획사에서 연습생을 빼고 나이가 제일 어린 사람이 접니다. 그런 가운데 곡에 관해 이야기하니 모두 기자님 같은 반응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에 이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곡은 제 마음 깊은 곳에 묻어 두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곡을 만들고 불러 본 게 30번도 되지 않을 겁니다. 그것도 녹음 당시만 그렇습니다.
그 이후론 불러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거부한 겁니까?”
“네. 저는 남 앞에서 부르기 위해서 많은 준비를 합니다. 실수를 줄여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철저한 상태에서 노래해도 실수할까 조마조마 한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음악방송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럼 준비가 되면 방송에 나갈 생각입니까?”
“네. 물론입니다. 개인적으로 얼떨떨한 상황입니다. 이게 왜 1위를 한 건가? 내가 그렇게 다른 곡을 부를 때 못했던 1위를 왜 이 곡이 한 걸까? 싶습니다.”
“하하하”
이 질문을 끝으로 나의 기자 회견은 끝이 났다.
기사가 쏟아져 나가자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리가 쏙 들어갔다.
특히 Y 앱에서도 내 조촐한 기자 회견이 생방송으로 나갔다.
이기호는 댓글을 보면서 확실히 기획사가 감각이 좀 더 있었으면 이렇게 멀리 돌아올 일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한다?’
다시 한번 물이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예능, 가요프로그램, 광고, 작곡의뢰 할 것 없이 모두 신예성을 원한다.
깨끗한 이미지, 소신 있는 발언, 거기다 음악적인 재능, 모든 것이 신예성의 값어치를 높이고 있었다.
‘노를 저어야 할까? 그냥 바람만 타야 하나?’
모두 스카이 워커 때문이다. 콘서트에서 메이킹 필름, 다시 스카이워커로 흐름이 이어지자 10대들이 신예성의 팬으로 붙었다. 그 덕에 정말 이름값이 엄청나게 상승을 했다.
‘신예성 뮤직 월드라니. 정말 십대들은 생각하는 것도 참신해.’
십대들에게 스카이 워커는 신예성 뮤직 월드의 입문용 음악이 되었다. 자기만의 감성을 담아 노래하는 신예성의 노래는 이제 십대들에게도 먹혀들어갔다.
신예성의 노래에 익숙해진 십대들은 예성의 음악 이야기를 신예성 뮤직월드라고 칭했다.
문이 열리며 석태가 들어온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예성이는?”
“연습실에 있습니다.”
“집에 안 가고?”
“스카이 워커를 불러야 한답니다.”
“그래? 가자. 이거 좀 들어.”
기호가 석태에게 탑처럼 쌓인 서류를 넘겼다. 석태는 힘겹게 받으면서 물었다.
“이게 뭡니까?”
“예성에게 들어온 일감이다.”
“설마, 이걸 다 시키려고요?”
“허, 이놈 봐라. 나를 어떻게 보기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거야?”
“제대로 봐서 하는 말 아닐까요?”
기호가 석태를 갸름한 눈으로 보았다.
“너 예성이를 따라다녀서 그런가? 말대답이 늘었다.”
“예성이는 본부장님 핏줄이라 어쩔 수 없는 거라고 하던데요?.”
“어라! 점점, 그리고 예성이가 말 막 던지는 게 하루 이틀이야?”
그 순간 석태의 머리로 예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본부장님 말 바꾸는 게 하루 이틀이에요?’
정말 막상막하의 두 사람이다. 절대로 자기들이 이상한 건 아니고 남이 이상한 것이다.
연습실 앞에 서서 석태에게 물었다.
“노래 연습한다고 하지 않았어?”
“네.”
“그런데 조용하네.”
“그러게요.”
기호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안에 양반다리로 침대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예성이 보였다. 마치 고승이 도 닦는 모습이었다.
“예성 학생, 뭐해? 아니다. 그냥 안 물어본 거로 하자. 어차피 영양가 없는 이야기인걸.”
“그럼 묻지를 마시지. 물어보고 왜 그러세요? 그냥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어요.”
“예성 학생, 말하면 어떡해? 또 왜라고 물어야 하잖아? 그럼 또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하고 난 태클을 걸겠지. 뻔한 건 건너뛰자.”
“허, 외국에서 고생하고 온 사람에게 정말 너무한 거 아니에요?”
“예성 학생, 고생이 아니야. 일하고 온 거지. 일이라는 게 힘들 때도 있고, 쉬울 때도 있고, 즐겁고 괴로울 때도 있는 거야.”
“그래도 속옷 차림은···.”
“잠깐, 하아, 예성 학생, 내가 예전에 뭐라고 했어? 어머니한테도 말씀드렸잖아? 네가 죽어도 하기 싫은 일이면 안 하게 해주겠다고.”
“그게 말이 쉽지. 죽어도 하기 싫은 일이 그렇게 흔할까요?”
거기다 3억이다. 누가 거절할까? 1억을 준다고 해도 홀딱 벗고 거리를 뛸 사람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쓸데없이 예리한데.”
“누구 덕분에요.”
“하지만 나는 말이야. 예성 학생이 어느 정도 이해했기에 촬영했다고 생각해. 아니야?”
본부장님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나는 이해했다.
“맞아요.”
“그럼 된 거지. 석태야, 여기다 놔라.”
쿵.
서류철이 내 앞에 놓였다. 그리고 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이게 뭔가요?”
“보면 모르겠어? 예성 학생에게 들어온 출연요청이랑 광고야.”
“이···. 이게 전부요?”
서류철은 과장하면 정말 내 팔길이만큼이었다. 이게 다 내 일감이라고?
“설마 이거 전부···.”
“아니야. 여기에서 예성 학생이 골라.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광고 2개야. 나머지는 알아서 해. 살펴보고 나가고 싶은 예능이 있으면 예능을 나가고, 라디오를 나가고 싶으면 라디오를 나가. 작곡하고 싶으면 작곡을 하던지. 광고를 더 찍고 싶으면 광고를 골라도 돼.”
이 사람이 왜 이럴까?
“저에게 화났어요?”
본부장님은 내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아니야. 이제 때가 되었을 뿐이야. 예성 학생, 이제 일을 찾아서 해야 하는 때가 지난 거야. 가만히 있어도 일이 이렇게 많이 들어오잖아. 그러면 이제 내가 일을 찾아서 줄 필요가 없잖아. 이제는 강요가 아니라 선택의 시간이지. 나는 이제 예성 학생에 관해서는 콘서트만 신경 쓸 거야. 말이 나온 김에 다음 달의 콘서트 규모를 어떻게 해줄까? 크게 해서 하루만 할까? 아니면 작은 공연장을 빌려 여러 날을 할까?”
“일시불이냐? 할부냐? 그거죠?”
“비유를 해도 참 너같이 한다. 맞다.”
‘콘서트라.’
나에게는 첫 콘서트 공연이 만족스러웠다. 공연을 지켜보는 이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같이 호흡하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큰 공연장에서 그런 느낌을 맛볼 수 있을까? 거기다 공연장이 커지는 만큼 음질이 뒤따라 줄까?
나의 노래는 어떨까?
“제가 했던 콘서트 규모면 충분할 것 같아요.”
“그래? 그렇게 되면 5일이야. 예성 학생도 해봐서 알겠지만, 콘서트는 체력이야. 스스로 준비를 잘해.”
“네.”
“그럼 난 간다. 아 참, 오늘 인터뷰는 정말 잘했어. 오늘처럼 불리한 이야기는 그냥 기획사에 떠넘기면 되는 거야. 앞으로도 그런 식으로 말을 해.”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흔들며 나가는 본부장님이다.
“본부장님이 달라진 것 같은데 뭐가 달라진 것인지 모르겠네요.”
“너에게 선택권을 줬잖아.”
“그거 말고요. 그냥 저를 대하는 느낌이 좀 달라요.”
“너도 나를 대하는 느낌이 그때그때 달라.”
“어허, 저랑 같은 급으로 놓으면 곤란해요. 석태 형.”
“얼씨구.”
“그런데 이건 어쩌죠?”
“글쎄.”
아마 난 오늘 석태 형과 긴긴밤을 보내야 할 것 같았다.
끝
ⓒ 꿈속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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